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토리아 광장에 위치한 '수치의 분수/Fountain of Shame'
집을 떠난 지 약 16시간 후에 도착한 Rome/Fiumicino Airport: 로마/퓨미치노 공항
(5월 23일 오후 4시)
작년 6월에 온 후 1년 만에 다시 온 공항이라서 눈에 많이 익다.
작년에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면서
거의 매일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벵키'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들어와서
반갑기도 하고 마침 단 게 당겨서, 긴 줄 뒤로 다가가서 아이스크림부터 사 먹었다.
이번 이탈리아 방문은 다섯 번째이지만,
시칠리아 섬은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로마에서 시칠리아 팔레르모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편은 ITA 항공사를 이용했다.
로마에서 출발한 지 약 1시간 후 저녁 8시경에
비행기 창문을 통해서 팔레르모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멋진 석양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 8시 15)
바닷가에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공항에서 팔레르모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밤 10시 30분에
느지막하게 예약한 숙소에 만 26시간 만에 드디어 도착했다.
일단 배가 너무 고파서 숙소 주위를 걸어 나가보니
다행히도 늦은 시간까지 오픈된 식당이 있어서
해물 스파게티를 주문해서 허기를 달랬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섬의 서부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이탈리아 반도보다
북아프리카와 훨씬 더 가까워서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았다.
동부에 위치한 시라쿠자와 타오르미나는
오래전 부터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테네를 능가하는 도시로
그리스 영향을 다분히 받았다.
고대 그리스가 지배하던 지중해 지역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인구 약 4,800,000만, 넓이는 25,711 km² 된다.
2000-750 BC
시칠리아 역사는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전 2,000-750년까지는 섬 동부는 시쿨리 부족이
서부는 시카니 원주민들이 거주했다.
기원전 1,200년 경에는 소아시아에서 온 엘리미 족이
섬 서부에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그리스에서 건너온 미케네 인들은 섬을 방문해서
원주민들과 교류하며 무역을 시작했다.
734-264 BC
그리스는 이 시대에 영토를 확장하고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서
지중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비옥한 땅을 지닌 시칠리아 동부에 위치한
현재의 타오르미나와 시라쿠자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시라쿠자는 한때 아테네보다 더 번성한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페니키아인들과 아프리카 출신 카르타고인들은
섬 서부에 소재한 현재의 트라파니와 팔레르모를 장악한 후
그리스인들과 소중한 비옥한 땅을 장악하기 위해서 싸웠다.
264 BC-410 AD
로마제국이 번성하게 되면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소재한 시칠리아에 눈독을 들였는데
이는 당시 로마제국의 제일 큰 숙적인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지중해를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로마제국은 세 번에 걸쳐서
유명한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카르타고 군대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아울러 거대한 그리스 식민지 시라쿠자를 장악해서
시칠리아는 로마 제국의 한 지역/province로 전락해서
자원과 노예를 로마제국에게 제공했다.
410-827 AD
330년에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겼고,
410년에 비지고트 부족이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후,
반달족이 시칠리아 섬을 장악했다.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언은 그의 최정예 부대를 보내서
반달족을 몰아내고 약 300년간 시칠리아를 통치했다.
827-1060
중동을 넘어 북아프리카까지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튀니지 은
시칠리아와 교역하기 시작했으며 마차라를 수도로 정했다.
1060-1198
프랑스에 거주하기 시작한 노르만족(바이킹)은
영국과 시칠리아를 침공해서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로저/루제로 2세가 등극해서
시칠리아를 통합했다.
1198-1282: 독일 호엔스타우펜 왕조 & 프랑스 앙제방 왕조가 통치
1282-1860: 스페인 왕조의 통치
1860-1945: 이탈리아 왕조의 통치
1946-현재 ;
5월 24일
350여 년 된 숙소 건물은 원래 Palazzo/궁전 건물로
현재 팔레르코의 역사적인 건물로 등재되어 있다.
오래된 팔레르모 지역 지도
(QUATRO CANTI: 스티커)
QUATRO CANTI/콰트로 칸티/네 코너
팔레르모의 주요 도로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길/Via Vittorio Emanuele과
마케다/Via Maqueda가 만나는 도시의 심장과 같은 지점에
'네 코너'라는 뜻인 '콰트로 카니'가 소재해서
팔레르모 도시를 4개의 동네로 나누고 있다.
콰트로 카니의 네 코너에 지어진 4개의 건물은
스페인의 통치를 받을 시기에 귀족들이 시골의 빌라에서
도시의 타운하우스로 이주하기를 권장하는 차원으로 지어졌다.
3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들은 아래서부터 위로 4 계절을 상징한다.
(아래의 젊은 여인은 봄을 위의 노년의 여인은 겨울을 상징한다.)
아울러 칼로 5세, 필림 2세, 3세, 3세의 동상은
팔레르모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PIAZZA PRETORIA/프레토리아 광장
FOUNTAIN OF SHAME/Fontana Pretoria (1554-55)/수치의 분수
'수치의 분수'는 역사적인 팔레르모의 중심에 소재한
프레토리아 광장에 위치해 있으며, 16세기에 제작되었다.
이 분수는 시칠리아의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건축물로 꼽히며,
50여 개에 달하는 괴물, 하르피아이, 사이렌과 트라이튼 동상들로 이루어졌다.
이 분수는 프란체스코 카밀리아니/Camilliani가 맡았고
제작 공사는 거의 30년이 걸려서 완성되었다.
이 분수는 프레토리아 분수라고도 불리며,
1787년에 팔레르모를 방문했던 괴테는 그로테스크한 괴물 동상을 보고
기겁을 했다고 전해진다...
분수 앞에서...
다수의 시민들은 바로 뒤에 보이는 성 카타리나 수녀원 앞에
설치된 적나라한 누드 동상에 거부감을 표시했으며,
심지어 분수에서 뿜어 나오는 물은 매독균으로 감염되었다는 루머도 돌았다.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수치의 분수'였다.
분수에 설치된 동상과 부조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4 계절 그리고 12 올림푸스 신들의 조각상들이 있다.
지금은 이 '수치의 분수'는 팔레르모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광장 남서쪽에 위치한
'테나티니의 산 주제페 성당/Chiesa di San giuseppe dei Teatini'의 돔은
쥬제페 마리아니/G. Mariani가 디자인해서 제작했다.
부조작품 1
부조작품 2
프레토리아 광장 동쪽에는 산타 카테리나 성당이 들어서 있다.
광장 북쪽에 소재한 건물
광장 남쪽에 위치한 시청 건물
그리고 서쪽에 위치한 산 주제페 성당
계속해서 산 주제페 성당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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