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키 소재의 로마 시대의 아고라
5일간 그리스 북부지방에 위치한 할키디키의 포르토 까라스 그랜드 리조트에서 잘 지내다가
호텔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한 버스를 타고
포르토 까라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30 km 거리에 위치한
테살로니키에 1시간 35분 후에 도착했다.
오전 7시 40분경에 테살로니키에 진입하면서...
5주일간 유럽에서 지내는 내내 지중해 기후답게 연일 30도 이상의 맑은날이 계속되었는데,
유일하게 하루 비가 내린 곳이 바로 이곳 테살로니카에 도착한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테살로니카 공항에 도착해서, 물어물어
공항과 연결된 시내버스에 올라 타고 예약 해 둔 호텔이 위치한
오래된 테살로니키 중심지 동네로 향했다.
그리스 지도
테살로니키는 살로니카라고도 불리우는 도시로
그리스에두번째로 큰 도시로, 교통의 요지이며, 그리스령 마케도니아의 수도이다.
테살로니키 도심의 인구는 약 40만명이지만,
주위 지이 포함된 메트로폴리탄 테살로니키의 인구는 100만명에 달한다.
테살로니키의 역사:
마케도니아의 카산더 왕이 기원전 135년에 세워진 도시로
헬레니즘이 유럽과 근동지방에 세력을 떨칠 당시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주요도시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기원전 168년에 마케도니아 왕국이 멸망한 후에
로마제국에 넘어간 후에도,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로를 잇는 Roman Via Egnatia 위치해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중요한 도시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테살로니카는 기원후 1세기부터는
유다교에서 갈라져 나온 새로운 종교인 크리스찬을 널리 전도하기 위해서
성 바오로가 이곳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설교에 힘쓴 덕분에
초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도시로 발돋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속적인 발전을 해 온 테살로니키는
비잔틴 시기에 들어서서, 비잔틴 왕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다음으로
왕국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대도시로 발전을 해서
아름다운 교회와 당시를 대표하는 주요한 건물들이 대거 지어졌고,
도시 외곽에 견고한 성곽도 이때에 건축되었다.
하지만 1204년에 네번째 십자군의 원정으로
십자군이 장악을 해서 '테살로니카 왕국'이 탄생했다가
1246년에 다시 비잔틴 왕국이 재탈환에 성공했다.
테살로니키는 1430년에 당시 근동지방과 동유럽을 장악한 루라드 2세가 이끌던
오토만 제국의 지배하에 놓여지면서
1,500여년간 로마제국, 비잔틴 왕국의 통치하에서 크리스찬 국가에서
테살로니키는 근동을 중심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오토만 제국으로 넘어간 후에도
이 도시의 지리적인 여건과 주요 무역로 상에 위치해서
여전히 상업과 무역의 중심도시의 명성을 유지했다.
19세기에 오토만 제국은 테살로니키의 대대적인 현대화 도시계획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서
다수의 새로운 건물들이 도시 전역에 건축되었고, 철로공사까지 시작되면서
당시 새로 발명된 증기엔진 기차를 도입되었고,
새로 생긴 테살로니키 항구를 따라서 많은 공장들이 들어선 덕분에
테살로니키는 발칸반도에서 제일 중요한 근대적인 산업 중심도시로 성장해서
역사가들이 '동부의 칼리포니아' 라는 닉네임을 얻기까지 했다.
도시 인구도 1840년에서 1912년 사이에 세배로 증가하기도 했다.
발칸전쟁 중, 1912년 10월 27일에 거의 500년간
오토만의 지배를 받았던 테살로니키를 그리스 군대에 의해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1917년에 도시의 역사상 제일 큰 악재인 대화재가 발생해서
도시의 중심부의 2/3가 파손되었고, 화재 여파가 꽤나 오래 가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네스트 헤브라드를 포함해서 다수의 유명한 건축가들의 도움으로
현대적인 유럽의 주요도시의 면모를 갖춘 도시로 재건축이 시작되었고,
1950-60년도에 도시 역사상 최고의 건설 붐으로 현대적인 도시로 거듭났다.
