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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스페인

[스페인 그라나다 5] 알함브라 - 찰스 5세 궁전(Alhambra-Charles V palace)

by Helen of Troy 2011. 11. 12.

 

 

2010년 여름에 결혼 25주년을 자축할 겸, 결혼 후 처음으로 세 아이들을 집에 용감하게(?) 남겨 두고

한달동안 자유롭게 스페인, 남부 프랑스와 서부 독일 (그리고 잠시 스위스)를 다녀 왔다.

발이 가는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종아하는 옆지기와 나는 단체여행 체질이 전혀 아니어서

여행 떠나기 5개월 전부터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인터넷과 여행 책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가고 싶은 행선지를 정해 놓고 비행기, 기차, 호텔, 박물관, 등등을 직접 예약을 한 후에 떠나서

비교적 자유롭고 느긋한 스케줄로 보통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은 곳까지 두루두루

하루 평균 8시간 이상을 직접 발로 걸어서, 보고 느낄 수 있어서 많은 추억을 남기고 돌아 왔다.

 

원래 계획은 작년에 여행을 다녀 온 후, 9월에 개학하기 전에 사진과 journal 를 정리해서

그날 그날 보고 느낀 기억과 감동이 생생할 적에 하나씩 기록겸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바쁜 일상과, 일, 그리고 서너번 더 다녀 온 여행으로 정리할 사진이 줄어들기는 커녕 다 쌓여만 갔다.

그리고 일년 반의 세월이 지나 갔는데도

올해 여름에 다시 찾은 유럽여행 사진은 고사하고,

작년 여행의 고작 1/3 만 정리가 되어서 포스팅이 되었고,

나머지는 그냥 그대로 laptop hard drive에 고이 잘 저장되어서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올해 남은 날도 한달 반 남짓...  

그 시간 안에 4번 더 남은 합창단 연주회, 가르치는 학생들의 리사이틀, 그리고 각종 연말 모임과 행사들로

달력이 비좁도록 빽빽하게 벌써 스케줄이 찼지만,

이해가 가기 전에, 점점 희미해져가는 기억이 더 퇴색하기 전에,

2010년 유럽 여행기를 내용과 질보다는 알단 여행기를 마무리하기로 노력은 해 보기로 맘을 먹었다.

 

그래서 지난 6월에 스페인의 그라나다 도시에 있는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포스팅 한 후

5개월만에 겨울의 문턱에서 앞으로 다가 올 강추위를 조금이라도 밀어낼 작정으로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되살려서 스페인 여행 이야기를 계속 해 보려한다.

 

 

 

찰스 궁전 central courtyard...

 

 

 

간단히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대해서 ...

 

 그라나다의 역사

 

우선 그라나다의 역사를 살펴보면, 1500-2000 BC년에 작은 이베리아 부족들의 마을로 시작해서

1000년 BC 경에는 페니카이인들이 이곳을 그들의  무역 활동을 위해서 식민지로 삼아정착해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로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인들이 이 지방을 점령하면서 페니키아인들을 몰아내고

 550 BC 경부터 이지방이 상권을 거머쥐게 된다.

 

약 300년 후에는 로마제국이 전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하면서 Elybirge라고 불리우던 이 도시를 

이베리스(Iberis)로 명명하게 되지만

로마제국 시대에는 별반 빛을 보지 못한데다가 5세기경에 쇠퇴하기 시작한 로마제국이

결국에는 비지고트(Visigoths)족들에게 밀려나서 그라나다도 비지고트족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비지고트족들이 이 도시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구수도 늘어가고, 크리스찬들의 숫자도 늘어가면서

중요한 군사적인 도시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유태인들도 이주하기 시작해서 무리를 지어서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이 도시를 가르나타 알-야후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이도시의 이름의 유래라고 보고 있는 점이 재미나기도 하다.

 

711년에 무어족의 왕인 타리크(Tariq)가 이끄는 군대들이 이곳을 침공하기 시작한 후에 ,

713년에 이곳을 완전히 장악하면서약 200년간 그라나다를 지배하던 비지고트 시대의 막을 내리고,

이슬람 문화권으로 접어들게 된다.

아랍계 사람들인 무어족들은 그라나다를 일비라(Ilbira)라고 명명한 후에 300년간 지속적으로 확장과 발전을 했다.

1013년에는 지리스 왕조가 이곳을 통치하면 그동안 모로코의 지배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이 도시의 이름을 그르나타(Grnata)라고 정하고

높은 언덕에 위치해서 적군의 침략에서 보호하기 쉬운 현재의 알바이신(Albaicin) 으로 옮긴 후

약 200년간 이 고장을 지배했다.

