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의 알록달록한 털실...
9월 개학과 함께 여름에 미처 하지 못했던 대청소를 늦게나마 시작했다.
차고와 마당 정리와 청소는 개학 전인 8월 말에 이미 마쳐서
매년 학기초면 해야 할 일들을 해결하자마자
일이 생겨서 작년 여름에 건너 뛴
부억의 cupboard 와 pantry 청소를 하느라 주말 이틀간을 부산을 떨고 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부터 제일 잡동사니가 많은 안방을 target로 삼고 옷장문을 열고 보니
옷가지도 옷가지지이지만 옷장 구석구석에 잔뜩 쌓인 털실들부터 정리하려고
안방 한가운데에 다 쏟아 부어 보았다.
나는 더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말부터 시작해서
춥고 긴 우리 동네 겨울내내 틈이 나는대로 두손과 대바늘 혹은 코바늘을 움직여서
스웨터, 카디건, 스카프, 모자, 판초, 후디 그리고 행주 등등을 뜨개질을 즐겨 한다.
그런데, 점점 뜨개질하는 사람들이 감소해서인지
20년전만 하더라도 우리 동네에 털실가게가 약 10개 정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고작 Michael's 와 Walmart 두군데만 명맥을 근근히 이어오긴 하지만
다양한 실도 별로 없고, 값도 무척 비싼 편이어서
6년 전부터는 원하는 털실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여러가지 소품들을 만들어 왔다.
인터넷을 통해서 털실을 주문하기 위해서 두 웹사이트에 멤버로 가입을 했더니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다양한 소재의 털실을 한 군데에서 편하게 집에서 털실을 구입할 뿐 아니라
무료 패턴도 제공받고, 털실도 싸게 구입하고, 배달료도 삭감해 주어서
두가지 일과 집을 병행하는라 늘 시간에 쫓기는 내게 퍽 유익한 사이트가 되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이면 그 주의 세일을 하는 털실과 더불어 새로운 소재와 촉감으로 만들어진
신상 털실품목들이 이멜로 어김없이 들어 오는데 구입을 하기 보다는
어떤 품목이 세일인지 어떤 새로운 털실이 시장에 나왔는지 궁금해서 매주 이메일을 열어 본다.
완성된 소품들,....
스카프 10개, 스웨터 1점, 카디건 2점, 그리고 20여개의 면행주와 20여개의 도일리 깔개들을
차곡차곡 투명하고 커다란 박스에 그득 채워진다.
Wool, Mohair, alpaca 소재로 한 털실들...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다양한 소재와 색상의 털실이 매주 정가보다 적어도 33%에서 75%
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소개되는데,
늘 자신에게 다짐한 것도 잊고 매년 싱싱한 제철 채소와 과일이 출하되면 어김없이 사재기를 하는
나의 고약한 버릇이 털실구입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흔히 어떤 소품을 만들지 먼저 정한 후에, 그에 필요한 털실을 구입해서 계획한 아이템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내 경우엔 맘에 드는 털실이 아주 싼 값에 나오거나 out of production 이 되기 전에 일단 구입한 뒤에
그 털실의 소재와 굵기 그리고 색상을 고려해서 아이템을 정해서 소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렇게 지난 3년간 인터넷을 통해서 사들인 털실이 안방 옷장에만 털실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서재옷장에도, 현관 옷장등등 여기저기 흩어져서 쌓아 둔 털실을
모조리 다 들고 와서 한자리에 놓아놓고 보니.....
주로 리본 모양의 털실과 금속을 소재의 털실들...
Oh My God!!!
그동안 사 들인 털실이 이렇게 많은 줄 이번에 처음으로 내 눈으로 확인을 하자
저절로 큰 한숨부터 새어 나오면서, 내 머리를 몇차례 쥐어박았다.
분명히 주문을 했을 때는 막연하나마 무엇을 만들어서 누구에게 줄 것을 유념해서 사 들였을텐데
내가 이런 털실들을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털실을 발견하면 머리를 찧고 싶다가도
단종이 되어서 추가구입이 불가능한 털실들을 바닥에서 한뭉터기를 발견하면 손바닥을 치고 좋아하는
내 모습을 누가 보았다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집에 여분으로 남은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박스를 잔뜩 들고와서
그동안 맘에 드는 털실을 구입해서, 그때 그때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뜨게질을 해서
소품들을 만들어서 사 들인 털실을 소화를 하느라고 했지만,
시간을 따로 내서 어떤 실이 얼마나 남았는지 여지껏 한번도 파악을 한 적이 없어서
이참에 제대로 실 소재별로 구분을 해서 박스에 담아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그만치 일곱 박스를 채우고 나서야 정리를 끝났다.
가운데에 보이는 실이 오래 전에 단종이 된 실크 실로 내가 아끼던 실이다.
간단히 매년 연중행사처럼 옷장정리를 하려다가
반나절 내내 여기저기에 널린 수많은 털실들을 소재와 색상별로 구분해서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놓으니
힘은 들었지만 내 손에 어떤 털실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파악이 되어서 보람은 있었다.
수많은 털실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이제껏 살아 오면서
과연 유형적으로, 무형적으로 어떤 것들을 얼마나 소유하고 또 누리고 사는지
가끔씩 정기적으로 파악을 해 보는 것이 참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미완성으로 남은 여러가지 소품들...
우리는 원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가지기 위해서 무단히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산다.
그래서 얻은 것들을 손에 넣게 되면 행복해 하기도 하기도 하고 주위에 과시를 하면서 우쭐해 한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오래 가지 않고, 대부분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더 안간힘을 쓰면서 쉽게 만족을 얻지 못할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또 누리고 살지만
이번 내 경우처럼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꾸역꾸역 모으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아무리 요즘이 100세까지 사는 긴 인생이라고 하지만,
나이 50이 넘으면 지금까지 여기저기 벌려 놓은 여러가지 일들을 조금씩
마무리를 시작해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인식을 하고
또 말로는 늘 내려놓고 베풀고 살겠다고 새해결심에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힘도 빠져가는 부실한 어깨 위에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
끙끙대고 살고 있는 어리석고 욕심스러운 내 모습이 잔뜩 사 모은 털실이 확실하게 알려준다.
이제부터라도 이미 내가 분에 넘치게 소유한 여러가지 무형적이거나 유형적인 것들을
제대로 파악해서 인생 차변대변표(credit/debit list)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우선 가진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하나씩 내 손에서 떠나 보내서 가볍게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자신과 다짐을 해 본다.
어쨌든 우리는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인생이니....
에필로그 1: 다른 옷장을 오늘 정리하다가 털실로 가득 찬 또 하나의 박스를 발견해서 합이 8 !!
에필로그 2: 마음에 드는 털실이 있으시면 찜 해 두세요.
기회가 되면 뜨게질을 해서 작은 소품 하나 만들어 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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