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3,000 km 이상 멀리 떨어진 동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맏딸이
약 2주 반의 짧은 겨울 방학동안에 오랜만에 집에서 지내다가
2학기 개학에 맞추어서 오늘 새벽에 다시 학교로 떠났습니다.
공항에서 자그마한 체구에 아직도 고등학생처럼 어리게만 보이는 큰 애의 마직막 뒷 모습에
코 끝이 징하면서 어느 덧 눈가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해서 얼른 돌아 서 그 곳을 떠났습니다.
집에서 뚝 떨어진 먼 곳에서 혼자서 4년간을 줄곧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주일에 이틀은 12시간 대학교 내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 용돈도 벌고,
1학년을 제외하고 3년째 혼자 자취생활을 야물딱지게 지내면서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마다 대학교 내 성당에서 열심히 첼로 연주 음악봉사를 해 오는 딸이
그저 고맙고 대견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씩씩하게 제 앞가림을 제대로 잘 하고 있는 큰 딸의 시작은 너무도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이 녀석은 무려 14주나 빨리 그래서 고작 900g 의 몸무게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첫 애이기에 너무도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불쑥 갑자기 찾아 온 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여섯명의 의사와 간호사들과 함께
앰뷸런스에 실려서 태어난 집에서 제일 가까운 Jersey City 병원에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져서
죽을 고비를 수십번을 가까스레 넘기고
4개월 후에 2 kg 의 몸무게로 드디어 퇴원을 하기 까지
우리 부부는 말 그대로 하루에도 몇번씩 죽음과 생의 문턱을 드나드는 롤러코스터의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당을 다녔지만, 거의 습관적으로 성당을 오가면서
미지근하고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해 오던 나는
염치불구하고 내가 믿는 하느님에게 무조건 매달리고, 애원하고, 원망하고,
그리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남발하면서 그분과 타협을 계속하면서
이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태어 날 때 약간의 뇌출혈이 있기에 그에 따른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제외하고
비록 태어난지 4개월 후에도 정상으로 태어난 신생아의 반 정도의 몸무게로 퇴원을 하는 큰 애를 바라보면서
우리 부부에게 첫 아기를 허락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받치면서
4개월간 나 혼자 일방적으로 해 오던 기도에서 벗어나서 세속적인 부모의 욕심과 기대를 저버리고
그 녀석이 그저 살아 주어서 고마운 맘을 잊지 않고 키우겠다는 맘으로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 후로 초등학교 입학 할 때까지 한번의 큰 수술을 포함해서 크고 작은 고비를 잘 넘기고
유치원 때부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들보다 1-2년 뒤진 이 녀석은 남 뒷 꽁무니만 쫓아 가기에 급급했습니다.
다행히도 이 기간동안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티면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지치지도 않는 이 녀석 특유의 끈기와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9학년 때부터 학교 공부와 첼로 연주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건강하고, 밝고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우수한 학교 성적으로 경제적으로도 손을 벌리지 않아서
부모에게 걱정을 안 끼치는 기특한 딸로 커 주었습니다.
짧은 방학동안 오지랖이 넓어서 항상 바쁜 엄마 탓에
제대로 잘 챙겨 주지 못해서 큰 빚을 진 것 같이 미안했지만
계속 미루다가 딸애가 떠나기 이틀 전부터 겨우 데리고 나가서 옷 몇가지와 부츠를 사 주고
어제서야 엄마의 사랑과 정성인 담긴 여러가지 쿠키들과 밑반찬들을 만들면서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에 우연히 그 녀석의 나이만큼 오래 된 다 낡아서 누더기 수준의 baby blanket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이 녀석이 아직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맬 때,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이 아기 이불과 배냇옷들을 보내 주셨는데,
퇴원해서 이 때까지 이 녀석과 늘 함께 한 이불이기에, 이번에 몬트리올 자취 집에서 여기까지 역시 또 짊어지고 왔다.
20년 이상동안 새 천으로 다섯번의 변신을 한 이불은, 지난 여름에 너무 낡아서 다시 새 천으로 갈아 주려 했더니
딸아이는 너덜너덜한 이불이 훨씬 푸근하고 좋다고 그 낡은 이불을 그냥 들고 지난 9월에 학교로 떠났었습니다.
딸 아이와 작별 할 시간을 몇 시간 앞두고,
그 낡고 헤진 이불을 새 천으로 꿰매기 시작해서
한학기만 마치면 대학을 졸업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딸과 늘 함께 할 고마운 이불이
앞으로 적어도 5년간은 버틸 수 있게 두 세번을 반복해서 꼼꼼하게 바느질을 하면서
부디 이녀석이 건강하기만을 기도 드리면서 졸업 연주회 때에 반갑게 다시 만날 날을 벌써부터 기대 합니다.
21년간의 세월이 엿보이는 낡은 이불...
새로 단장한 이불
가진 알량한 머리와 끊임없는 노력만 하면
세상 모든 일이 내 의지대로 풀릴 거라고 믿으며
최고와 최상만을 위해서 바쁘게 앞만 보고 사는
어리석고 오만한 엄마에게
이 세상을 겸손하게 올바르게 제대로 사는 엄마로 일깨워 준
진이야, 너는 내 딸이자
내 인생의 스승이다
.
진이야, 고맙고 사랑한다.
딸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 중에서
Prelude from suite No. 1
played by Yo-Yo Ma
from Helen's cd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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