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코 대성당 입구의 다양한 색상의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
도시의 좁은 골목에 해당하는 좁다란 수로를 건너서...
세계 각국에서 몰려 든 많은 관광객들이 꼭 들리는 곳이 산 마르코 성당과 총독관저라서
늘 입장하기 전에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서
일찌감치 일어나서 하루종일 더운 날씨에 걸어 다닐 것을 예상하고,
호텔에서 부페식으로 나오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좁을 수로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들의 모습에서
수로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소통까지 느껴져서 정겹다.
오른편에 Doge의 궁전사이의 작은 수로를 건너서...
Piazzetta dei Leoni ( 성당 오른편에 있는 사자의 소광장)에서...
성당에 들어가려면, 치마나 바지가 최소 무릎을 덮여야 하고
소매가 있는 옷이나 스카프로 팔을 덮여야 하는 경건한 복장이 요구되어서
가지고 간 옷 중에서 무릎까지 내려가는 유일한 원피스와 스카프를 두르고 나갔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유럽의 많은 성당중에서도 돋보이는 성당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성당건물들처럼 고딕 양식 이나,
혹은 장식과 화려함의 극치인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기 보다는
외관상으로도 다수의 도움(dome)에서부터
성당 내부의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까지 모자이크와 대리석으로,
그리고 서유럽의 캐톨릭과 개신교와 사뭇 다른
동방의 비잔틴 양식의 건축과 심지어 이슬람 디자인을 가진 성당이다.
따라서 유럽의 대부분의 성당보다 오래된 이 성당에서
마치 이미 존재하지 않은 고대문명의 잔상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하니, 이 광장의 유명한 비둘기들이 관광객들이 주는 모이를 먹고 있다.
베니스 전체가 점점 가라 앉아서, 이 광장을 비롯해서 베니스의 곳곳이 물에 잠기는 횟수가 잦아지자
2006년에 바닥을 높이는 공사를 한 덕분인지 광장주위에 물이 전혀 고여있지 않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 45분에 문이 열리지만,
9시에 5분 전에 도착해 보니 벌써 줄 선 사람들이 제법 보여서, 우리도 얼른 줄을 섰다.
지난번에 왔을 때처럼 광장이 물로 그득하지 않았지만
보수공사로 늘 천막이 성당 주위에 둘려져 있어서 성당의 전체 모습을 담지 못해서 유감이다.
보수공사 전에 담은 아름답고 화려한 성당 전면이 다 드러나 보이는 사진
산 마르코 대성당(the Basilica di San Marco) 는
베니스의 대표적인 종교적 건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베니스가 오랫동안 정치, 문화, 지식, 그리고 경제적 중심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한때는 세계의 중심이었던 베니스의 전성시대의 영광을 드러 내 주는 유산이기도 하다.
이 대성당은 비잔틱 제국의 황제 다음으로 권력을 지닌 베니스 공화국의 우두머리인 총독(doge)의
개인적인 채플로 종교적인 예식을 비롯해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행사나 모임의 센터의 역할을 해 오다가
1807년부터 베니스의 주교좌성당(basilica)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베니스 공화국의 해군참모나 부유한 상인들이 비잔틴 제국에서 들여 온 온갖 최상의 보물과
재물로 성당을 장식해서, 그들의 파워를 널리 알리는 건물이었으며,
성당의 닉네임도 그에 걸맞게 Chiesa D'Oro (황금의 교회)라고 불리워졌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기원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828년에 두명의 베니스 인들이 성 마르코의 유골을 훔쳐 와서,
지금의 성당 자리에 그 유골을 안치하는 장소로 산 마르코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베니스 근처에 있는 로마제국시대부터 중심지였던
아퀼레이야(Aquileia)보다 더 막강한 도시를 건설하려는 경쟁적인 의도에서
성당건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 마르코는 신약성경에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네개의 복음서 중에 하나인
마르코 복음을 쓴 저자이며, 그의 성스러운 유골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죽 안치되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지 약 7세기 후에 알렉산드리아가 무슬림교도들의 지배하에 놓이기에 되면서
이교도들의 지배하에 성스러운 유골을 남겨 둘 수 없다고 생각한
두 베니스 출신의 상인이 828 년에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해서 우여곡절 끝에
성 마르코의 유골을 이교도의 손아귀에서 "구출" 해서 베니스로 모셔갔다.
