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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s Family/Jeffrey

눈을 치우는 아들...

by Helen of Troy 2009. 3. 1.

요즘 며칠 따뜻해져서

동토의 땅인 우리동네에도 봄이 오는가 내심 반가워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감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지난 월요일부터 탐스러운 함박눈이 소복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순백의 하얀눈이 내리는 모습은 참 보기도 좋고 푸근하지만

집앞 driveway 와 sidewalk 에 내린눈을 치우는 일은

어쩔수없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동네에서 오래 살다보니

눈을 치우는데도 요령이 생겨서 덜 힘들이고 눈을 치웁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나 차들이 쌓인 눈을 밟거나 지나기 전에 치우거나 (그렇지 않으면

힘들게 긁어내야 하기에) 많이 쌓이기 전에 조금씩 몇번에 나누어서 치우면

운동삼아 쉽게 치우는데 그나마 슬슬 게을러져서 때를 놓치기가 일쑤입니다.

 

자폐아인 아들이 12살부터 이 눈치우기를 시켰지만

번번히 세찬 반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혼자서 낑낑대고 눈을 치워 오다가

지난 12월 내내 이상 한파로 너무 춥고 눈도 많이 오는 날의 연속일 때

아들에게 다시 한번 설득을 시도 해 보았습니다.

나이도 이제 19살이 되었고,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대학교도 혼자서 열심히 잘 다니고,

책임감있게 pet store에서 일도 열심히 하는 몸 튼튼한 청년이

나이 들고, 추위를 엄청 타는 바쁜 엄마를 도와서

당연히 눈치우기를 도맡아서 해야한다고 부드럽지만 확고하게요청을 했더니

생각보다 너무도 쉽고 당연한듯이  "OK Mom. I'll do it."라고 답을 해서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후로 눈이 오면 스스로 눈을 치우지는 않아도

"It's time for shovelling" 이라고 한마디 언질을 주면

혼자 궁시렁거리지만 단단히 차려입고 나가서

20분 정도간 눈을 치우다가 벌건 얼굴로 헉헉거리면서 들어옵니다.

아무래도 우리 어른들이 치울때보다는 어슬프고 허술하게 치워 놓았지만

대견하고 고맙기만 해서 그저 "Excellent Job~~"이라고 추켜줍니다.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새벽부터 오기 시작한 눈이

제법 쌓였고 며칠 계속 눈이 더 온다는 일기예보가 들려서

아들에게 눈치워야지 하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왠일인지 아들녀석이 학교로 가는 버스 시간보다 15분정도

일찍 학교 갈 준비를 하더니

아무말 없이 주섬주섬 껴 입고 영하 18도의 밖으로 나가서

 처음으로 스스로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15분있다가 추위로 벌겋게 얼은 얼굴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집안에 들어오더니 시간이 없어서 다 못 치워서 미안하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마저 하겠노라고 하더니

버스 시간에 늦을까봐 문간에 있던 가방을 울려매고

부리나케 뛰어 가듯 내빼 달아났습니다.

내가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부모로서 장애아를 잘 키운다는 함은

아마도 장애 자체는 인정하고 받아들이 되

그 아이의 잠재된 능력을 끊임없이 찾아서

개발을 시키면서 정상인들과 사회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더불어 살 수 있게 준비를 시켜 주고

더 나아가서 비록 미약하지만 사회에 어떤식이든지 보탬이 되게 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각오를 잊고 동정심이 앞서거나

아들이 간단해도 무슨 일을 터득할때까지 투자할 시간과 수고가 힘들고 귀찮아서,

실패가 두렵고, 그냥 덮어주려고 하다 보면

두딸보다 너그럽게 키우는 실수를 자주 범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들 혼자서 시간이 좀 걸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도와준다는 미명아래,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 자신이 편하자고 

미리 혼자 해 볼 기회조차 빼앗으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맘을 굳게 되잡아 먹고 

아들이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연습을

또 다시 시작합니다.

 

작년 9월부터는 보기좋게 "Weekly chore chart" 도표를

보기 쉽게 그려서한두달 연습을 시켰더니

일상의 반복을 고집하는 아들에게는

그 도표가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씩 자기방과 자기만 쓰는 화장실 청소,

설겆이 하기, 점심으로 가져가는 샌드위치 만들기,

집안의 쓰레기 백을 모아서 차고에 내 보냈다가 청소차가 오는날에 밖에 내놓기,

우체통에 가서 우편물 가져오기 등이 아들의 일이 되었습니다.

얼마전부터는 가까운 수퍼마켓에 가서 shopping list에 적힌 대로

물건을 사는 것을 추가했는데 아들녀석이 좋아하는 한두가지 스낵을

덤으로 사게 했더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잘 다녀옵니다.

 

우리는 태어 나면서 각기 다른 능력과 재능을 갖고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심각한 발달 장애를 짊어지고 태어난 우리 아들도...

아들의 보잘것 없는  능력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이 험한 세상을 바르게 잘 헤쳐 나가면서 건강하게 살기만을

오늘도 무릎꿇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