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얀(요한) 병원 박물관에 소장된 가장 유명한 멤링 작의 우르술라 성녀의 유골신전
The Shrine of St. Ursula
(2019년 6월 15일)
중세기 전설에 따르면,
우르술라(어설라) 성녀는 로마제국 통치 하의 남서부 영국
덤노니아 지방에서 공주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디오노투스 왕의 요청대로
그녀의 남편이 될 아르모기카 총독이자 비신자인 코난 메리아독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11,000명의 처녀 하녀와 함께 배에 올랐다.
항해 도중에 만난 신비로운 폭풍 덕분에 목적지 항구까지
하루 만에 도착한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 전 유럽을 순례하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그녀를 추종하는 이들과 함께 로마를 방문해서
시리아쿠스 교황과 술피시우스 라베나 주교에게
함께 순례길에 오르자고 설득한다.
그렇게 함께 쾰른을 향해서 다시 항해 길에 오른 그들은
훈족 군대에 포위되었고, 배에 함께 탔던 모든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훈족의 리더가 그녀에게 그녀의 종교를 버리라고 종용하자
그에 불복하자 리더가 쏜 화살에 맞은 우르술라는 383년에 순교했다.
중세에 쾰른 대성당 근처에서
우르술라 성녀와 11,000명의 하녀의 유골들로 여기는
수많은 유골들을 발굴하게 되면서,
11세기부터 이 대성당 납골/신전에 모셔 두었다.
1489년 10월 21일에 우르술라 성녀의 유골을
브루헤의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가지고 와서
금으로 도금되고 교회 모양으로 제작된 참나무 관에 모셔 두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멤링이 그린 7 점의 성화들이
이 관 주위를 장식했다.
앞쪽 패널의 왼쪽 그림:
우르술라 공주는 로마로 순례길을 가던 중
동행한 11,000명의 하녀들과 함께 쾰른 항구에 도착해서
도시의 대문 안으로 입성하고 있다.
그날 밤에 천사가 나타나서(오른편 뒤에 보이는 성의 창가에 보이는 인물들)
여행을 계속한다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그녀는 그 예언을 무시하고 여행을 이어갔다.
가운데 패널 그림
라인강을 따라서 항해하던 그들은 지금 독일의 바젤에 도착해서
오른편 뒤에 보이는 알프스 산을 넘을 준비를 했다.
멤링은 11,000명의 하녀 대신에 11명의 순결한 모습의 하녀로 압축했다.
오른편 패널 그림:
로마에 입성한 우르술라는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있고,
그녀 뒤에 무릎을 꿇은 이는 그녀의 약혼자이다.
우르술라는 결혼 조건으로 약혼자가 크리스천으로 개종해야 하고,
그녀가 3년간 순례 여행을 하는 동안, 동정으로 남게 해 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코너를 돌아서 옆 패널 그림:
결혼을 앞둔 우르술라 성녀
뒤편 그림들
왼편 패널 그림:
함께 순례 여행을 떠나자는 우르술라의 요청을 받아 들이고 동행한 교황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 우르술라와 동행자들
가운데 패널 그림(오른편)
일행이 쾰른에 도착해 보니, 도시 전체가 악랄한 훈족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우르술라의 남편은 도착 직후에 훈족의 칼에 찔러서 우르술라 품에서 사망했다.
오른쪽 패널 그림:
훈족의 왕(붉은 옷과 하얀 터번을 쓴 사람)이 우르술라의 가슴에
손을 얹고, 그녀를 유혹하자, 이를 완강히 거부한 우르술라에게
훈족 군인이 활을 겨누고 그녀를 죽였다.
이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장면 역시
역사적인 배경이나 현실적인 면이 결여된 것이 특이하다.
그녀 뒤에 서서 측은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브루헤 출신 커플은
멤링 자신과 그의 아내 안나로 추정되고 있다.
1479년에 멤링에게 유명한 걸작품 성 요한 제대 피스를 의뢰한
아그네스 카셈브로트/Casembroot 와 야콥 데 세우닝크/De Ceunink는
평범하고 오래된 우르술라 납골 신전을 대체할
두 번째 걸작품인 '우르술라 유골함'을 의뢰하면서 이 그림들이 제작되었다.
매년 수 백년동안 성 우르술라 축일인 10월 21일이 되면
병원에 근무하던 수녀 간호사들이 이 유골함을 들고
병원 옆에 위치한 채플로 옮겨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다.
그래서 18세기에 이 지역을 점령한 프랑스 군대와
20세기에 발생한 두 차례에 대전 중에도
수녀들이 안전한 곳으로 재빨리 대피시켜서 파손을 피할 수 있었다.
