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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크로아티아·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5]종탑, 세르비아 정교회, 성 블레이즈 성당 성 이냐시오 성당 & more...

by Helen of Troy 2013. 10. 28.

 

Bell Tower(종탑)

 

이 종탑은 31미터 높이로 1444년에 건축되었고,

종탑의 시계는 루카 미호신(Luka Mihocin)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1506년에는 종의 대가였던 이반 라I블야닌(Ivan Rabljanin)가 만든 새 종을 달았다.

500여년에 걸쳐서 발생한 수차례의 지진으로 지반이 약해져서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기 시작해서 붕괴의 위험이 커지자

1929년에 원래 모델에 의해서 재건축이 되었다.

 

 

15세기부터 매 시간마다  해머로 종을 치는 마로 와 바로(Maro and Baro) 군인들

 

 

두브로브니크 올드 타운의 중간을 가로 지르는 넓은 거리의 정식이름은 플라카(Placa)이지만,

흔히 스타라둔(Stradun)이라고 불리운다.

올드타운의 심장부인 이 거리엔 아침부터 밤 1시가 넘도록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으로

낮에는 쇼핑과 관광, 그리고 밤에는 거리 전체가 더 활기를 더해서 커다란 파티분위기에 접어 든다.

 

 

 도시 성곽 위에서 내려다 본 스트라둔 거리....

 

 

세르비아 정교회 & 박물관 (Serbian Orthodox Church and Museum )

 

이 그리이스 정교 정교회는 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1871년에 건축이 시작해서

1877년에 축성식을 가진 후에미사를 드리기 시작했지만,

건축 공사는 계속 되어서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완공이 되었고

교회 옆에 새로 사들인 부지에 들어선 박물관에는

귀중한 성스러운 아이콘(Icons)들을 소장하고 있다.

 

 

교회 천장

 

 

교회 제대

 

 

 

 

 

스트라둔 거리에 나와 보니 화려한 열대 새인 패롯들이 아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St. Blaise Church (영어로성 블레이즈, 라틴어로 성 블라시우스 성당)

 

 

성 블라시우스(블라호) 는 오랫동안  두브부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이 도시의 시민들에겐 아주 특별한 성인이다.

전설에 의하면 971년 2월 2-3일에 베니스에서 온 배들이 항해에 필요한 물과 음식을 공급받는다는 조건을 세우고

두브로브니크 항구에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었다. 

하지만 스토이코 신부가 그날 밤에 성 스테판 성당으로 가기 위해서 걸어 가다가

성당문들이 활짝 열린 것을 발견하고, 성당 안에 들어 가 보니 천상의 군대에 둘러쌓인 노인을 만난다.

그 노인은 스티이코 신부에게 시 의회에게 베니스인들이 도시를 곧 침공할 계획을 경고하라고 일러주었고,

아울러 며칠 밤을 베니스 인들을 방어하고 있었다고 말을 해 준다.

스토이코 신부가 그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자신을 블라시우스(블라호)라고 대답을 했다.

스토이코 신부는 곧 도시의 시의회에 베니스인들의 침공을 경고를 한 덕분에

도시로 통하는 성문들을 굳게 걸어 잠그고, 곳곳에 군인을 배치해서 도시를 방어를 준비하자

베니스 군대는 배를 철수하고 돌아간 후부터, 성 블라시우스 성인은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성당 입구 바로위의 높은 지붕에서 이 도시를 여전히 보호해 주둣이

도시를 내려다 보는 성 블라시우스

 

 

늘 수많은 관광객을 붐비는 플라카 길에서도

이 성당앞 광장은 넓기도 하고, 항구와, 대성당등 명소와 인접해 있기도 하고,

사방에 카페와 식당이 둘어쌓여서 제일 번잡한 곳이다.

 

 

972년도부터 성블라시우스를 기리는 축제행사를 시점으로 수백년간에 걸쳐서  

브로브니크의 많은 미술가와 조각가들이 그들이 추앙하는 성 블라시우스의 이미지를 토대로

많은 그림과 조각품이 남겨져서, 현재까지도 두브로부니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매년 그의 축일인 2월 3일에는 이 성당뿐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도시의 수호성인 축제가 거대하게 열린다.

