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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Places/넓은 세상에서

11월 9일은 베를린 장벽붕괴 25주년이 되는 날...

by Helen of Troy 2014. 11. 8.

 

독일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 25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시작한다.

우선 155 km 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중에 15 km 의 거리를 따라서

8,000개의 하얀 풍선을 밝히면서 시작된다.

진주 모양으로 생긴 이 풍선 램프는 25주년이 되는 11월 9일 일요일에

베토벤 작곡의 환희의 송가를 울려 퍼지는 가운데에 밤하늘로 날려 보낼 계획이다.

 

전 베를린  장벽이 있던 Garten Strasse (가튼 슈트라서) 를 따라서 'Lichtgrenze' (Border of Light) 가 설치되었다.

 

 

슈프레 강가에 설치된 하얀 풍선 (Spree River near government buildings)
(Sean Gallup/Getty Images) 

 

 

 Spree River 강가에서...
(Sean Gallup/Getty Images) 

 

 

의회빌딩이 있는 강가에서...
(Sean Gallup/Getty Images) 

 

 

 브란덴부르크 대문를 따라서 죽 이어지는 하얀 풍선들...

 

 

 

 

 

 

 

 

 

11월 9일 일요일에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하면서

'반 파쇼주의에서  보호하는 장벽'의 흥망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돌아봅니다.

 

 

 November 10 1989

 

서 베를린 시민들이 브란덴불크 대문 앞의 베를린 장벽 위에서 서서 벽이 무너지길

오랫동안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Picture: Reuters

 

 

 

 

 August 13 1961

동독 군인들이 8월 17일에 콩크리트로 장벽을 짓기 전에

 미리 철조망을 치고 있다.

Picture: Getty Images

 

 

 

August 15, 1961

 

동독 군인인 한스 콘라드 슈만씨가 Bernauer 길 부분의 베를린 장벽의 철조망 사이로

서 베를린으로 망명을 성공적으로 시도하는 장면을 담은 이 사진은

목숨까지 걸로 서방으로 망명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잘 알려진 사진이다.

이미 서 베를린으로 망명한 그의 가족들과 재회했다.

Picture: Peter Leibing/AP

 

 

 

August 22 1961

 

두명의 동독 군인들이 동독군인들이 서방으로 탈출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15 ft 높이의 장벽 위에 유리조각을 시멘트로 박고 있다.

Picture: AP

 

 

베를린 장벽의 공식명칭은 'Antifaschistischer Schutzwall' 으로

영어로는 "Anti-Fascist Protection Rampart"

즉 반 파쇼주의에서 보호하기 위한 장벽으로 불리웠고,

이 장벽을 만든 이유는 350만명의 동독 시민들이

자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본주의 서방으로 탈출을 막기 위해서이다. 

 

 

August 28, 1961

 

서 베를린 시민들이 새로 세워진 장벽 반대편에 있는 동독 베를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Picture: Rex Features

 

 

 

October 7, 1961

 

동독 노동자들이 Bernauer Strasse (베르나우어 길) 상에 있는 장벽의 높이를 높이고,

더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벽돌을 쌓는 동안

서독측의 한 군인이 그 앞에 서 있다.

Picture: AP

 

 

 

October 4, 1961

 

동독의 베르나우어 길 44번지 집의 지붕에서 서 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한 베른트 륜저(Bernd Luenser)씨를 추모하기 위해서

두명의 보이 스카우트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Picture: Rex Features

 

 

 

October 16, 1961

 

베를린 장벽을 넘어서 서방으로 탈출하는 한 동독시민

Picture: AP

 

 

 

June 15, 1962

 

서 베를린에 사는 어린이들이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총을 겨누면서 살벌하게 대치하는 것을

모방하면서 노는 모습

Picture: Rex Features

 

 

 

July 23, 1962

 

서베를린측에서 스피커가 달린 밴이 새로 건축되고 있는 장벽공사장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자,

바로 이어서 동독측의 경찰이 나타나서

더 큰 소리로 공산주의 프로파간다를 방송하면서 시끄러운 대치가 시작되기도 했다.

