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키 여행 후기 5편>
갈레리우스 아치 (The Arch of Galerius)
테살로니키에 위치한 갈레리우스 아치(The Arch of Galerius) 는
그리스어로 아치로라는 뜻을 지닌 카마라로 이 도시에는 불리우며,
이 아치는 로마제국 시대에 이미 존재하던 주요 길인 비아 레기아(Via Regia)였고,
현재는 에그나시아 와 디미트리오스 구나리 길( Egnatia & Dimitrios Gounari Street)에
아직도 버티고 있다.
4세기에 로마제국을 통치하던 시대에 4명의 황제 중 하나였던갈레리우스 황제가
이 아치와 더불어, 근처에 있는 갈레리우스 궁전을 짓게 명령을 내리면서 .
298-299년 사이에 건축이 되었다.
그리고 303년에 4명의 테트라크(tetrarch) 중 하나인 갈레리우스 황제가
298년에 페르시아 사사니드(Sassanid) 제국과의 전쟁에서
그들의 수도였던 테시폰(Ctesiphon)을 점령하고, 승전을 기념하고자 헌정되었다.
아치는 8개의 기둥들과 세개의 아치로 이루어졌고,
아치의 내부는 벽돌로 쌓아서 만들어졌고,
겉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서, 승전의 모습들이 조각 되어있다.
중간 아치의 높이는 약 12.5 미터이며, 폭은 9.7 미터로 만들어졌다.
현재 남은 아치는 8개의 기둥 중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3개와
아치의 내부 벽돌 부분만 남아 있으며,
남아 있는 기둥에는 갈레리우스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면과
신에게 희생제사를 지내는 모습들이 새겨져 있다.
갈레리우스 황제의 승전 아치 아래에 서서...
아치 내부는 벽돌로, 그리고 겉은 대리석으로 페르시아를 무찌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있는 갈레리우스 황제와 로마 군대...
왼편에 디오클레시언 황제와 오른편에 갈레리우스 황제가
승전을 허락한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다.
갈레리우스 황제 옆에는 그의 아내와 디오클레시언의 딸 발레리아의 존재로
전 로마제국 황제들과의 연결고리를 부각시키고 있다.
재미난 사실은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 사상에서 우상의 모습을 지양하는
damnatio memoriae 정책으로 얼굴 부분을 의도적으로 깎아 낸 점이다.
얼굴이 뭉게진 조각상들...
몇시간 동안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진 몸뚱아리를 쉬게 할 겸,
출출해진 배를 채우려고 아치 바로 옆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와 달짝찌근한 바클라바를 들면서
40분 정도 언제나 재미난 테살로니키 거리를 걷는 사람구경도 하고...
얼마 있으니 주위가 어수선해서 보니,
당시 EU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행진이 시작되었다.
주로 젊고 진보적인 시민들이 이 행진대열에 참가한 듯 보인다.
시위 중에 무장을 한 경찰들이 길 가에 약 10미터 간격으로 서서
만약을 대비해서 출동했지만, 경찰이나 시위대나 이방인이 볼 때는
그저 서로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또 존중 해 주는 것 같아서
데모라고 보기엔 오히려 파티같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점점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열기가 더 해 간다.
며칠 후에 거행된 국민투표에서 'oxi' No 표가 이겼지만,
종국에는 EU가 요구하는 정책을 받아 들이게 되어서
다시 이 장면을 보니 아이러니칼 하다.
반대표 시위대가 지나가고 다시 평상을 되찾은 갈레리우스 아치 주변...
잠시 잘 쉰 다음에 아치 왼쪽 뒤에 보이는
갈레리우스 로툰다로 향했다.
갈레리우스 로툰다 (Galerius Rotunda)
갈레리우스 로툰다
갈레리우스 로툰다 건물은 300년경에 갈레리우스 황제가
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만든 궁전과 아치와 더불어
그리고 사후에 자신이 묻힐 거대한 무덤으로 사용하려고 건설되어서
테살로니키에서 제일 오래된 유적지이다.
비잔틴 시대에 당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이 로툰다 신전을 동방 정교회 교회로 변경한 후에
비잔틴 문화의 대표적인 아름답고 정교한 모자이크가 제작되었다.
1590년에는 로툰다는 오토만 제국 지배 하에 놓이게 되자
자연히 이슬람교의 회당인 모스크로 변경되었다.
로툰다 내부
건물내부는 들어서자 마자 도움 천장에서 새어 든 빛이
거대한 내부를 비추어서 건물의 창들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방문객들이 호흡을 잠시 멈출 정도로 강한 첫 인상을 안겨준다.
4세기에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제정되면서
비잔틴 문화가 시작되었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정황으로 봐서
갈레리우스 로툰다는 4세기 후반이나 5세기 초반경에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 교회로 변경되면서
로툰다는 아기오스 게르기오스(Agios Georgios) 교회로 명명되었다.
로툰다의 천장의 모자이크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모자이크 타일 아래에 그려진 디자인 스케치가
아직도 남아서 그를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보수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 그림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보랏빛 옷을 입고 방패 위에 서서
왼손에는 십자가가 들려 있고, 오른손은 위로 향해 있다고 한다.
지진으로 벽이 갈라졌지만,
그 사이에 제작된 정교한 모자이크는 여전히 황금빛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로툰다 내부는 반짝거리는 비잔틴 모자이크로 덮였지만,
수백년동안 발생한 지진으로 대부분이 훼손되어서
일부만 현재까지 남아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조각들과 다수의 문헌을 통해서
오리지날 모자이크의 테마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는
모자이크를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었다.
터키의 오토만 제국은 1430년부터 테살로니키를 지배했는데,
1591년에 게르기오스 교회는 다시 이슬람 회당인 모스크로 또 변경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수백년에 걸쳐서 제작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없애기 보다는
페인트로 겉칠을 해서 파손되지 않고 남아 있다.
수천년 역사 속에 세번의 변경을 겪은 이 로툰다는
1978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큰 훼손을 입었다가,
대대한 복구작업과 보수작업을 거친 후에
박물관으로 거듭나서, 1999년에 다시 개장되었다.
갈레리우스 궁전
갈레리우스 황제의 지시로 3세기 후반부터 4세기 초반에 지어진 궁전의
크기는 약 3만 평방미터에 달하고, 길이는 400-500 미터로 추정된다.
테살로니키는 발칸 지역의 주요 도시이며, 로마제국의 속국의 수도답게
이 complex 는 수세기에 걸쳐서 중요한 행사에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고작 바실리카, atrium 과 팔각형의 옥좌 방만 남아서
한때는 거대하고 화려했던 궁전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계속해서 테살로니키 6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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