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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Helen's Family/Jeffrey

오늘은 복덩이 아들의 22번째 생일입니다.

by Helen of Troy 2011. 4. 16.

 

 

오늘은 복덩이 아들 Jeffrey의 22번째 생일입니다.

아들이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지 벌써 22년이라느 세월이 흘러 갔다는 것이 영 실감이 나지 않을 뿐더러

그만큼 내가 늙어 버렸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믿기 싫어진다.

지금까지 자폐아 아들을 키우면서 참으로  수많은 고개를 넘기면서 살아 왔는데도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아들의 사소하지만 한고비 한고비를 넘길때의 기쁨이 더 기억이 남아서 다행이다.

 

23년 전에 뉴저지에서 27주만에 겨우 900 그람으로 태어난 큰딸 때와 비슷하게

아들을 임신했을 때에도 임신 20주부터 조기 진통이 와서 할수없이 직장에서 휴가를 낸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바니아 대학병원에서 3개월 이상을 입원을 하는 동안 서너번의 아주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가까스로 36주를 채우고 정상으로  2.1kg 으로 작은 체중이었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아들이 벌써 22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을 했다.

 

 

아들이 태어나서 18개월이 될 때까지 우리 부부는 늘 극미숙아로 1년 반 전 먼저 태어난 딸의 건강과 발육에 관심이 쏠려 있어서

잘 아프지도 않고, 남들보다 발육이 오히려 빠른 아들이 그저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20개월을 되었을 즈음에 딸의 발육이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늦기는 하지만

다른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에 오랜만에 한시름을 놓자, 이번에는 정상아들과 다소 다르게 커 가는 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이 생후 18개월 당시 티비에 나오는 Sesame Street 에 나오는 등장 캐럭터 이름을 거의 말을 하던 녀석이

점점 말수도 줄고, 알던 단어들도 조금씩 잊어 가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반복적인 행동과 혼자 놀기만 하고, 늘 하던 routine 대로만 고집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난리를 피우고,

어휘력과 함께 표현능력이 떨어지면서 신경질과 tantrum 이 상대적으로 계속 늘어가는 아들을 데리고

4개월간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많은 테스트와 상담과 여러번의 아들을 관찰 한 후에 

아들이 만 2살인 4월 말에 "자폐'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은 우리부부는 또 다시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렇게 만 20년 전인 1991년 4월 말에 사형선고같은 엄청난 진단을 받은 후에

우리 인간들이 감당하기엔 큰일이 닥치면 흔히 겪는 단계인, 절망, 분노, 부인, 흥정을 거쳐서

받아들이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분노하고 절망하면서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아들의 한정된 능력이나마 조기 발견해서  키워 죽고, 자폐의 제일 큰 장애인 사회생활을 길러 주는데

우리 부부는 올인을 해서 두딸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하게 키우기로 맘을 먹고 스파르탕식의 조기교육을 시작한지

벌써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만 두살부터 3년간 완전히 언어를 잊은 벙어리 아들이 만 다섯살 반이 되었을 때에 아들의 굳게 닫힌 말문을 열어 보려고

온갖 애를 쓰던 중에 늘 달고 살던 감기 때문에 까다로운 입맛으로 겨우 사과주스로 연명을 하던 차에

아들이 좋아하는 사과쥬스를 달라고 말을 할 때까지 주지않자 연 5일간을 목이 쉴때까지 꺼이꺼이울고난 아들이

기적처럼 처음으로 'apple juice 라는 말로 말문이 열린 어느 여름날의 찬란한 오휴를 지금도 어제일같이 생생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말을 다시 하기 시작한 아들은 몇달 뒤에 몇년간 앰무새처럼 반복해서 읽어 주던 책들을 보고 혼자서 읽기 시작했고,

1년 후에는 드디어 삐뚤빼뚤하지만 남들이 읽을만할 정도로 글도 쓰기 시작해서

정상아들과 함께 두딸도 다니고 있던 동네 초, 중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에, 사연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조건부로 가까스럽게

 대학에 입학해서 현재까지  NAIT 대학에 3년째 다니면서 컴퓨터 데이타 관리 공부도 하고,

주 7일간 4개의 직장일을 병행하는 어엿하고 책임감이 투철한 아들로 성장했습니다.

 

 

아들이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hyperactivity(주위산만)을 저하시키고, 집중력을 길러주고,

무엇보다 수업의 방해를 막기 위한 조건으로 타의반 자의반으로

복용한 Ritalin이라는 (커피나 각성제같은 Stimulant) 약을 매일 복용했었다.

모든 약들이 그렇듯이 이 약도 예외없이  세가지의 큰 부작용(side-effects)이 있는데  

하나는 입맛을 떨어뜨리고,  또 하나는 수면을 방해하고, 그리고 기계적이고 경직된 행동을 유발시키는 걸 알면서도 오랫동안 복용했다

 

 생전 처음으로 생일 촛불을 부는 아들...

 

그래서 안 그래도 자폐라는 장애때문에 오든 음식의 냄새, texture, 맛, 온도, 사이즈 등등에 민감해서

만 10살까지는 한 접시에 한가지씩만 놓고 먹어서 어떨 땐 밥만 먹고 맨 파스타 맨 빵만 먹기도 했다가

조금 발전해서 두가지를 함께 담아서 먹었는데 (그나마 두 음식이 맞닿으면 절대 안 되었다) 

그리고 입맛이 없는 상태를 식사를 하기때문에 보통 저녁 식사 시간이 보통 1시간을 넘기고 2시간 이상이 걸릴 때가 많았다.

