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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스페인

[스페인 여행38]그라나다의 추억을 다시 더듬어 보면서... (주말 드라마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보고)

by Helen of Troy 2018. 12. 10.



눈이 덮힌 시에라 네바다 산을 배경으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그라나다의 오래된 알바이신 동네에서 바라다 본 모습





2010년 7월 4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기차를 타고 해바라기가 만발한 벌판을 가로 질러서

그라나다로 이동하면서...





언덕 위에 오래된 성도 지나가고...





사막성 기후 덕분에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유일하게 자라는 올리브 트리 밭도 지나고...






2010년 8월이 결혼한지 25주년인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해서

어떻게 기념을 할지 남편과 몇달간 궁리하다가,

늘 동경하는 유럽으로 한달간의 여행을 떠나기로 어렵게 결정했다.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 남부를 가로지르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은

해발이 2,712m이 달하는 고원 지방이라서

한 여름에도 산 꼭대기엔 만년설이 늘 보인다.



결혼해서 셋을 키우면서 큰 직장의 임원직으로 일을 하기도 했고,

자폐 장애를 가진 아들까지 키우다 보니

가족이 함께 1주일을 다녀 오는 것도 힘에 부치곤 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자폐 증세가 심해서 

부모인 우리는 괜찮지만, 아직 어린 두 딸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매년 남편과 내가 번갈아서 모든 오감이 아주 민감한 아들을 집에 두고

딸들만 데리고 딸들이 원하는대로 맘껏 즐길 수 있는 여행을 

매년 두세번 다녀오곤 했다.




기차 창으로 멀리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을 

카메라의 줌을 땡겨서 보인 눈덮힌 산



직장에서 한번에 2주 이상 휴가를 얻기에도 쉽지 않고,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때문에 늘 대기상태이다 보니

그래서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집안행사를 빼고는

부부만 따로 여행을 한 적이 없었던 터에,

두 딸이 집과 아들을 걱정말라면서 은혼식 여행을 다녀 오라고 등을 떠밀어서

못 이기는 척 신혼여행 후 처음으로 부부여행을 떠나서,

스페인에서 19일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10일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스페인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그라나다


마드리드는 예전에 이미 두번 다녀 가서 바르셀로나에서 5일을 보내고,

세비야에서 7일을 보내면서, 코르도바와 카디즈를 다녀 온 후

세비야에서 기차를 타고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기대보다 역이 작은 그라나다 기차역 플랫폼





아담한 그라나다 기차역








그라나다는 스페인의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역내에 소재한

주 이름이기도 하고, 주 수도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라나다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고,

다로(Darro), 헤닐(Genil), 모나칠(Monachil)과 베이로(Berio)

4개의 강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라나다 도시의 인구는 약 25만명이다.


그라나다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알함브라는

안달루시아 지역을 수백년동안 지배했던 이슬람교도의 무어족이 건설한

성이자 궁전으로 스페인에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서

미리 예약을 해야만이 입장할 수 있다.


그라나다의 또 하나의 명소는 그라나다의 오래된 동네인

알바이신 동네로, 1,000여전의 모습으로 보존된 동네이다.

그리고 유서깊은 그라나다 대학교도 잘 알렸는제,

82,000명의 학생들이 5개의 캠퍼스에 재학하고 있는 대학교이다.


그라나다는 이미 기원전 1500-2000년 경부터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살았던 흔적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도시이다.

기원전 1,000년 경에는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거주하면서

주로 무역과 어업에 종사했으며,

기원전 550년에는 북 아프리카 출신인 카르타고인들이 

페니키아인들을물리치고, 이 지역의 무역과 상업을 장악했다.


300년이 지난 후, 로마 제국이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장악하게 되면서

'일레리스'로 명명되었다가, 로마제국이 멸망하게 되자,

5세기에 비지고트족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비지고트 지배하에 있을 때에 그라나다는 인구와 크기가 증가했으며,

기독교 세력이 넓어지면서, 중요한 군사의 도시로 부상했다.

