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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Science·Math

76세에 타계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삶과 공헌(Stephen Hawking)

by Helen of Troy 2018. 3. 16.

2005년에 켐브릿지 대학교응용수학과 이론 물리 대학교내의 

그의 사무실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모습

Photograph: Murdo Macleod 

 

 

3월 14일 어제 영국의 유명한 물리학자이자베스트 셀러 "A Brief History of Tiime"의 저자이며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밝혀 낸스티블 호킹 박사가 켐브릿지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향년 76세로 타계했다.

 

 

 

 

우선 사진을 통해서 그의 삶을 짚어 본다.

 

1965년 7월에 대학생이었던 제인 와일드와 결혼한 호킹 부부의 모습

 

이들은 1990년에 이혼했고,

호킹박사는 1995년에 그를 돌보던 간호원인 일레인과 재혼했다.

 

 

 

 

 

1989년에 켐브릿지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을 때에

참석한 호킹 부부와 아들 팀(Tim)

 

 

 

 

 

그가 22세 때에 희귀한 Motor Neuron Disease(MND 혹은 루 게릭병)을 진단받았는데,

당시 의사들이 얼마 못 살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50여년을 더 살다가

76세에 오늘 타계했다.

 

비록 21세부터 찾아 온 병마로 점점 약해지는 신체와

그의 대단한 지능은 잔인할만큼 큰 대조를 보여 준다.

MND 병으로 그의 대부분의 삶은 휠체어에 의존했고,

점점 신체가 망가지게 되면서, 급기야 목소리 합성기의 도움과

눈썹을 움직여서 소통을 했다.

 

그가 쓴 회고록에서 그가 처음으로 진단받았을 때의 심정을

"왜 나한테 이런 혹독한 병이 생겼는지 너무도 불공평했다." 라고 기억하며,

"때로는 내 삶은 끝났고, 나의 능력을 펼칠 수 없다고 좌절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니 나는 내 삶에 대해서 만족한다." 라고 기술했다.

 

 

 

 

미국의 하바드 대학교에 재직 중인 1984년 4월에

대학원생 조교인 콜린 윌리엄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호킹박사

 

 

호킹 박사는 1988년에 "A Brief History of Time" 을 출판해서

런던 타임즈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 237주간 올랄 정도로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호응과 관심을 모았다.

 

그는 그가 막 우주의 비밀을 발견하고 나서 그가 느낀 감동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는데,

원래 목적은 공항 서점에서 팔릴 수준으로 써서

보통 사람들도 어려운 물리학 개념을 알려 주고 싶었다고 했다.

 

 

 

 

 

1989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버킹엄 궁전에서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r 훈장을 받은 후에 첫 아내 제인과 함께 한 호킹박사

 

그는 1974년부터 현대 물리학의 두 초석인중력에 초점을 맞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원자 내의 작은 입자들을 다루는 양자물리학을 접목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그는 케임브릿지 대학교로 옮긴 후인

1992년에 케임브릿지 대학교의 수학과 건물앞의 호킹 박사

 

 

그는 1979년부터 2009년까지 40년간 케임브릿지 대학교의

루카지안 수학과 교수(Lucasian Professor of Mathematics)를 지냈다.

이 명예스런 직책은 300여년 전에 아이작 뉴튼도 맡은 바 있다.

그는 지속해서 권위있는 연구 논문과 책을 집필해서

명문대학으로부터 12개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여왕으로부터 명망있는 영국인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5년에 그를 돌보던 간호원 일레인 메이슨과 결혼할 당시의 호킹박사

그들은 11년간 부부로 지내다가 2007년에 이혼했다.

 

그는 일레인과의 결혼 생활을 열정적이고 폭풍처럼 강렬했으며,

비록 좋고 나쁜 고비가 많았지만, 그녀 덕분에

몇번이나 내 목숨을 건졌다 라고 회고했다.