 

원래 성당은 1368년에 걑은 자리에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가,

1667년의 거대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엎친데 덮치격으로

1706년에 발생한 화재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현재 성 블라시우스 성당는 1715년에 두브로브니크의 지도자들의 의뢰로

베니스 출신 건축가인 마리노 그로펠리에의 디자인으로 건축이 시작되었고,

새로 건축된 성 블라시우스 성당은 베니스의 성 모리셔스 성당 형상을 본떠서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이 되었다.

성당내부는 아름다운 대리석 제대를 포함해서 정교하게 꾸며졌으며,

제대의 중심에는 고딕식으의 성 블라시우스상이 15세의 금과 은으로 도금이 되었고,

그의 손에는 1667년 대지진 전의 도시 형상이 들려 있다.

특이한 점은 원래의 성당은 대지진과 대화재 사건으로 완전 파괴가 되었지만

이 동상과 몇점의 귀중한 유물은 파손되지않아서,

시민들에게는 하느님의 기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성당 제대 앞                                                                                     왼쪽의 작은 채플

 

 

제대 아래에 성인의 유품이 들어있고, 한쪽 창문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가 신비함을 더해준다.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몰카수준이지만 아름다운 성당 내부를 미루어 볼 수 있다.

 

 

 

 

 

 

 

성당앞 광장앞에는 중세기의 기사의 형상의 아담한 동상이 있다.

올란도 동상 (Orlando's Column)

 

 

이 동상은 1418년에 이 지방의 조각가와 밀란 출친의 보니노에 의해서 제작이 되었다.

이 동상은 두브로브니크의 자유를 상징하며,

주요행사때마다브로크니크 공화국의 국기가 이 동상에 꽂아두고

정부의 중요한 칙령이나, 성명을 선포도 동상의  아래 받침대 계단에서 이루어진다.

 

구전에 의하면 영웅 올란도(혹은 롤란도 :Rolando)는 8세기에 두브로브니크를 침략하려는

아랍 해적들을 물리쳐서 도시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게 도와준 기사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이 동상이 세워졌다고 전해져 온다.

 

그리고 올란도 동상의 손목에서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는

두브로브니크 공화국 시대에 표준길이의 단위로 쓰여지기도 했다.

 

지금은 이 동상 앞에서 매년 여름에 그 "Libertas"라고 적힌 깃발을 올려지면서

그해의 여름페스티발이 시작된다.

 

 

 

수제 수예품 상품들이 좁고 오래된 거리에서 손님을 관심을 사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탐나는 제품들이 많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가게보다 많이 한산하다.

 

 

성당 뒷편에 작은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식당의 테라스에 앉아서 느긋하게 마시면서 쉬는 관광객들..

 

 

길을 걷다가 오래된 문을 통해서 귀에 익은 실내음악 소리가 들려서

안으로 발을 옮겼더니 학생들이 한창 연습중이다.

드브로브니크 음대 여름학교가 열리는 장소라고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너무 더워서 통풍을 위해서 입구를 열어 두었던 것 같다.

잠시 아름다운 선률을 들으려서 문가에 서 있었더니

중년신사가 다가와서 연습에 방해가 되니 나가 달라고 하면서 다시 입구를 닫아버렸다.

 

 

수백년이 된 거리에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은 겉에서 들여다 보면

주거지인지 손님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가인지 잘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편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성 안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성 아냐시오 성당을 향해서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세번째로 먹으면서 천천히 올라가 본다.

 

 

인적이 끊긴 한적한 성 이냐시오 성당 가는 계단길...

 

 

돌담길이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어디 산동네 동네길같다.

 

 

 

계단 끝까지 올라 가보니 성당 앞 폴리아나 광장에서 그날 저녁에 열릴 한여름의 멋지 콘서트를 위해서

많은 관계자들이 무대장치를 하느라 아주 바쁘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막혀서 일단 후퇴했다가

이틀 후에 늦은 밤에 다시 와서 안에까지 들어가서 역시 스릴있는 몰카를 찍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밤하늘에 떠 있어서

운치있는 Poljana Square(,폴리아나 광장)에 느긋하게 여름밤을 즐기는 관광객들....

 

 

이틀 뒤에 저녁을 배불리 잔뜩 먹고 불볕더위의 대낮보다 걷기좋은 밤에

소화도 시킬겸 어슬렁 산보를 다니면서 이곳을 다시 지나가게 되어서

밤 9시가 되어서 문이 당연히 닫혀 있을 시간이긴 하지만 좀 더 가까이 가서 입구라도 볼 생가으로

콘서트가 끝나고 휑한 광장을 가로 질러서 입구를 향해서 걸어 가보니

아직도 열려 있는 성당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이 보여서 쾌재를 부르면서 뛰다시피 달려갔다.