 

1238년부터 나자리(Nazari) 왕조가 그라나다 지방뿐만 아니라 말라가, 알마리아, 코르도바, 세비야,

카디즈 지역을 포함한현재의 안달루시아 지역의 새로운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함브라 궁전과 견고한 성벽과 헤네라리페 정원도 나자리 왕조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찬란한 나자리 왕조의 전성시대의 유산으로서 여전히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13세기부터 스페인인들의 파워가 강해지면서 결국에 당시의 스페인의 왕인 페르난도 3세의 신하가 되겠다는

조약을 체결한 덕분에

스페인의 대부분이 스페인들의 통치하로 하나씩 넘어갔지만  나자리 왕조는 한동안 그들의 권력을 지킬 수 있었지만

결굴 1492년 1월 2일에 페르난도와 이자벨 여왕에 무릎을 꿇으면서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랑 왕조인 나자리 왕국의 최후를 맞게 된다.

 

크리스찬인 스페인인들이 그라나다를 재탈환한 후 몇년간은 당시 주민들이었던 많은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이 남아서

그들의 종교와 풍습대로 살 수 있도록 허락를 했지만 1499년에 부임한 사트네로스 주교가 모든 무어인들은

크리스찬으로 세례를 받도록 강요를 했고, 거부를 하면 많은 세금을 징수했고,

아랍인들의 복장과 그들의 언어도 금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1568년에 분개한 무어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스페인들에게 결국 패배를 당하고 그

라나다에서 완전히 추방 당했다.

 

유서깊은 그라나다 대학도 이 즈음에 칼로스 5세 국왕이 통치 하던 1531년에 의해서 설립이 되어서 현재까지

그라나다가 교육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알함브라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첫째는 찰스 5세 국왕의 궁전(Charles V's Palace),

두번째는 알카자바(La Alcazaba)라고 불리우는 견고한 성,

세번째는 알함브라에서 제일 유명하고 인기로 제일 관광객들이 몰리는 

무어인들의 최고의  나자리스 궁전(Nazaries Palace)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네라리페(Generalife) 라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부부도 벅찬 기대감을 안고 아래 지도처럼 노란색의 입구로 들어 와서

화살표를 따라서 4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도 잊고

넓고 화려하고 그리고 곳곳마다 제각기 특성이 잘 들어나는 알함브라 궁의 전체를

하루 종일 느긋하게 잘 감상하였다.

 

 

 이번에는 아래 지도에서 노란색으로 표기된 매표소와 입구에서부터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서 아름다운 정원을 끼고

초록색으로 표기된 찰스 5세 궁전 (Charles V Palace) 으로 발을 옮겨 본다.

 

 

Alhambra

 

The map above shows the route of a typical visit to the Alhambra.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코스이다)

Yellow The ticket office and main visitor entrance. 티켓 사무실과 입구
Blue The Alcazaba: the fortress where the soldiers lived with big towers that look out over Granada 알카자바
Green A strange renaissance palace built by Carlos V to stamp the Christan identity onto the Alhambra after the conquest 찰스 5세 궁전
Purple The Nazrid Palaces: a series of sumptous rooms and courtyards 나자리드 궁전
Pink The Partal Gardens: a wonderful goldfish pond and the Torre de las Damas 궁전 정원
Orange Generalife: the sultan's leisure palaces with a long line of fountains, gardens and water features 헤네리프
Red Star Puerta de la Justicia. 정의의 대문

 

 

 

 

알함브라 궁전의 입구를 지나면 찰스 궁전까지 약 700 미터 길이의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 왼편에 1000년이 된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래 된 수로..

 

 

약 300년간의 방치와 파괴되어 파손된 성을 보수하는 공사가 현재까기 진행되고 있다.

 

 

옛성의 기초만이 여전히 남아서 1000년에 화려한 전성기 시대를 잠시 상상해 본다.

 

 

하루 종일 아름다운 알함브라에서 머물면서 느긋하게 구경하기 위해서

일찌감치 줄을 서서 거의 제일 먼저 궁전에 발을 들여 놓아서인지

일년 내내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이곳의 정원길이 비교적 한가했다.

 

 

이슬람 풍습과 건축양식에서 물은 신성시되고 많은 분수와 정원이 빌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어디를 봐도 늘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꽃들이 눈에 들어 온다.

그래서 사막같은 그라나다에도 늘 푸른 나무와 원색의 꽃이 그득하다.

 

 

길 왼편을 따라서 성곽이 이어진다.

