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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포르투갈

[포르투칼 여행25]오래된 알파마 동네 3편-대성당(Se)/코메리코 광장

by Helen of Troy 2017. 6. 13.




평범한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두 명의 기타리스트의 반주로 가슴 밑바닥에서 감정을 끌어내서

파도(Fado)를 식당 외부 테라스에서 열창을 하고 있다.

 

 


오래되고 평범하지만, 화사한 블루타일과 황금빛의 타일의 모습이

여전히 아름다운 아파트, 그리고 한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여인,

그리고 지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둘기가 석양 빛에 더 빛을 발하는 듯 하다.


 


바로 옆에는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벽과 굴뚝,

하지만 벽에 걸린 화분은 주인의 멋과 여유,

그리고 satellite dish와 안테나의 언발란스의 조화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다시 큰 길에서 좁은 미로 골목이 있는 오래된 동네로 다시 들어오니

2시간 전보다 훨씬 활기를 띄고 있다.




기타리스트 둘이 골목들이 만나는 조금 넓은 곳에서 가운데에 모자를 펴 놓고

포르투칼 특색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있다.




아까 약 두시간 전에 이곳을 지날 때는 손님의 거의 없었지만,

메뉴가 맘에 들어서 찜을 해 두었다가

8시 20분경에 다시 와 보니 이미 테이블이 꽉 차서

약 20분을 기다려서 겨우 자리가 난 테이블에 앉았다.




 오래되고 허름한 동네의 자그마한 광장에 있는 식당이지만,

로맨틱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우리도 젖어든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니

밤 9시가 가까우니 배가 꽤 출출해서 바로 주문을 하고 

맛난 프로투칼 산의 시원한 와인을 마시면서 파도풍의 노래를 듣고 기다리니...




다행히 약 15분 후에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싱싱한 샐러드가 

바로 상에 올라왔다.

오른편에 보이는 요리는 다양한 패류 해산물과 구운 문어 요리가

철로 만든 stand 에 걸려 나와서 특이하기도 하고 먹음짐스러웠다.




네가지 종류의 갓 잡은 생선구이와 쫄깃쫄깃한 문어구이와 오징어 구이가

침샘을 마구 자극한다.


 



 뒤늦게 저녁식사를 잘 마치고, 두둑해진 배를 가라앉힐 겸

알파마 동네 구경에 다시 나섰다.



 밤 10시가 넘자, 파도 음악을 제공하는 음식점과 Bar가 밀집해 있는 알파마 동네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토해 내듯이 짙은 paths가 담긴 파도 음악이 곳곳에서 흘러 나온다.




위의 사진 오른편에 있는 식당에서 나이가 좀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두대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서 걸죽하고 낮은 목소리로 

중독성이 강한 파도 노래를 부르면서 손님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인들에게 소개받은 파도 클럽에 가 보니

 이미 좌석이 꽉 찼다면서 기약할 수 없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면, 손님들이 나오는대로 입장할 수 있단다.

그런데 줄이 생각보다 길어서 쉽게 포기하고 다음 클럽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 파도 클럽은 자리는 있었지만,

분위기가 좀 어설픈 것 같아서 또 다음 파도로 클럽으로...

 

제법 분위기도 좋고, 노래도 좋으면 손님들이 이미 차서 못 들어가고

자리가 있으면 노래나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아서 

결국은 길가에서 목청높이 부르는 파도로 만족해야 했다.




파도 노래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환하게 불이 밝힌 대성당(Cathedral/Se) 에서도 은은한 음악소리가 새어 나와서

그 쪽으로 발을 옮겼다.




설마 밤 10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대성당이 열릴 것이라고 예상도 못했는데,

정작 안에 조용히 들어가서 뒷자리에 앉으니,

너무도 신나게도 합창단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대성당 내 오래된 피에타 상 앞에서 자연히 발 길이 멈쳐지면서 

성모님을 위한 기도가 절로 나온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합창단원들이

 밤 늦게 성당을 그득 메운 청중들에게

 르네상스 시대에 작곡된 아름다운 성가를 선사하고 있다.