이 시기에, 유태인들이 거주하는 작은 동네가 생겨났다.


200년간의 비지고트족의 지배가 막이 내리고,

711년에 북 아프리카 현재의 모로코 출신 무어족의 

타리크 칼피프가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면서

713년에 그라나다도 무어의 통치하게 놓여진다.

무어인들은 그라나다를 일빌라라고 명명된 후,

300년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010년에 무어인들간의 세력다툼으로 도시가 거의 멸망의 위기에 처해졌다가,

1013년에 원만하게 타결 후, 지리스(Ziries) 왕조가 세력을 장악했다.

지리스 왕은 모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당시 그르나타(Grnata)라고 불리우던 이 곳에 그의 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나서 지리스는 도시를 외부의 침입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도시의 중심을 시에라 엘비라 언덕에서 알바이신 동네로 이동했다.

지리스 왕조는 그 후 200년간 이 지역을 지배하는 동안

알바이신 지역은 계속 발전해 나갔다.


1238년에 나자리 왕조가 지리스 왕조를 몰아내고

그라나다, 말라가, 알메이라 지역과

코르도바 세비야, 카디즈와 잰의 일부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유명한 알하브라 궁전, 헤네랄리페 정원과

알바이신 동네를 포함한 그라나다의 건축공사가 진행되었다.


13세기에 나자리 왕조의 이븐 알-아마르 왕은 스페인의 페르단도 3세 왕과

조공을 받치고 속국으로 남겠다는 조약을 맺은 덕분에

스페인 전역이 페르디난도와 이사벨에 함락이 되었지만,

1492년 1월 2일까지 버티게 되면서

스페인의 마지막 무슬림 왕국이 되었다.


크리스찬 스페인인들이 그라나다를 장악한 초반에는

그라나다에 수백년간 거주하던 무어인들과 그들의 풍습을 존중해 주다가,

1499년에 시스네로스 주교가 모든 무슬림인들에게

크리스찬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종용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무슬림인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했고,

그들의 언어나 복장을 입는 것을 금지하고 스페인어만 사용하게 했다.


1568년에 업박받던 무어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스페인군대에 진압이 되고, 

반란에 참가했던 무어인들은 추방되었다.

그라나다 역사에 크게 공헌하고 유서깊은 그라나다 대학교도 

칼로스 5세가 통치하던 1531년에 설립되었다.


그 후 300년간 그라나다는 스페인이 새로 얻은 식민지에서 들여 온

황금 때문에 스페인의 주요도시로 성장하게 되었고,

18세기부터 프랑스와 영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그라나다의 '엘 살른'과 '라 봄바' 동네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810년에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하면서 그라나다의 역사도 바뀌게 된다.

2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그라나다는 정치적으로 불안하게 되었고,

스페인 왕조에 반기를 든 첫 도시가 되었다.

남은 19세기에 계속해서 그라나다는 왕조에 대항하면서,

스페인 공화국을 지원했는데, 경제불황과, 

1884년에 발생한 지진, 그리고 1885년에 콜레라 발병으로 어수선했다.


20세기에 들어 와서도 스페인과 그라나다는 여전히 경제불황이 이어졌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등을 포함해서 많은 예술인들이

그라나다에 거주하면서 활동하게 되면서 예술의 중심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서도 정치적으로 계속 불안해지다가

급기야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고,

프랑코 장성이 세력을 장악해서 그가 1975년에 사망할 때까지

독재자로 스페인을 장기 통치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그동안 상류층의 자제만 다니던 그라나다 대학교에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도 다니게 되면서 규모가 크게 확장되면서

학생들의 기숙사나 학생들을 위한 많은 건물과 시설들이 세워졌다.


