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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About me...Helen/헬렌의 일상에서

가장 슬픈 아버지날/The Saddest Father's Day

by Helen of Troy 2021. 6. 23.

 

 

2016년 8월 29일 집 부엌에서 파티에 초대된 손님을 위해서 직접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만드는 Dick

 

 

오래된 친한 친구이자

때로는 많은 제자들에겐 닮고 싶은 멘토이기도 하고,

우리의 주치의 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세 아이들의 최고의 아빠이자,

대학교 1학년때부터 35년을 함께 한 아내에겐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친구였고,

수많은 환자들에겐 사려 깊은 재활의학 의사이자,

일하는 직원들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대형 재활병원의 경영자였던

Dr. Dick Au 님이 지난 토요일 오후에 갑자기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창 나이인 53세의 나이에...

 

 

 

 

 

2008년 5월 31일에 디크의 세 자녀이자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인 레이앤, 카라 & 에릭

 

 

얼마 전에 내 블로그에 소개된 나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삼 남매 제자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아빠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고

둘째 딸인 레이  앤이 울면서 전화로 알려주었지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레이앤에게 대여섯 번을 되물어 보았다.

 

6월 셋째 일요일이었던 20일은 아버지 날이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일요일 마침 일이 있어서, 돌아가시기 전날인 금요일에

가족끼리 맛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아버지 날을 미리 기념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엔 일찌감치 가족이 골프를 치고 점심도 잘 먹고

저녁엔 드라이브인 극장을 가려고, 간식거리를 사들고 집에 와서

다른 식구들은 아래층에 있는 사이에

디크는 2층 침실에 다음날 병원 관련 일을 하겠다고 올라갔다가

아무런 예고나 전조 증세 없이 홀로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되었다.

 

 

 

 

 

2018년 12월 26일 우리집에서  크리스마스 만찬을 함께 한 아우 가족들

 

 

암 전문 의사이자 아내인 헤더가 무심코 2층에 올라갔다가 쓰러져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

심폐소생을 실시했고, 바로 옆집에 사는 의사 친구까지 합세해서 심폐소생을 오랫동안 실시했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서 소용이 없었다.

 

생전에 디크는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20 Km 떨어진 병원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Personal Trainer까지 두고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꾸준히 운동하기도 하고

자신이 뇌졸중이나 사고로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움직이는 재활의 답게

그의 환자들에게 솔선수범하는 인물답게 건강의 표본으로 살았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은 받아들이기에 너무 힘들고 슬펐다.

 

 

 

 

 

2020년 1월 3일 새해 만찬 때에 집에서 직접 재료를 가지고 와서 즉석에서 복숭아 크레이프를 만들어서...

 

 

디크와 아내 헤더는 의사로 일을 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성당 내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왔고,

시리아 난민들이 제대로 잘 정착할 수 있게 거주지부터, 아이들의 교육 그리고 가구까지

조달해 주는 단체의 리더였고,

불우한 가정에서 중간에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의 교육과 주거지 모금 운동을 위해서

골프 대회, 자전거 경주, 침묵의 경매를 주도하는데도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캐나다 서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Folk Festival' 행사 때에 

온 가족이 합심해서 봉사활동을 지난 20년간 벌려 왔고,

로터리 멤버로 일하면서 중미에 학교와 병원 설립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등

늘 가족과, 이웃, 그리고 환자들을 우선으로 한 삶을 살아왔기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디크가 있었기에 나의 삶이 더 행복하고 발전했다."라고 애석해했다.

 

 

 

 

 

우리 모두에게 달콤한 디저트를 대접하는 디크

 

 

그는 나이에 비해서 늘 소년처럼 많은 것에 호기심이 많아서

다양한 분야에 늘 도전하는 덕분에 취미도 재능도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요리인데, 집에서 매일 먹는 저녁 식사뿐 아니라 

중요한 명절이나 특별한 날의 요리는 디크가 맡아서 식구들과 손님들을 대접하곤 했다.

 

지난여름부터는 한국요리에 푹 빠져서,

웬만한 요리에 고추장을 추가해서 요리를 하기도 하고,

요리를 하다가 모르는 점이 있으면 수시로 물어보더니

날로 한국 요리 실력이 발전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보기도 좋은만큼 맛도 좋은 크레이프 디저트 맛이 마지막일 될 줄이야....

 

 

요즘은 한국 부침에 도전을 하더니

자신이 직접 개발한 김치전이 제일 자신 있다고 7월 1일부터 코로나 락다운이 해제되면

뒷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어서 한국 음식의 스승이라고 부추겨 주던 내게

제일 먼저 솜씨를 자랑해 보이겠다고 약속한 것이 엊그제였는데,

그가 약속했던 김치전과 갈비구이 맛을 영영 못 보게 되고 말았다.

 

그의 타계 소식을 듣자마자, 초콜렛 칩스 쿠키를 구워서 자전거를 타고 디크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직은 가족 외 사람들이 집 내부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서

문간에 선 채로 1시간 정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리고 정작 아버지 날인 일요일에는

우리 집 아버지 날 저녁식사를 위해서 만든 잡채와

그 대신에 김치전을 부쳐서 다시 디크네 집에 가서

집 앞 porch 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함께 먹으면서 

주인공이 없는 아버지 날을 쓸쓸하게 기념하고 돌아왔다.

 

 

 

 

 

비록 53세의 나이로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지만,

이 세상에서 허락된 시간을 

남보다 10배의 열정으로 풍요롭게 멋지게 살았던 Dick,

당신의 환한 웃음,

지치지 않은 삶에 대한 갈망과 애정,

인간에 대한 믿음을

오랫동안 기억할게요.

 

 

이제는 천상에서 편하게 영면하길

늘 기도할게요.

 

Thank You and Rest in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