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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About me...Helen/바늘과 실과 함께

뜨게질의 혜택과 우리네 인생

by Helen of Troy 2021. 8. 4.

 

왼편에 뜨던 숄을 거의 다 마칠 즈음에 다른 패턴에 꽂혀서 

이미 떴던 숄의 털실을 풀면서 새로운 패턴으로 오른편 숄을 뜨기 시작했다.

 

내가 뜨개질을 처음 한 것은 국민학교 6학년 때로 기억이 난다.

손재주가 유난히 많은 막내 이모한테 졸라서 코바늘 뜨게질/crochet 부터 먼저 배웠고,

이듬해엔 대바늘 뜨기/knitting을 배웠다.

그렇게 시작한 뜨개질을 50년간 했으니, 참 오래 해 온 취미생활이다.

그만큼 뜨개질이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셈이다.

 

 

전에 뜬 숄은 점점 작아지고, 대신 새로 뜨기 시작한 숄의 크기는 커 가고 있다.

 

 

특히 코비드-19 때문에 사회적인 격리와 lockdown이 시작된 후에

바깥출입도 어렵게 되고, 누구를 만날 일도 없고,

자유시간도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혼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소품을 만들 수 있는 뜨게질에 할애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요즘 진행 중인 면소재 봄/가을철 카디간 뒤판의 모습

 

 

 

참고로, 미국 정신건강 협회는 뜨게질의 다양한 혜택과 효과에 대해서 이렇게 발표한 바 있다:

 

1.  IMPROVED MOTOR FUNCTION/뇌 운동기능의 향상

 

뜨개질은 뇌신경의 대부분을 한꺼번에 자극하는 활동으로,

전두엽/Frontal Lobe은 뜨개질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계획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판단하며,

아울러 뇌 운동 기능을 관장한다.

후두엽/Occipital Lobe은 눈이 감지한 다양한 정보를 분석한 후

그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서 뇌의 다른 부분으로 보내진다.

마루엽/Parietal Lobe은 감각을 담당하는데, 신경세포가 가장 많은 손가락과 손에서

감지한 감각은 바로 이곳에서 받아들이고 무엇을 하는지 분석한다.

측두엽/Temporal Lobe은 후두엽과 같이 기억을 저장하고 언어를 분석하는데,

뜨개질 패턴이나 설명서나 그림을 보는 행동은 마치 또 다른 언어를 분석해야 하는데

측두엽에서 그 기능을 해 준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필요한 뜨개질은 신체적으로나 정신건강을 큰 도움이 되는데,

예를 들면, 파킨슨씨 병 환자들이 뜨개질을 하면, 소근육 운동 기능을 향상해주며,

뜨개질을 하는 동안 통증을 잊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이미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2. IMPROVEMENT OF CONCENTRATION/집중력 향상

 

뜨개질은 한 가지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어서 과잉행동이나 미루는 행동을 감소시켜준다.

뜨개질을 하면서 바로 앞에 보이는 손에 잡힌 프로젝트에 몰입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프로젝트의 모습과, 프로젝트가 끝나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알기에

집중력을 키워준다.


3. REDUCES STRESS, ANXIETY AND DEPRESSION/스트레스, 불안과 우울증의 감소

 

의학적으로 뜨개질을 시작한 후 몇 분이 지나면, 심장 박동수도 줄고,

혈압도 내려가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는데,

그래서 뜨게질을 하는 동안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고,

우울증 증세가 많이 해소가 된다고 보고되었다.



4. IMPROVES MEMORY/기억력 향상

5. Slowed onset of dementia/치매 시작 시기 연기

 

뜨개질을 오래 한 사람도 실수를 자주 범하는데, 후에 이 실수 경험을 기억해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된다.  어려운 뜨개질 기법도 처음엔 단마다 일일이 설명서를 보게 되지만,

이렇게 몇 단을 뜨다 보면, 설명서를 보지 않아도 기억으로 뜰 수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완성된 카디간 뒤판

 

6. STRENGTHENS ARMS AND HANDS/팔과 손의 근력 향상

 

반복적이며 리드미칼 한 손동작은 건염이나 관절염 예방을 도와준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뜨개질을 하면 손과 팔의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된다.