산 마르코의 원래 성당은 97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성당의 건축은 1063년에 시작되었다.
성당을 재건축하면서 진귀하고 희귀한 대리석과 금을 사용해서 모자이크 방식으로 성당이 꾸며졌고,
1204년에 베니스 군대가 베니스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한 후에
승리한 댓가로 베니스의 군인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많은 전리품들이
교회의 입구의 facades와 제대 등 성당 전체에 사용되었다.
11세기에 현재의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을 때의 베니스는 여전히 비잔틴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새성당의 디자인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6세기에 건축된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12사도의 성당과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에 소재한 하지아 소피아 성당을 본따서 지어졌다.
따라서, 이 새로 건축하는 성당은 콘스탄틴노플에 있는 베니스를 오랫동안 지배던 비잔틴 리더들에게
콘스탄티노플의 대성당과 견줄만한 성당을 지을 수 있을만큼
경쟁적인 상대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 셈이다.
11세기 후반에 대성당이 축성될 당시에는 대부분의 당시 성당들이 그러했듯이,
이 성당의 입구는 장식이나 조각이 없는 평범한 돌로 지어졌지만,
12-13세기에 걸쳐서, 베니스가 초고속으로 군사력이 증가해서 13세기 초반부터는
베니스의 막강한 해군의 파워를 입증하듯 성당 앞부문(facades)이
화려하게 꾸며지기 시작했다.
성당 앞쪽에서 5개의 portals(대문) 중에 제일 왼쪽에 있는 성 알리피오 대문위는
13세기 당시의 성당 모습을 묘사한 모자이크기법으로 꾸며졌는데,
이미 13세기에 성당 전면(façade)은 희귀한 대리석으로 건축이 되었고,
1204년에 콘트탄티노플에서 금과 청동으로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말들을
노획해서 성당의 중앙 대문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귀중한 말들 외에도, 베니스 공화국의 막강의 해군이 침략을 해서 전리품으로 손에 넣은
고대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의 초기 시대의 트로피(전리품)들도 성당의 facades에 자리잡고 있다.
아울러 화려한 가운데에 있는 facades(파사드)의 반원 모양의 apse안쪽의 정교한 조각작품으로
베니스공화국 내의 실력있는 장인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가장 최고로 손꼽히는 것은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모자이크이다.
중세당시에 제작된 모자이크의 약 30%가 남았고, 소수는 12세기 후반에 제작되었고,
대부분의 정교하고 화려한 모자이크 작품은 13세기에 제작되었다.
1204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 후로 성당내부의 모자이크 제작은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모자이크 재료도 대량으로 반입이 되면서, 베니스 특유의 모자이크 기법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콘스타니노플에서 4-5세기의 귀중한 보물( 가장 오래된 성경과 면소재의 창세기 등)을 들여와서
성당내를 장식한 여러 모자이크 작품의 소재와 디자인 모티브를 모방했고,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의 이야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은
모자이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정교화고 화려하다는 평을 듣는데, 성당입구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정교하고 화려한 비잔틴 기법에 의해서 12세기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모자이크 작품은
오순절의 도움(the Dome of the Pentecost)이라고 불리우는 모자이크로
첫번째 도움 천장에서 볼 수 있는데, 비자틴 출신 장인들에 의해서 제작되었다고 본다.
중심부의 도움인 예수님의 승천 도움(the Dome of the Ascension)은 13세기에 제작되었고,
베니스의 독특한 모자이크 양식이 돋보인다.
