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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포르투갈

[포르투칼 여행45]역사와 문화, 교육의 도시 쿠임브라의 오래된 거리에서(Coimbra/Portugal)

by Helen of Troy 2018. 5. 5.




유서깊은 쿠임브라의 Largo da Portagem 광장




 

 

3일을 머물렀던 아름다운 해변과 최고의 파도를 자랑하는 나자레에서 

아침 일찌감치 8시 반 버스를 타고 

나자레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쿠임브라로 떠났다.



 


쿠임브라(Coimbra)는 나자레에서 110 km

포르투칼의 수도 리스보아에서 약 22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버스에서 바라 본 쿠임브라 도시를 가로 질러서 흐르는 몬데구 강(Mondego River)이

눈에 들어 와서, 드디어 쿠임브라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쿠임브라의 오래된 골목에 위치한 미리 예약해 둔 

비토리아 호텔에 짐을 풀고 간단히 차려 입고 쿠임크라 구경에 나섰다.


 

 


포르타젬 광장 꽃밭






쿠임브라(Coimbra)


쿠임브라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교육의 중심도시로

인구는 약 15만명으로 아담한 중소도시이다.

무어족들이 8-12세기 사이에 포르투칼만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할 동안 포르투칼의 중심에 위치한 쿠임브라가 수도로 제정되었다.


그러다가 포르투칼이 14세기부터 해양제국으로 발돋음하게 되면서

내륙도시인 쿠임브라보다 해안도시인 리스본과 포르투가 각광을 받기 시작해서

결국 포르투칼이 신대륙과 동양으로 오가는 해운도시로 적합한 항구도시 리스본으로

수도가 옮겨져서 최고의 도시의 자리를 내 주면서, 정치적인 입지는 줄었지만

1290년에 포르투칼 최초로 대학교가 설립이 되면서

역사 문화와 교육의 도시로 여전히 포르투칼의 주요도시로 남았다.


쿠임브라는 8세기부터 이곳에 침입했던 무어족의 문화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친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

1,000여년의 도시의 역사의 변천사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포르투칼의 전통음악인 파두를 다른 지역과 달리

나이든 여자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남자 대학생들이 주로 불러서

색다른 분위기의 파두 음악을 들을 수 있기도 하다.


1064:  무어족들에게 쿠임브라를 장악

1139:  포르투칼의 첫 국왕 알퐁소 엔리케즈가 쿠임브라를 수도로 제정했다.

1211:  포르투칼의 첫 의회(Cortes)가 개최되었다.

1290:  쿠임브라 대학교의 설립

1256:  리스본이 포르투칼의 수도로 대체되었다.

1308:  리스본에 1290년에 설립된 대학교가 쿠임브라로 옮겨졌다.

1537:  쿠임브라 대학교는 리스본으로 다시 잠시 옮겨졌다가

           예수회가 관리하게 되면서 영구적으로 쿠임브라에 정착했다.

1810: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쿠임브라를

           얼마 후 영국의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 군인들이

           프랑스 군대를 도시에서 몰아 내었다.

1928:  쿠임브라 대학교에서 정치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던

           안토니오 살라자르(Salazar)씨가 경제부 장관을 거쳐서

           포르투칼의 장기간 집권한 독재자가 되어서

 포르투칼의 발전을 더디게 했다.








광장에는1830년대에 쿠임브라 시장을 역임했던

조아킴 안토니오 데 아귀아르 동상이 서 있다.

그는 1834년에 이 도시의 수도원과 수녀원을 강제로 문을 닫게 해서

"수사 저격수"라는 닉네임이 붙여졌다.





광장 끝에는 포르투칼 은행 그리고 뒤에 아스토리아 호텔이 보인다.





보르제스 길(Rua F. Borges)로 들어서니

모자이크로 마무리된 보도 양편에 카페와 다양한 아이템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 서 있다.

