7. PROVIDES A DIGITAL DETOX/디지털 중독으로부터 해독

 

요즘처럼 디지털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 손에는 스마트 폰이나 아이팟가 붙어있다.

뜨개질은 아주 간단하게 그런 전자제품으로부터 떼어놀 수 있는 활동이다.

이는 오래전에 손으로 대부분의 것을 해결하고 충족하던 시대로 돌아가게 해 주며,

전자제품이 발하는 인공적인 빛의 피해를 감소시켜준다.

 


8. GIVES YOU “ME TIME”/개인적인 시간 확보

9. Increased sense of wellbeing/자존감 향상

 

뜨개질은 어떤 디자인으로 어떤 소재의 실로, 어떤 색상으로 뜰지,

얼마만큼의 시간이나 돈을 투자할지 등 결정할 것이 많은데,

이 모든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개인 시간을 자신이 컨트롤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쁨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


10. CREATES FRIENDSHIPS/Reduced loneliness and isolation/고독과 고립에서 탈피

 

뜨개질을 하다 보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쉽게 교류하게 되며,

근래에는 뜨게질 카페나 유튜버들도 늘게 되면서, 온라인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며,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서 다양한 패션 아이템이나

집에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템을 만드는 행동 자체가 

이미 고립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카디건 앞판 왼쪽

 

 

개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즐겨 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대한 희열과 보람이 좋아서 손에 늘 뜨개질 거리가 들려 있다.

 

뜨개질은 리드믹 하고 반복적인 동작을 요하는데

이는 마치 묵주를 굴리면서 반복적으로 기도를 하는 것과 흡사해서 뜨개질을 하면서 자주 기도를 바치기도 하고,

멍 때리기에도 좋아서, 무념 상태로 뜨개질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 고마운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다양한 일을 처리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히 자투리 시간이 늘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때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책 읽기와 뜨개질을 하면서 알뜰하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오늘 막 끝낸 앞판의 왼쪽

 

 

하지만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뜨개질이 더러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것에 꽂혀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면, 끝까지 못 가고 미완성으로 남은 프로젝트가 자연히 쌓이게 된다.

 

한참 후에 미완성된 프로젝트를 끝내려고 다시 손에 잡으면,

당시 누구를 위해서, 무슨 이유로 만들기 시작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때도 있고,

그래서 완성할 열정도 식어 버리기도 하고,

그 프로젝트의 패턴이나 설명서도 찾지 못할 때도 생겨서

원래 계획한 대로 완성하기가 몇 배 힘들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영원히 마무리를 못한 채 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결국 다시 실을 풀어서 다른 프로젝트에 쓰이거나, 때로는 쓰레기로 전락하기도 한다.

 

 

 

올해 6월에 배달된 털실

 

 

수제 뜨개질 소품은 이미 완성된 제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다른 제품과 비교도 해 보고 거기다가 직접 입어 보고 나서 쉽게 고를 수 없는 딜레마가 늘 따른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털실의 질감이나 색상, 촉감을 모르는 상태에서 배달이 되고,

실제로 직접 손으로 뜨다 보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는 이유도 한 몫해서

부득이하게 중단하기도 하고, 실수를 해서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바람직하지 않은 이 습관을 고쳐보려고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고질병이 심하게 걸렸는지 완치가 잘 안 된다.

그래도  뜨개질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왠지 모르게 안도와 위안이 되어서,  그냥 편하게 하던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7월에 배달된 털실들...

(빨간 실과 보라 색실을 제외하고는 아기 이불을 만드려고 주문한 실들)

 

 

주로 캐나다의 길고 추운 겨울에 하던 뜨개질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덕분에 2년째  계절과 상관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뜨개질과 우리네 삶에 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다른 패턴과 털실을 사용해서 뒤판이 완성된 또 하나의 카디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을 선택하거나

때와 장소를 가려서 태어나는 권리 없이 이 세상에 나와서

자의든 타의든 내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을 이행하면서 살게 된다.

