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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Places/캐나다에서

발달 장애인들을 위해서 평생 헌신했던 쟝 바니에님을 추모하면서(Jean Vanier & L'Arche community)

by Helen of Troy 2019. 5. 23.




쟝 바니에(Jean Vanier) in 1990. 




지난 5월 7일에 쟝 바니에(Jean Vanier)님이 파리에서 암으로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그는 캐나다 출신 철학자, 신학자이자  사회에서 소외받은 이들을 돌보는 박애주의자였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거주하는 커뮤니티인 '라쉐'(L'Arche)를 설립하셔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첫번째 공동체인 집에서 그들과 함께 사셨다.

그는 "나는 특별한 계획같은 것을 원래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장애인들이 만났고, 그들이 나의 마음을 깨웠을 뿐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1964년 8월에 바니에는 토론토 대학에서 철학교수직을 사직하고,

파리의 북부에 위치한 Trosly-Breuil(트로즈리-브로이)에 

전기나 수도시설이 없는 허름하고 작은 집을 구입해서

비록 발달 장애자게 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도 없고, 지적장애가 있어서 정신병원에서 거주하던

언어 소통을 못하는 시미씨와 슈씨(Raphaël Simi and Philippe Seux)와 

허름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트로슬리-브로이 도서관 앞의 79세의 쟝 바니에의 모습

Photo by Ian Brown 



이렇게 한 계기는 바니에씨가 발달장애가 있는 1,000명의 성인 장애인들이

장기적으로 머무는 정신병원의 커다란 콩크리트 벽 안에 갇혀서

소일거리도 없고, 그들이 절망에 찬 울부짖음과 슬픔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들이 필요한 것이 사람의 따뜻한 정과 교류라고 믿고,

자그마한 집에서 두 명의 장애자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청소를 하면서 가족과 집의 개념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간단하게 시작한  하찮고 미약한 시도가 "트로슬리 동네 밖으로 퍼져 나갈지

꿈도 꾸지 않았다. 나는 다만 한대의 차 안에 탈 수 있을만큼의 장애자들 숫자로

한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때에

나라도 계속해서 모두 한 차로 다닐 수 있기를 바랬다." 라고 말했다.


아주 심플하고 하찮게 시작한 방주(the ark)라는 뜻의 프랑스어 라쉐(L'Arche) 공동체는

인도, 영국, 캐나다, 미국, 프랑스, 케냐, 멕시코 등 38개국에 152개의 커뮤니티가 설립되어서

5,000명의 발달장애인들을 돌봐 주는 커다란 지구촌 공동체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가 발족한 Faith and Light(믿음과 빛) 서포트 공동체는

현제 83개국에서 발달 장애 성인들을 돌봐 주는 자선단체가 되었다.

그는 생전에 노벨 평화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기도 했으며,

지구촌 여러 곳의 라쉐 공동체 장애인과 그들의 부모와 동료들에게 

좋은 멘토이자 무엇보다 좋은 친구였다.





프랑스에 소재한 '라쉐' 공동체 집에 거주하는 장애인들과 쟝 바니에



바니에씨는 철학과 영성, 종교, 공동체와 관용에 관한 책 30권을 출판했다:

Community and Growth(1979)

Becoming Human (1998), 

Befriending the Stranger (2005) 

and Life’s Great Questions (2015).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는데,

캐나다가 시민에게 주는 가장 권위있는 

캐나다 최고 훈장/Companion of the Order of Canada(1986),

퀘벡 최고 훈장/Grand Officer of the National Order of Quebec (1992),

프랑스 정부가 주는 French Legion of Honour (2003), 

국제 그리스도 공동체 평화상/Community of Christ International Peace Award (2003), 

테리스 평화와 자유상Pacem in Terris Peace and Freedom Award (2013),

 템플튼 상/Templeton Prize (2015)등을 꼽을 수 있다.


한 기자가 그에게 라쉐 공동체는 유사한 단체나 시설과 달리 거의 60년간

장애인들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방치해서 스캔들에 휩싸이거나,

범죄 사건으로 치닫지 않은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장애자들을 걱정하는 전문인들이 지속적으로 장애인들을 돌 볼 뿐 아니라

정부 당국과 함께 정기적인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제일 큰 요인은 '라쉐 공동체는 오픈된 단체이며,

우리가 먼저 동네로 다가가서 공동체를 세우면,

동네가 우리들에게 다가와 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답변했다.


