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친부모 외에도 부모가 계시다.
9년간 한국에서도 일을 하시기도 했고, 여러 나라에서 70대 후반까지 엔지니어로 일을 하시다가
현재는 고향인 불란서에 근접한 독일의 도시 Saarbruecken에 살고 계신다.
그 두분과 온늘 오전에 한참동안 전화상으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양어머니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맘이 많이 아프지만
3개월 후면 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서 그런대로 위안이 된다.
3년 전에 양부모님들과 함께 가 본 불란서의 스트라스부르그를 사진으로 다시 만나 본다....
Strasbourg (스트라스부르그)프랑스 동북쪽 지방인 알사즈(Alsace) 지방의 중심도시이며 동쪽으로 독일과 경계 해 있다.
현재 인구는 약 65만명이며 EU 의회를 비롯해서 유럽의 중요한 단체들이 운집해 있기도 하다.
(Council of Europe ,with its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its European Directorate for the Quality of Medicines and its European Audiovisual Observatory and the
Eurocorps as well as
the European Parliament and the
European Ombudsman)
Central Commission for Navigation on the Rhine)
이 도시는 현재 프랑스 땅이지만 17세기까지 독일에 속해 있어서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 종교와 언어가
잘 조화가 된 도시이며, 이 도시의 이름의 어원도 독일어의 Strasse(길) 과 burg (성, 도시) 그리고 불어의 -bourg (도시)에서
찾을 수 있기에 이 도시는 말 그대로 Town of roads이다.
또한 이 도시는 독일의 Duisburg 다음으로 라인강 상에서 둘째로 큰 중요한 항구도시여서
라인강 Central commission for Navigation on the Rhine 사무실도 이 도시에 위치 해 있기도 하고
강 양쪽에 중요한 공장들이 많기에 프랑스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역사는 약 60만년 전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기원전 1300년 부터 기원전 3세기에 걸쳐서
켈트족들의 부락으로 시작되었다가 로마제국 시대에 (12BC)네로 황제가 Argentoratum 이라고 이 도시를 명명하고
로마군대가 주둔하는 주요한 군대 기지 도시가 되었다. (1988년 에 2000년 생일 자축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그래서 도시 주위에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현제에도 종종 발굴되기도 한다.
4세기부터 이 도시는 스트라스부르그 교구의 주교좌로 지정되었고 Alemanni(알레마니)가 357년에 로마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해서 366년에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알레마니는 5세기 초반부터 지금의 프랑스 동부와 스위스를 포함한 지역을 점령하고 통치하기 시작했다.
알레마니족 외에도 훈즈, 프랑크족도 이 지방을 통치했는데 842년 Oaths of Strassbourg 기록에 의하면 9세기 전후해서 도시의 이름이
스트라츠부르그로 (라틴어로 Strateburgus, 독일어로 Strassburg, 불어로 Strassbourg) 이미 바뀌어졌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당시 이미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한 이 도시는 923년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으며,
오랫동안 도시의 주교와 시민들과 분쟁이 끊이지 않다가 1262년에 오버하우스버겐 전쟁에서 시민들이 승리를 한 댓가로
필립 왕이 자유도시(Imperial Free City)로 승격시켜 되었다.
얼마 후 1332년에 영향력이 강한 길드(guilds)의 주동으로 정부를 상대로 일으킨 혁명에 성공해서
정식으로 완전한 독립적인 republic이 되었다.
1348년에 전 유럽을 강타한 천연두(bubonic plague)로 많은 인명 피해을 입기도 했고,
그 불똥이 유대인으로 튀면서 1349년에 수백명이 공개적으로 화형을 처해졌고, 대다수가 추방이 된 사건을 시작으로
18세기가 끝날 때까지 유대인들은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스트라스부르그 교회에서 10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에 도시를 떠나야만 했다.
이 교회는 12세기에 공사가 시작이 되어서 1439년에 완공된 교회로서 당시 세계에서 제일 높았던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보다 높게 지어진 건물로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로 부상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몇년 후인 1440년에 구텐베르그가 처음으로 인쇄기계(movable type printing press) 를 성공적으로
해 낸 곳도 스트라스부르그 였다.
1604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신문(주간)이 발간된 것도 당연한지도 모른다.
1520년에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마틴 루터를 신봉하기 시작해서 개신교에 맞게 성경 인쇄도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30년 전쟁기간 중에 자유도시인 스트라스부르그는 중립을 고수했지만 1681년에 루이 14세에 의해서 강제로 황제의 권한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스트라스부르그 대교회도 루터교 교회에서 건축당시 본래의 캐톨릭 성당으로 복귀하면서,
많은 루터교인들이 도시를 떠나기도 했지만 독일색이 짙은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는 블란스 대혁명 때까지도
루터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남았다. 괴테와 헤르데가 좋은 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상업과 제조업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이 도시는 인구가 세배로 늘기도 했다.
프러시아 전쟁 중 이도시는 프러시아 군으로부터 폭격의 피해를 많이 입었고, 1870년 8월 24일에 유명한 박물관과
Hortus Deliciarum을 포함한 희귀하고 중요한 중세시대의 manuscript를 소장하고 있던 도서관이 화재로 파괴되었다.
