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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크로아티아·보스니아

[두브로브니크여행9]로크룸 섬(Lokrum Island in Dubrovnik, Croatia)

by Helen of Troy 2014. 1. 10.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근방에 있는 아름다운 로크룸 섬

 

 

 

로크룸 섬은 두브로브니크 도시에서 약 600 미터 떨어진 아드리아틱 바다에 위치해서

두브로브니크 항구에서나 성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섬으로

정기적으로 페리가 다녀서, 관광객들이 방문하기에 편하고 걸리는 시간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로크룸 섬은 두브로브니크의 중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성곽길에서 쉽게 눈에 띄인다.

 

 

로크룸 섬으로 가기 위해서 두브로브니크 항구에 도착하니

마침 항구 근처에 있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결혼식 후 리셉션 겸 파티가 열릴 배에 올라 타고 있다.

 

 

배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오면서 파티 분위기가 넘친다.

 

 

페리 보우트 내에서 찰칵~

 

 

 

 

뜨거운 여름 오후에 아드리아틱 바다 위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모습에 여유가 느껴진다.

 

 

페리 보우트 뒷편으로 두브로브니크 항구가 보이고...

 

 

20분 후에 아담한 로크룸 섬 항구가 눈에 들어 온다.

 

 

방문하기로 계획한 항구 바로 옆에 위치한 식물원과 오래된 요새와 수도원 위치를 알려준다.

 

 

이 섬 역시 해변은 온통 암석으로 덮여있고,

그 뒤로 소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로크룸 섬 항구에서...

 

 

자그마한 요트를 타고 천천히 섬 주위를 돌아보면 좋으련만...

 

 

편하게 이런 모터가 달린 고무보우트도 괜찮겠다.

 

 

보드라운 모래가 있는 해변은 아니지만 암석해변에 간간히 비치타올을 펴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이고...

 

 

자신의 배에서 편하게 수영도 하고 점심도 드는 이들도 있고...

 

 

얕고 맑고 기분좋게 시원한 물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아리따운 여인도...

 

 

 

작고 이름없는 섬 중에 하나인 로크룸 섬은 1023년에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수도원이  들어 서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로크룸 이라는 단어는 신 과일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acumen에서 따 왔는데

이유는 이 섬에서 수백년동안  희귀한 열대식물을 재배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세부터 이 섬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을 하던 이 수도원은 두브로브니크 지역에 1667년에 발생한

강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에도 명맥을 유지하다가 약 800년 후에 1808년에 마침내 문을 닫게 되었다.

 

1000년 전에 지어진 베네딕트 수도원

 

 

 

 

 

 

 

 

 

 

 

 

 

전설에 따르면, 1192년에 '용감한' 리차드 국왕(Richard the Lionheart) 십자군 원정을 갔다가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폭풍을 만나서 난파한 배가 이 로크룸 섬으로 안전하게 흘러 들어오게 되자, 그 보답으로

안전한 피신처를 제공한 이 섬에 성당을 짓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로크룸 섬 대신 가까운 두브로브니크 육지에 세워주게 되었다.

 

 

1667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보수를 거쳐서 100여년을 더 버티다가 결국엔 수도원 문을 닫게 되면서

폐허로 남은 수도원 자리를 거닐면서 이 곳에 거주하던 수사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이 식물원은 1959년에 설립이 되어서

해양지역에 서식하는 다양한 식물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세기에 유럽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맥시밀리앙 페르디난도 왕이 1859년에

로크룸 섬에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화려한 맨션을 지으면서,

세계 각국에서 들여 온 다양한 종류의 식물로 그득찬 아름다운 정원과 산책로도 추가로 지어졌다.

 

 

 

맥시밀리앙 왕자는 카나리 섬에서 서식하던 공작새를 이 섬으로 데리고 와서

식물원에서 키웠는데, 지금까지 그 혈통이 계승되어서 식물원 전체가 제 집인양

자유롭게 거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어미 공작새가 양 옆에 새끼 공작새를 데리고 먹이를 찾고 있다.