그가 시도한 가장 획기적인 업적은 발달 장애인들의 장애보다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서

장애인들이나, 거기서 일하는 보조 직원들이나 똑같은 자격과 위치를 부여해서,

거주자들이 적어도 하루에 한번씩 식탁에 모두 둘러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 간단한 의식은 모든 라쉐 공동체를 대변한 행위로

장애인들이 지적으로 부족하듯이 정상인들 역시 살면서 겪는 고충 역시

 인간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라쉐' 공동체의 공식적인 로고



쉴라 홀린스 정신과 의사를 포함해서 발달 장애아 자녀로 둔 많은 부모들은 한결같이

'장애자들의 필요에 따라서 유연하고 오픈된 방침을 바탕으로 

자그만한 가정 집 형태로 세워진 라쉐 공동체는 

수십년간 지속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점을 둔 시스템'이

발달장애 성인들을 위한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라쉐 공동체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의 보조 직원들은

같은 공동체에서 수년에 걸쳐서 머물러서

그 공동체에 사는 장애자들이 그 공동체의 구성원(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쟝 바니에



쟝 바니에씨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서

한때는 신부가 되고 싶어해

 프랑스 대사와 19대 총독을 역임했고,

두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 조르제 바니에와, 어머니 폴린 사이에서

5명의 자녀 중에 네째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아주 독실한 캐톨릭 신자로, 능동적으로 

주위에서 고통받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이 일찌감치 몸에 배었다.

쟝 바니에의 누나 테레즈도 런던에서 성 토마스 병원의 컨설턴트와

시슬리 선더스 말기환자 병동에서 일을 했으며,

라쉐 공동체 설립에도 큰 역할을 했다.


쟝 베니에씨는 캐나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성장했으며,

예수회 사립학교인 세인트 존스 보몬트 학교를 다니다가,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에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1942년에 불과 13살된 쟝은 아버지에게 영국의 다트머스에 위치한

로얄 해국 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허락을 구하자,

놀랍게도 전시중인 영국으로 유학을 허락해 주시자,

위험을 무릅쓰고 잠수함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서 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3세가 된 아들을 전시 중에 영국으로 보낸 것이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바니에 가(family)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공익을 위한 서비스이기에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1959년에 조르쥐 바니에씨는 오타와에 있는 총독관저인 리도 홀에 

채플부터 지어서, 하루에 채플에서 두번씩 기도를 드릴 정도로

독실한 신자이기도 했다.






2018년 5월 18일에 런던 세인트 마틴스-인-더-필즈에서

템플튼 상을 수상한 후에...



쟝 바니에씨가 해군사관학교 생도였을 때에

나찌스에서 막 해방된 프랑스에서 머물고 있던 부모님을 뵈러 파리로 건너갔다.

캐나다 적십자에 몸을 담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오르세 기차역에서 부헨발트와 다차우 라븐브류크 유태인 수용소에서

생존자들을 돌보는 일을 옆에서 도왔는데,

그대의 체험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영국의 로얄 해군과 캐나다 로얄 해군에 장교로 복무하다가

'나의 청년 시절은 효율성을 강조하며, 부하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지배를 하면서 보냈고, 나는 파괴의 기술자였다." 라는 말을 남기고 해군을 떠났다.


그렇게 군인생활을 청산한 그는 수년간 그의 소명이 무엇인지 찾아 헤메였다.

그는 파리에서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을 돌보기도 하고,

뉴욕의 빈민촌에서 크리스찬들과 극빈자들과 함께 살면서 돕기도 하고,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을 위해서 일도 했고,

몬트리올에서 홈레스를 위한 베니딕트 하우스에도 일을 하는 등,

제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10여년간 시도해 보았다.





쟝 바니에가 1964년에 프랑스 트로즐리-브로이에서 시작한 첫 '라쉐'(방주) 집 

대문 옆에 걸린 웰컴 사인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면서,그는 파리에 소재한  L’Institut Catholique(캐톨릭 대학교)에 입학해서

아리스토텔리스 윤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1963년에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철학교수직을 맡았다.