Heilige Ursulaschrijn/우르술라 납골당
by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89; oil on panel
Tweeluil met Kruisdraging en porret van een minderbroeder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 수사의 초상화가 그려진 2단 제대 피스
Jan Provoost (circa 1465-1529)
1522; oil on panel
마돈나와 아기 예수
멤링 컬렉션이 전시된 성 요한 병원 박물관
Bruiloft van Kana/카나의 혼인식
Anonymous/무명, Southern Netherlands
17세기, oil on panel
Bruiloft van Kana/카나의 혼인식
Anonymous/무명, Southern Netherlands
17세기, oil on panel
Bruiloft van Kana/카나의 혼인식
Anonymous/무명, Southern Netherlands
17세기, oil on panel
Voorstellingen uit de legende van het Heilig Kruis
성스러운 십자가의 전설이 담긴 장면들
Anoymous/무명, Flanders
16 세기, oil on panel
Voorstellingen uit de legende van het Heilig Kruis
성스러운 십자가의 전설이 담긴 장면들(왼편)
Anoymous/무명, Flanders
16 세기, oil on panel
Voorstellingen uit de legende van het Heilig Kruis
성스러운 십자가의 전설이 담긴 장면들(오른편)
Anoymous/무명, Flanders
16 세기, oil on panel
Kruisdraging/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Pieter Claeissens the Younger/피터 클레이슨스(died 1623), Bruges
16세기; oil on panel
Kruisdraging/십자가를 짊어진 예수(detail)
Pieter Claeissens the Younger/피터 클레이슨스(died 1623), Bruges
16세기; oil on panel
Kruisdraging/십자가를 짊어진 예수(detail)
Pieter Claeissens the Younger/피터 클레이슨스(died 1623), Bruges
16세기; oil on panel
Calvariegroep/칼보리 그룹
Anoymous/무명, Bruges,
17-18 세기; oak and stone
Grafzerk van zuster Colliine/한 수녀의 묘비
1479
Grafzerk van zuster Joozyne de Meet/유진 데 메트 수녀의 묘비
Grafzerk van zuster Joozyne de Meet/유진 데 메트 수녀의 묘비(detail)
묘비
Grafzerk van Corijn(Cornelis) Seijnk, Katheline Christiaens, Jooskin Seijnk, Jacob Seijnk
반 코라인 사잉크, 카텔리너 크리스티엔스, 요스킨 사잉크, 야콥 사잉크의 묘비
1451
Jezus in het huis van Simon/시몬의 집을 방문한 예수
after Dirk Bouts/더크 바우츠로 추정
16 세기, oil on panel
Onze-Lieve-Vrouw met Kind/우리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Anonymous/무명, Flanders
16 세기, oil on panel
De dood van Maria/마리아의 죽음
Anonymous, Flanders
16 세기, oil on panel
Saint-Elizabeth (1207-1231) nurses the sick
환자들을 돌보는 엘리사벳 성녀
Frans Francken de Jonge/프란스 프랑큰 데 용 (Antwerpen 1581-1642)
ca. 1610, oil on canvas
헝가리의 귀족 출신인 엘리자벳 성녀는
일생 청빈, 겸손, 자선을 솔선수범하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양노원의 수호여신이며,
이 성 요한 병원을 비롯해서 많은 병원에서 존경받고 있다.
Saint-Elizabeth (1207-1231) nurses the sick
환자들을 돌보는 엘리사벳 성녀
Frans Francken de Jonge/프란스 프랑큰 데 용 (Antwerpen 1581-1642)
ca. 1610, oil on canvas
The Triptych of Jan Floreins/ 얀 플로라인스 삼단 제대 피스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79
이 작품은 브루헤 성 요한 병원 소속 얀 플로라인스 수사가 의뢰해서
현재 프라도 박물관에 소장된 같은 주제의 삼단 제대 작품보다
작은 버전으로, 멤링이 7년 후에 그린 작품이다.
이 제대피스 역시 왼편에 낮은 벽 뒤에 무릎을 꿇고 있으며,
스테레오 버전으로 인물의 특성이나 건축적 구성된 작품이다.
프라도 오리지널 작품처럼 아기 예수의 탄생과
삼왕의 경배 장면을 같은 건물이지만, 다른 방 배경으로 그렸다.
두 버전 다 마구간 뒷 방에서 소와 나귀 틈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The Triptych of Jan Floreins/얀 플로라인스 삼단 제대 피스(안쪽 가운데 패널)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79
아 가운데 패널은 세 동방 박사/왕들이 태어난 아기 예수를 방문해서
발가락에 키스를 하면서 경배하고 있다.
15세기 전통대로 삼 왕 중 한 명을 아프리카 출신으로 그렸고,
작품 의뢰인은 왼편에 무릎을 꿇고 있다.
