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있는 다수의 쓰레기통 관리와 버리기,
그리고 새로운 봉지를 세트하는 일은 복덩이 아들 몫인데,
얼마 전부터 완전히 혼자서 주어진 일을 하게 되어서 대견하게 지켜 보고 있다.
복덩이 아들은 한달 후면 만 28살이 된다.
만 두살 생일 며칠 후에 소아 자폐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받아들이기엔 힘이 들었지만,
자폐 판정을 받은지 한달이 지난 후부터
아들을 위한 특수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와 시설을 열심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당시 살고 있던 필라델피아와 인근 지역은 물론
미국 동부에 위치한 여러 특수학교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자폐장애인들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서 간단한 정보라도 얻는데 시간도 많이 들었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조기교육이 관건이라는 생각에
직장도 잠시 쉬면서 특수학교와 프로그램 찾기에 전념을 했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아주 운좋게
당시 북미에서 취학 전의 자폐 어린이들을 위한 특수학교중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인정받고 있다는 필라델피아 자폐특수학교에 입학허가를 받고
그해 9월부터 집에서 차로 15분 걸리는 특수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학교는 원래 초등학교 나이의 자폐 아동들을 교육하는 학교였다가
당시 장애아동들을 따로 교육하는 것보다
사는데서 가까운 이웃에 있는 정상아동들이 다니는 보통 학교에서
특수교육 선생님의 지도로 정상적인 학우들과 함께 하는 것이 장애아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이라는 연구결과에 따라서
자폐아동 재학생들이 제각기 동네학교로 전학을 간 상태였다.
대신에 취학 전 어린 자폐 학생들을 위한 Preschoolers 를
자폐 진단이 나자마자 특수조기교육을 시키는 시설로 전환이 되어서
특수학교 교사를 포함해서, 언어 지도교사(speech therapist)
occupational teacher, 심리학자(Psychologist),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체육선생님 등
총 25명의 자폐아동을 지도하는 최고의전문적 스태프가 계셨는데,
아들이 새로 전환된 특수학교에 입학 당시에는
클래스는 아들이 속한 단 하나였고,
학생 숫자는 고작 여섯명으로
교사와 학생의 비율이 아주 비현실적인 6:1 이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봉지를 묶는 복덩이 아들...
당시 2살 반이던 아들 반에 있는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만 다섯살이었고,
아들처럼 다 말을 못하는 자폐아들이었는데,
당연히 제일 체구도 작고, 어린데다가, 당시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한
적응도가 무척 낮을 때라서 처음 두달은 스쿨버스를 아들과 같이 타고 학교에 갔다가
아들이 어는 정도 진정이 되면 시내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가
하교할 때가 가까워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서 아들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오곤 했다.
대부분의 자폐 아동들이 오감에 무척 민감한 편이거나(hyper-sensitive)
가끔은 둔하기도 한데(hypo-sensitive),
소리, 냄새, 시각, 접촉에 아주 민감한 아들같은 어린이들을 위해서
sensory-integration 방에는
촉감, 냄새, 색깔, 디자인, 재질의 샘플들이 다양하게 비취되어서
반복적으로 샘플들을 접하게 해서, 서서히 민감도를 줄여 가는 훈련을 받았다.
그때에 아들이 제일 싫어하던 샘플들이
shaving cream, jello, pudding, 주로 냄새가 나는 젤 종류였는데
그 학교를 떠나기까지 이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리고 occupational therapists 교사들은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skills들을 가르치는데,
예를 들면, 세수하기, 이닦기, 옷입고 벗기, 신발/부츠 신고 벗기,
변기 사용하기, 식기 사용하기 등을 훈련시켰다.
아들은 이 때에 실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를 많이 습득했는데,
fine-motor skill 이 많이 뒤떨어져서
신발끈 매기나 간단하 매듭매기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지만
이때에 집중적으로 1 대 1로 체계적인 방법으로 조기교육 받은 효과는
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을 한다.
아들이 만 네살때에 캐나다로 이사를 온 후에도
계속 자폐 특수 학교를 다니면서 조기교육을 계속한 덕분인지,
아들이 만 다섯살에 큰딸이 다니던 동네 초등학교에 유치반에 입학한 아들은
남들보다 무려(?) 3년이나 일찌감치 학교 생활을 시작해서
몇달 후에 늘 진심으로 바라고 있던 말 문이 드디어 열렸다.
그동안 주입식으로 수천번씩 반복적으로 읽어 준 책 덕분인지,
1학년에 올라가서 책도 읽기 시작했고,
한 학기 후에는 삐뚤빼뚤 글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영, 스케이트, 자전거, 볼링, 배드민턴, 테니스, 농구 등 레크리에이션과
청소하기, 설겆이, 빨래 게기, 쇼핑하기 등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는데, 습득한 것보다 아직 못하는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아들이 아직 습득하지 못한 것 중 하나가
특수학교때부터 25년 전부터 시작한 신발끈 매기와 매듭 매기였다.
아들이 매주 분담한 다양한 chores 중에 하나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인데,
쓰레기 비닐백을 매는 연습을 그동안 수없이 했건만,
여전히 봉지를 매지 못해서 결국엔 다른 식구들이 해 주곤 했었다.
그런데 약 한달 전부터 드디어 이 쓰레기 봉지 끝을 매는 법을 혼자 터득해서
차고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하고, 쓰레기 수거날에 밖에 내놓기도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신발 끈 매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서
오늘 직장에서 신을 신발을 사러 가서
이번에도 신발 끈이 없는 신발을 사 들고 들어왔지만,
곧 신발끈이 있는 멋진 신사화를 살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정상인들은 당연히 스스로 알아서 배우는 수많은 것들을
30을 바라보는 아들이 20여년간을 연습을 해서 터득하는 모습에서
누구든지 재능 수준과 큰 상관없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것이 된다는 간단한 진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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