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의 아름다운 가을의 빛
2015년 9월 26일 오후 MacTaggart Conservation 숲에서
캐나다 서부 대평원에 위치한 우리동네의 가을은 무척이나 짧기만 하다.
일년에 거의 반이 춥고 혹독한 겨울에게 언제라도 바통을 건내 주어야만 하는 가을은
늘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기에
날씨가 맑기만 하면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집 밖으로 뛰쳐 나가야 하는 일종의 강박감을 안고 살기 마련이다.
9월 26일 오후 4시 즈음에 뒷 마당 바로 뒤의 작은 호수에서
유유히 캐나다 구스들이 노닐고 있다.
9월 중순이 되면 완연하 가을 분위기도 접어 드는데,
올해 9월은 기온도 한자리 숫자로 뚝 떨어지고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
음산한 가을 날이 연속되어서
안 그래도 짧기만 가을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떠나 보내는 것 같아서 우울하던 참에
9월 25일부터 소위 인디언 써머가 왔는지,
기온도 올라가고, 대평원 특유의 상큼하고 화창한 가을날씨가 되자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듯이 동네의 공원, 숲, 산책길, 강가로 몰려 나왔다.
우리 가족도 하던 일도 접어 두고,
일단 집 바로 뒤에 있는 숲으로 향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호수에는 4월에 남쪽으로 떠났던
캐나다 구스들이 다시 이곳으로 와서 알을 낳고
5월 말에 부화된 알에서 난 새끼들이 어느덧 자라서
어미인지 새끼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튼실하게 잘 컸다.
한달 후에 다시 남쪽으로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쉬지않고 먹으면서 영양분을 비축하기도 하고,
하늘에 커다란 V 자 모양으로 파란 하늘을 가르며 나는 연습을 하면서
여정 채비에 분주하다.
호숫가와 이더진 숲 입구에 화사한 단풍잎 양탄자가 깔린 산책로가 우리를 맞아 준다.
아스펜 나무들이 길 양 옆에서 호위를 해 주고 있다.
일부러 로키까지 먼 길을 가지 않고도
집에서 5분만 걸어 가면 가을의 한복판으로 바로 걸어 들어 갈 수 있어서 참 행운이다.
falling leaves
hide the path
so quietly
낙엽은
아주 나지막하게
길을 덮어주네.
-John Bailey
산책로 절벽 아래로 개울 흐르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개울이 넓어져서 호수/늪 지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산책길로 접어드니
길이 좁아져서 양쪽의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걷는 맛도 괜찮다.
주택가와 인접한 곳이라고 하기엔
숲도 아주 울창하고, 계곡도 아주 깊어서 산책로의 경사도 꽤 높아서
왠만한 로키의 산길을 오르는 착각이 든다.
다행히 수북히 깔린 소나무 잎과 뿌리들이 있어서 오르내리기에 수월하다.
좁은 길 바로 옆에 난간도 없이 바로 어림잡아서 50 미터 절벽을 내려다 보니 갑자기 소름이 돋아서
평소와 달리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대 보니
눈부신 햇살 아래에 푸른 침엽수와 단풍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에 두려움이 가신다.
가파른 경사길로 내려가니, 시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가 보니 수달피 댐이 보인다.
The world is tired,
the year is old,
The faded leaves are glad to die...
한해도 저물어 가고, 세상도 노곤해지니
색바랜 나뭇잎들은 기꺼이 흙으로 돌아가네...
~Sara Teasdale, "November"
파란 하늘이 시냇물에 풍덩 빠졌다.
단풍의 땟갈은 곱기만 한데, 길은 여전히 가파른 경사길이라
다들 껴 입고 간 외투를 벗어서 허리에 매고, 가져고 간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실 정도로 더워진다.
거기다다 며칠 내내 비가 내린 후라 길이 미끄럽지만,
한번도 가 보지 못한 코스라서 호기심이 발동을 해서 개의치 않고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감으로 앞으로 계속 가 본다.
"Every leaf speaks bliss to me,
fluttering from the autumn tree."
가을 나무에서 휘날리는 단풍잎마다
내게 환희를 속삭인다.
Emily Bronte
붉은 열매도 주렁주렁...
아주 급경사 길이 나와서 엉금엄금 기다시피 나무를 붙잡고 올라갔다.
다행히 누군가가 고맙게도 매듭이 지어진 로우프를 달아 놓아서 그나마 쉽게 올라갔다.
가을의 남자...
여기도 로우프가...
이 동네로 이사 온지 10년이 되었는데,
집 바로 뒤의 이 숲으로 자주 왔어도 이런 곳이 있는지는 모르고 살았다니...
Autumn wins you best
by this its mute appeal
to sympathy for its decay.
썩어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을
침묵으로 안스러워 하는 가을이
그대의 마음을 사로 잡으리.
Robert Browning
또 거의 70도에 가까운 경삿길이 또 가로 막는다.
그런데 이 로프는 낡아서 중간에 끊어져서 겨우 올라왔다.
집을 나온지 2시간 반이 지나자 생각보다 길도 험했고,
날도 더워서 가지고 간 물도 다 떨어져서 다음 기회에 끝까지 갈 것을 다짐하며
아쉽게 이 지점에서 발길을 돌렸다.
늘 다니는 운치가 있는 산책로에 들어서니 절로 아늑하고 포근하다.
길도 평평하고 말라서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걷기에 좋다.
이 길을 걷노라면 인생과 자연을 논하는 철학자가 절로 되는 듯...
"Winter is an etching,
spring a watercolor,
summer an oil painting
and autumn a mosaic of them all."
"겨울은 판화이고,
봄은 수채화,
여름은 유화,
가을은 모두가 어우러진 모자이크."
- Stanley Horowit
불타오르는 가을의 절정..
"October's poplars are flaming torches
lighting the way to winter."
"10월의 포플라 나무의 불타는 횃불은
겨울로 가는 길목을 환하게 밝혀주네."
- Nova Bair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분위기에 빠지게 하는 로맨틱한 길...
짧지만 가을이 있음을 고마워하고,
차분히 마무리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 주고,
옆에 동행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내게 허락된 시간을 후회없이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주는
엄마 품처럼 아늑한 가을 숲길이 참 고마운 오후였다.
집 뒤 호숫가로 다시 오니, 해는 서쏙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둑어둑해진 하늘은 평화롭고 넉넉하다.
집을 나선지 3시간 반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을을 온 몸으로 느끼고 돌아와 보니
어느덧 시계가 7시 35분을 가르키고 있자, 갑자기 공복감이 밀려왔다.
발코니에 나가보니
연보랏빛 하늘에 추석 보름달이 덩실 떠 올라 있다.
Harvest moon:
around the pond I wander
and the night is gone.
한가위 보름달:
호숫가를 거닐다 보니
밤이 다 갔구려.
Matsuo Ba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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