The Triptych of Jan Floreins/얀 플로라인스 삼단 제대 피스(안쪽 오른편 패널)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79
오른쪽 패널 그림은 유태인 회당에 아기 예수를 봉헌을 묘사하고 있다.
발가벗고 평온한 표정의 예수는 마리아, 시미언과 안나에게 둘러싸여 있고,
요셉은 뒤에 서 있다.
신약 성경에 기술한 것처럼 제물로 바칠 비둘기도 보이지 않고,
혼자 온 마리아는 오른편에 보이는 가느다란 초를 가지고 왔는데
이는 루가서 2장 32절에 시미언이 말했듯이
"예수는 이방인들에게 빛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광이다."라는 것을 묘사한다.
The Triptych of Jan Floreins/얀 플로라인스 삼단 제대 피스(안쪽 왼편 패널)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79
제대 피스가 열린 상태의 왼쪽 패널은 스웨덴의 브리지트의
도상/아이코노그래피를 사용하고 있는데:
양부 요셉은 촛불을 들고 옆에 서 있고,
성모 마리아는 그녀 치마에 놓인 갓 태어난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당에 제대 피스로 사용할 때면
미사가 집전될 동안은, 두 개의 문을 열어 두어서
안에 설치된 세 개의 그림이 보이게 두었다가,
그 외 시간은 문을 닫아 두면, 문에 걸린 두 점의 그림이 보인다.
이 겉에 걸린 그림은 황량한 돌산과 넓은 강의 요르단을 배경으로
세례자 요한과 베로니카 성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림 윗부분에 흰색 조각으로 처리된 부분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왼편),
그리고 죄를 짓고 그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오른편)가 묘사되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아마 예수의 강생을 통해서 구원의 필요성을
삼단 제대 안 쪽에 그려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The Triptych of Jan Floreins/얀 플로라인스 삼단 제대 피스 ( 바깥쪽 오른편 패널)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79
베로니카 성녀는 주님의 얼굴이 새겨진 베일을 들고 있다.
이 작품은 얀 플로라인스가 브루헤 지역에 닥쳐올 혼란기에 대비해서
원형인 프라도 버전보다 작은 규모로 의뢰해서 멤링이 그린 것을
종교 분쟁 중에 수도원에 잘 숨겨 두었던 것을
1976년에 우연하게 이 작품을 발견된 것을
보수작업을 걸쳐서 이 멤링 컬렉션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The Triptych of Jan Floreins/얀 플로라인스 삼단 제대 피스(바깥쪽 왼편 패널)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79
어린양을 가리키고 있는 요한 세례자는 예수를 보고
"보라 주님의 어린 양이여,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시다"(요한 1:29)라고 선포했다.
Triptych of Adriaan Reins/아드리안 라인스 삼단 제대 피스
Hans Memling/한스 멤링(Seligenstadt 1440 - Brugge 1494)
1480, Oil on oak panel,
이 삼단 제대는 브루헤 성 요한 병원 소속 플로라인스 수사가
1479년에 의뢰한 삼단 제대 다음으로
아드리안 라인스 수사가 두 번째 멤링에 의뢰해서 제작된 작품이다.
가운데 패널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골고다(해골) 언덕의 애가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그 그림의 구성은 반데르 와이든이 골고다 언덕의 사건을
예수 외에 세 명의 등장인물로 줄인 것을 이 작품에서 멤링이 사용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는 뻣뻣해진 몸과
벌려진 두 팔과 모여진 다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마리아는 죽은 아들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상징하는 보라색을 전체적으로 사용해서
이 극적이고 슬픈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오른쪽 패널은 이 병원의 수호성인이자
갑자기 죽음에 임박한 임종 전에 이들이 받아야 할 종부성사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는 바바라 성녀가 등장하고...
왼편 패널은 이 작품을 의뢰한 아드리안 수사가 무릎을 꿇고 있고,
그 뒤에 그의 수호성인인 아드리안 성인이 묘사되었다.
삼단 제대 피스 문을 닫으면,
안쪽 오른편 패널은 윌게포르티스/Wilgegortis 성녀 모습이 담겼다.
전설에 따르면, 귀족 출신 딸로 태어난 그녀는
10대에 아버지의 정해 준 이슬람교도인 무어족 왕과
일찌감치 결혼하기고 약정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결을 지키고 싶은 나머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추녀로 변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그녀의 기도가 통했는지, 얼굴에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파혼을 통보받았고,
화가 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순교시켰다.
이 성녀는 캐톨릭 측에서 정식으로 성인으로 추대된 적은 없지만,
남편에게 억압받고, 폭력에 시달린 여인들 사이에서
그들의 기도의 중재자 역할을 해 왔다.
안쪽 패널 오른쪽에 담긴 '이집트의 마리아' 그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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