현재의 테살로니키는 현대적인 유럽의 무역과 교통의 주요도시로
발칸반도에 위치한 모든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1997년에는 '유럽의 문화적 수도' 후보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테살로니키의 많은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는 '2014년도 유럽 청소년의 수도(The European Youth Capital)로 선정되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여행가방을 끌고,
약 20분간 북쪽으로 걸어서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내리는 보슬비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호텔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그리스의 대표적인 음식 바클라바와
진한 커피로 늦은 아침으로 먹고, 슬슬 시내구경에 나섰다.
첫 방문지로 정한 로만 아고라로 가는 길에 예정엔 없었지만,
어디를 가도 좋아하는 재래시장이 눈에 띄어서 일단 들어 가 보았다.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를 파는 가게...
싱싱한 야채를 파는 청과상...
바다가 인접한 항구도시답게 각종 해산물을 파는 생선가게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경쟁이 많은만큼 가게마다 손님을 끌어 들이려고 큰소리로 호객행위로 시끌벅적한 정경이
사람냄새가 나서 정겹게 들린다.
생선킬러인 남편은 회라도 떠먹고 싶다면서 비린내가 나는 이 부근을 맴돌기도...
닭고기와 달걀 가게도 있고...
다닥다닥 붙은 정육점에는 섬찍할 정도의 모습으로
금방 도살된 고기가 진열되어 있기도 하고...
야채가게의 싱싱한 가지 바로 옆에
적나라한 모습으로 돼지머리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도 고사를 지낼까,
아니면 돼지머리 고기를 즐겨 먹을까 궁금해진다.
그냥 눈짐작에 양고기로 보이는데, 19금 급의 모습이다.
다행히 냄새도 좋고 보기도 좋은 꽃가게와...
과일가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이어져서
자두와 한참 제철인 체리를 듬뿍 사서 시내 구경하면서 잘 먹었다.
재래 시장의 끝나는 곳에서...
시장의 좁을 골목을 벗어나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그리스를 방문할 시기에는 경제적으로 큰 위기에 몰려 있던 그리스는 EU에 머물지 말지를
결정하는 투표 직전이라서 곳곳에 yes/no 지지를 위한 포스터가 기둥이나 빈 공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는데, 이곳 역시 선거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치 아래에 위치한 빵집에서...
진열장 위 오른편에 커다란 베이클같이 생긴 둥근 빵 4개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해서
부슬 부슬 내리는 비로 축축하고 한기가 느껴지던 참에 잠시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가게의 빵과 커피는 테살로니키에서 과히 제일 쌌지만, 맛은 오히려 좋았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유럽과 근동으로 잇는 주요한 무역로 도시답게
넓은 광장과 직선의 넓은 길이 인상적이다.
가운데의 나무 바로 뒤에 테살로니키 항구가 있다.
경제대란을 겪고 있고, 중요한 선거를 코 앞에 둔 탓인지
데모와 시위군중을 콘트롤하기 위한 검은 경찰 버스와 무장을 한 경찰들이 깔려있다.
다소 경직되고 접근하기 쉽지않을 것 같은 인상의 완전 무장을 한 경찰에게
호텔로 다시 가기 위해서 길을 영어로 물었더니
의외로 웃으면서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영어로 답변을 해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 짐에 작고 가벼운 우산을 챙겨가서 요긴하게 잘 썼다.
호텔에 잠시 들렀다가, 호텔 건너편에 있는 중고품 가게 거리로..
평소에도 중고책방이나, 앤틱가게를 즐겨 찾는 나는 그냥 지날칠 수가 없어서
남편의 손을 이끌고 길을 건너서
좁은 가게 안과 밖에 중고품과 앤틱들이 진열된 품목들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좋아하는 고서적들이 천장까지 쌓여있고,
인테리어로 쓰면 좋을 그리스와 터키풍이 물씬 나는 소품 가구들이 무척 탐이 난다.