근래에 그라나다는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관광명소로,

그리고 국제 회의와 국제 음악/댄스(플라밍고) 페스티발이 열리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그라나다에서 5박을 했던 숙소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주말이 주중보다 바쁜 스케줄어서 주말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데

우연히 지난주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드라마 내용보다는 드라마의 타이틀 때문에 일단 1회를 방송분을 보게 되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현빈도 맘에 들고,

그 보다는 눈에 익을 오래된 그라나다의 골목과 광장 

그리고 사막성 기후인데도 늘 만발한 꽃이 있는 집들과 다시 만나게 되면서

 8년 반 전에 가슴 설레이면서 떠났던 은혼식 여행 중에

나도 모르게 알함브라의 궁전의 추억을 되찾고 있었다.


주말 드라마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그라나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그라나다의 1,000년 넘은 알바이신 동네와 그라나다 대성당,

낭만을 상징하는 알함브라 궁전, 그라나다 시내와 시장의

추억여행을 잠시 다녀올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우선 시내 구경을 나섰다.





주요 도로인 레야 카톨리코스 길의 모습...





도로 상의 오래된 대문...

(참고로 여행지의 대문에 늘 관심이 많아서 절로 대문부터 찍게 된다.)






정교하게 조각된 아름답고 오래된 대문을 한참 챙겨 보았다.






오래된 골목 뒷편에 그라나다 대성당 모습이 보인다.





그라나다 새성당 지붕





그라나다 대성당 성당 외벽









성당 옆에 놓인 벤치에서 조용히 글을 쓰는 여인...





1526년에서 공사를 시작해서 1561년까지

35년만에 완공된 대성당





아름답고 웅장한 대성당 내부는 다음날 구경하기로 하고...





종탑





성당 앞의 자그마한 광장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양식으로 





성당 광장 내에 있는 오래된 건물





대성당 앞에서 기념으로...










성당 앞에 있는 허브, 향신료와 말린 꽃 가게를 지나면서

풍겨나는 냄새 덕분에  자연스럽게 무슬림 영향을 받은 스페인의 분위기로 데려가 주어서

그 앞을 잠시 서성거리면서 허브 하나 하나 음미해 보았다.





시장 가는쪽에 있는 허브와 잼, 올리브 오일 가게...

문 앞을 지키는 기사의 갑옷에 중세기 도시풍이 풍겨진다.





400년된 집의 소박한 대문 앞에 서서

집 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재래 시장 안으로 들어 가서...





수제 특산품을 파는 가게





한 사람이 겨우 지날갈만한 좁을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미로 안에 들어 간 듯 하다.





더운 여름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상가도 더위를 피해서 시에스타를 즐겨서

가게 문들이 거의 닫혀 있다.





더위에는 아이스크림이 역시 최고!!

(스페인 여행 중에는 늘 35도를 웃돌아서

매일같이 9-10시간을 걸어다니다가아이스크림 가게만 보이면 

들어 가서 죄책감도 없이 양껏 아이스크림을 먹는 재미가 무척 좋았다.





마치 무어풍의 건물도 심심치 않게 보여서

골목 어디선가 아랍 전통 의상을 입은 무어인들이 튀어 나올 것 같다.





차가 다니는 길 위에는 뜨거운 햇빛을 막기 위해서

천으로 가려져서 파라솔 역할을 해 주어서 다니기에 수월했다.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시에스타 타임이라서 한산한 길을 구석구석 챙겨보기에 최상이었다.





마침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가게가 열려서 사막지역에서 제일 필요한 물을 넉넉하게 샀다.







아랍풍의 창과

아랍 글자가 정교하게 새겨진 천장에 매료되어서 한참 올려다 보았다.

알함브라 궁전 안에는 훨씬 크고 정교한 조각이 있는 모스크와 비교가 된다.





특이한 철문...





문 위의 정교하게 조각된 
















그라나다 특산품을 파는 가게도 기웃거려 보고...





역시 도자기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가죽제품도 욕심이 가고...





또 멋진 대문





또 또 멋진 대문



                        



계속해서 오래된 알바이신 동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