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침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 연말이 되면서 평소보다 더 짜증나는
soliciting 전화가 더 많이 걸려 오고 있어서
셀폰이 아닌 집 전화의 75%가 그런 보이스피싱 전화이다.
모르는 전화와 이름이 수화기에 떠서 그냥 무시하려다가
혹시나 해서 마지못해서 전화를 뜰뜨름하게 받았다.
수화기 저편에 편안한 목소리의 여자분이
기억이 나지 않은 변호사 이름을 대면서, 자신을 그의 비서라고 소개하면서,
내 이름과 주소를 확인하더니
나한테 줄 수표를 전달해 주겠다는 말을 했다.
혹시나 받은 전화가 역시나 이상한 전화라는 판단에
짜증이 확 올라오면서 수화기를 놓으려고 하는데,
어떤 경로로 왜 수표를 전달해야 할 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여 주자
그제서야 납득이 되었다.
2주 전부터 캐나다 우체국 직원들이 연말을 앞두고
파업을 추진 중인 상황이라서,
우편으로 수표를 보내는 것이 못 미더워서
직접 집으로 와서 전달해 주겠다면서
우리집 위치를 재차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2시간 후에 변호사 비서가
눈이 많이 쌓인 미끄러운 길 위를 어렵사리 운전을 해서
직접 우리집에 찾아 와서
수표가 들은 하얀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북미에서는 집을 사고 팔 때에 모든 서류와 계약은
안전을 위해서 변호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도 13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어서 이사할 때에
변호사한테 맡겨 둔 보증금 목적으로 예치해 둔
금액 중에 차액으로 남은 이 금액을 담긴 수표를 우리에게 보냈는데
어떤 연유인지 13년동안 우리가 찾아가지 않은 채로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집 계약을 담당했던 변호사가
올해 11월 30일로 은퇴하면서 변호사 사무실을 닫기 전에
아직 현금화되지 않은 이 수표를 돌려 주려고
오늘 우리집을 찾아 왔다고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Merry Christmas~~" 말을 남기면서
눈길을 떠났다.
그녀가 건내 준 편지와 수표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너무 뜻밖의 일이고,
내심 긴가민가해서 우리가 받을 수표의 금액도 물어보지 못했는데,
봉투를 뜯으면서, 과연 얼마가 들었는지 갑자기 너무 궁금해지는
자신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란 생각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봉투 속에 든 수표의 금액은 너무 많아서 횡재라는 느낌도 들지 않고,
너무 적어서 김이 새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500 ($497.90)가 들어 있었다.
뜻밖에 받은 수표의 금액에 상관없이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도,
주인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수표를
일부러 시간을 내서 직접 전달해 주는 따스한 마음과 배려
그리고 양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10일이 지나도 뿌듯하기만 하다.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준비하는 시기인
Advent(대림절)이 시작도 되기 전에
일찌감치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담긴
소중한 선물을 산타에게 미리 받아서
어느해보다 대림절을 기쁘게 잘 시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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