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3일 밤 10시에 시청앞 광장에서....
올 한해도 이제는 달랑 달력 한장만 남겨두고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12월은 우선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돌아 오고
그리고 한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는 시기라서 모임과 행사들이 12월 내내 연이져
늘 이 맘때가 되면 달랑 남은 그 한장의 달력에는
각종 크리스마스와 연말 행사와 모임 파티 그리고 공연회 스케줄이
2-3주부터 한칸씩 채워지기 시작해서 11월말이 되면 색색가지 연필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특히 12월의 4번으로 한정되어 있는 주말은 몇가지의 겹치기 행사와 모임이 몰려 있어서
그야말로 어떤 모임에 참석해야할지 곤란할 때도 종종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신경전이 치열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12월의 몇번 없는 주말이 모자라는지 언제인가부터 연말 행사가 점점 11월로 넘어오는 추세이다.
그런 추세에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늘 매년 12월 첫째 주말에 열던 크리스마스 피아노 리사이틀을 11월 지난 토요일 오후에 한 양로원에서 가졌고,
이어서 같은 날 저녁엔 복덩이 아들의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려서
바햐흐로 올해 연말 모임의 스타트 테이프를 끊었다.
올 학기 처음으로 가진 피아노 리사이틀을 무사히 잘 마치고,바로 집에 가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복덩이 아들과 함께 아들 회사 크리스마티가 열리는 시내 한 호텔로 차를 운전하면서옆에 앉은 번듯하게 차려 입은 아들의 옆모습을 훔쳐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자폐아인 아들은 태어난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만 두살이 되기 직전에 정신소아과 병동에서 자폐 판정을 받고, 운좋게 한달 후에 바로 제일 어린나이의 학생으로 자폐아 특수학교에 입학을 스타트로 해서1년 후, 만 세살부터 유치원과정까지 장애아 툭수학교에 줄곧 다닐 동안 아들의 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언어를 사용하는 소통이 불가능한 아들의 소통방법은 그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 손을 붙잡고 가서 원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이고화가 나면 소리를 치거나, 자해를 하거나, 주위의 물건이나 기물들을 던지고 부수기도 하고, 슬플때는 그저 하염없이 몇시간이고 바닥에 딩굴면서, 때로는 자해를 하면서 우는 것이 고작이어서, 우리는 대부분이 그저 감으로 아들의 생각과 느낌으로 짐작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특수학교와 집에서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언어구사를 위한 노력을 3년을 해도굳게 닫힌 아들의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4년째부터는 학교에서 수화를 가르치기 시작해서한동안 식구들이 아들과 함께 다같이 수화를 배우러 한동안 다녔다.그러던 중 하루는 입맛이 무척이나 까다로운 아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애플쥬스를 미끼로 말문열기에 도전을 시도했다.쥬스를 달라고 입을 열어서 말을 할 때까지 주지 않겠다고 무언의 손짓으로 알려주자,그때부터 아들은 목이 쉬어서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쉬지않고, 울고, 소리치고, 박치기를 하면서4일을 꼬박 그렇게 보내고 나서, 아들 입에서 생전 처음으로 "juice" 라는 말이 드디어 새어 나왔다.그래서 우리 식구에게는 '애플쥬스'라는 단어가 18년간 여전히 아주 특별하고 잊을 수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렇게 유치원이 끝날 무렵에 말문이 열린 아들은, 정상인들 속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초등학교는 누나가 다니고 있던 동네 학교로 보냈다.그동안 두살부터 만 4년을 지속적으로 강도높은 교육 덕분인지1학년에 진학해서 얼마 안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2학년에 올라가서는 삐뚤빼뚤 글을 쓰기 시작했다.그리고 6년을 함께 해서 아들을 잘 알고 여러모로 도와주던 반 친구들과 함께 중 고등학교도 보조선생님의 도움으로 받으면서 정상인들이 다니는 동네 학교를 다녔다.
자폐 아들이 필요한 특수교육 선생님, 그리고 교육자재와 트레이님에 필요한 기금과 혜택을 받기 위해서 매년마다 우는 애 젖 더 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미 터득한 우리는 교육위원회의 해당자들을 찾아가서 부탁하고, 조르는 일을 반복해서 힘은 들었지만,그나마 의무교육인 고등학교까지는 그래도 장애학생에게도 말 그대로 '의무' 교육이니 부닥쳐 볼 벽이 있었다.
하지만, 의무교육이 아닌 대학교 진학은 의외로 많은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그동안 쌓은 내공으로 나름 노력을 했지만 그해 시내에 있는 4년제 대학과 초급대학들에서 신체 장애가 아닌 아들처럼 정신장애가 있는 장애인들을 받아주는 오프닝 숫자는 아주 적기에 첫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그리고 바로 다시 일년 내내 더 적극적으로 관계된 많은 분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비록 중증의 장애가 있어도, 시내버스를 타고 혼자서 등하교를 할 수 있고,그리고 여럽사리 서점과 애완동물 센터에 무보수로 일하는 자리를 구해서 혼자서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하면서많은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대학교에 컴큐터 과에 진학하는 티켓을 따 냈다.
대학교 생활 중에도 예기치 못한 여러 고충이 닥쳤지만,
그때마다 용케 통과하면서 3년 후에 database management 과를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자마자
요즘처럼 직장잡기가 어렵다는 때에,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롤 일을 하던 굴지의 좋은 회사에
버젓이 정식직원으로 입사를 해서 온 가족과 친지들이 기뻐했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입사한지도 벌써 1년 반이 되어가고
이제는 어엿하게 열심히 일 잘하는 회사원으로 자리매김을 해 왔다.