그의 강의는 그가 20년간 경험했던 전쟁, 정신병동 방문, 홈레스 문제, 극빈자들의 고통,

 바티칸 2차 공의회 의도와, 수도자들의 양성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

학생들 뿐 아니라 넓은 층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듬해 여름에 바니에는 파리를 방문하면서

1,000여명의 지적 장애자들이 아주 악조건에서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는 '그들의 비정상적인 얼굴에서 혐오감과 측은함이 동시에 느껴졌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의 정에 굶주린 모습이 제일 뇌리에 남았다.' 라고 회고했다.

그들이 그를 붙잡고 애타게 '언제 우리를 보러 다시 옵니까?' 라는 질문하는

그들의 순하고 애절한 눈빛에서 바니에는 장애자들의 혐오스런 외모 뒤에

그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과 떨칠 수 없는 극심한 외로움을 감지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처한 상황은

정상인인 그 자신이 겪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두려움과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캐나다 전역에 위치한 라쉐 공동체들

(두번째 라쉐 공동체는 토론토에 세워졌다.)




파리의 정신병원에서 머물던  Seau씨와 Simi씨와 함께 한 집에서 기거하기 시작한 바니에씨는

 권력이나 권위, 사회적인 지위와 부를 갖춘 그의 부모와 달리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내려 놓고 새로운 삶을 택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제자들은 "언제나 나와 나의 지식을 원했지만,

함께 기거하는 발달장애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나의 지식이나 재능엔 전혀 관심이 없고,

대신 내 자신과 나의 마음을 필요로 했다." 라고 회고했다.

1964년에 시작한 첫 공동체 후, 20세 이상된 장애자들이

최소 4명에서 최고 9명이 한 집에서 가족처럼 평생 사는 '라쉐'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해서

장애자들의 집이자, 워크샵이자, 문화센터, 채플, 때로는 병원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라쉐 밴쿠버



발달장애자들과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바니에씨는 장애자들이 가진 감추어진 진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늘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장애자들을 도와줄지에 늘 고심했지만,

오히려 장애자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점도 똑같이 존재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되자,

그의 새로운 발상을 캐톨릭 교구외에도 여러 단체에 전파하게 되었다.





라쉐 에드먼튼



라쉐 공동체에서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도움이들은 주로 3개월간씩

장애인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들을 보필하는데,

꽤 많은 숫자의 도움이들은 수십년간을 라쉐에 거주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바니에씨는 우리의 의식구조를 리세트해 주었고,

영적으로 자유로워졌고, 세상을 바라다 보는 관점을 변화시켰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원하는 성공, 권력 완전함에서 벗어나게 했다.'라고 말했다.


바니에씨는 타계할 때까지 그가 두명의 발달장애인과 함께 첫 라쉐 공동체에서

그들과 함께 매일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지냈다.

그들은 바니에씨를 볼 때마다 그를 포옹해 주며, 그의 건강을 염려해 주었고,

함께 한 긴 세월을 회고하기도 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대했다.

바니에씨는 이들의 이런 행동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선물로 여겨졌다고 전했다.





라쉐 캘거리



나 자신 역시 발달장애인 자폐 아들을 둔 부모로서

그의 명성과 고맙게도 우리 동네에도 있는 라쉐 공동체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신체적 장애보다 특히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에 힘든

지적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들의 공통적인 최고의 걱정이자 숙제는

부모가 연로하거나, 세상을 떠난 후에 장애 자녀의 거취라고 하겠다.

그래서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사는 도시 외에도,

토론토, 밴쿠버, 캘거리에 소재한 라쉐 공동체를 직접 방문해서

그들의 사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우리집 복덩이 아들은 만 여섯살에 말을 하기 시작해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2년제 대학을 무난히 졸업하자마자

지금 8년째 다니는 회사에 취직을 해서

제 앞가림을 제대로 하면서 지내고 있어서 

매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자를 둔 부모나 형제들에겐 희망이자 수호천사같은 쟝 바니에씨 덕분에 

장애자들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일이자,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지게 되어서

무한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Jean Vanier님

천상에서 편히 쉬시길 두손 모아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