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의 프란스 할스 박물관(Frans Halsmuseum)
(2019년 6월 21일)
성 바보 교회에서 이어지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 서서...
프란스 할스 박물관으로...
드디어 도착한 프란스 할스 박물관
네덜란드의 대부분의 공공장소나 박물관이 그러하듯이
이 박물관 역시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우리가 박물관에 도착하니 4시가 거의 다 되었기에
불과 주어진 시간이 달랑 한시간 밖에 남지 않아서
별로 규모가 크지 않지 않지만, 규모에 비해서 소장된 작품들이 많은 것을 감안해서
평소보다 빠르게 작품 감상을 해야했다.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불행 중 다행으로, 박물관내의 관람객은 다 빠져나가고 텅 비어서
생각보다 자유롭고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Frans Hals(Antwerpen c. 1582-Haarlem 1666)/프란스 할스
by Bart van Hove (바르트 반 호베: Den Haag 1850-Amsterdam 1914)
1894, plaster,
loan from Teylers Museum, Haarlem
1679년에 지어진 박물관 건물
프란스 할스는 1582년 경,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던 안트워프에서 태어나서 할렘에서 대부분 그의 생애를 보내다가 1666년 8월 29일에 사망한 할렘을 대표하는 17세기의 거장 화가이다. 특히 그는 초상화의 대가로 알려졌다. 그의 스타일은 인상파의 화가들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자유러운 브러시 터치를 사용하는 화가로 알려졌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 남겨진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그는 메헬렌 출신의 직조일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스페인 치하의 네덜란드에서 1591년 경에 독립해서 자주적 할렘으로 이주했다. (프란스의 남동생 디르크의 세례식의 기록이 할렘 시청에 남아있다.) 그는 1616년에 잠시 안트워프에 방문한 외에 그는 할렘에서 평생 살았다. 1610년경, 그는 할렘의 성 루카 예술가협회에 가입을 했으며, 얼마 후 그의 첫 아내 아네케와 결혼했는데, 두 자녀를 남겨두고 그녀는 1615년에 사망했다. 2년 후 그는 두번째 아내 리스베트와 결혼해서 추가로 8명의 자녀를 두었고, 8명의 아들 중 다섯명이 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할렘에서 성공적인 미술 아카데미를 설립한 카렐 반 만더의 제자였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입증할만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화가로서 시작부터 그는 당시의 유행했던 그림 스타일과는 확연히 달랐고, 루벤스의 제자였던 야콥 요르댄스의 화풍과 많이 흡사했으며, 그의 작품속에서 자주 묘사된 유머스러운 장면 덕분에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죠를 연상하게도 한다. 그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초상화 작품 'Jacobus Zaffius'(1611)으로 초상화 화가로 발돋음해서, 1616년에 제작한 작품 'The Banquet of the Officers of the St. George Militia Company'으로 초상화 화가로 그의 입지를 굳혔고, René Descartes 의 초상화(1649) 작품은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졌다. 아네케는 할렘의 성 바보 교회에 묻혔으며, 40년 후, 프란스도 같은 곳에 묻혔다. 렘브란트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당시 화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의뢰한 부유한 의뢰인의 집으로 식솔을 데리고 가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거주하기 보다는 할스는 초상화를 의뢰한 장본인이 직접 할렘에 와서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포즈를 취해줘야만이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80년 전쟁'을 치루었는데 이 전쟁 기간동안 할스는 군인 조합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1639년 작품 'St. Joris company'(성 요리스 군대)에 그의 얼굴을 포함시키기도 했으며 1644년에는 성 루카 조합의 조합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666년에 할렘에서 사망한 후, 첫번째 아내가 묻힌 성 바보 교회에 묻혔다. |
Silver Treasrues/은 소재 소장품들
De reiziger/여행자
by Frans Hals (프란즈 할스: Antwerpen c. 1582-Haarlem 1666)
panel, 1650
on loan from Stiftung Heinz Kuckel Collectie, Berlin
In the seventeenth century portraits were often completed
in several lengthy steps. This small painting of a man in travelling dress
is an exception. Hals did not prepare the panel; he painted the whole thing
wet-in wet- without using any varnish and finished it in one sitting -
a testimony to his extraordinary virtuosity. The small size meant that
the sitter could take his portrait home straight away.
