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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네덜란드

[네덜란드 여행8]역사와 문화의 도시 할렘 1편/Haarlem, Netherlands

by Helen of Troy 2019. 7. 5.



할렘의 Grote Markt(흐로터 막트/Market Square)

 

 


원래 계획한 네덜란드 여행 스케줄의 첫날은 할렘이었으며,

할렘에서 4박을 하면서 근처에 도시들을 방문하고, 

렘브란트 서거 350주년 특별 전시회가 열리는 라익스뮤지엄이 있는 

암스테르담은 2주 후에 방문하기로 되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한 날이 

바로 렘브란트 특별전시회 마감 하루 전날이어서

부득이하게 공항에서 바로 박물관으로 직행해서

짐을 근처에 있는 라커에 36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맡겨 두고

라익스뮤지엄에서 열리는 렘브란트 전시회 관람으로

네덜란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암스테르담 서쪽에 위치한 할렘과 라이든

 

 

 




 

할렘(Haarlem)은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서쪽으로 약 22 km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북 홀랜드(North Holland) 지역의 수도로 인구는 약 16만명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약 15분 정도 걸려서,

암스테르담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리고 스파르네 강 유역에 위치해 있어서 'Spaarnestad'라는 닉네임도 있고,

수백년간 튤립재배와 무역의 중심지답게

'Bloemenstad(꽃의 도시)'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다.


유서깊은 할렘의 역사는 중세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서

북해의 항구도시인 할렘은 북해를 가로 지르는 선박과 통행자들로부터 

거두어 들인통행세 덕분에 부유해졌고, 도시의 규모도 커져서

1245년에 도시로 승격되었으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요새도 지어졌고, 귀족들의 주거지가 되었다.


할렘의 건물과 집은 거의 목재로 지어져서 화재의 위험이 높았는데,

1346년과 1351년 사이에 화재로 도시가 거의 전소되었고,

1492년에는 북 홀랜드의 농부들의 봉기로 반란군이 잠시 점령했다가

정부군이 재탈환하면서 그들의 권리를 박탈했다.


수백년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아 오던 홀랜드는

1572년에 청교도들이 캐톨릭 스페인에 항거하다가,

7개월간의 포위를 견디지 못하고 알바 공작의 아들 프레데릭에 투항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할렘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처형되기도 했다.

1577년에 오렌지가의 윌리엄이 도시를 재탈환하게 되면서

연합 네덜란드에 합병되었다. 


그 후 할렘은 황금기를 맞게 되면서,

네덜란드의 예술계의 중심지로

그리고 청교도인 휴거노트(Huguenots)신도들의 피신처가 되었고,

17세기에 황금기의 절정에 오르게 되었다.


프란스 할스(Frans Hals), 루이스댈(Solomon van Ruysdael)를 포함한

할렘 미술파(The Haarlem school of painting)의 화가들이 주목받았고,

최초로 활자 인쇄 산업이 시작해서 출판업도 활성화되었다. 

중세부터 할렘의 주요산업이었던 모 방직산업과 맥주산업은

황금기인 17세기에 실크, 레이스 그리고 다마스크 직조산업으로 전환되었지만,




렘브란트 전시회 관람 후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할렘에 도착해서

도시의 한 복판에 위치한 '흐로테 막트' 광장에 위치한 

'아마데우스 호텔' 에 저녁 7시 반에야 도착했다.

 

 

 


같은 광장 내에 위치하고,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시청 건물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 백작의 궁전이었는데,

할렘의 대화재 때에 건물 일부가 타 버리자,

남은 건물을 도시에 기부해서 시청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광장은 10개의 길이 모여지며,

700여년간 도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광장에서 제일 건물은 성 바보 교회(St. Bavo Church/Grote Kerk)로

평평한 도시 어디서도 이 교회 건물이 보인다. 

 

 



1990년대까지 전차가 이 광장을 가로 질러서 운행되었고,

구석구석 주차된 차로 혼잡했는데,

지금은 보행자들만이 편하게 거닐수 있게 되었다.

 

 



 24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계속해서 6시간동안 전시회 구경을 하고,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할렘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저녁을 먹기 위해서 식당을 찾아 나섰다.


 


 

 

 네덜란드는 다양한 디자인의 gable 지붕이 유명한데

오래된 할렘의 골목에도 집집마다 독특한 gable 로 눈이 즐겁다.

 

 



300여년 된 건물을 개조해서 주상복합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네덜란드의 대부분 상점들, 박물관과 정부 건물들이 

 오후 5시나 6시에 일제히 문을 닫는데,

밤 8시가 된 거리는 한산했고,

심지어 동네에 있는 맥도날드마저 불이 꺼져 있어서 놀랐다.


 

 


여행 가이드 책자에 가격이 싸면서도 맛도 좋다고 소개한

베네치아 이탈리언 식당이 닫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 왔더니

다행히도 열려 있어서 앉자마자 주문을 했더니

한산한 시간이어서 고맙게도 음식이 빨리 나와서...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서 허기진 배를 그제서야 채울 수 있었다.

 북해 바다와 불과 6 km 밖에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바람에 매섭고 밤 기온이 12도 정도여서 기대보다 쌀쌀했다.


 

 


 30분 후 먹은 음식을 소화도 할 겸, 할렘 구경에 나섰다.


 

 


도착한 주말이 큰 명절이자 여름에 유일한 연휴인

오순절 연휴라서 거리가 더 한산한 것을 나중에 알았다.

 

 

 


차나 보행자들보다 늘 우선권이 자전거에게 주어진 나라답게

자전거들만이 곳곳에 즐비하다.