지성소와 제대는 성마르코의 무덤 위에 지어졌으며, 6세기에 조각된 설화석고(alabaster) 기둥위에
초록빛나는 대리석의 천개(canopy)로 꾸며져있다.
그리고 성당 내에서 가장 화려한 Pala D'Oro (황금의 궁) 은 은으로 도금되었고, 수많은 보석이 박힌
255개의 판넬로 이루어졌고, 976년에 당시 총독이었던Doge Orseolo(오르세올로)가 의뢰해서
제작에 들어가서, 4세기에 걸쳐서 지금의 크기로 확장되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베니스의 전성기인 14세기에는 베니스가 유럽과 동양을 주름잡던 영토에서
끊이지않게 계속해서 들여 온 대리석을 비롯해서 건축자재, 보물들로 장식된 산 마르코 성당이
베니스의 수호성인이자 성당의 주인격인 마르코 성인의 유골도 훔친 것으로 시작이 된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 유럽뿐 아니라 인류의 자연적인 역사의 흐름을 한 눈에 보는 것 같다.
인상파 화가 아구스트 르노아르가 그린 작품속의 산 마르코 성당
성당문이 열릴 때까지 약 30여분간 줄에서 기다리는 동안,
남편에게 자리를 지키게 한 후에
화려한 성당 외부를 천천히 구경하면서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우선 성당의 앞부분의 5개의 (FACADES)의 앞부분 중에 중심에 있는 메인 portal
산 마르코 성당의 facades는 동양(비잔틴)과 서양의 스타일이 한꺼번에 보는 사람들의 시건을 끈다.
로마제국 시대의 둥그런 아치들이 대문위에 있고,
금으로 도금된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천장부근에는 뾰족한 프랑스 고딕양식,
그것도 모자라서, 성당의 천장은 이슬람풍의 양파모양의 도움까지
고대부터 당시까지 유행했던 다양한 건축양식을 총망라해서 지어져서
한편으로는 중구난방같지만, 이상스럽게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간 façade 위에 "최후의 심판" 의 모습이 그려진 portal
예수님과 성인들 위에 비둘기들이 군림하고...
베니스의 많은 장인들에 의해서 정교하게 조각된 반원의 아치
성 마르코 광장의 터줏대감이다시피 한 비둘기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곳곳에 이렇게 그물이 쳐 있다.
입구 위에 양쪽에 여섯명의 천사들 중간에 마르코 성인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에 마르코 성인을 상징하기도 하고 베니스를 상징하는 금박을 입힌 날개달린 사자가
베니스를 내려다 보고 있다.
Traslation of St. Mark Portal
베니스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골을 안치하는 모습이 담긴 portal
성당 제일 왼편의 West façade 혹은 Mosaic of St. Mark's Relic
성 마르코의 유골이 전달되는 모습이 새겨진 이 facade는 제일 먼저 제작이 되었다.
이집트의 알렉산들이아에서 성 마르코의 유골을 '구출'한
가운데 지팡이를 든 두 베니스 상인이 성 마르코의 유골(relic) 이 든 관을 매고 교회 안으로 입장하고,
이 유골을 교황이나, 주교에게 헌정하는 대신에
베니스 공화국의 우두머리인 doge(총독)과 그의 아내에게 바침으로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 베니스의 위상을 부여하게 되었다.
오른편에 흰 담비 가죽 컬러한 doge, 그리고 왼편에 그의 아내 dogaressa가 보인다.
제일 왼편에 있는 성 마르코 유골 façade 와 중간의 입구 사이에 있는 Façade
중간 입구의 바로 오른쪽에 있는 The Narthex
제일 오른편에 위치한 façade
이슬람 문와의 영향이 잘 드러나는 façade
어디를 둘러 봐도 총천연색과 다양한 무늬의 대리석 기둥과 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화려한 금박으로 제작된 모자이크가 제일 오른편 narthex 천장에 새겨져 있다.
