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 큰딸 진이가 차에 짐을 잔뜩 싣고
혼자서 먼 길을 떠났다.
이 세상에 달랑 900 그람으로 태어나서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이자 축복인
큰딸이 어느덧 성인이 되어서 독립을 하는 날을 맞이한 날이기도 하다.
올해 3월 말에 열린 음악대학원 졸업 첼로 리사이틀 포스터
친구가 찍어 준 리사이틀 프로그램 사진
올해 6월에 음악 대학원을 졸업한 딸은
여름에는 과거 5년간을 일해 온 스타벅스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앞으로 닥쳐 올 오디션 준비로 첼로 연습도 하고,
중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자리를 알아 보기도 하면서
학생신분을 벗어나서 일반인 자격으로 장래진로를 조심스레 타진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8일에 송별회 파티에 미리 와서 김밥과 초밥을 만드는 나를 도와 주는 두 피아니스트 친구들...
들 다 멀리서 음악을 전공하기 위해서 온 유학생들이다.
그리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장르가 실내음악쪽이어서
7월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론토의 바로크 오케스라 타펠뮤직(Tafelmusik)이 개최한
바로크 뮤직캠프에 2주반동안 참석하면서 그 방면으로 진로를 진지하게 찾아 보기도 하고,
8월엔 모교의 은사님이 교수진으로 있는 몬트리올의 뮤직캠프에 3주동안 참석해서
오랜만에 장시간 집중적으로 개인 레슨도 받고,
앞으로 음악인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좋은 조언도 듣고 집에 돌아 오자마자
7월에 신청을 해 둔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위해서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8월 말에 바쁘게 다녀 왔다.
날씨가 너무도 좋은 가을 하늘이 훤히 보이는 정원에서 음료수와 음식을 먹기도 하고
board game을 하면서 즐겁게 노는 딸과 친구들...
딸아이는 지금까지 수십차례 거친 오디션과 달리
직장을 얻기 위한 첫 오디션이라서 경험삼아서 이번 오디션에 참가해 보겠다고 떠났다.
이틀 후에 오디션에서 돌아온 딸은 오디션 연주가 자기 생각엔 영 만족스럽지 못하니
아예 기대도 하지 말라고 못을 박으면서 결과가 궁금한 우리의 입을 막아 버렸다.
아래층에서도 한 그룹이 모여서 즐겁게 놀고..
아름다운 가을 밤 마당엔 키 꺽다리 가을 꽃이 만발하고...
그리고 6월 말에 에드먼튼 교육청에서 간단한 오디션과 면접 시험에서 합격이 되어서
9월 4일에 교육청에 가서 정식으로 고용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에
다음날인 5일부터 세 학교로 출근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정기적으로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해아한다는 현실에 부닥친 딸은
운전면허는 세번째 시험에 턱걸이로 작년에 겨우 획득하기는 있지만
중증의 길치에다가, 운전도 서툴고, 겁도 많고, 소심해서 고속도로 주행 경험도 제대로 못한 딸과 나는
집에서 출근해야 하는 세 학교까지 통근할 거리를 매일 손에 땀을 쥐면서 운전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20대의 나이에도 초등학교때 즐기던 게임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연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깔깔대는 소리가 참 듣기가 좋다.
그런데 9월 3일 밤에 딸이 모처럼 20년간 변함없이 제일 친한 친구집에 놀러간 사이에
밤 9시가 넘어서 오디션을 다녀 온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주자님이 전화가 걸려 왔는데
급히 진이를 찾으면서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합격이 되었으니 당장 다음주에 있는 공연을 위한
연습을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알려 왔다.
그렇게 전화 한통으로 갑자기 딸과 우리 부부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오디션 합격 소식에 친구 집에서 바로 달려 온 딸과 얼싸않고 함께 기뻐했다.
오케스트라 단원 자격으로 콘서바토리 선생님으로도 초빙을 한다고 말에 더 신이 났다.
그러나 그 기쁜 순간도 잠시
실제로 코 앞에 닥친 여러가지 일을 해결하느라 그 한통의 전화가 걸려 온 때부터
오늘 새벽 떠나는 날까지 일주일 내내 말 그대로 눈 나오게 바쁘게 지냈다.
