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아에 위치한 웅장하고 아름다운 에탈 수도원 성당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도착해서 성당이 닫혔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입구로 급하게 다가갔다.
에탈 수도원의 건물 플랜
육중한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 가 보니
다행히 6시 미사가 거행되고 있어서 성당이 여전히 열려 있었다.
미사는 비잔틴 풍습대로 약 열두명의 신부님들이
말 대신에 전부 라틴어 성가로 미사가 집전되고 있어서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돔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지만, 특이하게도 12각형의 모양을 띄고,
직경 25.3 미터이며, 2층으로 되어있다.
12각형 모양으로 디자인 된 이 수도원은
1618년에서 1648년 사이에 벌어진 30년-전쟁 중에 피해를 피해 갔지만,
불행하게도 개혁시기 중에는 색소니의 모리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서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되었다.
에탈 수도원(Kloster Ettal)은 독일의 남부 바바리아의
오베라메르가우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 수도원이라고도 불리운다.
프레스코 양식으로 완성된 천장 벽화는
요한 야콥 차일러(Zeiller)씨의 작품이다.
근래에 이 수도원은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을 찾는 명소로 자리잡게 되면서,
수도원 주위에 농장, 여관, 호텔, 보딩 스쿨등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수도원이 직접 경영하는 양조장과 유명한 출판사도 이 곳에 위치해 있다.
에탈 수도원은 바바리아 공화국의 루드비히 왕에 의해서
밀란의 성 비탈리스 축일인 1330년 4월 28일에
이탈리아의 베로나와 아욱스부르크 사이의 주요한 무역로인 그라스방에 설립되었다.
이는 그가 로마에서 거행된 그의 대관식에서 돌아 오는 길에
수도원을 설립할 것을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백소
성당 오른편
수도원 공사는 1330년부터 1370년 사이에
고딕양식으로 검소하게 지어져서
1370년 5월 5일에 폴 주교님에 의해서 축성되었다.
제대 위의 그림
제대 가운데에 성체를 모신 곳
전설에 따르면 루드비히 왕의 말이
오리지날 성당이 있던 위치한 곳에서 세번 무릎을 꿇었는데,
마돈나와 아기 예수 동상("Frau Stifterin" or the "Ettal Madonna")도
이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루드비히 왕은 이탈리아 피사에서 이 동상을 들여와서
새로운 수도원에게 기증하게 되면서
타지역에서 온 많은 순례자들이 이 성당에 모여 들기 시작했으며,
이 성당은 승천하신 성모님께 헌정되었다.
18세기에 접어 들면서 이 수도원은
플라시두스 자이즈 (Placidus Seiz II) 가 수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설립한 '기사들의 아카데미 (Ritterakademie)' 덕분에
주요 교육 기관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수도원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1744년에 수도원과 수도원 성당은 화재로 유실되면서
스위스-이탈리아 출신 건축가이자 유명한 베르니니의 제자인
엔리코 주칼리가 설계를 맡아서 바로크 스타일로
'double-shelled dome' 신축공사가 진행되었다.
입구 그리고 그 위에 파이프 오르갠
수도원 성당 내부는 요세프 슈무츠(Schmutzer)가 맡았고,
제대, 제의방과 성가대석은 요한 세자 슈트라우브(Straub)가,
아름다운 천장 프레스코 벽화는 요한 야콥 차일러(Zeiller)씨의 작품이다.
고백소
성당이 완공되면서 성당의 위상은 높아져 갔고,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게 되면서
알프스 산간지방에서 최고의 수도원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안 챈트로
젊은 신부님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대의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신다.
바바리아 지역의 교회와 교회 재산이 세속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1803년에 수도원은 폐쇄되었고,
1809년에 요세프 폰 엘빙(Elbing)이 수도원과 대지를 사들였다가,
1856년에 엘빙의 후손들이 파펜하임(Pappenheim) 백작에게 팔아 넘겼다.
새 주인이 된 파펜하임 백작은 성당 앞 부분과, 2개의 종탑 보수공사를 단행했다.
1898년에 수도원 건물은 다시 테오도르 폰 크라머-클렛(Cramer-Klett)공작에게 팔렸는데,
그는 샤이에른 베네딕토 수도원에게 이 건물을 기부했다.
그래서 1900년부터 바바리아의 베네딕토 수도원 연합회의 멤버가 되었고,
1920년에는 수도원 성당은 부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41년에 존경받던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Bonhoeffer) 신부님이 수도원장의 손님자격으로
몇달간 머물렀는데, 그처럼 에탈의 주민들은 히틀러에 항거하는 운동이 활발했다.
루퍼트 마이어 신부는 나치에 반대하는 강론을 하지 못하도록
종전까지 6년간 가택감금 형을 받기도 했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제대 앞으로 다가 가 보았다.
요하네스 훽(Hoeck) 에탈 수도원장이 기부한 거금으로
원래는 아우구스틴 수도원이었던 색소니 지방에 위치한
베흐젤부르크(Wechselburg) 수도원을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1993년에 재설립했다.
참고로 에탈 수도원은 지금까지도 비잔틴 수도원으로 남아있다.
성당 입구 근처에 놓여진 아주 오래되고 특이한 디자인과 소재로 만들어진 헌금함
성당 양쪽으로 수도원 건물과 고등학교가 들어 서 있다.
이 수도원은 직접 경영하는 맥주 양조장, 서점, 미술책자 출판회사, 호텔,
치즈 제조공장등에서 만들어진 기금으로 자체내로 경비를 조달하고 있다.
특히 유명한 에탈 클로스터 리큐어(Ettaler Kloster Liqueur)와다수의 허블 리큐어와
에탈 맥주(Ettaler Klosterbiere)도
이 수도원 양조장에서 만든 제품들이다.
성당 입구 중간은 convex(볼록모양) 디자인으로 1894-1901년 공사때에 완성되었다.
입구 위에는 다수의 기둥들이 바로크 스타일로 지어진 돔을 지탱해 주고 있다.
입구 양쪽에는 다른 모습으로 1563년에 완성된 두개의 종탑이 있다.
수도원은 여전히 리터아카데미 전통을 이어받은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언어학, 다양한 인문학에 중점을 두고 학생을 교육하고 있으며
다수의 유명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수도원 마당으로 들어가는 재미난 대문 앞에서...
수도원 성당 건너편에 위치한 바바리아 특유의 호텔이 눈길을 끈다.
continue on to Oberammerg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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