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9일 오전 실내악 master class 에서 드보르작의 Piano quintet in A major를 연주하는 피아노 5중주 단원들...
며칠 전에 대학교의 Reading Week (1주일간의 봄방학)를 맞아서
딸의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저녁도 같이 먹고 밤 늦게까지 함께 즐겁게 잘 놀다가
밤이 늦어져서 마지막 버스 시간도 놓쳐서,
놀러 온 친구를 집에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면서 차고로 둘이 같이 차고로 나갈 채비를 했다.
밤도 늦었고, 그날 저녁부터 이미 폭설경보가 내린 상태여서 날씨 상태도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면허를 딴지도 5개월이 되었는데도 늘 운전이 위태위태한 딸 운전실력이 못 미더웠던 남편이
함께 따라 가겠다고 옷을 챙겨 입고 함께 나갔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남편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집 안으로 다시 들어 왔기에
뭔가를 잊은 물건이 있어서 가지러 들어 온 줄 알았는데
딸아이가 차고에서 차를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후진을 하다가 왼쪽 백미러가 떨어졌다고 짧게 말을 한 후에
굳은 표정으로 다른 차의 키를 들고 다시 나갔다.
남편이 딸의 친구를 다른 차로 바래다 주러 나간 사이에
지금 막 벌어진 상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좀 조심하지,
하루에도 서너번씩 비록 서툴지만 조심스럽게 잘만 드나 들던 차고도 제대로 못 빠져 나가서
골치아프게 사고를 저질러서 추운 겨울에 귀찮게 망가진 거울을 고치게 만들게 하고,
만만치않은 수리비로 생각지도 않게 지출을 해야 할 상황을 제공한 딸이 못마땅했다.
그런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딸에 대한 원망보다는 오히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딸아이의 어린시절과 성장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큰딸은 뭐가 그렇게 바빴던지 이 세상에 자그만치 3개월을 빨리
겨우 900그람이 좀 넣게 이 세상에 태어났다.
엄마인 나는 당시 소위 잘 나가는 직장에서 각광받는 업종의 일을 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초급속의 승진을 거듭하면서 태평양을 드나들면서
1주에 100시간을 일을 하고 있을 당시여서
초 미숙아로 태어난 원인의 반이상은 아마도 이런 수퍼 커리어 우먼 엄마의 책임이라는 생각에
딸이 성장하면서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늘 미안한 마음으로 자책을 하곤 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2번을 연주 한 후에..... 그렇게 이 세상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부터 기적적으로 목숨만 건진게 아니라,
불행 중 다행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태어난 다른 초미숙아들과는 달리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별반 큰 문제없이 4개월 후에 태어날 때보다 두배 이상의 몸무게인 2 kg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이렇게 예사롭지않게 집으로 돌아 온 후부터 8학년(중2)까지
큰딸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많이 늦은 발육상태로 늘 허덕거리며 그들을 쫓아가기에 바빴다.
태어나서 2살이 다 되어서 복덩이 아들 동생과 같은 시기에 걷기 시작해서
여러가지 방면에서 새로운 지식과 skills를 터득하는데 평균 2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운동신경이 둔해서 자전거타기도 2년에 걸쳐서 배웠고,
수영도 남들은 한 등급에서 보통 두번 레슨을 받으면 다음 등급으로 진급을 하는데,
딸아이는 같이 시작한 친구들과 함께 진급을 못하고 늘 뒤쳐져서 몇번을 더 이수한 다음에 수영을 배우다보니
마지막 등급 수영 클라스엔 혼자만이 중학교 학생이고 나머지가 다 초등학생들이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여러 방면에서 남보다 더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했다.
공부 역시 비슷한 상황이어서, 나와 남편은 학교 curriculum을 바탕으로 해서 딸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쓰기, 읽기, 이해하기, 그리고 공문수학처럼 반복하는 산수문제들과 계획과 논리를 요하는 응용문제를
직접 출제해서 매일 평균 1시간씩 8학년까지 함께 씨름하면서 집에서 수업을 했다.
기계처럼 할 수 있는 스펠링이나 문법, comprehension은 그나마 잘 따라 주었는데
산수 응용문제와 글짓기는 좀체로 눈에 띄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딸은 물은 우리 부부는 낙담을 자주 했었다.