 

 

 

 

그는 회고록에 "나는 만족스런 삶을 살았고,

장애인들이 장애로 인해서 못 하는 부분에 매달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정진해야지만

후회를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는 살아 있어서 그래서 이론 물리학을 연구할 수 있어서 나의 삶이 멋졌고,

내가 만약 우주에 관해서 공헌을 할 수 있다면더 할 나위없이 행복하다." 라고 밝혔다.

 

 

 

2007년에 무중력 상태 체험을 하는 호킹 박사

 

아울러 그는 60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가 오랫동안 해 보고 싶었던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랐으며,

7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2012년 런던 파라림픽 경기의

개막식 행사에 나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2008년에 요하네스버그에서 넬슨 만델라와 함께..

 

그의 타계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이어졌다.

 

 

 

 

2009년에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대통령 메달을 받는 호킹 박사

 

 

2014년에 지구촌 곳곳에 버켓 첼렌지(Bucket Challenge)가 퍼졌는데

유명인사들이 얼음처럼 차거운 물을 뒤집어 쓰는 해프닝으로

호킹박사가 앓고 있는 병을 널리 홍보도 하고

연구비 기금조성을 위한 행사로2014년에 가장 큰 소샬 미디어 행사였으며

수천만 파운드의 기금이 모여서 MND 연구에 쓰여지게 되었다.

 

 

 

 

2014년에 그의 삶을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 의 주인공을 맡은 에디 레드메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레드메인은 "우리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정신과 두뇌,

대단한 과학자이자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분을 잃었고,

그를 만나게 되어서 큰 영광이었다." 라면서 그를 추모했다.

 

 

 

 

세인트 제임스 궁전의 State Room에서 열린

레너드 체샤이어 장애자들을 위한 리셉션에서 여왕과 함께...

 

 

그는 병원 입원실에서 한 어린 소년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을 본 

그는 자신보다 더 상황이 나쁜 사람들도 있고,

최소한 그의 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휠체어에 갇혀서 목소리 합성기로 소통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며,"나는 학부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아도 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지루한 여러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어서오로지

나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라고 회고록에 썼다.

 

 

 

 

 

2016년 뉴욕의 one World Observatory(원 월드 천문대)에서 열린

New Space Exploration Initiative (새로운 우주 탐험 계획) 행사에 참가한 호킹 박사

 

 

그의 주된 연구는 중력이 너무도 강해서

빛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게 신과 그의 연구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우주를 이해한다면, 신이 그런 자격이 있다." 라고 말을 했다.

 

 

 

 

2017년 홍콩에서 참석한 청중들에게

켐브릿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홀로그램을 통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3월 14일 켐브릿지에 있는 자택에서 평화롭게 타계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반세기 이상을 펠로우로 봉직해 왔고,

켐브릿지 대학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명망이 높은 과학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켐브릿지 대학교의 곤빌과 카이어스 컬리지(Gonville and Caius College)의 깃발이 낮게 드리워졌다.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학생들이 곤빌과 카이어스 컬리지 앞에 꽃을 헌화하고 있다.

 Photograph: Tolga Akmen

 

 

  

 

 

곤빌과 카이어스 컬리지의 수석 집사인 러스 홈스씨가

호킹 박사의 사망 소식 후에 학교 입구에 서 있다.

Photograph: Martin Pope 

 

 

 

 

 

곤빌과 카이어스 컬리지에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위로의 글을 남기고 있다.

Photograph: Tolga Akmen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6년에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

Desiree Martin

 

 

 

 

 

 

스티븐 호킹의 공헌을 짧게...
A brief history of Stephen Hawking

 

스키븐 호킹 박사는 

그의 생애를 아인슈타인 박사가 제시한 

우주의 공간과 시간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 바쳤다.

 

아이슈타인은 자신이 제기한 상대성 이론이 어마어마한 량의 질량이나 에너지가

작은 점으로 모여지면, 공간은 안으로 가라 앉게 되고,

마침내 빛도 빠져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 형성되는 것을 예측해 주지만

본인은 블랙홀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 의문점을 해결해 주는 물리학자의 운명은 호킹 박사에게 주어졌다.

