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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포르투갈

[포르투칼 여행48]포르투칼 역사와 함께 시작된 舊 주교좌 성당 (Coimbra Old Cathedral)

by Helen of Troy 2018. 5. 26.




오래된 구 주교좌 성당 벽에 설치된

무어인들의 영향이 고스란히 배인 정교하고 화려한 타일





구 주교좌 성당 (Coimbra Old Cathedral – Sé Velha de Coimbra)





처음 구 주교좌 성당을 방문했을 때에 방문시간이 지나서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방문하니

성당 입구 계단에 두 잘 생긴 남자들이

멋진 목소리로 포르투칼의 파두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포르투칼의 전통음악인 파두(Fado)는 주로 나이가 든 여성들이 

한맺힌 목소리를 부르는데

쿠임브라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주로 부르는 풍습이 있다.


이 두 남성들은 성당 뒤 언덕위에 위치한 쿠임브라 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으로 이렇게 여름에 알바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흥많은 두 아줌마들이 그들의 음악에 즉흥적으로 노래와 춤을 추고 있다.





자그마한 성당 앞 광장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음악을 즐기고 있다.






쿠임브라 구 주교좌 성당(Sé Velha de Coimbra)


쿠임브라는 로마제국이 포르투칼을 지배하던 5세기부터 교구의 중심이자

교구의 우두머리인 주교님이 머무는 주교좌 성당이 있는 신성시여겼던 도시였다.

포르투칼을 장악한 무어족들이 이 곳에 있던 초대 교회를 부수고

8세기에 이슬람 회당(Mosque)를 건축했다.


1139년에 오우리케 전투에서 무어족을 몰아 내고

포르투칼을 재탈환해서 포르투칼의 첫 왕에 오른 알퐁소 엔리케 왕은

쿠임브라를 수도를 정하고, 수도에 걸맞는

  새로운 주교좌 성당을 건축하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성당 건축공사가 시작되어서 1184년에 봉헌식을 가졌다.


포르투칼의 두번째 왕으로 등극한 산초 1세 국왕의 대관식이

1185년에 이 성당에서 거행되었고,

알퐁소 2세 통치중이던 1218년부터 성당의 회랑(cloister)공사가 시작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주교좌 성당은 로베르 장인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베르나르에게 그리고 소에이로 넘겨져서 완공을 보았다.


16세기에 들어서서 대대적인 증축공사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채플, 기둥, 중앙복도과 벽을 아름답고 정교한 타일로 마무리했고,

북쪽 입구에 Porta Especiosa 문과 남쪽에 Apse가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증축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남았다.


쿠임브라 주교좌 성당은 포르투칼에서

포르투칼 재탈환 시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어서

당시의 건축양식이 거의 그대로 남은 유일한 성당이기도 하다.


18세기에 폼발 후작이 포르투칼에서 예수회 소속 성직자들을 추방하기 시작한지

얼마 후인 1772년에 새로운 주교좌 성당으로 교구장 자리를 옮겨갔다.


성당의 외관 모습은 성당이기보다는

톱니 모양의 벽과 소수의 작고 기다란 창문 덕분에

외부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서 지어진 성 요새(fortress)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는 무어족들으로부터 공식적인 재탈환 후에도

크고 작은 습격들이 이여졌기에 성당뿐 아니라

피신할 수 있는 요새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성당 입구에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기둥들이 거대한 벽을 지탱해 주고 있다.







유중한 대문을 넘어서 성당 안에 들어서니

900년 전에 지어졌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원형이 잘 보존된

교회 내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성당 입구에 엄청나게 큰 조개로 만들어진

세례식에 물을 담아서 사용되는 커다란  Baptismal Basin이 눈길을 끈다.

이 거대한 조개는 19세기에 스리랑카가 이 성당에 선물한 것이다.






성당 오른쪽의 높은 벽은 오리지날 타일로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무어족의 기술과 문양이 이 구 주교좌 성당의 벽 앞에

아기 천사들에 둘려쌓인 성모님 상이 서 있다.





우선 1218년에 건축된 회랑(cloister)부터 구경하기로 하고 회랑쪽으로 이동했다.





여행중에 많은 사람들 사이로 바쁘게 이동하면서 구경하다가도

우선 조용하고, 고즈넉한 회랑은 늘 좋은 안식처를 제공해 주어서 즐겨 찾게 된다.

 21세기의 바깥 세상에서 몇 발자국만 움직여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800년 전인 13세기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고풍스럽고 평화롭다.






15-16세기에 조르제 데 알메이다 주교님에 의해서

회랑을 전반적으로 꾸미기 위해서 대대적인 공사때에

무어족의 손길이 느껴지는 화사한 색상과 기하하적인 모티브가 있는 타일을

스페인 세비야에서 들여 와서 기둥과 벽 그리고 복도를 꾸몄다.





사막이 있는 지형에 살았던 무어인들에겐 건물 한 가운데에

분수와 그리고 푸른 초목이 있는 정원은 그들이 꿈꾸는 천국을 상징하는데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성당의 회랑은 그 영향을 받아서 

회랑 가운데에 분수가 늘 자리하고 있다.














