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예년과 달리 초 중고등학교가 노동절 연휴 전에 개학을 했고,
대학교는 오늘부터 개학이 되어서 복덩이 자폐아 아들은 다디던 대학교의 3년차 학생으로,
큰딸은 우리 도시에 있는 대학교의 대학원으로 진학해서 석사 박사 과정의 첫 발자국을 딛는 날이다.
3개월 전, 6월에 큰 딸이 집에서 30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몬트리올에 있는 대학교에서
무사히 졸업식을 마치고 4년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공항에서 마중 나간 남편과 함께 환하게 웃으면서 집 안을 들어 서는 아이를 보는 순간,
갑자기 20여전 딸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으로 들아 오던 날의 감격스러웠던 때와 오버랩이 되어서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려서 민망함을 모면하려고 필요이상 딸의 얼굴을 부비면서 오래 안아 주었다.
이렇게 성인이 되어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큰 딸의 시작은 무척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큰 딸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이 세상에 13주나 일찍 엄마 뱃속에서 고작 900 gram의 몸무게로 태어나서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져서 삶과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몇번씩 오가면서 위태스럽게 이 세상을 출발했다.
정상아로 살아 남을 확률이 3%도 안 된다는 절망스런 의사 선생님의 prognosis를 뒤엎고
매일 24시간 주위의 많은 분들의 정성어린 기도와 보살핌 덕으로
병원에서 4개월을 힘겹게 버티다가 2 kg의 육중한(?) 체중으로 퇴원울 허락받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격려를 받으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퇴원은 했지만 아이가 태어 날 때 겸미하지만 뇌출혈도 있었고, 입원 중에 투여한 약물도 많았고,
혼자 숨을 쉬지 못해서 ventilator(인공 호흡기)신세를 3주정도 졌고,
오랫동안 공기에 있는 산소량보다 아주 높은 %의 산소 공급을 받아서 시력손상과 실명 확률도 높고,
그렇게 아프다는 spinal tap (골수 검사)도 네번을 받기도 하고,
황달, 호흡곤란, 몸에 항체가 없어서 대책없이 오는 여러자기 감염에서 오는 후유증을 겪었기에
여전히 불확실한 문제점들이 남아서 맘을 완전히 놓을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살 때 받은 눈수술과 세살 때까지 초 미숙아들을 위한 특수교육을 받은 후로는
비록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같운 또래보다 약 1년반 정도 발육이 늦었지만
(실제로 1년 반 후에 태어나 아들 녀석과 성장 시기가 비슷해서 쌍둥이처럼 컸다)
잔병치례도 별로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성장 해 주어서
부모 입장으로서는 더 바랄 것 없이 감사 할 뿐이다.
신체적으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남보다 아주 늦은 출발로 발육도 자연히 늦어져서 유치원도 재수(?)를 해야했고,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남들을 쫓아 가기에 급급해서 포기도 하고 싶고, 주눅이 들만도 한데
고맙게도 그녀석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그때마다 많은 고비를 잘 넘겨 주었다.
딸 녀석의 지치지 않는 노력은 고등학교 때부터는 전교 10등 안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적이 좋아졌고,
좋아하는 첼로 연습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정을 넘어서까지 하는 열성을 보여서 좋은 성적으로 음대에 합격을 했다.
어려서부터 대학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님으로 혼자 해결하라고 누누히 강조를 한 덕분인지
여름 방학인 4개월 내내 휴가도 없이 적어도 두가지 일을 하고,
학기 중에도 대학교 내에 있는 서점에서 주에 14시간을 일을 해서 모은 돈과
각종 단체에서 받은 몇가지의 장학금과 그래도 모자라면 학생을 위한 대출금을 받아서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집에서 다니는 것 보다 몇배로 들어가는 경비를
부모의 아무런 도움없이 혼자서 해결해서 무난히 대학을 졸업을 해 주어서
고맙게도 우리 부부는 몬트리올과 집을 오가는 비행기 표와 약간의 용돈을 엄청 생색을 내면서 손에 쥐어 주었을 뿐이다.
여름 방학과 휴가의 끝을 의미하는 Labor Day Long Weekend(노동절 연휴)에
딸이 유치원 때 부터 친하게 지내 오던, 그래서 코흘리게 시절부터 죽 커가는 모습을 본 내게는 딸같은 친한 친구 녀석들이
우리 딸처럼 올해 6월에 다니던 대학에서 다들 우수한 성적으로 나란히 졸업을 한 후에
더 높은 교육과 경험을 위해서 대학원으로 진학을 해서 새롭게 내 딛는 첫 걸음을 떼기 전에
우리집에서 단합대회 겸 farewell party 룰 조촐하게 가졌다.
어렸을 때의 추억을 함께 되 새기며서,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들을 훔쳐 본
나는 그저 그들이 사랑스럽고, 대견하고, 부러웠다.
중고등 학교 내내 전교 1등을 고수하던 Jan 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Nova Scotia에 있는 Dalhousie 대학 법대로,
유치원 때부터 단짝 친구인 Melissa 는 Alberta 대학교에 Immunology 박사공부를 위해서 대학원으로,
중 고등 학교 때에 항상 뭉쳐 다니던 Shannon은 영문학을 학위를 받고 선생님이 되려고 알버타 대학의 teacher's college로,
울 딸은 알버타 대학교에서 음악 석사와 박사를 하려고 음대 대학원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 딸과 가장 성향과 성격이 비슷해서 쌍동이 같던(물론 키는 172 cm 로 모가지가 하나 더 있지만) Nicole은
이번에 알버타 졸업 후에 많은 기도와 성원에 힘 입어서 Sisters of Love 라는 수도회에 수녀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을 위해서 멀리 뉴욕의 Bronx 로
제각기 각자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서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서 멀리 떠났다.
초등학교, 중 고등, 그리고 대학교 다닐 때까지 죽 함께 하면서
늘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준 이들의 우정과 젊음,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탈렌트로
개인적으로 원하던 소망을 이루면서, 세상의 돈과 명예만 쫓지만 말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사회에 도움과 이익이 되는 사람들이 되어 주기를
그들 모두의 엄마의 마음으로 두손 모아 기도와 응원을 해 주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어떤 모습으로 돌아 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딸아이가 병원에서 위험한 순간마다 절박한 심정으로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만 준다면
평생 감사한 맘을 간직하면서 더 이상도 바라지 않겠다는 간절한 기도와 약속처럼
엄마의 쓸데없는 욕심과 걱정일랑 버리고,
딸의 육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겸손하게 감사 기도를 잊지 말아야 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 해 봅니다.
Niclole 이 멀리 떠나기 전에 찰칵...
May God's Grace be with you, Nicole...
music: An die Freude by Mozart
sung by Susie Leblanc
from helen's cd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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