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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오페라 공연무대

오늘 80세로 타계한 클라우디오 아바도님(Claudia Abbado)을 추모하면서...

by Helen of Troy 2014. 1. 21.

 

Claudio Abbado in 1966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의 거장인 클라우디오 아바다씨가 오늘 1월 20일 오전에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이 모인 가운데에  향년 80세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럽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4개의 오케스트라인 밀란의 라 스칼라(La Scala Milan),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비에나 국립 오페라(Vienna State Opera),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the Berlin Philharmonic)의 상임지휘자로 두루 역임하면서

과거 50년간 주옥같은 오케스트라 음악을 만들어 낸 20세기의 지휘자의 거장이었다.

특히 그는 20세기 초반 음악의 대가로 말러, 브람스, 브루크너 베르크, 바르톡와 션베그크 작품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서 청중들에게 새로운 감각과 해석으로 널리 알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Claudio Abbado in 1968, during a break in a recording session in London.

 

 

그의 지휘스타일은 전형적인 틀에서 많이 벗어나고 아주 자유스러웠는데,

특히 그의 왼손이 더 그러했다.

보통 지휘자처럼 그는 박자를 일정하게 지휘하는 대신에 마치 도자기를 굽는 사람처럼

두 팔과 손으로 음악을 어루만지면서 하나의 조형품을 만들어 내거나,

그의 강한 눈빛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소통을 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작품으로 표현하고 승화했다.

실제로 그는 그의 두눈이 지휘자의 제일 중요한 도구라고 말을 하기도 했는데,

리허설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화를 내거나 대충 어느 선에서 절충을 하기 보다는

그가 원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담담하게 반복적인 연습을 하거나,

그저 단원들에게 'Listen." 이라고 짧게 권고했다고 전해진다.

 

 

 In Milan, 1979Photograph:

 

그가 미국에서 젊은 나이로 지휘자로 데뷰해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미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는 것을 그리 달갑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유럽의 오케스트라에서는 공연준비로 될때까지 비교적 연습시간 조절이 가능한 반면에

미국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노조(Union) 에 가입을 해서

그 노조의 룰대로 연습시간이 철저하게 지켜가면서 연습방식에 만족하지 못했던 점이 크다고 한다.

 

아바도는 정도가 심할 정도로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으로

지휘자 석(podium) 에 선 아바도는 작품의 깊이와 진모를 청중들에게 선사해 주지만

한편 그의 태도는 굳고, 다가가기 힘든 포스가 느껴지지만,

무대밖의 그는 LSO 시절에 연주자들과 내기 탁구를 즐기기도 하고,

에딘버브 페스티발중 바쁜 스케줄 중에도 함께 축구를 하면서,

연주자들과 끈끈한 정과 유대감을 형성했다.

 

런던 로얄 페스티발 홀에서 연습하는 아바도

Claudio Abbado conducting at the London Royal Festival Hall, 1983 Photo: Alamy

 

 

평생 음악적으로 헌신적인 그는 유럽에서 제일 촉망받는 젊은 음악인들을 발굴하는데 주력하고자

1978년에 당시 European Community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하지만, 이 오케스트라의 관계자들은 비EU 가입나라 출신 연주자들을 제외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자

유럽출신 어느 누구가 가입을 할 수 있는 1986년에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이렇게 시작한  the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는 후에

루세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the Lucerne Festival Orchestra) 로 발족이 되었으며,

그 당시의 단원들은 현재 다른 유수의 오케스트라의 제1주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아바도

Claudio Abbado conducting the Berlin Philharmonic in 2001. Photograph: Riccardo Musacchio/EPA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지휘자들이 그러했듯이, 아바도 역시 정치적인 영향을 발휘했다.

그의 정치적인 성향은 다분히 사회주의이자 친환경주의자답게,

2008년에 밀란 오케스트라에 다시 복귀하는 조건으로

밀란 도시에 9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그가 지휘할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가

도시의 많은 학교와 공장 무대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을 내 걸었는데,

이를 밀란 도시가 그의 조건을 받아 들이자, 라 스칼라의 지휘자자리를 수락했다.

 

 

 

피아니스트 마우리찌오 폴리니와 베를린의 발트뷰네 무대에서

Claudio Abbado and pianist Maurizio Pollini on the openair stage of Berlin's Waldbuehne, 24 May 2008

Photograph: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1933년 6월 26일에 스페인의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무어족(Moors) 혈통을 지닌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부모들 사이에서 이탈리아 밀란에서 태어났다.

그는 8세에 아동서적 작가이자 피아니스티인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쥬세피 베르디 콘서바토리에서 음악선생님이었던

부친 미켈란젤로 아바도씨도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을 정도로 일찌감치 자연스럽게 음악공부를 했다.

 

클라우디오의 외할버지는 그에게 알프스 산과 대자연의 침묵의 존재와 아름다움을

그리고 잊혀져 버린 오래된 팔레르모 지역의 언어를 가르쳤다.