 

 

한동안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보니 UN을 방불케하는 전세계에서 온 많은 관광개들이 줄을 지어서 들어오고 있다.

 

 

낮이면 매일같이 4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의 그라나다에는

아침도 벌써 25도여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아름답게 손질이 된 나무들이 참 고맙다.

 

 

위의 나무숲 뒤 길의 오른편...

 

 

이곳 역시 옛 성곽이 아름다운 꽃과 분수의 물소리가 참 듣기 좋다.

 

 

붉은 장미와 palm trees...

 

 

핑크장미도 뽐을 내고...

 

 

이 터에 어떤 건물에,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날이 워낙 더워서 땀이 많이 나는 날씨에 10시간 이상 걸어다니려면

땀이 나도 달라 붙지도 않고, 잘 마르고, 가볍고, 호텔에서 툭툭 털어서 빨아서 걸어 두면

빨리 마르는 짧은 드레스를 선호하는데

저 위의 원피스는 지난 8년간 가는 여행지마다 참 즐겨 입고 다닌 옷이라서

여행 중 찍은 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 즐겨입은 탓인지 2011년 유럽 여행을 다녀 온 후에

8월에 한국방문때도 또 입고 가려고 손으로 비벼 빨아서 말리려고 탁탁 터는 찰라에

목 앞 부분이 죽~ 찢어저 버렸는데도 추억이 많은 옷이라서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말려서 옷장에 잘 걸어 두었다.

 

 

한때는 목욕탕으로 쓰였던 곳의 아름답고 정교한 타일이 그때의 모습을 엿 볼수 있다.

 

 

그 길을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이런 입구를 통해서 아직도 잘 보존된 700년이 넘은 오래된 스팀 목욕탕이...

 

 

지금은 비록 물은 흐르지 않지만 바닥과 벽이 두꺼운 돌로 만들어졌고,

반은 지하에 위치해 있어서 무척 시원해서 잠시 아무도 안 볼때 샌들을 벗고

목욕탕에서 처럼 맨발로 한동안 걸어 다니기도...

 

 

목욕탕의 천장...

전기가 없을 당시 촛불도 필요없게 마치 밤중에 아름답게 뜬 별처럼 아름다운 천장을 통해서

눈이 부시게 햇볕이 목욕탕으로  들어온다.

 

 

목욕탕 앞에 있는 안내판을 간단히 번역을 해 보면...

알함브라의 이슬람회당의 목욕탕

스팀 사우나 목욕은 이슬람 문화와 풍습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이런 목욕탕은 종교의 중심인 회당 가까이 위치하거나,

아예 회당건물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회교 회당에 들어 가기 전에 신도들은 몸을 정화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우선 몸을 씻는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곳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몸을 깨끗하게 씻으려고 함께 모이는 공동장소로

그리고 만남의 목적으로도 쓰여지는 중요한 곳이다.

 

이 목욕탕은 알함브라 도시의 회당의 목욕탕으로 지어졌으며,

현재 알함브라의 산타 마리아 성당 자리에 위치한다.

이 목욕탕은 무하메드 3세 통치 중(1302-1309)에 지어졌고

19세기에 부실한 공사로 타격을 입은 불운을 겪기도 했다.

 

 

 

 

  Palacio de Carlos V 

 

이 스팀 목욕탕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면,

찰스 5세 궁전 (Palace of Charles V, Placio de Carlos V)의 하얀 건물이

푸른 하늘의 배경으로 보석처럼 빛나게 눈에 들어왔다.

 

직선의 창문과 문이 곡선으로 디자인 된  무어인들의 궁전과 다른 다르다.

 

 

벽도 정교하게 조각되기 보다는 벽돌로 지어져서 약간은 밋밋하게 느껴졌다.

 

 

이슬람 국가를 몰아내고 크리스찬 국가의 상징인 십자가도 알함브라에서는 어쩐지 생뚱맞다는 나만의 생각....

 

 

궁전 길 건너편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들의 디자인이 아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궁 뒤에서 눈부시게 떠 오르는 태양으로 하얗게 보이는 하늘 배경의 궁전..

 

 

찰스 5세 궁전, 혹은 칼로스 5세 궁전은  (Palace of Charles V or Palacio de Carlos)

스페인의 황제인 칼로스 5세가 유럽 전역을 여행하다가 알함브라에 그의 궁전을 짓기로 맘을 먹었는데

궁전 건축의  주요 목적은 그의 조부모가 당시 이슬람교돌들이 무어인들이 오랫동안 장악하던 스페인의

중심지였던 그라나다에 이슬람을 드디어 몰아내고 그의 파워를 구축하고자 다분히 심볼적인 제스추어로

다른 곳이 아닌 이슬람의 중심지였던 알함브라에 새로운 궁전을 지으려는 데에 있다.

