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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s Family/Jeffrey

새해를 바쁘게 시작하는 복덩이 아들....

by Helen of Troy 2012. 1. 12.

 

2012년 1월 9일

아직도 밤이 긴 겨울이라서 휘영청 보름달이 뜬 새벽에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고 얼어붙은 미끄러운 길 위를 급하게 달려 나가는 아들..

 

 

2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방학을 끝내고 1월 9일부터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가족 전체가 많은 행사와 모임으로 쉬는 휴가와 방학이 아니라

평소보다 몇배로 더 바쁘게 연일 밤 늦게까지 놀던 후유증에서 만회할 시간도 별로 없이

나를 포함해서 온 가족 다 평소 해 오던대로 어김없이 일제히 월요일 아침 출근과 등교를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1991년 두살때

 

아침 8시 15분 강의가 있는 복덩이 아들은 6시 15분,

막내는 7시 55분, 맞이는 8시 10분에 각각 등교를 하고나니

오랜만에 조용해진 집에 혼자만의 시간을 되찾은 나는

새로 구입한 cd를 들으면서, 선물로 받은 새 커피를 음미하면서

조용히 잠시  깊은 상념에 잠겼다.

 

 

1993년 4살때

 

2008년 4월에 우연히 멋도 모르고, 별 생각도 없이 블로깅을 개설한 후 3년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 보니 길다면 참 긴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족들에게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맏딸은 동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다니면서 일도 시작했고,

막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고,

우리 부부는 은혼식도 맞았고, 기념으로 결혼 후 처음으로 부부만의 여행을 세번씩이나 다녀 왔고,

개인적으로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직접 얼굴을 맞이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거의 4년 사이에 제일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아마도 우리 복덩이 아들일것이다.

 

 

1996년: 일곱살때...

 

아들은 태어난 필라델피아에서 만 두살에 자폐 판정을 받은 직후부터 자폐아동을 위한 특수학교를 다니기 시작해서.

유치원때부터 고1까지 동네에 있는 일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우리 딴에는 아이의 긴 미래를 위한다는 생각에 그때까지 잘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집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장애인들의 직업훈련(vacation training)을 겸한 일반 고등학교로 큰 기대를 안고 어렵사리 가기 싫다는 아들을 전학을 시켰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음을 곧 알수 있어서 많이 후회를 했었다.

 

2004년 중학교 졸업사진

 

 

블로그를 개설했던 2008년도 4월 당시, 아들은 새 고등학교에서 2년차 학생이었는데

동네에 있는 학교와 달리 새 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를 두번 갈아 타고 가야하는 먼 거리에 위치 해 있어서

만 두살부터 다니기 시작한  특수학교때부터  고 2때까지 늘상 타고 다니던 장애아를 위한 스쿨버스로 통학을 하다가

2008년에 처음으로 홀로 일반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시작하는 큰 전환점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물가에 어린애를 내 놓은 불안감을 다소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우리가족은 처음으로 셀폰을 장만했다. 

혹시라도 버스를 잘못타고 길거리를 헤매이지나 않을까, 특히 겨울에 버스를 잘 못 갈아타서 추위에 떨지나 않을까,

나쁜 사람들을 만나서 가끔씩 당해 온 bullying(왕따)을 당하지 않을까... 등등 

하나는 아들이 가지고 다녔고, 다른 하나는 집에 두고 온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버스를 타기 시작한지 초반에 두번 크게 놀란 사건 외에는 그후 다급하게 셀폰을 사용할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대신 한달에 고작 통 털어서 10번도 쓰지 않은 셀폰의 한달 기본료가 내심 아깝지만 기꺼이 지금까지 꼬박꼬박 잘 내고 있다.

2008년 봄과 여름내내  아들이 학교에서 무사히 돌아와서 집 대문 열쇠를 돌리는 금속 소리가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소리였음이 아직까지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2008년 5월: 고등학교 졸업미사 후..