이 전쟁이 끝나고 1871년에 독일 제국에 합병이 되었고,
프랑스 혁명 기간 중에 독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서 많은 억압과 간섭을 받던
1567년에 설립된 유서깊은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은 1872년에 Kaiser-Wihelms-University (황제 빌헬름 대학)으로
새출발을 시작했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나자, 독일의 황제는 폐위가 되고 알사스-로레인 은 다시 독자적인 republic으로 선언을 하지만
바로 불란서 군인들에게 점령당했고 소비에트 연방에서 파견된 공산당의 세력도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1919년에 합의 된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서 다시 불란서 영토로 넘어갔다.
세계 2차 대전 중에는 1940년 독일군이 점령할 당시 이미 1년 전에 전 주민이 다 이 도시를 떠나 있던 상태였고,
대학교도 클레몽으로 옮겨 간 상태였다. 1940년 6월에 불란서가 독일에 넘어가자 알사스는 다시 독일로 다시 합병이 된다.
1차 대전 중에는 다행히 큰 피해를 면했지만 1943년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가 많이 파손되는 불운을 겪었다.
스트라스부르그의 상징인 대성당은 중세에 지어진 고딕 스타일의 교회 중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성당이다.
이 교회는 1015년에 프랑크 족의 클로비스왕 주관으로 로마네스크 형식으로 지어졌다가
1176년에 일어난 화재로 거의 다 파손되어서 12세기에 재건축을 시작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새로운 형식의 고딕 스타일로 지어진 바젤의 성당보다 더 멋지게 교회를 짓고 싶어한 주교님이
당시의 고딕식 건물 디자이너로 최고의 명성을 지닌 어윈 폰 스타인바흐 (Erwin von Steinbach)의 고딕식 디자인으로
교회의 서쪽부분의 일층과 이층이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14세기에 3층이 증축되기 시작되었고, 1439년에는 마스터 건축가인 울리히 폰 엔싱언(Ulrich von Ensingen)이
북쪽 타워을 완공했디. 하지만 남쪽 타워는 우여곡절 끝에 끝내 증축에 실패해서
현재까지 드물게 불대칭의 타워의 교회로 남아 있다.
North Tower의 높이는 144 미터로 1625년부터 1874년까지 독일의 함부르그의 니콜라이 교회가 완공 될 때까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교회 외부는 붉은빛이 도는 핑크 사암으로 지어져서 레이스같은 분위기를 내고,
정문에는 솔로몬 왕과 열두 사제와 열두마리의 사자들로 디자인 되어 있고
성당 주위에는 크고 작은 많은 동상들로 쌓여있다.
교회 내부는 로마네스크를 여전히 배여 있고, Jodokus Dotzinger 작의 세례식 장소과
한스 해머작의 사암 제대와 실버맨 오르간이 돋보이지만
이 교회에서 제일 주목받는 것은 교회 서쪽에 위치한 19세기 오리지날 글라스로 만들어진 15 미터 크기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이다.
이 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유명한 것은 남쪽에는 18 미터 높이의 거대한 천문학 시계를 꼽을 수 있다.
이 시계는 14세기에 제조되었고 아직도 움직이는 혹성들, 예수님과 열두제자들, 수닭의 울음등을 보여 주면서
매일 12시 30분을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1521년에 루터교 교회를 변경되었다가 1681년에 스트라스부르그가 불란서로 합병이 되면서 다시 캐톨릭 교회로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스트라스부르그 대성당 Strasbourg Cathedral
북쪽에만 타워가 있어서 언벨랜스의 멋을 내고 있다.
성당 오른편에서 본 모습..
핑크빛이 도는 사암으로 지어진 교회 외부...
교회 정문에서 위로 올려다 본 모습...
성당 안에서 초에 불을 부친 후에 제대 앞으로 향해서..
성당 안의 아름다운 19세기에 만들어진 스테인드 글라스..
제대 오른편에 위치 해 있는 중세에 시대를 앞서가는 발달된 천문학의 유산물들..
18 미터 높이를 자랑하는 천문학적 시계 Astrological Clock inside Strasbourg Cathedral
교회 밖의 광장에서..
평균 400년이 되는 오래 된 건물들이 보인다.
이 건물은 600년 이상 되었으며 세계에서 제일 오래 된 목조건물라는데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도시의 오래 된 동네의 건물 양식..
유람선을 타고 Ill River 위에서...
이 네개의 타워들은 World Heritage 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저 뒤에 대성당이 보인다.
이 오래 된 건물은 현재 소극장으로 쓰이고 있단다.
날씨가 화창해서 하늘빛이 너무도 곱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 열심히 구경하는 두 딸들..
강가에 저런 집에 살면 전망이 얼마나 좋을까...
성 바오로 성당 St. Paul Church
유럽 의회 건물 European Parliament
european Paliament Building
Strassbourg 의 야경...
기차 역 앞에서 두딸들과 양부모님...
엄마는 불란서의 알자스 출신이고
아버지는 독일 사이드의 알사즈 출신이어서
불어, 독어, 영어가 아무때고 구사하는
이 분들이야말로 스트라스부르그처럼
수천년동안 좋고 나쁜 역사를 함께 공유한 것처럼
불란서와 독일의 문화와 정서를
환상적으로 잘 조화 된 모습을 주위에게 모범을 보여 주시면서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인간의 냄새가 나는
내겐 아주 소중한 분들이다.
music: sympathiqueby pink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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