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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미국

[뉴멕시코 산타페여행5]로레토채플 & 총독관저 - Loretto Chapel, Palace of Governors in Santa Fe

by Helen of Troy 2014. 4. 4.

  

로렛토 채플

 

 

로렛토 채플 의 유래와 배경:

 

뉴멕시코의 수도인 산타 페는 스페인에서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건너온 정착자들에 의해서 1610년에 건립이 되었다.

이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의 Plymouth에 처음 발을 디딘 것보다 

10년 전으로 미국에서 유럽인들에 의해서 건립된 최초의 도시이기도 하다.

 

원래의 도시의 정식 이름은 La Villa Real de la Santa Fe de San Francisco de Assisi 으로

뜻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믿음의 도시

(Royal City of the Holy Faith of St. Francis of Assisi)이다.

그래서 스페인어로 Santa Fe 는 영어로는 Holy Faith 로 성스러운 믿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후로 산타 페는 원주민들인 인디언들, 멕시칸, 그리고 스페인들이 모여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살다가,

1823년에 스페인으로 독립한 멕시코 공화국이 25년간 이 지역을 통치했다.

 

그러다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발생한 멕시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산타 페를 비롯해서 미국의 남서부 지방이 1848년에 미국영토가 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은 이 지역의 원주민인 다수의 인디언 부족, 스페인

멕시코과  영국등 다국적인 문화와 역사가 잘 어우러진 도시가 되었다.

 

 미국 서부지방을 잊는 산타 페 트레일의 종착지에 로레토 채플이 위치 해 있고,

이 채플은 내부에 있는 아름다운 "기적의 층계"로 유명하다.

 

로레토 채플의 역사는 1850년에 뉴멕시코 자치령에 라미 주교님이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라미 주교는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육사업에 착수하고자

이 새로운 신천지로 부임을 해서 선교활동과 교육사업에 봉사할 신부, 수사, 수녀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여러 단체에게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 편지에 제일 먼저 응답을 한 단체가 로레토 수녀회(Sisters of Loretto) 였다.

 

1852년에  라미주교의 부름에 응답한 로레토 수녀회는 일곱분의 수녀님들을 신천지로 보냈다.

그들은 당시 미국의 서부 한계점이라고 볼 수 있는 세인트 루이스를 거쳐서,

Independence 강을 건너는 험하고 긴 여정길에

콜레라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와 겹쳐서, 그나마 원장수녀님은 여행 중에 병으로 사망하고,

한분의 수녀님은 너무 병세가 심해서 켄터키로 도로 돌아 가는 등 우여곡절 끝에

포장마차를 타고 악천후 속에 인디언들 마을을 지나서 겨우 산타 페에 도착했다. 

 

이렇게 1852년에 도착한 수녀님들은 그 이듬해에 the Academy of Our Lady of Light

(로렛토 아카데미)를 개교해서,

당시 이 지역에서 발생된 천연두, 결핵등 질병과 새는 지붕등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

약 300명의 학생에게 배움을 제공했으며, 캠퍼스는 10개의 아도비 형식의 건물으로 이루어졌는데,

학교 건축건립비는 학생들이 내는 작은 학자금, 기부금, 수녀님들이 가족으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충당하고,이 성당까지 건축하게 되었다.

 

로렛토 채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건립하기 위해서

라미 주교가 고향인 프랑스 파리에서 실력있는 건축가 안토안 물리 (Antoine Mouly)과

그의 아들을 초빙했는데, 성당이 완공되기까지 10년이 걸리게 되자,

라미 주교는 수녀님들에게 두 부자가 산타 페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도움으로

수녀님들이 간절히 원하시던 아름다운 소성당을 짓기를 강력하게 권유를 하면서

로렛토 채플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버지 물리씨는 파리의 유명한 생 샤펠(Sainte Chapelle)성당의

보수공사를 맡아서 한 적도 있고,

이 성당은 라미 주교가 제일 아끼고 좋아하는 성당이기도 한 이유로

로렛토 채플의 디자인은 생 샤펠을 모방해서 건축이되었다.