 

당시 아들이 전학을 한 학교는 말과 무늬로만 장애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학생에서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살 수 있게

직업훈련과 학교 과정을 병행한다는 클래스가 있기는 해도,

아들이 전학을 하기 바로 직전에 special needs program을  담당하던 교감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신 후에

배가 사공을 잃듯이 짧은 시간에 이리저리 표류하기 시작해서 점점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는 커녕

마치 사회에서 불필요한 낙오자들을 모아서 잘 보이지 않은 구석에다가 가두어 두고 그냥 방치와 외면  클래스 분위기였다.

 

그때까지 정규학교에서 정상아들만 접촉을 하던 아들에게는 본받을만한 멘토가 없는 그 곳에서

기대하던 자립교육은 고사하고 난폭하고 예의가 없고 가정 교육이 부족한 다른 클라스메이트들로 인해서

나쁜 영향을 오히려 받고 있는 아들을 그냥 손 놓고 두고 볼수만 없다고 여긴 우리 부부는

2007년도부터 독자적으로 시내에 있는 각 정규 대학교 진학여부도 알아 보느라 관계자들을 계속 만나고 있었고,

아들이 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일이 있는 일터도 물색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터에 준비한 이력서를 건네주면서

보수도 바라지 않고, 그저 아들이 일할 기회만 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 다닐 때였다.

 

2008년 6월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 엄마와...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고3때에 그녀석 생애 처음으로 대형서점인 Chapters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비록 보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일할 기회가 주어진 자체 하나로도 연봉 백만불 직업이 부럽지 않을만큼 행복해 했다.

학교를 전처럼 계속 다니면서, 일주일에 두번, 3시간씩 방과 후에 학교에서 혼자서 버스틀 타고 직장으로 바로 가서 일을 하고 돌아 오곤 했다.

처음 직장이라는 데서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너무도 걱정이 앞서서 아들이 올 시간쯤에 미리 서점에 도착해서

서점 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제일 큰 커피를 사서 손에 들고 한눈으로는 책을 보는 척하면서

다른 한 눈으로는 아들 눈에 띄지 않게 아들을 염탐(?)을 한동안 했었다.

그런데 아들에게 발각되기만 하면 챙피하니까 바로 집에 가라고 정색을 하고 눈을 부라리며 엄마를 나무래도

나는 그래도 미심쩍어서 높은 책꽂이 사이로 녀석을 살살 피해 다니면서 계속 염탐을 30분정도는 더 하고는 집에 돌아 가곤 했다.

 

아들이 만 여섯살때 한꺼번에 말문도 열리고, 책도 읽고, 급기야는 삐뜰삐뚤 쓰기까지 하더니

지금까지도 책읽기를 무척 좋아해서 평소 책과 가깝게 지내는 녀석에게 주어진 일은

서점에 새로 들어 온 책들을 카테고리 별로 책을 알파벳 순으로 선반에 진열을 하는 일이었는데

자폐아의 특성이자 단점인 지나친 규율(order, pattern,  same routine), 한가지 일에 올인하는 몰두 정신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서 녀석은 휴식시간도 잊은 채, 어떨 때는 일이 끝난 시간도 잊어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놓치면서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오로지 가지런히 책을 진열하는 데에 올인을 하면서 첫 직장을 정말로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몇달 후에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애완동물 가게인 pet store에서도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11시에서 1시까지  2시간씩 일할 기회가 주어져서

녀석은 여러 애완동물을 건사하는 일 (단 시끄럽지 않은 파충류와 어류만..)과 애완용품들을 선반에 진열하는 일을

지금까지 만 4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영하 30도 이하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집에서 직장까지 걸어 가서

무보수로 줄곧 이 일을 하고 있다. 

 

2008년 9월 2일: 대학교로 첫 등교하는 날 아빠와 함께...

 

 

2008년도 첫번째 시도한 대학교 진학에 실패한 후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한 보람이 있었던지

드디어 2009년 여름에 시내에 있는 NAIT 라는 대학교에서 청강생으로 입학 허가 통지서를 받고

2009년 9월 2일에 대학교로 첫 등교를 해서 Data Management 전공 과목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때까지의 학교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학교의 분위기를 잘 극복할지  

우선 정상인 신입생도 강의 교실 찾기가 어려워서 한동안 고생할 정도로 크고 넓은 캠퍼스에서 잘 찾아 다닐지,

과목자체도 상당한 수준의 이해도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코스를 잘 해 낼지로 처음 몇달을 전전긍긍하면서 보낸지 엊그제같은데,

이번주에  벌써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어서 다시 변경된 시간표에 맞추어서 아침 새벽부터 등교를 시작하니

참 말 그대로 감개무량하기 그지 없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기까지 하다.

