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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Places/넓은 세상에서

타계한 미 대법관 루쓰 베이더 긴스버그를 사진으로 추모하면서 & 장례식 모습/Remembering Ruth Bader Ginsberg, a Champion of Women's rights

by Helen of Troy 2020. 9. 21.

 

 

Photo: Todd Heisler

 

 

1993년부터 여성으로서 두 번째로 미국 대법원 판사를 역임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서 평생 헌신해 온 루쓰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씨가

2020년 9월 18일에 췌장암으로 향년 87세의 나이에 워싱턴 자택에서 타계했다.

 

긴스버그 판사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 그녀의 손녀에게 

"나의 아주 간절한 소원은 나의 대법원 판사직이 새 대통령이 선출된 후에

꼭 교체되는 것이다." 라고 받아쓰기를 지시할 정도로

트럼프 현직 대통령에 의해서 그녀의 공석이 채워지는 것을 극도로 염려했는데,

선거 두 달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게 되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진다.

 

 

 

사진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그녀의 삶과 업적을 되짚어 보면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해 봅니다.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1950

 

 

 

 

1972

Photo: Librado Romero

 

 

 

 

남편 마틴 긴스버그 씨와 함께...

Photograph: Annie Groer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판사는 "미국은 역사적으로 뛰어난 판사를 잃었다.

대법원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료 판사를 잃었다.  오늘 우리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지치지 않고, 그녀의 굳은 신념과 의지를 관철하는 판사로 우리가 그녀를 기억하듯이

우리의 후손들도 그렇게 그녀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을 믿는다."라고 그녀를 기렸다.

 

긴스버그 판사는 1999년에 대장암 치료를 받은 바 있고,

2011년에는 췌장암 진단 후 항암치료를 받았고,

대법원 판사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대법원 판사직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2019년 8월에는 4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12월에는 폐에서 발견된 악성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느라,

대법원 판사로 임명된 후 처음으로 구도 논쟁 임무를 수행해지 못했으나,

수술 회복 기간 중에도 병원에서 투표를 하는 등, 판사 업무를 계속했다.

 

 

 

 

긴스버그씨가 바이든 상원위원과 대니얼 모니한 상원위원과 함께

그녀가 대법관으로 추천된 것을 축하하고 있다.

15 June 15 1993

Photograph: CQ Archive

 

 

 

 

 

1993

Photo: Doug Mills

 

 

 

 

긴스버스씨가 국회에서 대법관으로 승인된 것을 남편 마틴이 축하해 주고 있다.

20 July 20 1993

Photograph: John Duricka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 씨 앞에서 대법관 선서를 하는 긴스버그 씨

August 10, 1993

Photograph: Kort Duce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법원 판사직에서 제외되었지만,

샌드라 오코너 판사 다음으로 두 번째 여성으로, 그

리고 유태인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80년부터 워싱턴 DC 상소법원 판사로 활동하다가

1993년에 클린턴 대통령이 긴스버그 판사를 대법원 판사로 추천했다.

2006년에서 2009년 사이에 그녀는 대법원의 유일한 여성 판사였다.

 

진보주의인 그녀가 타계하면서 미국 대법원은 세 명의 진보적인 판사,

그리고 다섯 명의 보수주의 판사로 나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한 대로 보수주의 판사로 그녀의 빈자리를 채운다면,

미국의 대법원은 오랫동안 보수적인 성향을 띌 전망이 농후하다.

 

 

 

 

Jose R. Lopez

 

 

 

 

David Hume Kennerly

 

 

 

 

 

photo: Doug Mills

 

 

 

 

Lawrence Jackson

 

 

 

 

췌장암 수술을 받은 후, 오바마 대통령의 국회 연설 장소에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한

긴스버그 씨를 국회의원들이 반겨주고 있다.

24 February 2009

Photograph: Pablo Martinez Monsivais

 

 

 

 

Stephen Crowley

 

 

긴스버그 판사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견해는 다수이거나

그에 반대하는 그룹에 상관없이 큰 영향을 끼쳤다.

