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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여행16] 호엔잘츠부르크 성(요새) 4편/인형 전시관, 군대 전시관, 대포전시관, 물품 수송 도구

by Helen of Troy 2019. 2. 11.




인형관에 전시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하는 폰 트랍 가족 인형들(Puppets)






Castle Keep 공간의 Cannon Gallery (대포 전시관): 1645년






Time Tree

by Alfred Haberpointner


이 작품은 호엔잘츠부르크 요새에서 자라는 라임트리로 만들어졌다.

200년된 라임 나무가 병이 들어서 다른 나무의 건강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베어 낸 나무에서 제일 단단하고 넓은 밑둥아리 부분으로 이 작품이 제작되었다.


나무는 줄기들과 나뭇잎들을 통해서 주위 환경과 

아주 끈끈하게 맺어진 공생 관계와 

그 주변 공간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작은 창마다 오래된 대포가 자리잡고 있다.





400년 전부터 이런 대포로 이미 전투를 벌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랍다.







World of String Puppets 

(마리오네트 인형의 세계)


마리오네트 인형 전시관 입구





성내의 빈 공간을 개조해서

이렇게 인형 전시관을 만들었다.






다양한 puppets











마리오네트 인형 부품들






인형의 손들도...






전시관 바닥에 우물처럼 깊게 파인 곳을 들여다 보니...

오래된 동전들과 잡동사니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오페라 '마적' 의 배경과 인형들


모짜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적(The Magic Flute)은 

비엔나에서 1791년 9월 30일에 초연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모짜르트 오페라 중,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인기높은 오페라이다.





안토아네트: Antoinette aus 'Hofkonzert in Schoenbrunn" (1967)

by Prof. J. Magnus






1460년경에 옛 잘츠부르크의 배경으로

잘자흐 강을 이용해서 근처에서 채굴된 소금을 운반하는 모습을

재현한 퍼펫 인형들





무서운 캐릭터 퍼펫들





모짜르트 가족이 긴 연주 여행에서 잘츠부르크 집으로 돌아 오는 장면


모짜르트 가족은 런던과 파리를 비롯해서 유럽의 주요 도시로 연주 여행을

자주 다녀서, 모짜르트의 35년의 짧은 삶 중에 3년간

이동하는 마차에서 보냈다.


당시의 길 사정은 아주 열악했고, 빗물은 마차 안으로 자주 스며들었고,

숲을 통과할 때는 자주 강도와 맞딱드리는 등 위험한 여정 길이었다.





1525 평민들의 반란


1525년 여름에 당시 잘츠부르크를 지배하던 발렌부르크 주교/왕에 항거해서

평민과 농부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발렌부르크 왕은 호엔잘츠불크 성 안으로 달아나서

성 안에서 몇 주동안 버티다가, 슈바이언 용병에 의해서 구출되었다.






오래된 관 모양을 한 문





1613년에서 1615년에 시티쿠스 주교에 의해서 지어진 헬브룬 궁의 Trick 분수





Figure from the Sturm(1946)





살로메 (1946)





메피스토 (1946)











호엔잘츠부르크 성 박물관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서 복도를 걸어 올라가서...





   

오래되고 육중한 문을 지나서...





적군으로부터 수백년간 잘 버티어 준 성을 개조한 박물관으로 이동...







Mediaeval Machines and Building equipments

(중세의 기구와 건축 도구들)



중세부터 500년동안 언덕 아래 논베르크에서 호엔잘츠부르크 성까지

성 내에서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이동하기 위해서

네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Block and Tackle 복합 도르레, 

지렛대와 크레인 그리고 황마 로우프를 사용해서

무거운 물품들을 성 위로 운반했던 도구들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전시해 두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 포르셀린 도자기 작품, 1930

by Luise Spannring(1894-1892)





호엔잘츠부르크 성 도자기 작품(반대편 방향에서...)






오래된 금속 궤





17세기에 사용되었던 대포





라이너 에르제르조그 장군(1827-1913)



사보이의 유진 왕이 이끄는 군대는 1697년에

오토만 제국이 오랫동안 장악하던 헝가리와 발칸 반도에서 밀어낸 후,

1682년에 정식으로 오스트리아 군대를 창립했다.