 

 

   

2009년 7월: 첫 직장에 처음 출근하는 아들...                       2008년 8월: 아들이 첫 월급을 받아서 우리 부부에게 건내 준 커피 선물..

 

 

그렇게 어렵사리 시작한 대학교 1학년 2학기 초반부터 summer job 찾기에 주력을 한 덕분에

2009년 9월 2일부터 운좋게 시내에 위치한 중앙 YMCA 센터에서 처음으로 정식으로 보수를 받는 일터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센터를 이용하는 고객들과 고정 멤버쉽 데이타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아들의 수호천사이자 보스인 아이린의 사랑과, 배려,

그리고 끊임없는 관심과 칭찬으로 아들은 처음으로 일한 댓가를 받으면서 두렵기만 한 정상인들의 사회에 첫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2010년 12월: Stantec 회사에 면접을 보느라 오랜만에 정장을 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열심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들의 노력이 가상해서 하늘이 도왔는지

2011년 1월부터는 캐나다 서부의 굴지의 탄탄한 건축회사인 Stantec 회사에도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이 직장에도 또 하나의 수호천사이자 보스인 시실리아가 4년 전부터 거의 독자적으로 장애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새로 만들기도 하고)

파트타임으로 장애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이런 새로운 시도가 의외로 회사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는 이 회사가 새 건물로  입주를 하면서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과

그동안 여기 저기에 흩어진 그들의 많은 설계도의 데이터 업무 덕분에  보수도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아들은 임시직원으로 채용이 되었다.

처음엔 6개월간동안 고용한다는 조건으로 시작했는데, 만 1년을 넘겼는데 계속 일주일에 3시간씩 일을 하고 있다.

지난 주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당연히 그만 두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완전 다르게

새해부터 일주일에 6시간씩 이틀을 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아서, 새해 초반부터 아들은 더 바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울 아들은 대학교에서 컴퓨터 데이터를 관리하는 두과목을 공부하면서,

매주 Stantac 회사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에 6시간,

수요일에 시내 YMCA 에서 3시간,

금요일엔 서부 YMCA 에서 2시간,

그리고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엔 애완가게에서 2시간을 일을 하게 되어서

단 하루도 온전히 쉬는 날이 없이 주 7일 내내 학교와 4군데의 직장에서 일을 하느라

태어나서 제일 바쁜 새해를 시작했다.

 

 

      

첫등교하는 아침에 혼자서 토스트를 먹고....                                                          자기가 먹은 그릇은 반드시 설겆이도 하고....

 

 

 

오늘 아침에도 혼자 스스로 일어나서, 아침으로 토스트를 구워서 잼까지 발라서 먹고는

어제 수퍼에서 사온 여러가지 cold cuts를 골고루 넣고 모양새도 근사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아무 군소리도 없이 덤덤하게 정확하게 아침 6시 24분에 집을 나서면서

자기 혼자 잘 하고 있으니, 엄마는 제발 귀찮게 말참견도 하지 말고 굿바이도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계속 자라고 충고를 하곤 잽싸게 내빼는 아들의 모습에

한동안 쏟지 않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자폐라는 커다란 사회 장애에도 불구하고, 비록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재능이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면서,

큰 욕심도 없이 몇가지 되지 않은 소박하고 작은 일 몇가지만 충족이 되면

대 만족해 하는 아들이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 아침이다.

 

 

 

 

취향대로 직접 만든 샌드위치와 음료수와 스낵을 점심으로.. 

 

 

 

세아이가 다 집을 나간 후에도 한산한 길 위에 여전히 보름달이 어두운 아침 하늘에 떠 있다.

 

 

 

 

A maple seed can't just hang onto a tree

and produce another maple tree.

A tomato seed can't stay inside the tomato

and expect to bring forth another red juicy fruit.

Seeds have to be s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