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를 열게 해 준 스타벅스커피..
지난 토요일엔 곧 떠날 여름이 마지막으로 뜨거운 열기로 작별인사라도 하듯이
낮기온이 최고 24도까지 올라가서
근처 공원이나 숲에 모두들 가볍게 차려 입고 나와서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하루 사이에 기온이 영하 1도로 떨어지고,
눈까지 날리는 날씨로 돌변을 했다.
일기예보를 통해서 이미 이런 날씨가 닥칠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에 진눈깨비가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겨우 여름을 아쉽게 보내주고, 아직 가을과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는데,
생뜽맞게 새치기한 동장군부터 맞딱뜨려서, 한숨부터 나오면서 맘이 무거워졌다.
아침이면 늘 그래왔듯이,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늘 커피부터 만드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여름처럼 날씨가 더울때는 아무래도 뜨거운 커피가 많이 땡기지는 않아도,
습관적으로 아침마다 늘 뜨거운 커피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날씨가 0도를 오락가락할 정도로 쌀쌀해진 탓인지,
어느때보다 커피맛이 너무 좋기만 하다.
잔잔한 흘러나오는 바로크 음악, 뿌옇게 안개낀 하늘에 진눈깨비까지 휘날리는 분위기가
한층 더 커피의 존재를 높여주는 것 같아서, 돌변한 날씨도 좀 편하게 받아들여진다.
진눈깨비가 날리는 0도의 아침
사실 지난 4년에 걸쳐서 맘놓고 하루에 적어도 세잔을 마시는 커피를 대 준 사람은 큰딸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몬트리올에서 혼자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용돈을 스스로 벌기 위해서 4년 내내 대학교 서점에서 일주일에 10-15시간을 아르바이트를 해 왔고,
졸업 한 후에 집에서 2년간 음대 대학원을 다닐 때는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가게에서
학기 중에서 일주일에 3일씩 파트타임으로,
그리고 4개월간의 여름방학 때는 풀타임으로 일주일에 4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스타벅스에 시간급여는 한시간에 $10로 캐나다에서는 최저임금에 해당하는데
한가지 보너스는 직원에게 매주 스타벅스 원두 커피 한봉지를 무상으로 주어져서
매주 다른 맛의 커피를 골고루 즐길 수 있었다.
정작 커피를 제공해 주는 딸아이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기에,
덕분에 나와 남편은 고가의 커피를 편하게 마실 수 있었고,
일주일에 커피 한봉지를 다 소화하지 못하기에, 모아두기 보다는
커피를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선심쓰듯이 자주 안겨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큰 딸 아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몇번의 오디션 끝에 어렵사리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면서
오케스트라 연습과 공연도 하고, 개인 레슨도 하고, 음악 컨서바토리에서 가르치는 와중에서도
비록 일하는 시간은 줄어 들었지만, 스타벅스에서 여전히 일주일에 1-2일 일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두번째 커리어를 준비하느라, 작년부터는 대학교 학부에 등록을 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한학기에 2-3과목을 공부하면서도 학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던지
일주일에 쉬는 날없이 4가지 일을 하면서 지난 해를 바쁘게 보냈다.
Postmedia News/Crystal Schick
3cm의 눈이 내린 이웃도시 캘거리의 어제 모습..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진로를 보험수학으로 결정을 보고 주로 저녁에 연습과 공연이 있는 오케스트라,
방과후인 오후 4시부터 출강하는 컨서바토리 덕분에 낮시간이 비교적 널널해서
이번 가을학기부터는 한학기에 3과목을 수강하기로 결정을 보고,
그동안 4년간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스타벅스를 8월 말로 그만 두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평소에 제일 좋아하던 케냐 커피 한 봉지를 내밀면서
커피를 마시지않은 딸아이는 덤덤하게 이게 마지막 무상커피라면서 건내주는데
괜시리 그 커피를 즐겨 마시던 나는 내심 무척이나 서운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늘상 마셔오던 커피가 이상스럽게 맛이 더 좋아지고 있음에 내 자신이 우습기까지 하다.
쌀쌀해진 날씨도 한 몫 하지만,
아마도 제일 큰 이유는 그동안 무상으로 받은 커피를 너무나 당연시하게 마시던 커피를
앞으로는 고가의 값을 지불하고 직접 사 먹어야 한다는 데서 기인한 것 같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14 oz 되는 커다란 머그잔에 그득하게 커피를 만들어서
끝까지 다 마시지 않고, 2/3 정도만 마시고, 나머지는 버리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는데,
9월부터는 내가 마실만큼만 만들어서 깨끗이 머그잔을 비우자,
설겆이를 하던 막내딸이 엄마가 왠일로 커피를 다 비웠냐고 한마디 거들기도 할 정도로
커피를 아끼면서 마시는 습관까지 생겼다.
이래서 우리에게 별 노력없이 수고없이, 공짜로 생겨난 것은
그것이 무엇이던가에 당연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소중함을 쉽게 마련인 것을 스타벅스 커피 덕분에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힘들게 학교를 다니면서,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제 힘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서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좋은 커피를 공급해 준 딸아이에게 새삼스럽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
생각난 김에 바로 그동안 빠지지않고 지난 4년간 커피를 제공해 주었고,
그리고 그리고 그동안 남에게 주지않고, 냉장고에 잘 모아 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딸의 고마움을 잊지않으면서 한방울도 버리지 않고 앞으로 잘 마시겠다는내용의 이멜을 보냈다.
9월 10일 첫 눈이 내린 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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