발로 돌리는 재봉틀 대도 탐이 나고..
구리와 brass 로 만들어진 램프도 탐이 나지만,
여행 내내 끌고 다닐 가방을 생각하면 쉽게 포기가 된다.
로마시대의 고대 아고라
로마시대의 이 고대 아고라 자리는 알렉산더 대왕이 유럽과 근동지방을 장악하던 시대부터 사용되었고
기록과 발굴된 도자기 조각에 의하면 이미 기원전 3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증명되었다.
현대적인 고층 아파트와 2000년 전에 지어진 아고라의 모습이
생뚱맞게 보이기도 하지만,
늦게나마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되어서 다행스럽기만 하다.
노란 땡땡이 우산을 쓴 옆지기의 모습도 어딘지 생뚱맞다...
이 아고라는 고대시대부터 테살로니키의 상업과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는데,
1917년에 발생한 도시의 대 화재 후, 재건축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법정 광장' 이라고 불리우던 이 부근를 건축가 헤브라드의 설계에 따라서
정부건물과 법정건물이 들어 설 대대적인 광장을 지으려고 했다가,
1960년대에 아고라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그 계획은 무효가 되고,
현재까지 계속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 장소의 동쪽은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적어도 일곱번의 단계에 거쳐서 공사를 한 흔적이 엿보이고,
기원후 1세기까지 개인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1세기경에 공공장소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이 만날 수 있는 커다란 아고라가 지어졌고,
2세기 중반에서 넓은 길에 4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야외극장인 오데온이 지어졌다.
이 아고라는 더블 L 자 모양으로 디자인 되었는데 약 20 헥타르 넓이에 달한다.
대리석으로 마무리된 직사각형의 넓은 광장은 코린트 방식의 기둥과
세개의 주랑(stoa)가 있다.
남쪽 방향에는 지하에 위치한 스토아와
스무개의 가게가 약 2.5 미터 넓이의 대리석으로 덮여진 길 가에 위치해 있었다.
약 300년간 이 지역의 상업적, 행정적인 중심지로
그리고 시민들과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모임의 장소 역할을 하다가
5세기경에 아고라 자체는 버려졌지만,
14세기까지 이곳에 위치한 가게들은 계속 영업을 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1917년에 테살로니키에 발생한 대화재로
이 동네에 위치했던 터키인과 유대인 동네가 불 타버려서
불에 탔다는 의미의 '카메나'로 불려졌다.
1922년에 대인구 이동 중에,
화재로 빈 땅에 난민들을 위해서 가건물을 지어서 임시로 살기도 했다가,
난민들에게 영구적인 주거지를 제공한 후에는 다시 공터로 남았다.
두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는 이 자리는 벼룩시장과 시민들을 위한 쇼 장소로 쓰여졌고,
2차 대전 중 독일이 이 지역을 점령할 당시에는
독일군대의 야외 주차장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인접해 있는 공원으로...
잔뜩 찌푸린 날씨에 나뭇가지에 올망졸망 모여있는 까마귀의 모습이 스산하다...
왼편에 두개의 동상들...
여행을 떠나기 전 한동안 그리스어와 터키어를 배우는 시늉을 했건만
그리스어 실력이 너무 딸려서 정확히 어느 분이신지는 모르지만
아뭏든 1900-1907년 사이에 그리스 정교회의 중요한 직책을 맡으신 분인듯...
1871-1943년에 활약한 캡틴 바르다스(?)
(어딘지 모르게 스탈린 동상같은데...)
이분의 존함은 아래 하얀 부분에 희미하게 새겨진 글씨를 한참동안 들여다 봐도 영...
아침부터 쉬지않고 부슬비가 내려서인지
평소에 붐빈다는 이 공원도 한산해서 을씨년스러운데
노란색의 우산이 그나마 분위기를 밝혀준다.
이어서 왼쪽에 위치한 파나지아 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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