17세기에 제작된 초상화 작품은 대부분 몇 단계로 나누어서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초상화 작품은 한번의 작업으로 바니시도 입히지 않고 완성되어서
그의 재능을 쉽게 알 수 있다. 작품 크기도 작고 빨리 완성되어서
의뢰인이 완성된 작품을 집으로 바로 들고 갈 수 있었다.
De drie jongelingen in de gloeiende oven/
The Three young men in the blazing furnace/
뜨겁게 타는 화덕 안의 세명의 젊은 남자
by Pieter Pietersz (피터즈: Antwerpen 1540-Amsterdam 1603)
1575, oil on canvas
In this biblical story an Babylonian king set up a large golden idol
and ordered the Jews in exile to worship. Three young men refused to kneel
before the strange god. The king had them cast into the fire,
but they were protected by their God and survived the flames.
Converted by this miracle, the king afterwards worshipped the God of Israel.
The subject of this work is rather appropriate, since it was commissioned
by the bakers' guild of Haarlem.
구약 성서에 나오는 바빌로니아의 왕은 황금소재의 거대한 우상을 세우고,
유태인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한다. 하지만 세 젊은이들이 우상숭배를 거부하자,
왕은 그들을 화형에 처하지만, 유대인의 신이 그들을 화염에서 구해주었다.
이 기적을 목격한 바빌로니아 왕은 이스라엘의 신을 경배하였다.
이 작품은 할렘의 베이커 조합이 의뢰한 것으로 그들의 직업과 관련이 깊다.
De dans om het goudent kalf/
The worshipping of the golden calf/
금송아지 숭배 의식
by Karel van Mander(반 만더: Meulebeke 1548-Amsterdam 1606)
1602, oil on canvas
An Old Testament story on infidelity. While Moses was on the summit of Mount Sinai,
the Israelites made an idol. They melted their golden earrings and built a golden calf.
Karel Van Mander shows the Israelites sacrificing to the new idol. The festivities
in the foreground are ecstatic. Later Moses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nd in his anger he smashed the two stone tablets bearing the Ten Commandments.
Van Mander followed in the footsteps of Lucas Van Leyden,
whom he discussed extensively in his Schilder-boeck.
이 작품은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부정에 관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모세가 시나이산 정상에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금소재 소장품을 녹여서 황금 송아지를 세웠다.
반 만데는 그들이 새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Een gier bijt Tityus de lever uit/
Tityus bound to the rock, his liver is devoured by a vulture/
바위에 묶인 티투오스, 그의 간을 독수리가 쪼아 먹다
by Hendrick Goltzius (Muhlbrecht 1558 - Haarlem 1617)
1613, oil on canvas
Tityus, a giant assaulted the goddess Leto
according to a story from Greek mythology.
The painting depicts the punishment of Tityus.
Apollo and Artemis, Leto's children, captured him and tied him to a rock.
There Tityus lay powerless and prone as a giant vulture plucked at his liver.
Each day Tityus's liver grew back and he was forced to undergo the torture again.
그리스 신화에서 여신 레토를 범한 거인 티투오스는 그 벌로,
레토의 자녀인 아폴로와 아르테미스가 티투오스를 잡아서 바위에 묶어 둔 후,
거대한 독수리가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한다.
매일 새로운 간이 자라서 같은 벌을 계속받게 된다.
Protret van Theodorus Schrevelius/
Portrait of Theodorus Schrevelius/
테오도루스 슈레벨리우스의 초상화
by Frans Hals (프란즈 할스: Antwerpen c. 1582-Haarlem 1666)
1617, oil on canvas
Frans Hals portrayed Theodorus Schrevelius(1572-1649)
at the age of 44, as the inscription on the book indicates.
