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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여행22]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Salzwelten)& 고대 광부묘지/할슈타트 3편

by Helen of Troy 2019. 9. 5.



할슈타트 소금광산(Salzwelten) 안으로...

 




푸니쿨라를 타고 내리니 

소금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을 기념하는 동상부터 눈에 들어 온다.









소금광산/광부들의 묘지로 올라가는 길




이 길은 약 300미터의 길이로 선사시대의 묘지터에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까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에 걸쳐서 만들어진

약 1,500개의 묘가 발굴되었다. 


이 시기는 로마제국의 형성 초반기로

이 지역으로 서서히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중으로

할슈타트는 이미 소금 생산지와 무역의 중심지로 부유한 도시였다.


이 소금광부들의 묘지에서 발굴된 유골은 

힘든 광산 노동을 오랫동안 해 온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대 소금 광산 광부들의 묘지길/박물관





길 왼쪽에 위치한 검은 빌딩 안으로 들어서니...


발굴된 광부의 유골과 유물들이 건물 안에 전시되어 있다.





매장될 당시, 시신을 천으로 감아서

목조와 토기와 함께 묻었다.

(람사우어씨가 발굴할 당시의 모습)


시신은 동서로 뉘여서, 머리를 서쪽으로 두고

 시선이 동쪽을 바라보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이 고대 광부묘지는 마스터 광부였던 

람사우어(Johann Georg Ramsauer: 1795-1874)에 의해서

최초로 체계적으로 발굴되었다.




안타깝게도 발굴 후, 토기는 부서지고 수의 천도 섞어 없어졌다.



그는 1848년부터 1863년까지 980개의 무덤을 발굴해서

자세하게 발굴 기록을 그림과 함께 남겼다.

그의 발굴 덕분에 기원전 800년에서 400년 사이에

할슈타트 지역에서 유럽에서는 최초의 철기시대 문화가 번성했음을 입증해서

"할슈타트 문명" 이라고 명명되기도 했다.


람사우어의 대를 이어서,엥글(Isidor Engl), 좀바티(Josef Szombathy),

모튼(Friedrich Morton),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는

비엔나 소재의 자연 역사 박물관에서 발굴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부터 대부분의 주요 유물들은

비엔나의 Natural History Museum에 전시되기 시작했고,

나머지 소수의 유물들은 린즈의 박물관과 할슈타트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Creamation (화장 장례)



화장 절차는 시신을 땅에 묻는 절차보다 복잡하고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당시의 화장 방식으로 장례를 치루는 이들은 부유한 이들만이 할 수 있었다.


화장 절차는 온 마을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에

큰 규모의 장작불을 지펴서 시신을 화장 시킨 다음,

재와 타지 않은 뼈를 모아서 준비된 묘 바닥에 뿌린 후

그 위에 보화, 무기등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서 다양한 제물을 함께 묻었다.





소금 광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Painted Skulls



할슈타트 캐톨릭 본당의 Charnel House(유골 방)에는

600여개의 해골이 보관되어 있으며,

해골의 신원을 알리기 위해서 망자의 이름이 새겨졌으며

때로는 페인트로 색칠이 되어 있다.







Gedenkbrunnen(Memorial Fountain: 발굴 기념 분수)


Gedenkbrunnen(Memorial Fountain: 메모리알 분수)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7,000년 전에 이 지역으로 사람들을 오게 한 원인은

소금만이 아니라 소금기있는 짭짤한 물이 흐르는 시냇물이 한 몫 했다고 한다.

동물이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소금을 섭취하기 위해서 

소금천이 흐르는 이 곳으로 대거 모여 들자,

이 동물들을 잡기 위해서 자연히 사냥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 분수는 요한 게오르그 람사우어가 발굴한 첫 무덤이 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홀을 건축한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가 디자인해서

1956년에 지어졌다.






Die Steinbewahrersoelde(The stone keeper's wages: 석공의 거처)



절벽이 많은 이 지역에서 광부들이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고,

절벽 아래에 위치한 호흐탈(Hochtal) 동네 주민의 안전을 위해서

 절벽에서 작업로 위에 떨어진 돌들을 치우는 임무를 맡은 석공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 머물던 거처였다.


이 수천년된 작업은 현재도 주요 도로나 사람들이 몰려 사는 지역에

여전히 안전을 위해서 거행되고 있다.






Barbara-Kapelle(Saint Barbara's Chapel: 성 바바라 채플)


성녀 바바라


바바라 성녀는 광부들의 수호성녀이자 포병들의 수호성녀이기도 하다.

바바라는 3세기 현재의 레바논인 페니키아 출신의

순교자이자 성인이다.




Barbara-Kapelle(Saint Barbara's Chapel: 성 바바라 채플)


전설에 따르면,  바바라의 아버지는 그녀를 바깥 세상과 차단하기 위해서 탑 안에 가두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비밀리에 세례를 받고 크리스찬으로 개종하자

화가 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칼로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기도로 탑 벽에 입구가 생겨나서

그녀를 두 목동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던 산 계곡으로 이동되었다.


