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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Helen/헬렌의 부엌에서

36년간 열일한 워크(Wok)가 명예퇴직을 했다.

by Helen of Troy 2021. 9. 5.

 

 

1985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산 세팔론/Cephalon 브랜드 워크

 

 

결혼 직후에 나는 뉴저지에 살면서 뉴욕에서 일을 했고,

남편은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아무런 살림이 없던 박사과정 학생들이 사는 아파트 부엌을 채우기 위해서

전기밥솥 하나, 냄비 3개와 프라이팬이 있는 세트, 수저 세트, 칼 세트와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수 있는 이 워크를 꽤 비씬 돈을 투자해서 구입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필라델피아에 내려가면,

이 전에 부엌이라고는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남편은 물론이고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남편의 총각 후배들은 

마치 구세주가 내려 간 듯이 내가 만든 집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10대 중반부터 늘 일하시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에

동생들의 밥을 챙겨주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에서 치르는 부모님의 모임 식사까지 담당하다 보니

집 밥을 만드는 일은 일상적인 것이라서

며칠을 끼니를 겨우 때우는 수준의 여러 남자들을 위해서

주말마다 기꺼이 60년대 풍의 집 밥을 만들어서  대접하거나, 

넉넉하게 준비한 반찬과 김치를 바리바리 싸 주곤 했다.

 

그때에 이 워크의 눈부신 활약으로 오징어 볶음, 아귀찜, 잡채, 멸치 볶음, 볶음밥, 떡볶이 등 한식부터

탕수육, 깐풍기, 마파두부, 부추잡채, 해삼탕, 짜장면 등등 다양한 중화요리가 상에 올려졌다.

그리고 당시 제일 인기가 좋았던 샤부샤부 요리도 이 워크에 둘러앉아서 

평균 일인당 4인분씩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유학 시기에 내가 만든 음식을 자주 얻어먹었던 후배들은

내가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정작 선배인 남편보다

오히려 나에게 얼마나 VIP 대접을 해 주던지 민망할 정도로 잘 챙겨주었다.

그리고 졸업 후 결혼을 한 후배들의 아내들까지

그동안 남편들로부터 제발 요리 말고 형수처럼 집 밥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면서

누군지 꼭 만나보고 싶었다는 원망 섞인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렇게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이 워크와 인연이 시작되어서, 뉴저지와 뉴욕을 거쳐서, 

캐나다 에드먼턴에 와서 우리 가족과 한 달에 한두 번씩 초대된 손님들을 위해서

36년간 다양한 음식을 꿋꿋하게 해  준 일등 일꾼으로 부엌을 지켰다.

이 워크는 일주일에 평균 4-5번은 사용했으니 일 년에 200-250번,

36년이면 줄잡아 8천 번을 열 일해서 우리에게 맛난 음식을 제공해 준 셈이다.

 

 

 

 

8월에 산 크기도 크고 질도 좋은 한국산 새 워크

 

 

오랫동안 자주 사용했지만, 워크의 소재과 좋기도 하고, 건수를 잘 한 덕분인지

작년까지도 어떤 요리를 해도 음식이 들러붙지 않고, 아주 높은 고열에 빨리 요리를 해야 맛있는

중식 요리를 하는데 아무 문제없이 뚝딱 요리를 만들었는데,

올해 초부터 바닥에 들어붙은 음식재료들이 아무리 빡빡 문질러도 지워지지가 않기 시작했다.

 

그래도 요리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어서 그냥 워크를 사용하면서도

언젠가는 새 워크를 사야지 늘 생각만 하다가

우연히 지름이 35 cm로 크기도 크고, 코팅도 맘에 드는 이 메이드 인 코리아 워크가

33% 세일을 한다고 해서 주저 없이 이 워크를 사서 집에 들고 왔다.

 

 

 

 

 

새로 장만한 워크로 제일 만든 음식은 요즘 평소보다 1/4 값에 세일한 꽈리고추를 2 kg을 사서

만든 지중해식 꽈리고추 조림이 새 워크의 첫 요리가 되었다.

 

 

 

 

 

2016년에 한달간 포르투갈과 스페인 북부 산 세바스찬에서 너무나도 맛있어서 거의 매일 먹었던

지중해식 고추요리를 흉내 내서 올리브 오일과 마늘 그리고 와인을 넉넉히 넣고 

간은 멸치젓으로 해서, 통깨로 마무리했더니, 

그때 맛 본 고추요리보다 오히려 더 근사한 맛의 고추 요리가 나왔다.

 

 

 

 

 

새 워크에 고추요리를 해 보니, 오랫동안 고생한 헌 워크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너무 요리 하기에 편리하고 맛까지도 좋아서, 진작에 새로 장만할 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런데 첫 워크와 함께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차고에 있는 냉동고 위에 일단 잘 모셔 놓았다.

아직 깨는 볶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야박하게 차 버리는 것이 왠지 미안하기도 하다.

 

 

 

 

 

새로 장만한 워크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할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 워크 후에 새 워크는 사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앞으로 새 워크와 함께 만들 맛난 음식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