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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Helen's Family/Jeffrey

설국의 5월 아침에 첫 출근한 아들...

by Helen of Troy 2010. 5. 5.

 

 

 

 

 

 

 

 5월 4일 아침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우리 동네....

 

지난주에 마지막 시험을 치룬 아들녀석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무난히 대학교 2년 과정을 마쳤다.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오늘부터 새 직장인 YMCA 로 첫 출근을 했다. 

석달 전부터 여름 아르바이트 자리를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알아 본 결과

지난 주에 고맙게도 장애인 아들에게 일 할 기회가 주어져서 신이 나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부터 준비를 마치고 함께 같이 갈 보조 선생님인 메이를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터가 집에서 멀기도 하고, 버스를 두번 갈아 타야 하기도 하고, 새 직장의 첫날을 순조롭게 적응을 하는 걸 도와 주려고

고맙게도 그녀가 자청해서 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직장에 동행 해 주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무심코 창문 커텐을 올렸더니.....

 

 

 

 

그런데 왠 5월에 날벼락입니까??

일어나서 창문을 내다 보니 창밖은 바람에 희날리는 눈으로 온 천지가 그저 하얗다.

하늘도 보이지 않고 집 뒤로 그저 무채색 그 자체로 분간이 안 되었다.

 

 

부랴부랴 얼마 전에 세탁해서 옷장에 정리 해 둔 겨울 외투를 꺼내고, 상자에 다 집어 넣은 부츠를 찾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갑자기 치워버린 장갑과 목도리를 찾느라 아래층 위층을 오르 내리면서 보조 선생님이 오시기 10분전에 겨우 찾아 내었다.

이렇게 고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메이 선생님은 정확하게 9시 반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서

대문을 열어주자 한겨울에나 입을만한 중무장을 하고 눈을 맞으면서 서 있었다.

두툼한 모피 모자에, 무릎까지 오는 푹신한 부츠에 눈과 코만 빼고 목도리로 칭칭매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악천후에 힘들게 미끄러운 길에서 운전을 해서 약속을 지켜 준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또 무척이나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아직 아들과 함께 직장에 타고 갈 버스 시간까지 약 20분의 시간의 여유가 있기도 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눈길을 헤쳐서 와 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어서

일단 따끈하게 준비한 커피와 그저께 막내가 만든 German Pastry를 대접했다.

고맙다고 여러번 인사를 하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그냥 웃기만 그녀가

우리 아들 녀석의 보조 선생님이라는게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한지 그녀가 알까..

 

 

드디어 버스 시간에 가까워서 아들과 그녀는

여전히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불과 5미터 앞도 잘 안 보이는

눈 덮인 길 위를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둘의 뒷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인다는 생각에

가슴 저 밑에서 뜨뜻한 것이 올라 오는 듯 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새 직장 일은 매주 화요일 세시간만 하는 일이지만

이미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전에 세시간씩 오피스 보조 자격으로 보수를 받는 일을 하고 있고,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두시간씩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Pet Store 점원으로 무보수로 일을 하고 있는 아들은

요즘처럼 직장 구하기가 힘든 시기에 세군데의 직장에 열심히 주어진 일에 노력하고 올인하는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이번에 아들이 하는 일은 주로 YMCA 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입구에서 인사도 하고, 안내도 하면서

안내센터에서 봉사하는 일이 주어졌다.

자폐 장애인인 아들에게 제일 큰 장애는 역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에 서툴고,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이 일이 주어졌을 때에 무척이나 반갑고 기뻤지만

계속 드나드는 사람들과 눈길을 주고 받으면서(아직도 아들은 눈을 맞추는 것을 피한다)

대화를 이끌어야 하고, 상대방보다 먼저 인사를 건네야 하는 이 일이 꽤나 부담스럽기도 했다.

 

세시간 번 후에 10 cm 정도 쌓인 눈길을 걸어서 온통 축축하게 젖었지만

집에서 마음 졸이고 염려했던 것보다는 의외로 첫 날을 잘 해 냈다고 전해 주는 그녀를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따뜻하게 포옹을 해 주었다.

 

이 일을 하면서 여전히 사회성이 절대 부족한 아들에게

사람과 사람이 끈끈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더불어 살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이 되어서

아들의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오늘 이 눈보라가 치는 날에 감히 기대를 해 본다.

 

 

 

 

 

 

눈보라가 치는데도 따뜻하게 알을 품고 있는 카나다 구스(Canada goose) 모습이

우리네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music: Like an angel passing through my room

sung by von otter

from helen's cd b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