 오른편 복도로 조용히 제대 앞으로 다가가서 

합창단의 성가를 제대로 감상하게 되어서 

뜻밖에 은혜스런 시간을 갖게 되어서 이 대성당의 주인공인

성모 마리아께 감사기도를 두손 모아 올렸다.


 


  1000년의 역사가 배인 성스러운 제대의 모습

 




리스본 대성당은 포르투칼어로 정식 이름은 

산타 마리아 마요르 데 리스보아 (Santa Maria Maior de Lisboa)

혹은 짧게 보편적으로 세 (Sé)라고 불리우며

리스본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리스본에서 제일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다.

 

리스본은 이미 4세기부터 리스보아 대교구의 중심으로

초기 크리스찬 시대부터 캐톨릭교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리스본은 비지고트 족이 리스본을 오랫동안 지배하다가,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북아프리카 출신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다행히 보편적으로 아랍인들은 장악한 지역의 종교활동을 자유롭게 

허용을 한 덕분에 종교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400여년간 이 지역을 지배하던 무어족들을 

포르투칼의 알퐁소 엔리케스 국왕의 이끄는 군대가 포르투칼에서 몰아내고

1147년에 리스본을 재탈환하게 되면서

제 2차 십자군 원정때에 영국에서 십자군으로 온

해이스팅의 길버트씨를 첫 주교로 임명을 하고

원래 리스본의 제일 큰 모스크(회교 회당) 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주교좌 대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첫 주교좌 성당 공사는 1147년에 공사가 시작되어서

13세기 초반에 후기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으로 완공되었다.

13세기 후반에는 디니스 국왕의 명으로 고딕 양식으로 봉쇄수도원을 추가되었고,

디니스 왕의 후계자인 알퐁소 4세 국왕 통치 중에는

성당에 고딕 양식으로 그와 왕족이 묻힐 royal pantheon을 증축했다.


포르투칼은 지속적으로 지진의 위협 지역으로 자주 피해를 입는 지역이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만 해도 큰 지진이 발생해서 피해가 이어졌지만,

제일 규모가 컸던 1755년에 리스본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서

리스본 시가지가 대부분 파손이 되었는데

이 대성당 역시 고딕식의 본당과 로얄 펜테온과 수도원이 파손되었다.


지진 후 지속적인 보수공사와 재건축 공사가 지속되다가

20세기 초반부터 단행된 대성당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 덕분에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게 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로즈 창문과 초기 고딕 양식이 잘 드러나는 성당 내부




제대 앞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목조 아이템...

어림 짐작으로 봉헌을 위한 통 인 듯 하다. 

 


제대 오른편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갠...




그리고 금소재의 램프가 제대를 장식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보수공사를 하면서 그동안 네오 클래식으로 증축된  부분을 없애고

원래 양식대로 초기 고딕식으로 복원을 해서 중세의 모습을 되찾았다.


 




육중하고 거대한 목조 대문 앞에서...



밤 10시 반의 시원한 대서양 바닷바람이 살살 부는 기분좋은 여름밤의 거리로 다시 나와서...



 



 4시간 전에 들려서 밝을 때의  Se 대성당 모습...





호텔로 가면서 가는 길에 위치한 코메리코 광장쪽으로 발을 돌려서...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인지 평소엔 분주한 바이샤 동네의 한산한 거리 모습이다.

 



차량을 통제한 길이어서 편하게 산보해도 좋고

느긋하게 쇼핑이나 식사를 할 수 있는 동네이다.




특이한 문양의 모자이크로 처리된 도봇길...

이날 저녁은 포르투칼 팀 축구경기가 없어서 비교적 조용하다. 


 


코메리코 광장과 이어지는 아치가 보인다.


 


아치 못 미쳐서 현대 디자인 박물관이 들어 서 있다.

 



아치를 통과해서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본 승전의 아치...