Picture: Keystone

 

 

 

August 17, 1962

 

18세의 피터 페쳐(Peter Flchter)가 서 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동독 군인들이 쏜 총에 맞고 중상을 입고 벽 사이의 '무법지대'에 쓰러진 피터의 시신을

한 시간이 지난 후에 같은측의 동독 군인들이 거두고 있는 모습을

서 베를린 측의 카메라맨이 그 모습을 담았다.

 

자유를 찾아서 서 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약 1,200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Picture: AP

 

 

 

 

June 26, 1963

케네디 미 대통령이 철조망으로 삼엄한 베를린 장벽을 방문하고 있다.

Picture: AP

 

 

 

December 18, 1963

 

서 베를린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명절에 동독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방문하기 위해서

방문허가증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Picture: Terry Fincher/Hulton Archive

 

 

 

 

1965

 

베를린 장벽이 동쪽과 서쪽을 가로 막아도, 약 5,000 건의 탈출시도를 감행했다.

한 예로 커다란 드럼통을 사용해서 3명의 서 베를린 남성들이

그들의 여자친구들을 숨겨서 서방으로 탈출에 성공한 모습

Picture: Getty Images

 

 

 

March 11, 1985

 

54세의 미하일 고르바체브가 소련의 서기장으로 되면서 서서히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Picture: GETTY IMAGES

 

 

 

 

June 12, 1987

 

브란덴부르크 대문 앞에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유명한 구절인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 라고 하면서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Picture: Getty Images

 

 

 

 

October 7, 1989:

 

소련 서기장 고르바체브가 동독건립40주년 행사에 참가해서

에리히 허네커(Erich Honecker) 동독 대통령과 포옹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 행사가 끝난지 불과 10일 후인 1989년 10월 18일에

허네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쫓겨났고,

동독 국민들은 다음달인 11월부터 서독을 방문할 수 있다고 통보를 받는다.

Picture: DPA/AFP

 

 

 

 

November 10, 1989

 

동독에서 Trabant 차를 몰고 서 베를린을 방문한 긴 차의 행렬이

유명한  찰리 검문소 (Checkpoint Charlie) 를 통과하자

양편에 서 베를린 시민들이 그들을 큰 박수로 환영하고 있다.

Picture: AFP

 

 

 

 

November 11, 1989

 

동독 군인들이 포츠담머 광장 부근의 베를린 장벽을 부시고 있는 장면을

서독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Picture: AFP

 

 

 

 

November 12, 1989

 

한 서독 경찰(오른쪽)이 한 동독의 경비군과 포츠담 광장에 세워진

새 검문소에서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Picture: AFP

 

 

 

November 15, 1989

브란덴부르크 대문 근처에 있는 장벽 앞에서 한 서베를린 시민이 망치와 끌을 들고 있다.

Picture: AFP

 

 

 

November 20, 1989

 

동독 출신 마리안느 코퍼씨와 서독 출신의 남편 볼프강 슈피츠씨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 베를린에서 가까운 위성도시에서 결혼식을 올힌 후 손을 흔들고 있다.

Picture: Patrick Hertzog/AFP

 

 

 

Novermber 21, 1989

 

동독의 한 경찰이 브란덴부르크 대문 옆에 있는 베를린 장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다.

 

 

 

December 31, 1989

 

새해 전야에 동독의 한 소녀가 베를린 장벽 동쪽에서 연장으로

벽을 허물고 있다.

Picture: Steve Eason/Hulton Archive

 

 

 

June 20, 1990

 

동독쪽  쉐링슈트라서와 가튼슈트라서(Scheringstrasse and Gartenstrasse) 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검문소에서 보인 베를린 장벽의 모습 

Picture: EPA

 

 

 

그리고...

 

작년 7월 12일간의 독일합창순회 공연중 방문한 베를린에서

2013년 7월 10일 저녁의 브란덴부르크 대문과 그 앞에 선 헬렌...

 

 

 

불과 25년 전까지 냉전의 위기감과, 긴장감의 중심이었던 이 지역이

불가능했다고 믿었던 해빙을 거쳐서

이렇게 국제적인 주요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것을

실제로 보고 나니

모든 한반도의 국민들이 화합의 확고한 의지와 인내가 있다면

무엇이든지 속전속결에 달인인

한국 국민들은 동-서독의 통일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하나로 합쳐진 한반도의 보다 더 성숙된 모습을

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