결국엔 그 지역의 감독관인 마프시티아누스 앞에 끌려 간 바바라에게 

크리스찬 신앙을 버리라고 혹독한 고문을 가하지만, 그녀는 그에 굴하지 않자,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딸의 처형을 단행했다.

그 벌로 그가 귀가하던 길에서 벼락에 맞고 사망했다.




그녀가 순교할 때의 나이가 29살이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광부들의 유니폼에 29개의 단추가 달려 있고,

그 중 3개는 반드시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 

오랫동안 광부들에게 내려오는 관습으로 남아있다.





당시의 복장



3,000년 전의 호흐탈의 주민은 다양한 색상의 복장과 악세사리를 착용했다고 밝혀졌다.

그들의 유품들은 다행히 이 지역에서 흔한 소금에 잘 보존이 되었는데,

화려한 색상의 천을 소재로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고,

양모 소재외에도 가죽 소재의 옷과 다양한 귀중품들이 발견되었다.


현재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즐겨 입는 전통의상도

가죽으로 된 바지와 화려한 드레스에서도

수천년 전 호흐탈 주민들의 전통의상의 흔적이 엿보인다.






Ritschert 요리



이 지역의 소금 무역이 번창했을 때인 "할슈타트 문명' 시기에

곡물, 콩,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재료로 해서 만든 음식이 대표적인데

지금도 알프스 남동 지역에서 "리트셔트" 요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음식은 철기시대의 광부들도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Salt/소금


고대에 소금은 아주 귀한 자원으로,

활발한 소금 무역 덕분에 할슈타트는 외딴 알프스 산악 동네에서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로 변화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


고고학자들은 할슈타트에서 캐낸 소금은 유럽 전역에 거래되었고,

 호박(amber)와 상아의 무역도 발틱해안과 아프리카에 걸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Bacon and Smoked Ham


3,000 여년 전에 할슈타트에서는 베이컨과 훈제된 햄의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고대에 어떤 방식으로 훈제음식을 만들었는지 밝혔냈는데,

산 아래에서 사육한 돼지를 도살한 다음에 

대대적으로 광산이 있는 높은 산 위의 위치한

한꺼번에 150마리의 돼지를 훈제하는 규모에 달하는 

큰 스모크 하우스로 옮겨 와서

베이컨과 훈제 햄을 만들었다고 한다.






Archaeologisches Zentrum alte Schmiede

Archeological Center at the Old Blacksmith/대장간 고대 역사 센터건물


이 건물은 1896년에 대장간으로 지어져서

1960년까지 대장장이들의 일터로 사용되었다.





그 후로 복원공사를 거쳐서 지금은 할슈타트 고고학 센터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Landslide/산사태


기원전 4세기에 발생한 거대한 산사태로

산 아랫동네가 완전히 묻혔고, 광산 입구를 막아버리자,

생존자들은 호흐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옮겨서 새로운 광산 입구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수천년간 소금산지의 리더였던 할슈타트의 전성기는 저물어 갔고,

그 자리를 듀른베르크가 차지하게 되었다.






Bronze Age hut/청동기 시대의 오두막


수천년 전 청동기 시대에 지어진 목조 오두막이 발굴되었는데,

발견된 도끼와 톱을 사용해서 정교하게 마무리된 대들보를 비롯해서 다양한 목재들을 통해서

당시의 목공 기술이 상당히 높았음이 입증되었다.






Rock Salt Carrier Women/소금 광석을 나르는 여인들


'할슈타트 문명' 전성기 시기에는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이들이 소금 광산에서 일을 했다.

남성들은 소금을 캐는 일과 갱도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고,

여성들은 소금을 광 밖으로 나르는 일을 했으며,

어린이들은 횃불에 사용할 소나무를 나르는 등 다양한 잡일을 맡았다.

불과 20세기에도 여성들이 높은 산악지대에서 등에 소금 광석을 지고

할슈타트로 내려갔다고 한다.





소금광산 박물관 겸 방문객 센터 건물






소금과 물


센터에 전시된 사진속의 광부들 모습


소금광산 초기에는 광부들이 땅을 뚫고 갱도를 만든 후

소금 광석을 밖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쓰다가,

후에는 점점 더 효율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

먼저 광산에 구멍을 뚫은 후에 펌프를 사용해서 물을 부으면

 소금이 물에 녹아서 brine 이라고 부르는 소금물이 만들어진다.

이 브라인을 펌프를 사용해서 밖으로 퍼내서 물을 증발시키면

소금을 정제할 수 있는 'leaching plant' 방법으로 소금을 생산했다.

이 작업으로 거대한 동굴이 이 지역에 많이 생겨났다.





광부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에서...





광산 사고 구조작업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광산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센터에서 나누어진 광부들의 유니폼을 착용부터...

(제일 작은 사이즈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엄청 헐렁하다.)




일행이 모두 유니폼으로 갈아 입은 후에 

리더를 따라서 광산 입구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소금 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일렬로 오래된 광산 안으로 걸어 들어 갔다.





이 소금 광산은 300년 전인 1719년에 오픈된 광산이다.













계속해서 소금 광산 투어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