 


 한때 전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았던 영화와 파워가 느껴지는

바다로 이어지는 강변에 위치한 넓다란 코메리코 광장(Praça do Comércio: 상업의 광장)




마르티누 다 아르카다(Martinho da Arcada)


아치와 붙은 건물 끝에는 리스본에서 제일 오래된 카페인 마르티투 다 아르카다가 있는데,

1782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카페로 시작해서 오랫동안 포르투칼의 작가, 예술가와 정치가들이

모이는 장소로 잘 알려졌다.



다음날 오전에 유서깊은 이 카페에 와서 카푸치노와 수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타르트 맛을 보았다.




한적한 광장 뒤는 바로 테이주 강(Rio Tejo) 이 흐른다.






코메리코 광장(Praça do Comércio: 상업의 광장) 은

'테레이로 도 파소'(Terreiro do Paço: 궁전 광장)라고 시민들은 부르기도 한다.

그 이유는 1755년에 리즈보아에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약 200년동안

왕과 왕족이 살던 리베이라 궁전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궁전이 파괴되자, 이곳에서 서쪽에 있는 안전한 Belem으로 옮겨 갔다.


이 광장은 16세기 초반에 궁전 공사가 시작되었고,

얼마 후, 아프리카, 유럽, 남미 그리고 아시아에 소재한 포르투칼의 여러 식민지와

무역거래를 위한 항구 공사가 함께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지진 후에 완전히 파괴된 이 지역은 궁전을 제외하고

폼발 후작의 진두지휘로 현재의 모습처럼 새로운 건축공사가 단행되어서

새롭게 단장한 이 곳과 인접 지역을 폼발 다운타운 혹은 Baixa(바이샤)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광장은 포르투칼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 에우제니우 도스 산토스가 디자인했으며,

규모는 170 미터 x 170 미터에 달하며,

광장 주위 건물은 정부 청사와 항만공사 사무실로 들어 서 있다.

 광장 한 가운데는 14미터에 달하는

말탄 조제 1세 왕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한편, 이 광장은 포르투칼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국왕이었던

카를로스 1세왕이 1908년에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것을

지지하는 자들에 의해서 암살된 장소이기도 하다.

암살 사건 2년 후에 결국 왕정은 폐지되고 프로투칼 공화국이 되었다.




이렇게 한적하고 적막감이 돌던 광장은
바로 다음날인 6월 30일 2016년 UEFA  축구대회 준준결승전에서
포르투칼이 폴란드를 페날티킥 차기로 극적으로 우승을 한 직전에
몰려든 리스본 시민들로 그득 찬 코메리코 광장은 완전 축제모드로 돌변했다.

 


 광장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축구 경기를 관전했던 우리는 환희에 찬 군중들을 쫓아서

이 광장으로 다시 와 보니 어제와는 완전 딴판으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환호하는 관중들 사이에 조제 1세 국왕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라이브 밴드의 신나는 음악은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고...




 밤 12시가 지나도 그 열기가 가시지 않는다.






 

 


이렇게 축구경기에 승리해서 기뻐하는 국민들을 내려다 보는

조제 1세 국왕님도 기뻐하실 것 같다.



승전 아치는 1875년에 완성되었으며, 

아치에는  영광(glory), 독창력(Ingenuity), 용맹(Valor)을 상징하는 주제와

그리고 포르투칼의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는 

바스코 다 감바, 누노 알바레즈 페레이라, 비리아투스 그리고 폼발 후작의 동상과

시계로 디자인되었다.


 



아치에서 바이샤 동네로 이어지는 넓은 아우구스타 길(Rua Augusta) 길을 걸어서 호텔로 향했다.

 



밤 11시가 되어도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망고맛의 아이스크림 두 스쿱과...



 포르투칼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에그 타르트 2개를 사 들고

아이스크림과 번갈아 먹으면서 11시를 넘기고서야 호텔로 들어가서

리스본에서의 긴 하루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