 

 

 

 

우주의 시초가 존재했다.
The universe had a beginning 
우주의 시초인 빅뱅 때에 발생했던 높은 온도와 cosmic microwaves 가

은하계의 자기장에 존재하는 먼지에 반사된 것을ESA의 플랑크 천문대에서 관측한 모습European Space Agency


1965:     호킹 박사아 23세 되던 해에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가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상대성 이론와 중력의 이론이 맞다면

블랙홀의 한 가운데에 비중이 무한한 한 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970:     호킹 박사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 펜로즈 박사와 함께

시간의 시초이자 출발점인 빙뱅(Big Bang) 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따라서 그는 우주의 시초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블랙홀의 관해서

How black holes behave

1970:     호킹 박사는 둥근 블랙홀에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점은
물질들이 블랙홀로 빠져 들거나,

다른 블랙홀들과 합쳐지지 때문에절대 수축하지 않고,

오로지 팽창하는 것을 증명했다.
1974:     그는 subatomic 분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활동의 영향을 감안하면,

블랙홀이 새거나 혹은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해서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1976:     호킹 박사는 폭발하는 블랙홀이 우주의 무작위(randomness)와

예측불가능(Unpredictability) 수위를 높여주어서,

블랙홀 안으로 사라진 사건들의 정보를 영구적으로 잃어버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양자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기억을 잃어버리는 사태가 불가능하기에.

이 예측에 반발하기 시작해서 40년간 논쟁이 계속되었다.

2004년에 호킹 박사는 그의 예측을 접었지만

그는 블랙홀에 정보가 어떻게 보관이 되는지 설명을 하지 않아서

현재까지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무한대의 우주

A Universe With No Boundaries

 

2012년 허블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담은 이미지에무한대의 은하계를 보여 주고 있다.source: NASA

 


1982:     수학적인 '상상의 시간' 개념으로 호킹박사와 캘리포니아 대학의

이론 물리학자인 제임스 하틀은 공간과 시간이 무한대의 우주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들이 제시한 그림에 의하면, 공간-시간은 지구본처럼 시간이 북극에서 시작해서

남극으로 내려가면서 넓어지듯이 우주의 크기가 팽창한다고 설명했다.

 

 




'간추린 시간의 역사'

 

‘A Brief History of Time’

호킹 박사가 쓴 유명한 베스트셀러 책 'A Brief History of Time'photo: Alastair Grant

1988:     호킹 박사는 'A Brief History of Time' 을 출판했는데

                런던 타임즈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 4년간 올라올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1991:     에럴 모리스 감독이 호킹 박사의 삶을 바탕으로 도큐멘타리를 제작했다.
2007:     호킹 박사는 플로리다에서 무중력 상태를 체험했다.
2012:     런던 파라림픽 개막식 행사에 나레이터로 참가했다.

 



끊임없는 호기심

 

An unrelenting curiosity

 


그의 삶을 주제로 제작된 

“The Theory of Everything" 시사회에서

그의 역을 맡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보는 가운데에

그의 첫 아내이자 영화의 토대가 된 책을 쓴 제인으로부터 키스를 받고 있다.

Credit: Andrew Winning

 

 

 

2015: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 개봉

 

2016:     켐브릿지 대학의 앤드류 스트로밍어와 하바드 대학의 말콤 페리 박사와 함께

호킹 박사는 블랙홀과 정보(Information)의 파라독스를 해결책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갔다. 

그는 블랙홀 안으로 떨어진 information이

처음에 제시한 것처럼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의 표면, 혹은 지평선에 보존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호킹 박사가 말년에 남긴 말 중에;

 

“It’s the past that tells us who we are. Without it we lose our identity,” he said.

과거야말로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 준다.과거가 없다면 우리의 정체성마저 없어진다.

 

희귀병으로 비록 휠체어에 50여년간 갇혀서 비록 신체는 불편했지만,

그의 비상한 두뇌로 우주의 비밀을 캐기 위해서 평생을 받친 호킹 박사는

이제 어느 별에서 자유롭고 편한 영면을 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