특이한 점은, 외할버지가 예수님 생전에 사용되던 고대의 언어 아람어(Aramaic)로 쓰여진

성경을 이탈리어로 번역을 하다가 교회로 부터 제적당하기도 했는데,

최고의 지휘자로 성장한 아바도씨의 어릴적 집안 분위기를 짐작 해 볼 수있다.

 

 

2007년 루세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란던 심포니 합창단과 말러의 3번 교향곡을 지휘하는 아바도

Conducting the Lucerne Festival Orchestra and London Symphony Chorus for Mahler's Symphony No. 3

at the BBC Proms 2007. Prom 51. 22 August 2007 Photograph: Lebrecht Music & Arts/Corbis

 

 

아바도씨가 어렸을 때 당대의 유명한 음악인들을 지켜 볼 기회가 많았던 그는

당시 최고의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의 연습하는 모습이 괴로웠다면서

"토스카니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아주 무례했고, 계속 고함만 질렀었다"라고 회고했다.

2차대전 당시에 그의 어머니가 유대인 어린이를 보호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는데,

고작 12세의 아바도는 벽에 “Viva Bartok” 라는 낙서를 갈겨대자,

게슈타포가 그를 바르토크의 한패로 간주하고 요주의 인물로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가 일곱살이 되던 해서 라 스칼라 극장에서 안토니오 과르니에리씨가

데뷔시의 세편의 녹턴을 지휘하는 공연을 보고는, 바로 즉시 그 자리에서

그날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어서,

그는 지휘지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후일에 저널리스트  Tom Service 에게 털어 놓았다고 한다.

 

아바도는 그의 형 마르첼로가 피아노 공부를 했던 밀란의 콘서바토리에서 입학해서

피아노, 작곡과 지휘 공부를 마치고 1955년에 졸업을 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에 시에나에 있는 키지아나 아카데미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 중에 

거기서 역시 지휘자 유망주였던 메타의 권유로 비엔나로 건너 가서

메타의 지휘 스승인 스와로브시키로부터 지휘를 사사받았다.

비엔나 거주 당시에 그는 당시 지휘공부를 하던 주빈 메타와 함께

당시 명망있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와 요셉 크립스, 그리고 폰 카라얀의 지휘 모습을 보고자

Musikverein 이라는 합창단에 베이스로  입단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이 자주 연습에 빠지자 합창단장이

장래 최고의 지휘자이 이 둘을 합창단에서 제명을 당한 에피소드도 있다

 

  

 

아바도는 켐브릿지 대학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을 비롯해서

2013년에 이탈리아 국회에서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의 명예직인 종신 원로직에 임명되는 등

그의 생전에  많은 상과 명예직을 받을 정도로,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많은 클래식 음악 팬들로부터

과거 50년동안 큰 사랑과 존경을 받은 20세기의 명 지휘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족으로  두번째 부인인 가브리엘라 칸타루피 씨,

1956년에 결혼한 조반나 카바쪼니 사이에 태어난 오페라 감독인 아들 다니엘레씨와, 딸 알레싼드라,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물로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미샤,

그리고 형 마르첼로와 가브리엘레, 누이 루치아나가 있다.

 

오늘 평소에 좋아하기도 하고, 무대에서 수많은 연주자들과, 합창단원들이 비좁게 무대에 빽빽하게 서서

세번에 걸쳐서 감동적인 공연을 개인적으로 특별한 말러의 교향곡 3번을  아바도의 지휘로 다시 들어 보면서

짧게나마 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기도를 올려본다.

 

  

 

 

 

 

추천할만한 음반들:

 

Mahler: Symphony No 3 (말러작의 교향곡 3번)
Larsson/ London Symphony Chorus/Berliner Philharmoniker (Deutsche Grammophon 1999

 

 

Schubert: The Symphonies(슈베르트작의 교향곡집)

Chamber Orchestra of Europe (Deutsche Grammophon 1986-87)

 

 

Ravel: Piano Concerto; Prokofiev: Piano Concerto No 3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과 프로코피에브작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아르거리치:피아노)
Argerich/Berlin Philharmonic (Deutsche Grammophon, 1967)

 

 

Schumann: Scenes from Faust(슈만 작의 파우스트모음곡)
Terfel/Mattila/Rootering/Bonney//Graham/Swedish Radio Choir/Berlin Philharmonic (Sony Classical 1994)

 

 

Simon Boccanegra (사이먼 보카네그라)
Freni/Cappucilli/Careras/Ghiaurov/van Dam/Teatro della Scala (Deutsche Grammophon 1977)

 

 

Berg: Wozzeck (베르크의 보첵)
Grundheber/Behrens/Raffeiner/Zednik/Haugland/Vienna State Opera (Deutsche Grammophon 1987)

 

 

Stockhausen: Gruppen; Kurtág: Stele; Grabstein für Stephan
Berlin Philharmonic (Deutsche Grammophon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