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온 탓인지 8월 말부터 거의 한달 내내 날씨가 흐리고
때 늦은 비가 추절추절 계속 내리는 것도 모라자러
한술 더 떠서 일찌감치 서리까지 두세번 와서
아깝게 정원에 깻잎을 비롯해서 토마토와 고추를 다 망쳐 놓으면서
우리 동네 특유의 파란 하늘과 눈이 부시도록 밝은 햇살로 그득한 가을을 뺏긴 듯 했는데
9월 말이 되어서 모처럼 계속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날씨가 계속 되어서
괜시리 맘이 들떠서 애들처럼 마냥 기분이 좋기만 하다.
그래서 일 하느라 바쁜 일상에서 시간이 나는대로 편한 신발을 신고
시내 곳곳에 있는 숲이 우거진 산책로로 발길을 돌려서
멋진 가을을 온 몸으로 체험을 했다.
이 길은 알버타 대학교와 번화한 Whyte Avenue 사이에 있지만
이렇게 멋진 고목들이 사시사철 아름드리 우거져서
조용히 생각을 하고 싶거나 울적할 때 자주 오는 포근한 길이다.
눈 부신 햇살이 나무가지 사이로 스며 들고...
왼편에 차를 세워 두고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는 기분이 참 좋다.
남쪽으로 한 블록만 가면 번화한 시내 길이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하기만 하다.
이렇게 고운 길이 있을까..
바람에 낙엽이 여기 저기 딩구는 모습에 한참 넋을 잃고 보기도..
굳이 시내에서 떨어진 숲 속이 아니고 시내 한복판에 이런 길들이 많은 우리 동네가 새삼 자람스럽다.
이렇게 낙엽이 쌓인 풀 밭에 벤치까지 있어서 책이라도 가지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누군가와 정겨운 대화를 도란도란하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이 길을 뒤로 하고
차로 5분간 운전해서 시내 쪽으로 사스카추언 강과 Mill Creek 시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울창한 숲 속에 있는 산책로 로 오랜만에 가 보기로 했다.
같이 함께 가을을 느껴 볼까요...
이 산책로길의 입구 근처에서...
이 산책로는 조깅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낙엽, 단풍, 하늘, 햇빛의 아름다움이 절정이다.
오전 11시인데 너무 호젓해서 가끔은 좀 무섭기도...
그래서 지나가는 새소리나 다람쥐 소리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
이렇게 오르막 길도 나오고...
편한 신발을 신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올라간다.
드디어 높은 곳까지 가니 파란 하늘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 오고...
Mill Creek 시내가 졸졸 흐르고...
밀 크릭의 아담한 다리도 있고...
시내를 끼고 올라가는 산책로를 따라서...
벌써 가지에 붙은 잎들보다 땅에 떨어진 낙엽이 더 많다. 그냥 왠지 숙연해진다.
마치 지나가는 사람들을 멋지게 정렬을 해서 친위대처럼 포근하게 감싸 주는 듯 하다.
낙엽들이 바스락 바스락... 생각보다 소리가 크다..
이곳은 그늘이어서 낙엽들도 촉촉하고 푹신하다.. 그리고 조용하기도..
누군가와 함께 올 걸 후회가 살살 든다...
혼자 걷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하고 갑자기 쓸쓸해지기에..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원하든 원치 않듯 결국 혼자 헤처서 걸어 나가야겠지...
생존을 위해서 이렇게 제 몸을 일부러 헐벗고 희생을 감수하고,
하지만 아낌없이 벗어 내 던진 이 낙엽이 자양분이 되어서 강인한 나무가 되고,
떨어진 밀알이 썩어서 새 생명이 거듭 나듯이...
나는 무엇을 과감히 버릴까... 무엇을 내려 놓을까...
인생의 여름을 넘어서 단풍처럼 인생의 황혼에 접어드는 길목에서 반문 해 본다..
얼마나 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까...
아름다운 낙엽처럼 나도 아름답게 잘 여물고 있을끼...
그래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될까...
누군가에게 먹이가 되어 주고, 그늘이 되어 주고, 편히 쉴 안락처가 될까..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가 힘차게 달리는 두 여인들의 모습이 함께 뛰고 싶어진다.
운동화를 신고 왔다면 당장 따라 붙을텐데...
저 파랗고 맑은 하늘처럼 오점없이 깨끗한 영혼을 가졌으면...
황금빛 단풍처럼 고귀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늘로 곧게 치솟은 나무처럼 고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주관이 있었으면...
이렇게 어깨를 맞대고 남들과 편히 한결같이 더불어 살 수 있으면...
드디어 두시간 후에 저 멀리 산책로의 끝이 보인다.
인생 여정 길의 끝을 잘 마무리하는 은총을 얻고 싶어진다.
일을 할 시간이 되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길에서 내키지않은 걸음을 돌려야 했다.
길가에 세워 둔 차에서 올려다 보니 마침 하얀 선을 그으면서 비행기가 파란 상공을 기분좋게 날라 간다.
불현듯 어디로 무조건 이 가을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No road is long with good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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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goin' home from the new world symphony by dvorak
sung by ian terfel
from helen's cd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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