그리고, 입사한지 처음으로 정식 직원 자격으로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다는 생각에 감회가 남달랐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Sutton Place 호텔에서 열린 파티의 칵테일 시간에...
아들의 늘 고맙고 든든한 수호천사 상사 시실리아와 그녀의 남편과 함께 자리를 잡고,
남들처럼 칵테일과 와인을 들면서 분위기에 조금씩 적응을 하는 아들...
알버타 주에서 제일 큰 엔지니어링 회사인 Stantec은 1954년에 창립을 해서
현재는 약 13,000 명의 직원이 일하는 커다란 회사이다.
아들이 속해있는 Urban Planning and Engineering 부서는
약 250명의 직원이 도시의 개발을 위해서 전기, 하수도, 도로등 제반 일을 담당하는데
이 부서의 장을 맡은 토마스씨가
짧게 그의 특유의 휴머와 조크로 시작인사를 하고 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파티 장소에 도착해서 잠시 뻘쭘하게 서 있으니까
얼마 후에 토마스와 와이프가 옆에 다가 와서 먼저 자기 소개를 한 후에
파티에 와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아들이 주어진 일을 얼마나 열심히 잘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아들과 함께 일 하면서 생긴 여러가지 에피소드까지 자상하게 이야기를 해 주는 모습에
과연 큰 회사의 중역다운 그의 자상함과 지도력이 돋보였다.
그리고, 우리 아들처럼 장애인들을 과감히 채용해서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교육과 트레이닝을 제공해 주고,
회사내에서 필요한 일원으로 여겨주는 회사 자체도 새삼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저녁시간이 기대보다 점점 늦어지자 조금은 지루해 하는 아들...
약 7시 45분경에 부페 음식을 먹는 차례를 정하는 게임에 모두들 일어나서 대기 중...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 맞추기 게임에서 3번 우리테이블은 5번째로 먹는 순서를 따 내었다.
저녁이 끝날 무렵에 두명의 피아니스트 겸 가수들이 등장해서
감미롭기도 하고, 흥이 돋는 생음악과 노래로 분위기를 돋구어 준다.
시실리아와 함께 기념사진 찰칵~
오랜만에 엄마와도...
식사 후에 서로 테이블을 오가면서 담소를 즐기는 직원들...
가운데 무대에서는 두명의 피아니스트가 80년대, 90년대, 그리고 2000년도 시대별로
죽 이어서 히트곡을 연주되고, 흥이 돋는 사람들은 신나게 춤을 추고...
수차례 걸쳐서 아들에게 댄스 신청을 했지만, 깨끗하게 거절을 당하고
대신 같으 테이블에 앉은 시실리아와 태미와 함께 신나게 몸을 흔들어 보기도..
우리가 살면서 속해 있는 사회의 테두리 내에서 타의든, 자의든
크고 작은 다양한 행사와 모임이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남들과 똑같이 멀끔하게 차려입고, 동료직원들과 상사들과 어울려서
한 단체의 소속된 일원으로 참석한 아들이 파티 내내 대견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남들처럼 예쁜 아가씨 대신에 , 한물 간 주름이 자글자글한 엄마와 함께 참석해서
맘 한편이 짠하고 안스럽기도 한 걸 보면 엄마의 욕심은 한이 없나보다.
파티 장소에 가기 전에 아들과 서로
파티장소에서 너무 일찍도 늦게도 아닌 밤 10시 30분까지 머물기로 미리 약속을 해서인지
지정된 테이블에 앉아서 가끔씩 말을 건네오는 직원들과 얘기를 하면서
별 군소리없이 얌전히 파티장소에서 머무른 후에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서 집에 오는 길에 시청을 지나 왔는데
너무도 아름다운 야경에 한산해진 시청 앞에 일단 주차를 하고문을 열고 나오니,
마침 날씨도 일주일 사이에 영하 22도에서 영상 2도로 많이 푸근해져서 호젓한 시청앞 광장을 천천히 혼자서 둘러 보았다.
시청 앞의 넓은 광장에서 남쪽에 위치한 시립 중앙도서관
영상의 기온 덕분에 눈을 치워 놓은 장소엔 마치 비가 내린 듯하다.
광장 북쪽에 위치한 에드먼튼 시청과 시계탑...
광장 가운데에 있는 2013년도 크리스마스 트리...
지난 주에 엄청 내린 눈이 아직도 한편에 높다랗게 쌓여있다.
눈을 치우지 않은 곳엔 여전히 허벅지까지 높게 하얀눈으로 덮여있다.
시청 바로 옆에는 3년 전에 새로 건축된 주립 미술 박물관
우리들은 누구나 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재능과 능력 그리고 아울러 단점과 장애를 껴안고
긴 인생여정을 헤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울 복덩이 아들처럼 상대적으로 넘어야 할 장애가 더 많은 사람들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게 해 준 아름답고 고마운 도시와
그리고 아들 옆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이 도시에 사는 수많은 은인들과 진인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하면서 어두운 밤길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는 어떤 관문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이제는 올테만 와봐라하는 배짱과 여유가 생기는 걸 보니
그동안 참 긴 세월동안 넘어 온 고개들이 많았고,
그 고개 또한 아무리 어려워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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