바로 옆에 다양한 대리석의 향연회가 열린 듯한 성당 외부 벽
성당의 제일 남쪽 끝에 5-6세기에 시리아에서 제작된 아름다운 두개의 기둥이 있고,
그 옆에 4세기경에 파워를 상징하고 아주 희귀한 보라색 암석인
이집트 산 반암(porphyry) 으로 제작된 Tetrachs 동상이 있다.
단어 뜻 자체로 4명의 군주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인데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디오클레샨과 3명의 공동 지배자들로 추정되고 있다.
이 동상도 콘스탄티노플에서 노획한 전리품으로
성당 바로 앞에 자랑스럽게 자리잡고 베니스를 지키고 있다.
성당 입구 바로 옆의 바닥과 벽 역시 형형색색의 대리석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실리, 콘스탄티노플, 시리아 등 지중해를 끼고 있는 전역에서 들여 온
보라, 초록, 회색, 흰색, 노란색
그리고 여러가지 색이 혼합되기도 다양한 색상
그리고 수직으로, 때론 수평으로 혹은 물결 등 다양한 무늬의
대리석 기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정교하게 코린토 식으로 조각된 희귀한 보라색 기둥과
천장의 모자이크
어느 한 구석도 밋밋하게 그냥 둔 곳 없이
빽빽하게 portal 사이사이에 다양한 테마가 새겨져 있다.
기둥 하나 하나에 장인의 손길이 여전히 남아 있다.
중앙에 있는 입구 바로 위에 설치된 네마리의 말 동상
원래 조각상은 성당내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성당 외부에 설치된 이 동상은 replica 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동상의 출처가 기원전 4세기경의 그리이스나
로마제국이 멸망할 당시고 추정했는데,
근래에 carbon14 검사결과 약 기원전 175년 경에 제작이 되었다고 결과가 나왔다.
드디어 성당 입구에 들어서니
먼저 경건한 복장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입구에서 판매하는 일회용 덮개를 두르고 입장을 하고,
남편처럼 backpack 을 맨 사람들은 러커에 집어 넣어야 하고,
나처럼 목에 카메라가 걸린 사람들에겐 엄하게 사진촬영은 금지되었다는 경고부터 들었다.
10여년 전에 왔을 때는 사진촬영은 허가를 해 주었는데,
아쉬웠지만 하는 수 없이, 성당 내부로 들어 가기 전에
얼른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처리된 바닥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얼른 몇장을 박은 후에
카메라 뚜겅을 덮고 편하게 두 눈으로 천천히 감상을 하기로 맘을 먹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 갔다.
입구부터 천천히 구석구석 감상을 하기를 약 30분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 보니
성당 내의 많은 관광객들이 성당내부에서 일을 하는 안내원(감시원?)들의 눈을 피해서
자연스럽게 셀폰에 담거나
요령있게 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평소에는 법과 규정을 미련하리만큼 고분고분 잘 지키는 나는
그 상황을 보고 큰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살면서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지 기약도 없고,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내부의 모습을 그저 눈도장만 찍기엔 너무 아쉬워서
나도 살며시 카메라 뚜겅을 열고서는
다른 관광객들과 직원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 틈을 타서
사진의 구도나 빛 상태 등을 염려할 겨를도 없이
그저 도둑고양이처럼 가슴을 조리면서 카메라로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날따라 셔터의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오금이 저려오기까지 했다.
성당 내부로 입장한지 약 20분만에 처음 카메아레 담은 성당 내부
벽의 한치도 빈틈이 없이 모자이크가 그득하다.
아침햇살이 도움의 창 사이로 내려쬐고 있다.
처음엔 내 심장소리도 들릴 정도로 맘을 졸이고 셔터 소리에 지레 놀란 가슴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다가
무슨 객기도 아니고, 조금씩 용감(?)한지 뻔뻔한건지,
점점 과감하게 용의주도하게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가끔 도둑촬영을 하다가 다른 관광객들과 서로 눈이 마주 쳐도
서로 묵인의 웃음을 지으면서 유유하게 성당을 내부를 당당하게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화려한 산마르코 성당 내부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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