성 바르톨로메우 성당(St. Bartolomeu Church)


원래 성당은 10세기에 지어져서,

12세기와 18세기에 보수공사를 거쳐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고,

성당 내부는 바로크 형식을 장식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다른 건축 방식과 디자인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서로 조화스럽게 잘 공존하는 것이 그저 멋지고 푸근하다.





성 티아구 성당





성 티아구 성당(St. Tiago Church)


이 성당은 12세기 후반 산초 1세 왕 시대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서

거의 1,000년된 오래된 교회로

19세기에 보수공사 덕분에 지금도 본당 성당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아담하고 소박한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동네 신자들이 기도를 바치고 있다.





여행 중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잠시 앉아서 감사기도도 드리곤 하는데

우리도 이들과 함께 잠시 기도를 받쳤다.

왼편에...




오래된 성모 마리아 아이콘이 놓여져 있다.






성당 입구에 새겨진 조각들에 긴 세월의 흔적들이 보인다.










성당 옆에 조그만 광장에 특색있는 빌딩들이 오밀조밀 빽빽하게 들어 서 있다.

수백년 전에 지어진 빌딩에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부럽다.






1,000년 된 교회가 21세기에 여전히 근래에 지어진 건물 사이에

보존되어서 똑바로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럽고 아름답다.









Da Luz 길 위를 걸으면서...





성 이사벨 여왕#1

우연히 들여다 본 가게 쇼 윈도우에 장미와 

아름다운 여인상이 전시되어 있어서 처음엔 성모 마리아 상으로 착각했다.





안경가게의 성 이사벨 #2

그리고 눈여겨 보니 다른 가게 쇼윈도에도 비슷하게 꾸며져 있어서

보이는대로 카메라에 가게마다 개성있는 display를 담아 보았다.





부티그 가게의 성 이사벨 #3

주인의 취향과 개성이 돋보이는 다양한 이사벨 여왕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점점 흥미로워져서 가게마다 아리따운 여인부터 눈길이 가고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목욕탕과 부엌 용품 가게의 성 이사벨 여왕 #4






어는 가게 윈도우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고서야 

그제저야 아름다운 여인의 내력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포르투칼을 방문했던 2016년이 바로 이사벨 여왕이

복자로 추대된지 500주년이 되는 해가 되어서 

포르투칼을 위해서 여러모로 애 쓴 이사벨 여왕 복자를 기리기 위해서

가게들과 가정집마다 화사한 장미꽃과 함께 이사벨의 상을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한 것이다.






Rainha Santa Isabel (성 이사벨 여왕/성 엘리자베스)


아라곤의 엘리자베스, 포르투칼의 엘리자베스라고 알려진 이사벨 여왕은

 (로맨스 언어권에서 이사벨은 엘리자베스와 같은 이름이다.)

1271년 스페인의 아라곤 왕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베드로 3세 왕과 알퐁소 2세, 아라곤의 제임스 2세 왕,

시실리아의 프레데릭 3세 왕의 여형제이자

시실리아 출신 콘스탄자 여왕의 딸로 태어났다.


이사벨은 많은 아라곤 왕족이 그러했듯이 독실한 캐톨릭 신자의 삶을 살아서

다수의 성인을 배출했는데

그녀 역시 어려서부터 스스로 매일 두번 합창 미사에 참석하고,

기도와, 금식과 회개를 실천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사벨이 10살 되던해인 1281년에 포르투칼의 데니스 왕과 

미리 정혼이 결정되어서 혼인 예물로 포르투칼의 오비두시, 아브란테스와

포르투 데 모스 도시를 받았고, 7년 후인 1288년에 

당시 26세의 데니스 왕과 결혼했다.  데니스는 결혼 초반엔 신부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얼마 후 다수의 여인들과의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사벨에 관한 나쁜 루머를 퍼트린 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여왕의 그에 대한 사랑과 신앙심을 알게 된

데니스 왕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고, 아내를 존경하게 되었다.