이 공사를 위해서 당시로는 거금인 $30,000 을 충당하기 위해서

수녀님들은 그들의 유산을 포함해서 전재산을 내놓은 기금으로

당시 보편화된 아도비 형식과 사뭇 다른 아름다운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채플이 완공되었다.

 

 

성당 입구 옆에 작은 조각공원...

 

 

로렛토 채플 옆으로 들여다 보니...

 

 

로렛토 입구에서...

 

 

 

통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나무조각품

 

 

채플의 기념품 가게 앞의 아름다운 마당에서...

 

 

채플 옆문을 통해서 채플 안으로 들어 가보니

작지만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채플과 유명한 계단이 한 눈에 들어온다.


 

The Miraculous Staircase (기적의 계단) 

 

 

로렛토 채플이 1878년에 완공이 되었을 당시에는 입구 위에 설치된 약 7 미터 높이의 성가대석으로

올라 갈 계단이나 통로가 전혀 없었다.  많은 목수들을 불러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문을 구했지만

규모가 작은 채플 내부 공간에 지장없이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오로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문제를 찾기 위하기 위해서,

목수들의 수호성인인 요셉 성인에게 수녀님들이 간곡히 9일 기도를 드렸는데,

마지막 날인 9일째에 그 기도에 응답을 하셨는지,

한 목수가 도구상자를 들고, 나귀를 이끌고 채플에 와서 일을 구하러 왔다고 한다.

몇달 뒤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나선의 계단이 완성이 된 후에

그 목수는 계단을 만든 댓가도 받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를 찾기 위해서 신문에 사람을 찾는 광고까지 냈지만, 결국 그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자,

사람들은 그 목수는 수녀님들의 간절한 기도의 답으로 오신 요셉성인이었다고 믿었다.

 

 

이 층계는 건축적으로나 공학적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지어졌는데,

중간의 무게를 따 받쳐주는 support 도 없이 높이는 20 feet에 달하고  

360도를 완전히 두바퀴를 돌게 지어졌다.

 

층계전체가 2층의 성가대 석까지 겉으로 계단의 무게를 떠받드는 support가 전혀 없이

완전히 바닥의 베이스만 지탱하는 아주 특이한 층계이다. 

 

층계는 똑같은 높이로 만들어진 33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졌으며,

계단의 재료로 쓰인 원목은 이미 멸종한 희귀한 나무로 만들어졌다.

특별하게 이 층계는 풀이나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무로 만든 peg (나무 이음새)만 사용되었다.

 

 

 

미스테리에 쌓인 아름다운 계단을 만든 목수가 누구이던간에,

디자인 자체는 당시에 아주 획기적이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풀리지 않은 요소가 많아서

여전히 다수의 잡지와 신문 그리고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다.

 

 

채플 대문과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 글라스

(파리의 Dubois 사에서 여렵사리 공수 해 온 아름다운 작품이다.)

 

 

채플 제대와 14처의 일부

 

 

남편과 막내가 잠시 묵상 중...

 

 

 

이 열악한 신천지에 주교님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와서 지역사회의 교육에 전생을 받친 로렛토 수녀님들이

이 소성당을 짓는데도 경비를 조달까지 해서 이 성당이 완공되었을 때에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을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제대 앞의 특이하고 멋진 촛대들...

 

 

촛대가 너무 맘에 들어서 평소보다 많은 7개의 초에 불을 부치고

그동안 학교와 성당에서 봉사하신 수녀님들을 위해서 잠시 기도를 드렸다.

 

 

입구 옆에 있는 나무에 많은 묵주들이 걸려 있다.

아마도 청원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맘으로 이렇게 걸어 둔 것 같다.

 

 

채플 건너편에 있는 기념품 가게 앞에서 잠시 사진을 정리하는 막내...

 

 

 

채플 바로 뒤에 예전 학교 건물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눈에 들어 온다.

 

 

 

로렛토 아카데미 학교는 교육을 담당할 수녀님의 부족으로

1968년에 문을 닫게 되면서, 학교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게 되고,

1971년에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그 후로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대적인 내부공사 끝에 로렛토 호텔로 변신되었다.