 

 

사람이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전혀 경계하기는 커녕 그저 먹이 주워 먹기에 정신이 없다.

 

 

암놈이라서 깃털이 평범하지만, 고개를 꼿꼿이 들고 고고하게 걷는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식물원 내에서는 끊일 새 없이 공작새들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시끄럽기까지 한다.

 

 

이 식물원에는 소나무, 전나무도 무성하고...

 

 

남미에서 들여 온 야자수들도 꽉 차 있다.

 

 

 

Cow's tongue 선인장도 서식하고...

 

 

키다리 유카 선인장...

 

 

알로에 선인장도 잘도 크고 있다.

 

 

곧 선인장 꽃이 만개할 태세이다.

 

 

벤치 아래에 누가 두고 간 포도 주워먹기에 여념이 없는 암공작새 한마리

 

 

이런 산책로를 걸어서 섬 주위를 돌다가...

 

 

요새에 가까운 바닷가로 내려 가 보았다.

 

 

이 해변도 역시 험한 바위로 둘러 쌓여 있다.

 

 

저녁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여름해도 서서히 기울고 있다.

 

 

이 섬에서 유일하게 담은 기념사진...

 

 

해발 100미터로 섬에서 제일 높은 섬의 중심에 로얄 요새 (Royal Fortress)가 여전히 섬을 지키고 있다.

 

 

이 섬의 소유권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언급하자면 

당시 두브로브니크를 장악하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맥시밀리앙 왕자가  

오스트리아와 샬롯테 공주와 결혼을 하면서

이 섬을 사서 샬롯테에게 혼숫감의 일부로 주게 되어서

맥시밀리앙이 멕시코의 황제가 될 때까지 샬롯테의 소유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맥시밀리앙이 황제자리에서 쫓겨나고, 처형이 된 후에는

오스트리아의 요셉 황제 1세와 그녀의 신상의 안전과 권리보다 그녀의 남편의 엄청난 재산에 탐이 난

그녀의 오빠 벨지움의 레오폴드 2세 사이에 일방적으로 맺은 조약으로 합스부르크 왕조로 넘겨지자

샬롯데는 정신이상자가 되고 만다.

얼마 후에 이 섬은 다시 레오폴드의 외손녀이자, 오스트리아의 왕세자 루돌프의 무남독녀이며

우럽의 왕계계승에 한가운데에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엘리자베스 마리 공주로 넘겨진다.

 

 

이 요새는 맥시밀리앙 타워라고도 불리운다.

 

 

근대에 와서 생제르망 조약에 따라서 유고슬라비아가 이 섬의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엘리자베스 마리 공주는 그녀의 결혼과 함께 합스부르크 왕조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주장함으로

유고에 넘겨줄 수 없다고 반박을 하면서 서로 대치하다가, 결국엔 공주에게 $575,000 를 건내주고

유고슬라비아가 이 섬을 차지했다.

 

 

 

페리 보우트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서

빽빽하게 들어 선 높다란 전나무의 배웅을 받으면서

항구로 발 길을 돌렸다.

 

 

식물원 입구에 화려하고 신비한 색상의 깃털과 긴 꼬리를 늘어뜨린

숫놈 공작새의 작별인사도 받고...

 

 

바닷가에 도착해 보니 카약 대여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로크룸의 작은 항구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페리 보우트를 기다리는 관광객들...

5분 에 도착한 배를 타고 출발~~~

 

 

 

섬 전체에 빽빽하게 우거진 소나무를 뒤로 하고...

 

 

암석으로 만들어져서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민둥산 아래 바닷가에 집과 호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돌아 오는 페리보우트  안에서..

 

 

25분 만에  두브로브니크 항구로 배가 정착을 했다.

 

 

 

이어서 두브로브니크의 서대문 동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