데니스가 말년에 병으로 신음할 때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펴 주었고,

데니스가 세상을 떠난 후 11년을 더 살은 그녀는

더욱 더 신앙생활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어릴때부터 해 오던대로

계속해서 굳건한 신앙생활를 지속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서 살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은 이도 많았다.


그녀는 포르투칼 정치에도 깊게 관여해서,

1297년에는 포르투칼의 데니스왕과 스페인의 산초 4세 왕이

두 국가의 국경을 합의하는데 중재자로 큰 공헌을 했고,

1304년에는 데니스와 이사벨 여왕은 그녀의 남자 형제이자

카스틸 왕가의 페르난도 4세 국왕과 아라곤 왕가의 제임스 2세 국왕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중간에서 중재해서 스페인 내전을 사전에 막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1322-1324년에 남편 데니스 왕과 알퐁소왕 간의

왕위 계승문제로 내전이 발생했을 때도 

 1323년에 두 군대가 대치하고 있던 알발라데 평원에

이사벨 여왕이 나귀를 타고 두 군대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자

얼마 후 1324년에  평화가 다시 돌아 왔다고 전해 온다.


그녀는 1516년에 복자품(beatified) 을 받았고,

1625년 5월 25일에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반 8세에 의해서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그녀를 기리는 축일은 7월 4일로 정해졌다.








성 이사벨 여왕 #5

손 뜨게질로 만든 레이스와 장미와 인상적이다.






성 이사벨 여왕 #6


우연의 일치인지 우리가 쿠임브라를 방문했던 7월 4일이 바로

그녀가 복자로 서품받은지 500 주년이자

성녀 이사벨(엘리자베스)의 축일이었다.





Da Luz  길 끝에 자그마한 Praca 8 de Maio(5월 8일 광장)이 눈에 들어 온다.





버스킹을 하는 두 부자...

꼬마녀석의 실력이 꽤 높고 끼가 다분히 엿보인다.





광장 오른편(동쪽)에 산타 크루즈 성당이 보인다.





성당 건너편에 들어 서 있는 건물들...





광장 북쪽...





옷 가게의 성 이사벨 여왕 #7





각 건물다다 독특한 문양의 타일들로 꾸며져 있다.

화사한 꽃 무늬도 타일도 있고...





현대적이며 기하학적인 문양도 있고...






흥미롭고 유머러스한 고양이 모양을 한 성 이사벨 여왕 #8


이 디스플레이 역시 손으로 만든 레이스와 장미꽃들로 꾸며져 있는데,

후에 쿠임브라와 손뜨게질 소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털실 가게 내의 성 이사벨 여왕 #9

털실로 뜨게질한 장미들이 생화만큼 아름답다.










성 이사벨 여왕 #10


약과 화장품을 파는 가게의 이사벨은 특이하게 실타래로 만들어져서 

창의성과 아름다움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성 이사벨 여왕 #11


베이커리 윈도우의 이사벨은 가게와 걸맞게 갓 구워서

매일 끼니때마다 오르는 포르투칼 Buns 로 꾸며져 있어서 얼굴에 큰 미소가 절로 걸린다.







건물 발코니에도 성 이사벨을 기리는 수예품이 걸려 있는데,

몇대째 내려 온 듯한 오래 되어 보이고

자세히 보니 직접 손으로 곱게 수를 놓은 작품들이었다.






여왕의 관을 쓰고, 수녀님의 옷을 입은 성 이사벨 #12







선물 가게 위에 창문 가에도 손으로 뜨게질해서 만든 장미들이 걸려 있다.






마침 포르투칼 전통 페이스리를 파는 베이커리가 보여서

바로 들어가서 맛을 보기 위해서 진열된 페이스리 하나씩 사서

가방에 넣고 출출할 때마다 먹으면서 돌아다녔다.






부엌 용품 가게의 성 이사벨 여왕 #13







달달한 것을 실컷 먹고 행복해 하는 헬렌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