At that time Schrevelius was headmaster of the Grammar School in Haarlem.
When Frans Hals painted this little portrait,
he was just starting his career as an artist.
할렘 학교의 교장이며 44세된 슈레벨리우스의 초상화는
할스의 초기 작품이다.
A Breeding ground for international artists The Frans Hals Museum's collection of old masters largely consists of painters who rose to greatness in Haarlem. But can Haarlem claim them as its own? Many of these 'Haarlem' artists were first or second-generation migrants. Around 1600, half of Haarlem's population was made up of immigrants. They came from far and wide to a city that was famous for its economic prosperity and tolerance. Frans Hals was such a migrant. Born near Antwerp, he grew to be the figurehead of the Dutch Golden Age. But he was not the only painter to come to Haarlem from abroad. The same was true of Hendrick Goltzus(Germany), Karel van Mander and Pieter Pietersz(both from Belgium). With their knowledge and talent, they made an important contriibution to the artistic clilmate of the city. As a result, by the 16th century, Haarlem had become the place where the art of the Northern Netherlands underwent a spectacular renewal and flourished as never before. Haarlme was a hotspot: the place to be for artists who wanted to go beyong the boundaries. Stately/Stylish The artists of Haarlem excelled in painting group portraits. Haarlem's elite and wealthy citizens liked to come together in various kinds of clubs. One of these was the civic militia, whose members were responsible for keeping order in the city. But they also joined specific religious groups and sat on prestigious administrative boards. Self-confident artists also got in on the act, and inserted themselves - literally and figuratively-between the members of the group. The earlist group portraits were static and solemn, with little interaction between the individual figures. In the city full of affluent citizens, the subjects captured in paint changed. The way in which these moments in time were painted also became freer, livelier and more natural, making use of fresh colours. It wasn't long before the canvases became hugely dynamic. The men were depicted in a lively and informal setting. We see eating and drinking; people chat and men shake hands with one another. |
Groepsportret van Jeruzalemvaarders van de Ridderlijke Broederschap
van de Heilige Lande te Haarlem/
Twelve Members of the Haarlem Brotherhood of Jerusalem Pilgrims/
할렘 예루살렘 순례자 협회의 12 멤버들
by Jan Van Scorel (반 스코렐: Schoorl 1495 - Utrecht 1562)
circa 1562, Panel
Jan van Scorel painted 12 serious looking men from the Jerusalem brotherhood
on their way to the grave of Christ, which is depicted in the upper left hand corner.
They are carrying palm branches, religious symbols that show how often they have
visited the holy place. Under each portrait is a verse with the pilgrim's name and the year
in which he went to Jerusalem. The third man from the right is the painter himself.
This is one of the earliest group portraits in Dutch art.
반 스코렐은 그리스도의 무덤(왼편 위)이 있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고자 하는
예루살렘 순례자 협회 멤버 12명을 그렸다.
그들은 몇번이나 이 성지를 방문했는지 보여주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으며,
인물 아래에 이름과 예루살렘을 방문한 연도가 적혀있다.
네덜란드 초상화 작품들 중 가장 초기 작품이기도 한 이 작품 속에
오른편에서 세번째 인물을 화가 자신의 모습이다.
Groepsportret van Jeruzalemvaarders van de Ridderlijke Broederschap
van de Heilige Lande te Haarlem
힐렘 예루살렘 순례자 협회의 12 멤버들
Groepsportret van Jeruzalemvaarders van de Ridderlijke Broederschap
van de Heilige Lande te Haarlem
힐렘 예루살렘 순례자 협회의 12 멤버들
Feestmaal van een korporaalschap van de Haarlemse Cluveniersschutterij/
Banquet of members of the Haarlem Calivermen Civic Guard
할렘 민간 총기 부대 멤버들의 만찬
by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코르넬리즈 반 할렘: Haarlem 1562 - Haarlem 1638)
1583, panel
The men on this militia piece are portrayed lively. They are all moving; talking
or drinking. They are literally connected to each other because everyone touches
someone else. The spontaneous way in which Cornelis van Haarlem portrayed
these men was unique in its time. The rolled-up banner that crosses the painting
diagonally was revolutionary. The painter was also a member of this company,
and he painted himself in the upper left. This is the earliest known militia piece
that was made in Haarlem.