한 예로, 2007년에 Lilly Ledbetter와  굿이어 타이어 회사/Goodyear Tire & Rubber Co 사이의

벌어진 소송에서 피해자 여성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성들보다 적은 보수에 대해서

법으로 정해진 180일 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4로 굿이어 회사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목청을 높여서 여성 근로자가 불평등적인 보수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내는데

법에서 정해 놓은 180일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

이 제도는 무의미하고 부조리적이라고 반박하면서,

미국 의회에 직접 법을 바꾸라고 호소했다.

 

그녀의 이런 노력으로 2009년 미국 의회는 Lilly Ledbetter Fair Pay Act/

릴리 렛베터 공정 임금법을 가결시킨 후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해서 이 법이 제정되었다.

이 공정 임금법은 고용주가 임금을 지불할 때마다, 그로부터 180일 이내에

불공정한 임금에 대해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긴스버그 판사는 다수의 판결에서 그녀의 확고한 견해를 작성했는데,

특히 여성들의 권익과, 지위, 평등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1996년에 유서 깊은 버지니아 군사학교/Virginia Military institute에

남성들만 입학이 허가된 제도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문서를 작성했고,

임신중절 건과 회사가 피임을 하기 위해서 발생한 경비를 거부한 회사에 

반박하는 문서로 잘 알려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변호사 협회 회의에서 연설하는 긴스버그 씨

9 August 2010

Photograph: Jeff Chiu

 

 

 

 

대법관 그룹 초상화

8 October 2010

Photograph: Larry Downing

 

 

 

 

신년 대통령 연설을 하기 전 오바마 대통령이

안토니 케네디, 루쓰 베이더 긴스버그, 그리고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on 25 January 2011 

Photograph: Chip Somodevilla

 

 

 

 

대법관 공식 초상화 사진을 찍기 위해서 포즈를 취하는 긴스버그 대법관

 30 August 2013

Photograph: Nikki Kahn

 

 

 

 

이 초상화는 그녀가 대법관으로 활동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30 August 2013.

Photograph: The Washington Post

 

 

 

그녀의 아주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성격, 철저하고 성실한 일 태도와

강렬하고 호소력 있는 레토릭(수사법) 덕분에 "악명 높은 R.B.G./Notorious R.B.G."라는

닉네임이 생겼는데, 그녀는 이 닉네임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긴스버그 판사는 1933년에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루쓰 조운 베이더/Ruth Joan Bader로 태어났다.

그녀는 코넬대학교에서 인문계 학사를 마쳤는데, 코넬에서 후에 남편이 될 마틴 긴스버그 씨를 만났다.

이들은 루쓰가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54년에 결혼했다.

그녀는 바로 하바드 법대에 입학했는데, 500명의 학생 중에서 아홉 명의 여성 중 한 명이었으며,

당시 태어난 그녀의 딸을 돌보면서 법대 과정 수업을 마쳤다.

 

하바드 법대에서 2년간의 수업을 끝내고, 뉴욕에서 직장을 얻은 남편 마틴을 따라서

뉴욕 소재 컬럼비아 대학교에서도 법학 과정을 마쳤다.

하바드 법대에서 그녀는 필요한 과목을 다 이수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바드 법대 학장은 그녀에게 학위 수여를 거부하자,

그녀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획득했는데,

최우수 졸업자인 valedictorian 자격으로 졸업을 했다.

한편, 하바드 법대는 2011년에 그녀에게 명예 법학 학위를 수여했다.

 

 

 

 

Matt Roth 

 

 

 

 

2013

Todd Heisler/The New York Times

 

 

 

 

낸시 펠로시 야당 리더,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과 소냐 소토마이어 대법관과 함께...

18 March 2015

Photograph: Tom Williams

 

 

 

 

Hilary Swift 

 

 

1959년에 법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해서 법조인으로서의 자격이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법계 열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하버드 대학교 학장은 대법원 판사였던 프랑크푸 터 판사에게

그녀를 법원 직원으로 추천서를 보냈지만,

프랑크푸터 판사는 여성을 고용할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뉴욕의 연방법원의 직원으로 취직해서 일을 하다가,

럿트거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72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법대 최초 여성 법대 정교수가 되었다.

같은 해에 그녀는 ACLU 여성의 권리 프로젝트를 창립했으며,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이 프로젝트의 변호사를 역임하면서,

성별에 따라서 불평등한 다양한 케이스를 변호했다.

