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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여행37]유서깊은 멜크 수도원 2편/Stift Melk(Melk Abbey)

by Helen of Troy 2022. 3. 6.

 

멜크 수도원/2018년 6월 17일

 

 

다뉴브 강가에 위치한 멜크는 

비엔나에서 서쪽으로 약 40 km 떨어진 곳에 있는
유서 깊고 아담한 도시이다.

 

 

수도원 입구로 이어지는 고요하고 좁은 골목을 거쳐서...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2층 계단에 서서 마지막으로 찰칵~

이 층계를 올라가면, 카메라 촬영은 금지되어서,

아쉽게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수도원 구경에 나섰다.

 

 



멜크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회로

다뉴브강에 훤히 내려다 보이는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 수도원은 1089년에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2세 왕이 그의 궁전중에 하나인
이 곳을 베네딕트 수도자들에게 하사하면서 설립이 되어서

1,000년에 가까운 역사가 있는 오래된 수도원이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제정된 곳이다.



12세기에 수도원 학교인 Stiftsgymnasium Melk 가 설립되었고, 
곧 이어서 증축된 수도원 도서관은 중세의 희귀하고 귀중한 매뉴스크립트를 다수 소장했고,
수도원 내의 Scriptorium 은 중세의 일일이 손으로 쓴 매뉴스크립트/manuscript 책을 제작하는 곳으로
중세때부터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이 수도원은 15세기에 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부 지역에서 시작된 '멜크 개혁'중에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어서 수도회에 큰 활기를 불어넣었다.
현재의 수도원은 1702년에서 1736년에 야콥 프란트타워에 의해서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1780년에서 1790년 사이에 요세프 2세 황제가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수도원들을 몰수하고 수도회를 해체시킬 때에도
워낙 역사적, 종교적으로나 교육적인 측면으로 유럽에서 최고를 자랑한 덕분에
황제의 재산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폴레옹 전쟁중에도 나폴레옹의 군대에 포탄을 피했지만
1938년에 발행상 Anschuss 때에 정부가 학교와 수도원을 몰수해 갔지만,
2차 세계 대전 후에 학교는 수도원 소유로 다시 되돌려져서
현재는 900명의 학생을 여전히 가르치는 학교로 남았다.



 

 

Marble Hall/마블 홀

 

 

마침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얼른 셀폰으로 마블 홀의 모습을 얼른 담았다.

 

 

마블 홀 창문에서 담은 수도원 아래의 멜크 도시 모습

 

 

 

Melk Abbey Library/멜크 수도원 도서관

 

 

 

이곳도 운 좋게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희귀하고 중요한 메뉴스크립트 서적들이 소장된 대단한 도서관을 모습을

얼른 셀폰에 담았다.

 

 

 

마블 홀을 나와서 발코니에 서서 편하게 카메라를 꺼내서 오랜만에 남편이 찍어 주었다.

 

 

 

평소엔 카메라와 거리가 먼 남편은

한 번 카메라를 잡더니, 사진 찍는 것에 영 자신이 없으니

일단 많이 찍는다면서, 다양한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 달하고 해서 찍은 것 중 하나이다.

 

 

 

수도원 내부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서 건진 사진들이 별로 없기도 하고

다뉴브 강 가 높은 언덕에 위치한 수도원의 발코니에서 보이는 풍광도 아름다워서

못 이기는 척 남편의 요구에 응해 주었더니 스무 장 가까이 계속 눌러대었다.

 

 

 

 

 

 

 

 

 

 

멜크 수도원 바로 옆에 흐르는 지류가 다뉴브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사진 오른편에 붉고 하얀 빌딩 근처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크렘스까지 타고 간 곳이다.

 

 

 

드디어 아름답고 웅장하기로 유명한 수도원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단체 관광 그룹이 앉아서 성당과 수도원에 관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도 뒤에서 들으면서 또다시 셀폰으로 몰카를 교묘하게(?) 담아 보았다.

 

 

너무 교묘하다 못해 초점도 맞지 않고, 구도도 영 엉망이지만

성당 내부 모습을 건진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숙소에 돌아와서 검색을 해 보니 성당 내부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마침 구글에 올라온 것들이 있어서 이리로 모셔 왔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제대

 

 

 

가운데에 보이는 수호성인 콜로만

 

 

 

 

 

 

 

 

 

 

화려한 돔과 천장

 

 

 

 

 

 

 

 

 

멜크 시와 멜크 수도원의 수호성인 성 콜로만의 유골과 기념묘지

 

 

 

왜 멜크 수도원 성당이 오스트리아에서는 물론이고

유럽에서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지 쉽게 납득이 간다.

 

 

 

성당에서 아래 뜨락으로 내려가 보니..

 

 

 

오래된 수도원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다뉴브 강 쪽을 배경으로 찰칵~

 

 

 

 

수도원을 나오니...

 

 

 

마치 중세로 돌아간 듯한 골목길을 수도자는 아니지만 경건한 맘으로 잠시 걸어 보았다.

 

 

 

다시 수도원 뜨락으로 나왔다.

 

 

 

 

 

 

수도원 분수 앞에서 찰칵~

 

 

 

 

 

 

 

 

 

수도원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한적한 틈을 타서 얼른 찰칵~

 

 

Saint Coloman/성 콜로만 나무 조각상

oak wood sculpture

Franz Gundacker/프란츠 군다커, 2014

 

이 성 콜로만 작품은 순례자의 지팡이와 조개껍질로 묘사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콜로만은 아일랜드의 왕의 아들로

예루살렘 성지로 순례를 떠났는데,

비엔나 근교의 작은 슈토커라우 마을에서 그를 스파이로 오인해서 

그를 배교를 강요하는 고문에 거부하자,

급기야 딱총나무에 교수형에 처해져서 순교했다.

그런데 그 나무에서 새싹이 돋고, 꽃을 피웠다고 한다.

 

1014년에 바벤베르크 가족이 콜로만의 시신을 거두어서

멜크에 위치한 그들의 성 안에 묻고 추호 성인으로 추대하게 되면서

오스트리아의 첫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 후 그의 시신은 멜크 수도원에 묻혔으며,

현재까지 1,000여 간 멜크와 멜크 수도원의 수호성인으로 남아 있으며,

10월 13일을 축일로 정해놓고 수도원 성당에서 특별 미사가 거행되고

멜크 도시에서는 매년 축제를 벌리면서 성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 작품은 수도원 숲에서 서식하던 150년 된 참나무 소재로 사용했으며,

그 나무의 지름은 약 1미터에 달했으며, 이 작품의 무게는 약 600 kg에 달한다.

이 작품을 만든 군다커씨는 멜크 수도원에서 일하던 목수로

오로지 전기톱을 사용해서 제작했다.

 

 

 

수도원 입구 앞

 

 

 

수도원 북쪽 입구

 

이 입구는 멜크 수도원의 수호성인 성 콜로만(왼편)과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인 성 레오폴드 조각상이 지키고 있다.

 

 

 

 

계속해서 멜크 3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