아페타이저로 모듬 김밥과 유부초밥을 잘 먹은 후에
피자 세판을 추가로 먹으면서 실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
당장 그 다음날 출근하기로 한 학교들과 교육청에 연락을 취해서
갑자기 발생한 상황을 설명하고, 사직서부터 우선 제출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름에 정식으로 이미 서류상으로 계약을 마쳐야 하는데
교육청 직원의 사무착오로 개학 첫날에 마무리를 하기로 되는 상태였기에
그나마 간단하게 그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갑작스런 사직이 법적으로 교육청과의 아무 문제는 없었지만 미안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친구들이 들고 온 두가지의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진이
역시 미안한 일은 대학 졸업후 2년 이상 개인 레슨을 받고 있던 학생들에게
갑작스럽게 새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는 어려운 통보를 바로 해야 했다.
새학기가 되어서 고작 두번의 렛슨을 했는데 이렇게 다 떠나 보내야해서
나름 그동안 정이 많이 들은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해 했다.
결과적으로 딸아이 사정으로 레슨이 취소가 되어서
살고 있는 도시의 다른 좋은 첼로 선생님 서너 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레슨이 가능한 선생님들과 바로 연결을 시켜 주면서 그 미안함과 섭섭함을 대신했다.
파란 서치라이트가 가을밤 하늘을 수놓고 있다.
마치 송별회 파티의 축하하기 위하듯이...
그리고 새로운 도시로 가서 당장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인터넷과 신문등을 이용해서 알아보니
보통 이사철이기도 한 여름도 벌써 지났고,
기숙사나 학교 주위의 임대 아파트들도 이미 개학을 해서 학생들로 거의 입주를 마쳤고,
경기가 좋은 이 도시의 vacancy rate(임대가 가능한 집 지수)가 아주 낮은 편이라서
아주 크고 비싼 방 외에는 적당한 방이 나오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너무 답답하고 급한 나머지 남편은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청했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fire pit에 모닥불을 피워 주었더니
모닥불 주위에 몰려 앉아서 다시 정겨운 수다꽃을 피우는 친구들...
처음 연락한 세분은 각각 개인 사정이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해서 낙담을 하다가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심정으로 네번째로 어렵게 부탁한 지인 분께서
올해 공연 시즌까지 편의를 봐 주시겠다는 답변을 해 주셨다.
큰 딸이 인복이 있었던지, 마침 그 지인께서 올 여름에 집도 말끔히 수리를 했고,
마침 성장한 아이들이 독립해서 나가서 빈 방도 있으니
당분간 방을 세 내 주시겠다고 흔쾌히 수락을 해 주셔서
참으로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호의가 고마워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파티가 거의 파할 즘 느지막하게 기념으로 단체 사진 #2
아쉽게 다른 사정으로 미리 간 친구들이 빠졌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사진이다.
당장 거처할 곳이 생기자, 바로 가지고 갈 짐을 싸기 시작했고,
자폐아인 남동생과 샘이 많은 막내 틈에서 욕심도 전혀 없어서 뒷전에 밀려서
살아 온 딸아이가 이번에도 굳이 필요한 것이 별로 없노라고 빼는 손목을 꼭 잡고
필요한 생필품들과 연주옷등을 사느라 딸과 함께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일단 필요한 것들을 한쪽에 모조리 쌓아두었는데 왜 이렇게 필요한 것들이 많은지...
첼로와 첼로 두 케이스가 젤로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더 걱정이 앞섰다.
어제 아침 내내 후다닥 만든 딸이 역시 종하하는 아몬드+레몬+크렌베리 비스코티들...
딸이 가지고 갈 짐들이 여기 저기 널려있는 와중에 목요일인 9월 6일에
우리들은 딸의 송별회를 열기로 의견을 모은 후에 딸은 그제서야 친구들에게
오케스트라 입단 소식을 알리고 farewell party 에 초대를 하기 시작하고,
나는 다시 음식 준비로 시장에 또 한번 가고 한바탕 부산을 떨었다.
내친 김에 함께 만든 피칸+오렌지 비스코티들...