 

결혼하고 부모가 된 후에는

점점 나의 의지나 희망과 꿈은 뒤로 접고 자녀들과 가족을 우선이 되어버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게 되는 상황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준비도 안 된 채, 기대치 않은 커다란 짐을 져야 하기도 하고 

높은 산을  힘겹게 넘어야 하기도 하고,

흰 백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도 놓여서, 불가피하게 궤도수정을 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확실한 미래는 가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 단계만 남긴 볼레로 카디건 소품

 

 

그런데 뜨게질이 이런 우리네 인생과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우리가 옷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때에

여러 가게에 가서 이미 완성된 제품들을 내 취향과 주머니 사정에 맞게

입어보고, 시운전도 해 보고, 비교해 보고, 흥정까지 하면서 구입하고,

심지어 마음에 안 들면 가서 교환도 하고 환불도 받는다.

 

그런데 뜨게질을 해서 만들어진 옷이나 소품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보고 만진 다음에 구입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영상의 모습으로 털실 소재를 장만하다 보면, 기대와 다른 털실이 배달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옷의 디자인도 뜨개질 전문 잡지나, 책 혹은 인터넷을 보고 고르는데,

사진 속의 모델이 입은 맵씨가 실제 상황에서도 가능한지

이 또한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늠하기도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소품이 완성되어도 거의 대부분 사진 속의 멋진 모델이 입은 소품은

현실의 모델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기정 된 사실인 것을 머리로 잘 알면서도 

기대치와 다른 완성품에 대해서 자주 실망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살면서,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 비교해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고를 수 없고,

내게 주어진 삶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인생으로 갈아탈 수도 없고,

맘에 안 든다고 다시 무를 수는 더더욱 없다.

그리고 살다가 접어 둔 꿈은 나중에 여건이 되어서 시도를 해 보면, 

나 자신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딸리거나, 예전의 열정이 이미 식어버려서 시도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직접 그 시간을 살아보지 않으면 어떤 모습으로 살 지 모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한 달 전에 막내에게 하루 만에 끝내주겠다고 약속한 프로젝트는

이 상태로 한 달을 넘기고 있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과감하게 변화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듯이,

뜨개질도 끝까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투자해서 완성까지 한 소품도

내 기대나 의도와 다르다면,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 있게 털실을 다시 풀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주어진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지 않아도 일단 끝까지 완성을 해 놓고 다시 풀어 버릴지,

아니면 도중에라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과감히 포기하고 새 출발을 할지

그 시기가 늘 어려운 관건이다.

 

그리고 머리로 생각만 하고, 시도를 못 했거나, 

시도는 했지만, 상자에서 쌓여가는 미완성 소품들과 사용되지 않은 털실들은

마치 실현될 가능성은 점점 사라지고 잊힌 내 꿈과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짠 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들도, 나의 현주소를 잘 파악해서 YES, MAYBE 아니면 NO로 분리해서

정기적인 UPDATE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LASTLY...

요즘 인기가 있는 스포티하고 간편한 디자인의 이 상의는

약속한 대로 시작한 날에 완성한 소품이다.

 

 

“Knitting is the saving of life.” 

"뜨개질은 인생을 살린다."

– Virginia Wolf

 

 

밝은 연두색의 이 상의는...

 

 

 “Knit your hearts with an unslipping knot.” 

" 견고한 매듭으로 당신의 마음을 뜨개질해 봐요."

– William Shakespeare

 

 

 

이미 완성된 이 카디건 안에 입고 다음날 출근했다.

 

 

 

“Being creative is not a hobby it’s a way of life.” 

" 창의적인 것은 취미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다."

– Proverb/격언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다이빙 종목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영국의 톰 데일리 선수가 관중석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영상이

요즘 유투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In the rhythm of the needles, there is music for the soul.” 

"리드믹 하게 움직이는 바늘에는, 영혼을 위한 음악이 존재한다."

– Prover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