특히 산수 응용문제는 똑같은 문제를 적어도 3-4번을 풀고 나서야 겨우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음악을 전공해서 여러가지 악기를 다루는 나는 성악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악기가 첼로였기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순전히 엄마의 무조건적인 첼로 사랑때문에
큰딸은 만 다섯살때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해서 결과적으로는 첼로 전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워낙 나이에 비해서 체구도 엄청 작아서 손도 당연히 작은 탓에 첼로라기 보다는 비올라같은
1/16 사이즈 장난감같은 첼로로 시작한 딸은 이 방면에서도 같이 시작한 학생들 중에서 늘 중간정도를 유지했고,
연주실력이 늘어가면서도 1등은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고, 늘 3-4등 수준에 머물러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본 적도 별로 없었고, 딸은 그나마 중간 이상 수준까지 올라 가서 내심 좋아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기간을 이렇게 남들보다 늘 더 많은 노력과 좌절을 겪으면서 사는 딸을 옆에서 지켜 보는 나는
그 원인 제공이 내 자신 같아서 딸에게 늘 미안해서 남들을 힘겹게 따라잡기게 급급한 딸 대신에
내가 다 감당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일이나 상황에 무서워하기 보다는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시도를 쉽게 하고,
따라서 자주 생겨나는 실수나 시행착오도 쉽게 뒤고 하고,
내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기는 우습지만, 학교 다닐때는
(남들과 부대끼지 않고 나 혼자 열심히 하는 유일한 것이니까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세상에서 공부하는 것이 제일 쉽다고 생각을 했고,
새로운 곳, 일, 사람, 상황등에 쉽게 적응할 뿐만 아니라, 즐기기까지 하면서 살아 온 나는
우리 딸을 키우기 전까지 (그리고 후로 계속해서 지금까지 자폐아인 아들을 키우면서)
학교 다닐때는 공부를 잘 못하는 친구들,
그리고 직장 다닐때는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들을 대할때의 나의 반응과 태도는
그들이 나보다 게으르고, 노력이 부족하고,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과 습관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사정과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않고,
제때에 일을 처리 못하는 부하 직원을 야박하게 나무라고,
윽박지르거나 몰아 세우는 피곤한 보스이기도 했다. 첼로 소나타 2번 G minor를 연주하는 큰딸
그런데 딸아이는 시작부터 900그람이라는 초 미숙아로 태어나서, 커 가면서 언제고 불거져 나올 수 있는 장애의 가능성을 안고
남들보다 몇배의 노력을 감수하느라 자신감에 상처 투성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칠전팔기의 마인드로 넘어져도 오똑이처럼 다시 털고 일어서서 반복하기를 일삼더니
그동안의 노력과 눈물 덕분인지 중3부터 성적도 눈에 띄게 향상이 되어서
고등학교 진학한 후로는 전교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에게 주는 상을 3년 계속 받았고,
첼로도 어려서 두각을 나타내던 친구들을 제치고 그 즈음부터 기대도 않던 1-2등을 하기 시작하더니 콩쿨에 입상까지 하게 되었다.
자립심이 유난히 강해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버스를 두번 갈아타면서 늘 혼자 등하교를 했고,
시내에 사시는 첼로 선생님께 갈때도 저보다 더 큰 첼로를 매고(어떨때는 키가 작아서 따로 주문한 의자까지 들고 다니고)
늘상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호기심과 보호본능을 일으키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레슨을 받으로 다녔다.
그러면서 늘 자신감없이 주눅이 들어서 움츠려서 살던 큰딸이 노력의 결과가 나타나면서 조금씩 잃어버린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교도 음대와 의대 지망을 두고 고3 일년 내내 고민을 하다가 음대 특성상 오디션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테아니사 처음으로 혼자서 동부에 있는 대학교 세군데로 시도한 오디션에서 다 합격이 되자 어렵게 통과한 오디션이 아까워서라도
1년만 우선 해 보겠다는 첼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부모의 경제적인 도움이 전혀 없이 대학교와 여러 단체에서 받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비싼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혼자서 다 충당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2년 전에 대학을 졸업을 하고
불과 한달 후면 석사학위 졸업 연주회가 열릴 예정이다.