 

 

 


 



 

 

다양한 게이블 지붕의 건물들이 들어 선 다운타운





Nieuwe 운하

 

 

 


한때는 네덜란드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다는 것이 믿기지 못할 정도로

한적한 할렘의 밤





유일하게 거리를 걷고 있는 헬렌...





재미난 모양의 가로수가 있는 거리





골목길도 고즈넉하긴 마찬가지다.

네덜란드는 바다를 매립해서 생긴 토지 위에 만들어진 국가이다보니

땅이 무척 귀하기만 하다.


그래서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집에 딸린 마당이나 정원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집 입구에 화분을 사용해서 꽃과 나무를 키운다.





비록 공간은 좁아도 주인의 취향대로

예쁘게 꾸며진 집들이 있는 골목을 걷는 일이 즐겁다.





평범한 가정집 앞 모습...

소박하면서 운치가 느껴진다.





정말 다들 어디로 갔을까?

너무 조용하다.





오래된 집에 주차장은 없지만

자물쇄가 채워진 자전거는 곳곳에 서 있다.


실제로 할렘을 비롯해서 네덜란드에서는

대부분의 시민들의 교통수단은 자전거라고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출퇴근은 물론, 장보기, 등교등등 이동수단으로 

남녀노소 모두 곡예를 부리듯 때로는 마치 미린 연습한 춤을 단체로 추듯이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모습을 경이한 모습으로 쳐다보게 된다.





예술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집 앞에서...





꾸민듯 안 꾸민듯 멋이 배인 집의 입구에서...





비록 꽃나무를 심을 땅은 없지만,

세계에서 제일 합리적이고 

포용력이 제일 높고, 친절하며,

긍정적이고 진보적이며,

개인의 권리와 취향을 존중해 주는 나라라는 것을

평범한 그네들의 일상에서 여행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타던 27단의 기어와 shock-absorber가 장착된 내 자전거와 달리

네덜란드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자전거는

땅이 평평하기 그지 없기도 하고,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국민성답게

기어(gear)가 전혀 없는 아주 단순하면서 소박하고 값싼 자전거라는데 또 한번 놀랐다.

물론 헬멧도 쓰지 않고, 복장도 정장부터, 원피스, 롱드레스등

다양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유유자적 잘도 타고 돌아다니다.






밤 10시에 다시 흐로테 막트 광장으로 돌아왔다.





성 바보 교회 바로 옆에 위치한 할렘이 낳은 유명한 화가

프란스 할스 박물관


 




The next morning...


  다음날 아침에 아침 식사가 제공되는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가서 

근사한 아침을 든든히 먹고...

 

 

 


광장으로 나가 보았더니 전날과 달리 날도 개이고, 기온도 올랐고,

연휴의 마지막 날에 특별한 행사가 거행되는지, 광장에  활기가 넘쳤다.

 





호텔 바로 앞에 오래된 Organ Grinder가 들어 와 있다.

다양한 음악을 들려 줄 음원에 해당하는 판이 그득하게 쌓여 있다.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쇼를 보여 주는지 사뭇 궁금하다.

 

 

 







개인 날 아침의 300여년 된 시청 건물이 어제보다 훨씬 밝아 보인다.






대부분의 유럽은 중세에 국왕 혹은 공작이나 백작등 귀족들이 통치를 했지만,

할렘은 1425년부터 자치적으로 운영된 도시이다.

이 건물은 13세기 중반에 왕족의 사냥지의 숙소로 쓰기 위해서 지어졌다가

1351년에 발생한 화재 후에 재건축되었고,

1400년도경부터 할렘 시청으로 사용되었고,

현재에 보이는 facade는 1630년에 완성되었다.






 캐나다 집보다 오히려 기온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방문객들이 광장내의 식당 앞 테이블에 여유롭게 에스프레스를 마시고 있다.

 

 

 

 


광장 가운데에 세워진 L. J. Coster (1370-1440)동상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금속 인쇄술을 개발하기 40년 전에

코스터씨는 A라고 새긴 나무가 젖은 모래에 떨어지면서 활자가 새겨진 것을 보고 

이동식 목재 인쇄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할렘인들은 구텐베르크가 아니라 할렘 출신 코스터씨를 

현대 인쇄술의 발명인으로 간주하고 이 동상을 건립했지만,

구텐베르크는 금속 인쇄기를 발명해서 성경을 대량으로 출판하면서

세계 최초로 인쇄기를 발명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광장 앞에서 찰칵~


 

 

 


 기차역으로 가는 도중에...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 늘 자전거 다니는 길이 더 넓고 상태도 좋았다.

 

 

 

 

할렘 기차역 광장에 도착해서...





기차역 광장에  Graziella Curreli 작품의 

Wigbolt Ripperda and Kenau Simonsdochter Hasseslaer 동상이 서 있다.







1572년 12월 11일부터 1573년 7월 12일까지 7개월동안 

스페인 군대에 포위당하자 할렘은 용감하게 그들과 맞섰다.

어려운 여건 속에 발생한 포위 중에 위흐볼트 레페르다 자작과

선박회사 사장이자 무역인이었던 시몬스도흐터 하셀레어씨는

할렘 도시와 여성들을 보호하는데 앞장 선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쿠렐리씨가 제작한 이 동상이 세워졌다.






기차역은 시내 버스와 시외 버스 정류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할렘 기차역 입구






원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한 역 











드디어 이날 목적지인 라이든(Leiden)으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약 25분 후에 할렘에서 남쪽에 위치한 라이든 역에서 내렸다.







이어서 라이든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