 

 

 

 

친한 친구이자, 동료 대법관인 안토닌 스칼리아 씨의 장례식에서

그를 추모하는 연설을 하는 긴스버그 대법관

1 March 2016 

Photograph: Susan Walsh

 

 

 

 

Photo: Scott Applewhite

 

 

 

 

Chang W. Lee

 

 

 

 

새로 대법관에 임명된 브레트 카바노 씨의 선서식에 참석한 긴스버그 대법관

8 October 2018

Photograph: Brendan Smialowski

 

 

 

 

Anna Moneymaker

 

 

1933년에  클린튼 대통령은 그녀의 업적을 높이 사서 그녀를 대법원 판사로 추천하면서:
"그녀는 평생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미국의 헌법이 강자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 국민들을 보호해 주기에

미국의 법 시스템에도 그들이 설 자리가 있다는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판사직을 수행하면서, 진보적 성향이 짙은 그녀는

대법원 내에서 반대의 이디 올로지를 가진 고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

이 둘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견해로 자주 팽팽하게 맞섰지만,

둘 다 오페라를 무척 사랑하는 오페라 팬이었고, 심지어 이 둘을 주제로 한 오페라가 작곡되기도 했다.

 

긴스버그 판사의 남편 마틴은 56년간 그녀 곁에 있다가 지난 2010년에 작고했으며,

유족으로 두 자녀와 여섯 명의 손자와 한 명의 증손자가 있다.

 

 

 

 

In Memoriam

 

대법원 앞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

Photo: Anna Moneymaker 

 

 

 

 

Sept. 18, 2020

Photograph: Jim Lo Scalzo

 

 

 

 

Sept. 18, 2020

Photograph: Alexander Drago

 

 

 

 

성조기가 낮게 드리워진 대법원 앞뜰에 밤늦게까지 시민들이 그녀를 추모하고 있다.

Sept. 18, 2020

Photograph: Tasos Katopodis

 

 

 

 

Sept. 19, 2020

Kirsten Luce

 

 

 

 

Kirsten Luce 

 

 

 

 

Sept. 19, 2020

Jeenah Moon for The New York Times

 

 

 

 

Sept. 19, 2020

Jeenah Moon 

 

 

 

 

추모 연설을 듣든 군중들...

Sept, 19, 2020

Photograph: José Luis Magaña

 

 

흔히 대법관은 평범한 시민들과는 친숙한 사이가 되기 쉽지 않은데,

긴스버그 대법관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평생 헌신적으로 일을 해 온 강인한 여성이자 친구로 널리 인정되어서

스타급의 명성과 사랑 그리고 존경을 받아 온 대법관의 죽음을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존재와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2020년 9월 25일에 워싱턴 Capitol에서 거행된 긴스버그 대법관의 장례식

 

 

긴스버그 대법관의 장례식 행사 전에 국회의사당 건물/the Capitol 의 성조기를 내리고 있다.

Photo:  ROD LAMKEY

 

 

 

 

합동 명예 군인 호위대가 관을 미국 의상당 건물로 옮기고 있다.

POOL/GETTY IMAGES

 

 

 

 

Photo: JONATHAN ERNST

 

 

 

 

Photo: Erin Schaff

 

 

 

 

긴스버그 대법관의 관이 의사당 건물의 Statuary Hall 안에 안치되는 모습을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지켜보고 있다.

CHIP SOMODEVILLA

 

 

 

 

캐피탈 건물에 안치된 미국 성조기로 쌓여진 긴스버그 대법관의 관을 경찰관 호위대가 지키고 있다.

Photo: OLIVIER DOULIERY

 

 

 

 

고인과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가족들.

긴스버그 대법관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유태인으로서 최초로 캐피틀 벌딩에 안치되었다.

CHIP SOMODEVILLA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바이든씨와 아내 질 바이든씨가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POOL/GETTY IMAGES

 

 

 

 

성악가 드니스 그레이브스/Denyce Graves씨가 장례식에서 애가를 부르고 있다.

POOL/GETTY IMAGES

 

 

 

 

미국 여성 하원위운들이 고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POOL/GETTY IMAGES

 

 

 

 

Phogo: Erin Schaff

 

 

 

민주당과 공화당 출신 국회의원들이 Capitol 건물의 계단에 줄지어 서서

긴스버그 대법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photo: Stefani Reynolds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