남보다 상황이 아주 어렵게 삶을 시작한 딸의 성장과정을 지켜 보면서
우리가 흔히 쉽게 다른사람들의 겉으로만 보이는 두각을 나타내는 능력, 재능, 탈렌트, 외모만 선호하고
그리고 반대로, 그사람들의 모자란 능력(disabilities), 처지는 조건들을 무조건 무시하고, 외면하는
이 사회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한 적이 많았다.
요즘 사회에서는 운전이란 필수이기에 딸이 동부에서 여름방학이 되면 집에 오는 딸을 데리고
길눈도 어둡고, 소심해서 운전 배우기를 꺼려해도 우리 부부는 번갈아 가면서
성질도 내고, 이성도 잃어 가면서까지
쉽게 무엇을 배우는 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아는 우리는 속으로 작정을 하고
딸아이에게 기회가 되면 열심히 운전을 가르쳤다.
여름방학동안 집에 와도 늘 아르바이트 일이 두세가지로 바쁘기도 하고,
한두번의 음악캠프를 멀리 동부라 가곤해서
운전연습을 제대로 못해도 시험을 볼 만하게 될 정도가 되면
9월 새학기가 되어서 동부로 떠나곤 해서
번번히 운전 시험을 볼 기회가 놓치곤 했는데
드디어 작년 여름에 아직도 시험 볼 준비가 안 되었다는 딸아이의
등을 떠밀어서 몇번이고 시험에 떨어져도 좋으니, 일단 경험삼아서 시험으로 보게 했는데
예상대로 parallel parking 에서 완전 죽을 쑤고 첫시험에 떨여졌다.
재작년에 대학교 졸업식에서
그리고 다시 한달 후에 본 시험은 좀 납득하기 어렵게 실수는 없는데 너무도 조심스럽고 천천히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두번째 떨어졌다.
연달아서 두번 시험에 떨어진 딸아이는 자신감을 잃고는 운전시험을 다시는 안 보겠다고 울면서 단호하게 선언을 한 딸에게
2주 후에 한번만 더 시도해서 떨어지면 한동안 운전시험은 잊어버리자고 달래서
세번째 시도한 운전시험에 드디어 합격을 해서 합격증서를 들고 환한 얼굴로 들어 온 딸을 보면서
거 봐! 실패해도 자꾸 노력하다보면 남보다 좀 늦기는 해도 너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걸 앞으로 잊지말라고 토를 달면서 축하를 해 주었다.
운전을 시작한지 햇수로는 4년만에 운전 면허를 그렇게 딴 딸아이는 당장 첼로 레슨을 하러 학생집으로 일주에 두번씩 운전을 해야했고,
늘 일로 바쁜 엄마 대신에 동생들을 픽업하는 대리기사 역을 맡아야 하고, 가까운 수퍼에서 장도 봐야해서 거의 매일처럼 운전을 해야했는데
딸아이가 나갈 때마다 들리는 차고 문 소리가 날 때부터 늘 불안감으로 안절부절하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서 차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서야 그 불안감에서 벗어나기를 지금까지 반복하면서 지내오던 차에
늘 염려하던 운전사고가 이렇게 터진 것이다.
우리가 자주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나쁜일이 생겨도
처음엔 낙담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다가도
자신의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이미 저지런 실수를 토대로 현명하게 대처를 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바꿀 기회가 될수도 있어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음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중병상태까지 가기 전에 가끔씩 아플때, 그제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건강을 위해서 이때까지 일삼던 나쁜 습관을 버리기도 하고,
운전을 비롯해서 직장일, 사람들과 관계등등 순탄하게 풀려 나가다 보면
자만하기도 하고, 타성에 젖어서 나태해지고 교만해져서
극기야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리르는 상태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기에 딸아....
너의 이번 작은 실수에 너무 낙담도 말고, 미안해 하지도 말고,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도 말고,
앞으로 운전시에는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이번 실수를 큰 사고를 막는 따끔하지만 간단한 예방주사롤 맞는다고 생각하고
안전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길치에 겁많은 너도 언젠가는 느긋하게 즐기면서 운전을 할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Lindsay Deutsch and Bei Zhu (violins), Paul Neubauer (viola), Gary Hoffman (cello), and Weiyin Chen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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