이렇게 나쁜 식생활로 인해서  모자라는 영양분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충을 해 보려고

같은 음식이라도 여러가지 별의별 방법으로 응용해서 요리를 해서 아들 입맛에 맞추려고 애를 써 왔다,

아마도 16년간을 까다로운 아들 입맛에 맞추느라 늘 노심초사한 덕분에

아마도 지금 내가 간단한 재료로 맛과 영양이 담긴 음식을 뚝딱 뚝딱 쉽게 잘 차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카운셀러와 가지 미팅에서 여러가지로 아들의 상태가 예전보다 많이 호전되었으니

실험적으로 약 복용을 바로 중단하고 아들의 행동을 주시하기로 결정을 한 후에

썩 내키지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15년간 허루에 서너번을 복용하던 약을 하루 아침에 중단을 단행했습니다.

약을 먹지않고 처음 등교한 날은 아들이 집을 나선 후 부터 집 밖에서 아들의 행동이 어떻게 나올런지,

것잡을 수 없게 과격한 행동을 하지나 않을까, 시끄럽게 수업을 방해하지나 않을까,

오감이 다 예민하기에 등하교 때  혼자 버스를 2번 갈아 타는 버스에서 자연히 부닥치거나, 소음이 심하거나, 냄새가 싫어도

큰소리로 반응을 하지나 않을까 등등 오만걱정으로 하루종일 노심초사 아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혹시라도 문제가 있다고 누군가가 전화를  할까봐서 전화 옆에만 붙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의 도움없이 시작된 생활에서 제일 많이 달라진 점은

점점 조금씩 식욕이 왕성 해 지고, 입맛이 돌면서 처음 보는 음식도 잘 달래고 얼르면 일단 시식을 해 보기도 하고 

잠도 쉽게 들어서 , 푹 자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피곤하면 예전에 한번도 해 보지 않은 낮잠도 자기도 하고, 가끔은 늦잠도 자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의 빡빡하고 경직되고 기계적이던 아들의 성격과 행동이

많이 부드러워지면서 사회생활이 좀 더 원만해지고, 타인들과 관계도 많이 좋아진 점입니다.

 

 

 이제는 아들이 오히려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주문하기도 하고,

아침부터 그날 저녁 메뉴가 무엇인지 궁금한지 등교하기 전에 꼭 물어서 파악을 하기도 하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그리고 적당한 시간 내에 잘 먹어 주는 아들로 변모 했습니다.

덕분에 전처럼 아들을 위해서 늘 따로 음식을 해야하는 번거러움도 자연히 없어지게 되어서

나 역시 예전처럼 음식 만들기에 골머리를 앓을 일도 이제는 없어져서

별로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요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서  새삼 즐겁기까지 하다.

 

  

                       22살때 집 부억에서..                                                                                      4살때 집 마당에서...

 

올해 들어서 아들은 한달 전부터 가족 모두에게 4월 15일이 자기의 22번째 생일이고,

그 날에 무슨 선물을 준비할지, 생일음식은 무엇으로 준비할지,

생일 저녁에 손님을 초대할지, 그렇다면 누구를 초대할지, 

아니면 차라리 자기가 좋아하는 식당 중에서 외식을 할 계획인지 등등을 매일같이 긔찮을 정도로 질문을 해 왔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은 자기의 생일에 전혀 무관심했고,

또한 생일의  의미를 잘 모르기도 한데다가 입맛이 무척 까다로와서 별로 즐겨 먹는 음식도 없는 아들이어서

어떤 음식으로, 어떤 이벤트로 아들의 생일을 좀 특별하게 축하할까

4월 초부터 고민을 하고 했었던 답답하고 안스럽던  지난 시간들에 비해서

이제는 아들이 오히려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생일을 챙기려는 녀석의 주문들이

성가시기 보다는 뭐라도 원하는대로 해 주고 싶은 맘이 앞섰다.

예전과 비교해서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본인의 생일을 최대한으로 건지려는(?)  지극히도 평범한 아들의 속셈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나는 낄낄대고 실없이 웃곤 했다.

 

 

올해는 특별한 생일상을 차려 주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3일전부터 심한 목감기와 기관지염으로 목소리까지 완전히 잃어버리고 힘없이 눕워서 이틀을 보내고 오늘에서야 기운을 차리고 보니

아들의 생일을  그냥 며칠 후로 밀어 두기에는 너무나 미안하고 섭섭해서 집에서 아주 가까운 이태리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을 보고

케이크를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서  학교에서 돌아 온 음식 솜씨있는 막내딸이 아파서 들어 누운 엄마 대신 자신해서

오빠가 좋아하는 초콜렛 쿠키 케이크를 엄마의 실력을 능가하는 솜씨로 근사하게 만들어 주어서 뿌듯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생일초에 불을 부치고 입으로 불어서 끄는 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엄마는 아픈것도 어느덧 잊고 있었다.

 

아들아, 22번째 네 생일을 축하한다~~~

잘 자라 주어서 고맙다.

 

아픈 나 대신 막내가 더 이쁘게 사랑을 담아서 오빠의 생일을 위해서 만든

달콤하고 고소하고, 안은 말랑말랑하고, 겉은 바삭거리는 초콜렛 쿠키 케이크 한쪽 드시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