 

 

성 이냐시오 성당 & 라구시눔 예수회 대학교

 

 

 

St. Ignatius and Collegium Ragurinum 은 이 도시와 해변지역에서

바로크 형식으로 지어진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다

 

이탈리아의 많은 학자들에게 불만은 품고 있던

두브로브니크교구의 베카델리 주교(Bishop Beccaddeli)는

당시 교육을 주목적으로 새로 창립된 예수회 단체에게

두브로브니크 도시에 새 대학교를 세워달라고 1555년에 요청을 했다.

 

이 요청은 현실화되지 못하다가 거의 100년 후인 1647년에

두브로브니크의 예수회 소속이었던 마린 군둘리치(Gundulic)의 노력으로

대학교 창립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667년의 대지진으로 한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699년에 예수회 소속 유명한 건축가이자 미술가였던 이간찌오 포쪼(Pozzo)가 초빙되어서

건축 설계를 완성해서 1725년에 드디어 완공이 되었다.

 

 

 

 제대 앞

 

 

 

 

 

 성당 입구 근처에 성모님을 모셔둔 작은 grotto

잠시 촛불을 켜고 두손 모아 기도를 드리고 교회를 찬찬히 둘러 보니

신부님이 나오시더니, 9시 반에 문을 닫는다고 알려 주셔서 밤길로 다시 걸어 나왔다.

 

 

 

 

 

 다시 폴리아나 광장에서 미로같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불과 몇 10미터 아래의 번잡한 길과는 달리 거의 주거지로 한적하기만 하다.

 

 

 

   

눈에 띄는 몇개의 오래된 대문들...

세월의 흔적이 그래도 배인 문에서 사람냄새가 느껴진다.

 

   

 

두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만큼 조용한 좁은길을 걸으면

500여년 전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 간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도시의 남부에서 중심도로인 넓은 플라카 중심도로로 나오니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어둑어둑한데도 여전히 여유있게 길을 걷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아파트 숙소로 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기 위해서 아파트 앞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시의 북쪽을 에워 싼 성곽을 따라서 난 골목을 돌아서...

 

 

더 좁아진 골목을 좀 더 올라가서...

 

 

드디어 가이드 북과 인터넷에서 해산물 식당으로

최고로 꼽는 식당에 도착해 보니 이미 식당안에는 손님으로 꽉 찼고,

우리 앞에서 4-5 그룹이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예약을 받지 않기에, 오는 차례대로 손님을 받는 곳이라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렇게 하릴없이 기다려야 하기에

남편은 일단 줄을 서고 나는 식당주위를 어슬렁 구경에 나섰다.

 

 

 

식당의 한쪽 벽을 뚫고 등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리고 입구 쪽 오른편에는 19금의 낯 뜨거운 조각상도 있고...

약 20분 후에 운좋게 두사람이 앉을 테이블이 제일 먼저 나와서,

억수로 운좋게 우리 앞에서 먼저 기다리던 일행이 좀 많은 팀을 제치고

8시쯤에 식당안으로 들어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당안은 그리 크지않고

몇대에 걸쳐서 가족들이 오랫동안 운영해온 식당으로

이동네에서는 해산물 식당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란다.

 

우선 아침부터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10시간을 돌아다녀서

혹사당한 다리부터 쉬게하고

우선 차겁고 맛좋은 포도주를 쭉 들이키면서 갈증을 해소했다.

 

 

그리고 이집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합 해산물 요리가 상위에 놓여졌다.

테이블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오래된 화로에서 바로 구워져서 나왔다.

 

 

홍합, 가제, 오징어, 문어, 그리고 두가지 생선구이가 푸짐하게 나와서

두손으로 게걸스럽게 말끔히 다 먹어치웠다.

특히 마늘이 많이 들어간 오징어구이가 일품이었다.

 

북쪽 성곽 높은 길에 위치해서

아래에 아드리아틱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운전할 필요가 없어서 부담없이 와인도 기분좋게 많이 마시고

디저트까지 다 챙겨 먹으면서 두브로브니크의 전통요리와 만나 보았다.

 

 

9시반 쯤 식당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네팀이 느긋하게 바깥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모습에서 삶의 여유와 멋이 느껴진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오는 길위를 걸어서....

 

 

필레 서대문까지 걸어 와 보니 밤하늘에 보름달이 밝게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