로렛토 채플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으며

산타 페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채플을 박물관으로 변경되어서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기적의 계단이 있는 채플을 구경할 수 있고,

결혼식 미사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발길을 돌려서 도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플라자로...

 

유럽의 오래 된 도시의 플라자보다는 규모도 작고 소박한 플라자 모습...

 

 

산타 페 분위기가 잘 나타나는 벽과 발코니가 있는 창

 

 

 

 

플라자 한 구석에 미주리 주에서 뉴멕시코까지 연결되는

산타 페 트레일의 종착지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플라자 한 편에 멕시코의 음식으로 잘 알려진 파히타를 즉석에서 만들어서 파는 포장마차...

마침 출출하던 차에 일단 맛을 보니 맛이 괜찮다.

 

 

오른편에 총독관저 건물이 있다.

 

 

소박한 총독관저 건물(The Palace of Governors)

 

 

총독관저 건물은 산타 페에서 제일 중요하고 잘 알려진 건물로

미국에서 제일 오래 된 공공건물로서 산타 페 만 아니라

미국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 유산 목록에 올라 있기도 하다.

 

산타 페의 가장 중심에 있는 플라자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총독관저가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1610-1612년 사이에 지어졌을 당시 이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 영토였으며

새로 총독으로 부임해 온 페랄타 총독의 요청으로 식민지 정부건물로

아도비 건물을 적에게 대처할 수 있게 강화해서 지어졌다.

 

스페인에서 부임한 총독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식민지 땅인 뉴멕시코 지역을 

스페인의 왕대신에 통치하고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는데

현재 뉴 멕시코, 캘리포니아, 텍사스, 유타, 아리조나, 콜로라도, 네바다 등

광할한 지역을 총괄해서 통치하기 위한 식민지 중앙청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이 총독관저이다.

나중에 이 지역에 미국 자치령으로 되면서

이 총독관저는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중앙청 관사건물이 되었다.

 

 

총독관저 앞에 주정부에서 전통기념품을 만들고 팔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원주민들이 각종 토속상품들을 진열 대 두고 관광객을 상대로 판매를 하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뉴멕시코 역사 박물관으로 변경이 되어서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다양한 소장품들을 전시해서

이 지역의 배경과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늦겨울 날씨로 영상 5도의 날씨지지만

거센 바람때문에 느긋하게 플라자의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500년 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일단 접고,

플라자 주위의 오래된 도시 거리를 잠시 걷기로 했다.

 

 

위는 호텔, 아래는 토속풍으로 옷과 인테리어, 그리고 보석을 판매하는 가게들...

 

 

산타 페의 도시의 인구와 크기에 비해서 갤러리의 숫자가 월등히 많아서

오래 전부터 예술가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다양한 갤러리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한국사람들만큼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멕시코와 이곳 인디언 원주민들의

음식에 사용될 고추를 말리는 상품들이 퍽 친근감이 든다.

 

 

팔장을 끼고 정답게 산타 페 거리를 걷는 부녀

 

 

아담하고 서부풍의 산타 페 중앙 도서관

 

 

200-300 여년 된 고목들이 조용한 거리를 지키고 있다.

 

 

스페인과 멕시코 지배하에 오래 있어서 이 지역에서 흔치 않은 개신교 교회 건물

 

 

건물 사이의 작은 공원에 고래떼를 연상케 하는 조각품들이 있다.

 

 

 뉴멕시코 미술 박물관 건물

 

 

 

산타 페 콘벤션 센터

 

 

한 카드 가게 앞에 피곤한 발과 그리고 지루한 남편들을 위한 재미난 두 의자

일단 다리가 아프니 왼편 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

 

 

갤러리 동네인 캐니언 로드 지역으로 가면서 만난 아담하고 아늑한 집들이 참 보기가 좋다.

담은 있지만 이웃간에 소통도 원활하고 소박하면서도 멋이 배어있는 집들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잔잔한 행복감이 들었다.

 

 

 

 

 

다음은 Canyon Road 갤러리 동네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