8월 말부터 2주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가 계속되다가
이틀 후 송별회 파티가 열린 토요일은 너무도 날씨가 좋은 탓에 우리집 외에도
이웃들은 한집 건너 Labour Day Weekend에 못 한 바베큐 파티가 한창 열릴 정도로
날씨가 파티 분위기를 돋구어 주었다.
불과 하루 이틀 전에 연락을 했는데도 30명에 가까운 친구들이 와서
함께 저녁 식사도 하고, 게임도 하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얘기도 나누면서
마지막으로 딸과 함께 멋진 가을 밤을 보냈다.
아몬드+크렌베리 비스코티
그날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참석을 못한 친구들은 시간이 되는대로 각자 따로 계속 집으로 찾아 와 주어서
자신의 일처럼 축하 해 주고, 작별을 아쉬어 하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이기도 하고
괜히 나까지 코 끝이 찡해 오기도 했다.
집에까지 찾아오거나 전화로 딸의 친구들이 진정으로 섭섭해하면서도 함께 기쁨을 나누는 모습에
집에서만 볼 때는 아직 어리기만 하고 철이 덜 들은 것 같아서 걱정이 앞 섰는데
그래도 딸이 이때까지 남한테 모질게 굴지 않고 베풀면서 잘 살아 왔음을 알게 되자
멀리 떠나서도 혼자서도 제 앞가림 잘 하면서 지낼 것 같아서 비로서 조금씩 맘이 놓이기도 했다.
영양과 맛 만점인 오트밀 초코칩 크랜배리 호두 쿠키까지 만들고...
족히 3시간은 서 있었나 보다...
그나 저나 이렇게 공을 들이는데 맛이 좋아야 할텐데...
집을 떠나기 전 20분 전에 3일간 걸려서 뜨게질로 만들어 준 폭신한 목도리를 둘러 보고는 흡족해하는 딸...
딸이 오케스트라 입단 소식을 접하자마자, 무엇이라도 엄마로서 해 주고 싶은 차에
안 그래도 추운 겨울에 혼자이면 더 추울 것 같아서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보내라고
많은 털실 중에서 딸이 제일 좋아하는 보라색이며 제일 따뜻하고 폭시한 모피같은 털실로
목도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딸이 떠나기 하루 전인 화요일 밤 늦게 자정이 넘어서 겨우 마쳤다.
목도리를 만들면서, 뭔가 아직도 미진한 듯 해서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큰딸이 유난히 엄마가 만들어 준 쿠키를 좋아한다는 걸 상기하고
어제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면서 엄마표 쿠키를 빠른 손놀림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명절에만 특별히 만드는 초콜렛 크래클 쿠키도 굽고 나서야 오븐불을 껐다.
조금씩 꺼내 먹을 수 있게 플라스틱 백에 쿠키와 비스코티를 넣어서 잘 포장을 하고는
가족이 생각나고, 집 밥이 먹고 싶을 때에
위안삼아 먹으라고 하면서 딸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고 거처를 제공해 주신 분에게도 나누어 드리라고 넉넉히 넣어 주었다.
평소대로 화요일 저녁에 내가 합창단 연습을 간 사이에
그 많은 짐들을 화물 트럭도 아닌 보통 SUV에 짐 한가지라도 더 꾸겨 넣느라
남편과 큰딸은 쌓아 둔 짐들을 분주하게 차에 넣다 뺏다 하더니
밤 11시가 넘어서야 우격다짐으로 그 많은 짐을 꽉 채운 후에 겨우 차 문을 세게 닿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빠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어디를 가도 고등학생 취급을 받을만큼
앳띠게 보이기도 하고 어리숙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라고
노심초사한 엄마는 필요없는 한마디를 보탰다.
10시간 이상 운전을 번갈아 한다고 함께 따라 나선 아빠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이렇게 집을 떠났다.
집에서 4000 km 떨어진 대학을 다니느라
이렇게 짐을 싸들고 자주 집을 떠났지만,
방학이면, 명절이면 다시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덜 서운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성인으로 사회인으로 독립을 해서
언제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훌쩍 떠나고 나니
참으로 허전하고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죄책감이 밀려 왔다.
부디 건강하고,
모든 것이 새로운 것들을 잘 적응하고 이겨내면서
사회인으로서 우뚝 서기를 기도하면서
딸이 떠난 빈 방을 말끔히 청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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