보병들의 유니폼(1789)과 척탄병의 유니폼(1740-1767)

18 세기에 사용하던 총과 포탄들





Musketeer 총병 (1682)





척탄병(Grenadier, 1710)





장교 유니폼(1740-1767)





Fusilier 유니폼(1767-1798)










장교의 유니폼 (Hauptmann, 1809)





척탄병 (1837)





 요세프 벤쩰 라데츠키 사령관의 Deathmask와 검, 그리고 일기(1849)





장교 (Leutmant, 1849)





보병 (1866)





 오스트리아 59연대 소속 보병들의 유니폼 (1836)





보병들이 차고 다니던 칼 (1849)





중/동부 유럽의 거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프란쯔 요세프 1세 카이저의 초상화 (1848)










Erzherzog Rainer(라이너 공작: 1827-1913), 1987

59연대 총 사령관





Orden (Orders, Medals, and Decorations), 

군인들에게 수여한 다양한 메달과 훈장들





59연대 보병 장교들이 착용한 검 (1861)





보병 장교들이 사용하던 은 식기들





프란쯔 요세프 1세 카이저 통치중에 장성들이 사용되던 은 식기들





보병들과 카이저의 모습 (1900)





18세에 즉위에 오른 프란쯔 요세프 1세 황제(카이저: 1830-1916)


프란쯔 요세프는 생전에 오스트리아의 황제(Emperor), 헝가리의 왕(Apostolic King),

보헤미아, 달마티아,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 갈리시아, 로도메리아와 일리리아의 왕(king),

오스트리아 대공(Archduke), 크라코의 백작(Grand Duke), 

로레인, 잘츠부르크, 슈타이어, 카린티아, 슬로비니아,

부코비나, 실레시아의 백작(Duke), 

트렌실바니아의 백작(Grand Duke), 모라비아의 사령관(Margrave),

합스부르크와 티롤의 백작(Priestly Count),

롬바르디와 베니스의 왕, 등

수많은 타이틀을 소유해서 유럽 전역에 걸쳐서 큰 세력을 거머졌던 카이저였다.






세계 1차 대전 전시관



군악대가 사용하던 악기와 악보





1차 대전에 사용된 대포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Fiat-Revelli  기관총 (1914)





군인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소지품들





1차 대전 중의 병사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모델 병사가 전시되어 있다.





1차 대전 중에 사용된 군인들의 소지품



프란쯔 요세프 1세 황제는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11월 21일에 사망하게 되자,

그의 조카 칼이 그를 이어서 황제로 즉위했지만, 

이미 승산이 없는 전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고, 평화협정조차 얻어내지 못했다.





산 정상에 위치한 참호에서 사투를 벌리고 있는 군인들





칼 1세 카이저(황제: 1887-1920)



프란쯔 요세프 황제의 후계자였던 프란쯔 페디난드 대공(Archduke)이

1914년에 사라예보에서 암살이 되자,

후계자 서열 2번이었던 칼 대공이 뒤를 이어서 황제로 즉위했다.


칼 황제는 이미 전투가 한창 벌어지는 최전방 전선에 수 차례 방문해서,

군인들의 고통과 위험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지속적으로 수 차례 1차 대전 참가국들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불행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칼 황제는 1918년 11월에 모든 정치적인 활동에서 물러났지만,

 옥좌에서 퇴위는 하지 않았다.

헝가리의 왕정복구를 두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나자

대서양에 멀리 떨어진 마데이라 섬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22년에 빈털털이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1차 대전 종전까지 남서쪽 전선



군인들이 착용했던 독가스 마스크와 철모


당시 군인들이 착용한 강철 소재의 헬멧과 가스 마스크는 

자연스럽게 최전방에서 사투를 벌리던 군인들의 심볼이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통신병



1918년 11월 초반까지 오스트리아  59 연대는 거의 보전되어서,

동원 군인들의 해재를 위해서 잘츠부르크로 복귀했다.

1차 세계 대전 중 59사단에 속했던 군인들 중에

4,611명이 전사했거나, 야전병원에서 부상으로 사망했고,

포위되었던 2,000여명의 군인들이 풀려났다.


 셀 수 없이 훨씬 많은 숫자의 군인들이 신체적으로 부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고,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다.




치모네 전투 유화 작품, 1917

K. Reismbichler 작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치모네 산(Monte Cimone)은

해발 1,226 미터 높이의 산으로 초반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가 산 정상을 장악했다가,

1916년 6월 23일에 이탈리아 군대가 탈환했다.



하지만 3개월 후인 9월 23일에 폭격을 맞은 몬테 치모네는 

샤트 소령이 이끄는 59연대 보병들이 다시 장악했다.

부상당한 이탈리아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 측은 짧은 휴전을 요청했지만,

이탈리아 군 측은 이를 거부해서,

수많은 이탈리아 군인들이 바위에 깔려 전사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1917년에 화가 칼 라이즌비흘러(Karl Reisenbichler: 1885-1962)가

오스트리아 군대가 치모네 산 정상을 폭파해서 치모네를 재탈환한 전투를

묘사한 그림을 제작했다.





 몬테 치모네 산(Monte Cimone)에 있는 군인들의 막사





1914년 11월부터 1918년 5월까지 참전한 잘츠부르크 출신 브루노 슈피츨 신부





1915년에 얼음과 눈으로 덮힌 험한 산악지방의 600 km 달하는

최전방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과 병기들...





적국의 병력뿐 아니라 산사태와 낙석과 험한 지세 덕분에 

많은 군인들이 부상하거나 사망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