쿠임브라의 첫 도지사였던 

다비데스 세스난두(Davides Sesnando, 1064-1091)의

소박한 석관이 회랑 한 쪽에 안치되어 있다.









비교적 단단하지 않아서 쉽게 조각하기 쉬운 석회암으로 지어진 회랑 벽은

산성과 공해에 약해서 근래에 들어서 마모현상이 가속된다고 한다.





800년 전 회랑을 건축할 당시에 안치된 두 소박한 석관이 

사후에도 나란히 함께 하고 있다.





700여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제대

제대 뒤에 사용된 다양한 암석과 제대를 꾸민 화려한 타일이 여전히 감탄스럽게 해 준다.





회랑 뒤 성당 외벽은 마치 중세의 견고한 성채를 연상하게 한다.





주교좌 성당과 회랑에는 크고 작은 기둥들이 들어 서 있는데

기둥의 윗부분인 주두(柱頭)는 주로 식물 디자인과 기하학적인 모티브로 조각되었다.











다시 성당 안으로 발을 옮겨서...


성가족 상





성당 바닥 군데군데에 성당 바닥 지하에 묻힌 이들의 묘비가 놓여져있는데

대부분 수백년간 마모되어서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에 어려운데

이 묘비는 100년 전에 재설치되어서 무덤의 주인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성당의 오래된 천장





나무로 정교하게 조각된 성모님 채플내의 성모님






채플 내의 아름다운 촛대와 타일






소박한 스테인트 글라스 창으로 뜨거운 남국의 여름 햇빛이 스며든다.





17세기에 제작된 성 세바스천 유화작품





그 아래에는 14세기에 설치된 에스테바옹 브로차르두 주교님의 무덤이 있다.






비잔틴 왕국의 공주이자 성녀 이사벨 여왕의 시녀였던

베타사 공주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고,

그 위에는 17세기에 그려진 성 안토니오 작품이 걸려 있다.


그녀의 관은 비잔틴 왕국의 심볼인 머리가 둘인 독수리 조각상도 함께 하고 있다.





1625년에 성녀로 추대된

성녀 이사벨 여왕을 위해서 17세기에 헌정된 채플과 제대위에

그녀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13세기에 안치된 티부르시오 주교님의 석관도 이 채플 내에 있다.





이 Baptismal Font (세례식 분수)는 

고딕-르네상스 양식으로 1520년에서 제작되었고,

알메디나의 요한 성인 교회에서 이곳으로 들여 왔다.


오리지날 세례식 분수는 새 주교좌 성당에 자리잡고 있다.





남쪽 채플

이 채플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1566년에 재건축된 이 채플 안에는

조각가 조아옹 데 루아옹(Jean of Rouen)가 제작한

예수님과 사도들이 새겨진 제대 작품이 있다.





예수님과 12사도 제대 조각품(위)





예수님과 12사도 제대 조각품(아래)





중앙 제대 뒤 조각품(Retable)


이 제대 조각품은 1498년에서 1502년 사이에 나무 소재로 

네덜란드 출신 올리비에 데 간트 와 장 디프레가 고딕양식으로 제작했다.

이 조각품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묘사되어있으며,

이는 포르투칼에 존재하는 최고 목재 제대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대 조각품 꼭대기





제대에서 바라다 본 입구쪽





성 베드로 채플


제대 위 조각상은 16세기 초반에

프랑스 출신 조각가 니콜로 샨테린가 

쿠오 바디스(Quo Vadis)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구 주교좌 성당은 정교하게 조각된 380개의 주두(capitals)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들은 포르투칼에 남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품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Tomb of Jorge de Almeida bishop(1483-1543) patron of this cathedral

이 대성당의 수호성인이신 조르제 데 알메이다 주교님의 무덤





주교님이 안치된 관 뒤의 아름다운 무자데르 타일






다른 성당과 달리 이 성당엔 성경에 나오는 스토리나 인물을 묘사한 조각품이 

전혀 없는 것이 특이하다.

그 이유는 이 성당 건축에 투입된 예술가들의 대부분이 모자라빅(Mozarabic)으로

그들은 아랍인들이 사는 지역에 살았던 크리스찬들이

12세기에 쿠임브라로 이주해서 정착한 이들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인간의 형상을 조각하거나 그리는 행위가 금지되었기에

다양한 성인들이나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각해 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17세기에 제작된 우르술라 성녀의 그림이 걸려있고,

그림이 걸린 뒤의 벽은 16세기에 제작된 무데자르(무어인들 양식) 타일로 장식되었다.











성당 안에서 본 북쪽 대문

이 대문 역시 아랍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타일로 꾸며졌다.





성당 바닥에 새겨진 포르투칼 왕가의 coat of arm






또 다는 주교님의 무덤





2층으로 디자인된 내부의 아름다운 아치와 컬럼(기둥)











북쪽 파사드( North façade)의 대문(Porta Especiosa) in the North façade.

3층으로 지어진 이 북쪽 facade는 1530년대에 조아웅 루아웅이 제작한 아름다운 대문이다.






북쪽 대문 옆에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앞에 "천년된 올리브 나무" 라고 새겨진 돌이 서 있다.

성당의 나이보다 더 많은 천살이 넘은 귀중한 나무이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