 

 

칼로스 황제는 1526년에 이탈리아 건축양식을 선호하던 당시 가깝게 지내던

알함브라의 총독인 엔도자씨와 카스틸리오네의  영향을 받아서

알함브라 성곽 안에 이탈리아의 "로마" 스타일의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원래 이 궁전은 로마에서 오랫동안 건축 디자인을 해 온 페드로 마추카(Pedro Machuca)가 맡았고,

1533년부터 1550년, 그의 죽음때까지 궁전건축에 책임을 맡았다.

 

 

그가 죽자 페드로의 아들인 루이스가 이어 받아서 궁전건축을 계속했다가

1568년에 일어난 무어족들의 반란으로 15년간 건축이 중단되기도 했다.

 

 

반란이 진압이 되고 다시 계속된 건축공사는 1619년에 높은 컬럼(기둥)이 있는 중간 정원이 완공이 되고,

공사가 계속되다가 1637년에 지붕이 설치 되지않은 상태로 무기한 공사가 연기 되었다.

 

 

궁전의 1층은 알함브라 박물관(Museo de la Alhambra)으로 쓰여지고,

2층은 Museo de Bellas Artes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1628년에 당시 국왕이었던 필립 4세가 그라나다를 방문했지만 90년이나 걸린 오래된 공사에도 불구하고

완공이 되지 않은 상태의 궁에서 머물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원대한 계획과 아이디어로 시작한 궁전공사는

400년이 지난 1923년에 발바스( Leopold Torres Balbas)가 오랫동안 방치 해 둔

이 궁전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드디어 완공이 되었다.

 

 

알함브라 전체에 무어풍의 건축양식이 대부분인것에 비해서

찰스 5세 궁전만이 르네상스 시대를 반영하는 로마풍의 유일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이 이채롭다.

 

 

중간 coutyard는 현재 여름 뮤직 페스티발 공연장으로 쓰여지기도 하는데

오늘 저녁에 있을 콘서트를 위해서 의자들이 관객을 위해서 준비되어있다.

 

 

높은 기둥들은 로네상스의 이태리를 연상하게 한다.

 

 

여분으로 의자가 준비되어 있고, 공연 무대도 보인다.

2층에도 객석이 있어서 올라 가 보니...

 

오히려 1층보다 무대가 더 잘 보인다.

 

 

이 궁전은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페드로 만추카 가 디자인을 맡은 점이 흥미롭다.

이 궁전의 넓은 중앙 courtyard는 한때 투우 경기장으로도 쓰여졌다.

아름다운 음악회와 피비린내나는 투우경기..

갑자기 비제의 카르멘 오페라가 공연이 연상이 되었다.

 

 

원형의 넓은 복도...

 

 

아무도 없기에 처음엔 조용히 나중엔 애라 모르겠다 하고

급기야 커다랗게 카르멘에서 나오는 아리아를 불러 보았더니 마이크가 필요없을 정도로 공명이 아주 커서 나도 놀랐다.

비록 관객은 하나도 없지만 알함브라 칼로스 궁전 무대에서 확실하게 solo perform을 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하하하하~~

 

 

central courtyard 대문..

 

그리고 궁전 입구의 대문...

 

 

 

이 궁전을 뒤로 하고,

이 아름다운 작은 정원을 지나면...

 

 

    Gate of Justice (정의의 대문)  이 눈 앞에...  

  Puerta de la Justica 

 

알함브라 성곽에는 4개의 대문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크고 중요한 대문이

바로 1348년에 지어진 이 정의의 대문이다.

(위의 지도에 빨간 별 표시)

 

이 정의의 대문은 대문 뒤에 있는 넓은 정원때문에 Gate of the Esplanade 라고도 불리운다.

이 대문의 구석구석 가득 이슬람교의 상징들이 손으로 직접 조각되어 있어서

알함브라의 심벌이자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의 대문 바깥쪽에서...

안쪽의 정교한 이슬람의 조각과 아주 상반되게 꾸며져 있다.

1588년에 알함브라의 주민의 요구에 의해서 디에고 호벤 (Diego de Navas el Joven)이

카톨릭 제단 뒤처럼 그림을 걸어 두고 크리스찬들의 알함브라의 재탈환을 기념하는 첫 미사가 집전되었다.

 

 

 

 

계속해서 위의 지도의 오렌지 부분인 generlife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