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에 지어진 포럼
오래된 주교의 궁전 자리에 자리잡은 마차두 데 카스트로 박물관은
(Museu Nacional Machado de Castro)는 두 파트로 이루졌는데:
하나는 로마시대에 지어진 포럼(광장: Criptoportico de Aenimium)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14-16세기에 제작된 조각작품들과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이루어졌다.
박물관 입구
이 박물관은 쿠임브라가 로마시대 지배하에 있을 1세기에 지어진
도시의 포럼 자리에 지어진 주교의 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쿠임브라는 로마제국이 쿠임브라를 비롯해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 당시인
2,000년 전에 세워진 애미니움(Aeminium) 도시가 현재까지 이어져 온 오래된 도시이다.
'cryptoportico' 는 그리스어 어원으로 지붕이나 아치로 덮여진 지하통로를 뜻하는데,
애미니움 크립토포르티코는 가파른 언덕으로 된 지형에 지어진 도시에
견고하고 안전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편편한 플랫폼으로
그 위에 지어진 포럼(광장)과 주위의 건물을 지탱해 주는 건축물이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 중에 '애이니움'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세워졌으며,
현재의 쿠임브라에서 남쪽으로약 1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쿠임브리가의 보호아래에 놓여졌다.
로마 도시 애이니움을 보호하는 성벽도 지어졌고,
팔각평 모양으로 도시가 계획되어서 건설되었고,
로만 포럼은 로마시대에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행정적으로 중요한 장소로
당시의 주요 도로였던 카르두(cardo)와 데쿠마누스(decumanus)가
만나는 교찻점에 위치해 있어서 무역과 문화가 만나는 곳이 되었다.
카르도(cardo maximus)와 데쿠마누스(decumanus maximus)
두개의 주요 도로가 도시의 중심에 있던 포럼을 지나가게 만들었다.
수로도 건설되었고, 승전 아치와 원형극장 그리고 도시 묘지도 지어졌지만,
이 모두 1778년에 파괴되었다.
468년에 이 지역에 침입한 게르만족인 수에비 족들이 애이니움과 인접한
코님브리가(Conímbriga) 도시에 침입해서 도시를 멸망시키자,
주민들이 애이니움으로 도망와서 살게 되면서
그들이 살던 도시 이름을 가져다가 쓰게 되면서
현재의 도시 이름인 쿠임브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중세에 들어서 이 오래된 로마시대의 건축물 바로 위에
주교의 궁전이 지어져서 자금은 박물관 건물로 사용되어서 덕분에
그 아래에 존재하던 로마시대에 지어진 2,000년된 오래된 빌딩이
당시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지하도시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어둡고 움직이면서 찍다 보니 흐릿하다.
그리고 쿠임브라의 다른 명소보다 인기가 적은지
우리 부부 외엔 아무도 없기도 하고
지하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어서
35도를 넘은 바깥과 달리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Lapide Honorifica
애이니움 도시는 도시 성벽 건설을 가능케 도와 준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 콜로루스 황제에 감사의 뜻으로
305-306년에 이 기념 감사패를 증정했다.
넓은 통로
이 넓은 통로는 양쪽에 위치한 여러개의 방들과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이어졌는데
후에 지어진 벽 때문에 무너져서 오리지날 아치 디자인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복도 사이 사이에 위치한 작은 방 #1
1416년에 지하도시의 입구가 무너져 내리자
벽의 무게를 지탱하는 보조 벽이 증축되었고,
16세기엔 지금 남아있는 것처럼 2층으로 된 베란다가 그 위에 지여졌다.
좁고 어두운 벽 사이를 편하게 걸아 다닐 수 있게 플랫폼 복도가 설치되어서
수월하고 여유있게 2,000년된 유적을 구경했다.
방 #2
방 #3
방 #4
방 #5
좁은 아래층 통로
방 #6
신에게 술을 올리는 돌 제대의 윗 부분
2세기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이정표(milestone), 39AD
애이니움에서 북쪽으로 6 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이정표에 거리를 표시한 것을 보면
이 지역의 정치적, 행정적 중심 도시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지하 아치 통로의 윗층으로 통하는 계단
계단의 위치
채광과 통풍을 위해서 서쪽 입구 위에 두개의 커다란 창과
그리고 동쪽 갤러리의 천장과 방에 구멍이 설치되었다.
지하보다 통로도 넓고 천장이 높은 2층
이 곳에서 약 1시간 머무는 동안 유일하게 만난 한 여성 관광객이
평소보다 유난히 반가웠다.
2,000 년 전에 간단한 도구만으로 이렇게 견고하게 지어진 이 건축물은
당시에 그 위에 지어진 포럼은 물론 중세에 지어진 궁전을
그리고 지금은 박물관을 충분히 안전하게 지탱해 주고도 남을 것 같이
그들의 장인의 손길이 여전히 느껴진다.
무거운 무게를 거뜬히 지탱해 주는 아치의 머릿돌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1993년 발굴된 지점에 설치된 계단을 올라 가 보니...
로만 포럼의 남쪽을 지탱해 주는 기초 토대 부분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기초 토대 부분 위에는 18세기에 지어진 다수의 마굿간이 벽에 설치되어 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에 지어진 2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도로 위치와 만나게 되며,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중에 지어진 오리지날 포럼과 이어진다.
제일 처음에 지어진 오리지날 아치 지붕 벽과 갤러리
통로에서 오른쪽으로...
통로에서 왼쪽으로...
벽을 높이 쌓아 올리기 위해서 발판이나 비계를 설치하기 위해서
벽 중간 중간에 만들어진 구멍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돌아가신 가이우스 줄리우스 마테르누스에게
그의 두 딸 보비나와 쥴리아가 헌정한 묘비
2세기 (왼편)
알리시아 아비타가 그녀의 아들 카디오 카리아노를 위해서 제작된 묘비
2세기 (왼편에서 두번째)
죽은 알리아 바젤리아 아비타를 위해서
그녀의 아버지 가이우스와 남편 퀸토가 의뢰해서 제작된 묘비 (세번째)
2세기 초반
자벨리아 루피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할아버지 알리우스 아비투스와 그녀의 아버지 실바니우스 실바누스가 제작한 제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루피누스가
죽은 아들 아우렐리우스 무제우스를 위해서 제작한 cupa 와 유골단지
2세기
계속해서 마차두 박물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