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비구름이 잔뜩 낀 말린 호수(Maligne Lake)
어제 멀리서 20시간 기차를 타고 로키산맥으로 놀러 온 동생가족과 만나서
자스퍼 국립공원 내의 아름다운 명소를 찾아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퍼붇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한여름에도 특유의 줄무늬의 만년설로 잘 알려진 이디스 카벨 (Edith Cavell) 과
요즘 많이 내린 비로 무서운 속도와 파워를 자랑하는 아타바스카 폭포(Athabasca Falls)를 방문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잘 감상하고, 곧 소낙비가 쏟아 질 것 같아서 다음 목적지인 말린 호수는
잠시 구경하고 내려 오는 길에 예상대로 장대비가 퍼 붓기 시작했다.
말린 호수의 주차장에서 떠나기 직전에 카메라에 담은 귀여운 조카 녀석
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세차게 비가 내리더니
약 20분 후에 갑자기 앞에 가던 커다란 관광버스가 멈추더니
왼쪽에는 커다란 호수쪽으로 절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할 수 없이 뒤따라 가던 차들도 길에 서 있었더니, 유턴을 한 차 안에 운전사가
앞에 산사태(mudslide)가 생겨서 통과를 할 수 없으니 오던 길로 다들 차를 돌리라고 경고를 해 준다.
우리도 하는 수 없이 한치도 안 보이게 퍼붓는 빗속에 위험한 좁은 길에서
3-point turn을 해서 방향을 바꾸어서 오던 길로 천천히 차를 돌렸다.
우리 뒤를 따라서 산아래로 내려가던 차들이 하나씩
오던 길 위에 차를 세우고 있다.
우리차도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일단 차를 세웠다.
조금 있으니까 국립공원 내의 park ranger 차가 오더니
퍼붓는 비에 씻겨서 산 위에서 흙과 자갈로 덮인 길을 곧 복구하기 시작했으니
2-3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니 기다리라고 길 가에 주차된 차들에게 알려 주었다.
기온도 조금씩 떨어지고 장대비도 그칠 기미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모두들 차에서 죽치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약 30분을 무료하게 차에서 기다리니, 장대비에서 부슬비로 바뀌기 시작해서
차에 있는 커다란 우산을 펼쳐들고 일단 차 밖으로 나왔다.
말린 호수에서 내려오는 차의 행렬은 점점 길어지고...
폭우로 진흙빛의 물이 여러 지류를 통해서 아래 호수로 몰려들고 있다.
그리고 긴 띠모양의 구름도 자리를 잡아가고...
Park Ranger가 어느새 도로 차단을 해 두었다.
바로 뒤에 산사태와 눈사태 경고 푯말이 붙어 있기도 하다.
오른편에 우리가 몰고 간 두 차가 만 1 시간을 대기하고 있다.
계속 촉촉히 가랑비가 내리지만, ,
그냥 차 안에서 무료하게 기다리기 보다는 운동삼아
정확히 우리 앞에 벌어진 산사태의 현장도 가 보고 싶어서
도로가 차단기를 넘어서 가려고 했지만
오늘 벌써 곰가족을 이 근처에서 두번이나 길에서 맞딱뜨렸고,
왠지 산사태가 일어 날 것 같기도 하고,
차단된 도로를 혼자 넘어가기엔 뭣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다 보니....
미국 콜로라도에서 로키를 방문한 두 남자들이 마침 나와 같은 목적으로
현장까지 걸어간다기에 얼른 보조를 맞추어서 걷기 시작했다.
3분 정도 지나자, 오른편에서 Mountain goat (산 염소)들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고...
길 옆에는 "Avalanche area ends" 사인이 걸려 있는데
로키의 좁고 가파른 길 가에 걸린 많은 경고사인들을 무심히 넘겼지만
오늘은 유독히 이 표지판이 눈에 쏙 들어온다.
오른편에 보이는 호수와 왼편에 있는 산 사이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산 허리를 잘라서 만들어진 이 지점은 늘 눈사태와 산사태의 위험을 안고 있다.
20분쯤 걷다가 오던 길을 뒤돌아 보니 한 부녀가 우리를 뒷따라 오고 있다.
하늘은 점점 맑게 개이고...
낮게 드리워진 구름은 점점 몰려 오고...
거의 30분을 걸어가는데도 현장이 보이지 않아서 되돌아 갈까하던 참에...
5분 후에 드디어 산사태로 막힌 도로가 눈에 들어 왔다.
길에 덮인 흙더미를 치우는 불도저도 보이고,
위험한 지역 가까이 다가오는 우리를 향해서 Park Ranger 트럭이 빨간 경고등을 밝히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위험하니 당장 돌아가라는 Park Ranger의 경고를 듣고 뒤돌아 오기 직전에
줌을 땡길 수 있을때까지 땡겨서 재빨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후에 발 길을 돌렸다.
서쪽의 해는 점점 기울어지고...
다시 한번 잽싸게 뒤를 보고 한컷 더...
우리가 이 지점을 통과하기 3-4분 전에 폭우로 산위에서 씻겨 내려온 흙더미가 덮친 것을 상기하면서
저 흙더미에 밀려서 왼쪽 호수 낭떠러지로 떨어 지는 것보다는
3시간을 기다리는 편이 얼마나 행운이고 다행인지 새삼 깨달았다.
억수로 운좋은 날을 고마워 하면서 다시 주차된 곳으로...
떨어지는 해가 짙은 구름사이로 살짝 디밀고 나온다.
길이 복구되면서 1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저녁시간도 넘어가면서, 천막도 치고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저녁을 아예 해결하려는지
주차장에서 바베큐를 시작하자 좋은 냄새를 맡은 조카녀석이 배가 고픈지 그리로 달려간다.
비가 아주 멈추자, 2시간 반 정도 차에서 차분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이 나와서 서로 어디서 왔는지 물어 보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길에 접는 의자를 펼쳐두고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복구되기를 편하게 기다린다.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애완견을 데리고 수개의 지류와 호수가 연결되는 아래로 내려가서
콸콸대며 흘러나오는 탁류를 따라가기도 하고 물 속을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주어진 상황에서 불평을 하거나 짜증을 내기 보다는
다들 이왕 터진 사건에 각각 나름대로 즐겁게 기다리는 모습들에서
왠지 여유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3시간 동안 밀려든 차의 행렬이 얼마나 길까...
드디어 가던 차를 돌린지 3시간 10분만에 길이 복구되었으니
통과할 차가 아주 많은 관계로, 옆을 엿보거나, 정지하지 말고
대신 천천히 계속해서 운전을 하라는 지시를 듣고,
모두들 안도의 숨을 들이키면서 차의 시동을 켜고 차를 앞으로 몰았다.
사고 지점에 길 한쪽에 산사태로 덮였던 흙더미들
한건의 산사태로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불과 20미터 앞에 또 하나의 산사태...
그리고 세번째 산사태 지점을 통과하면서...
다섯번째 산사태 지점..
마지막인 열번째 산사태 지점에서....
이렇게 많은 산사태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차나 사람이 없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30분 후에 무사히 자스퍼 시내에 들어 와서
늦은 저녁을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억수로 운좋은 날을 보낸 우리는
다 함께 커다란 생맥주 잔을 부디치면서 건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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