이 작품 속의 민간군인들은 움직이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까지 하며,
심지어 서로 만지기도 하는 등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아주 특이했으며,
둘둘 말린 그들의 배너는 과감하게 작품을 대각선으로 배치된 것 역시 아주 획기적이다.
이 작품은 할렘에서 제작된 민간인 군인들의 아주 초기의 초상화 작품이다.
Zelfportret/Self Portrait
자화상
by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코르넬리즈 반 할렘: Haarlem 1562 - Haarlem 1638)
1588-90, panel, Gift of Rob en Ellen Vellekoop
This self-portrait has a particular shape. Cornelis van Haarlem depicted himself in his
twenties, with much confidence and still at the early stages of his career. The painter
was born in Haarlem in 1562. After his artistic training with Pieter Pietersz in Haarlem
he spent several years in Rouen and in Antwerp. In 1583 Cornelis van Haarlem
produced the earliest known Haarlem civic guard painting,
in which he also portrayed himself.
할렘에서 1562년에 태어난 반 할렘은 특이한 모양의 캔바스에
자신의 초상을 그렸다. 이 작품 속의 그는 당당한 모습의 20대 화가의 초반 작품이다.
Here/There Exploring and Going Beyond Boundaries Many Haarlem artists looked beyond the limits of their own city. A trip abroad was seen by many as part of their training. They could learn from other artists and immerse themselves in older works, often from antiquity. They liked to travel to the capital of the classical world: Rome. Once there, artists would study examples from Classical Antiquity, as well as the works of innovative artists such as Raphael and Michelangelo who formed vanguard of the revival that was underway at that time: Renaissance. Jan van Scorel and Maarten van Heemskerck were among those to visit Rome. These were times of unbridled ambition and, often positive, rivalry. Painters such as Van Scorel, Van Heemskerck and Cornelisz van Haarlem wanted to match themselves against the Italian masters, and ideally even emulate them. Around 1600, this resulted in a new international style, Mannerism: paintings with exaggeratedly muscular nudes, bodies twisted into all kinds of contortians and dramatic scenes. |
Ecce Homo-triptiek
가시관을 쓴 예수(라틴어로 '이 사람을 보라' 라는 뜻)이 그려진 3단 제대 그림
by Maarten van Heemskerck (반 헴스케르크: Heemskerk 1498 - Haarlem 1574)
1559-1560, oil on panel
The central panel of this triptych depicts Jesus, between the governor of Judaea
Pilate(right) and two executioners. Pilate presents the maltreated Jesus to the people
of Jerusalem with the words "Behold the man"(Latin: ecce homo).
The people showed no pity and demanded his crucifixion; Pilate let them have their way
and washed his hands to clear himself of responsibility: Jesus was take away
and crucified on Golgotha. The identity of the patrons, portrayed on the side-panels,
is not know. Their patron saints are Christopher(left) and Martha(right).
On the back are the prophets Ezekiel(left) and Daniel(right).
삼단 제대 그림의 가운데 패널은 유대의 총독 빌라도와 두 처형자들 사이에
있는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빌라도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이 사람을 보라(에케 호모)" 라고 하면서 예수를 건내준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처형을 원하자 빌라도는 그들의 뜻대로 허락해 주고 자신은 빠진다.
예수는 골고타로 끌려가서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양 옆에 등장하는 그림의 의뢰인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왼편 그림의 그들의 수호 성인은 크리스토퍼와
오른편 그림의 수호 성녀는 마르타이다.
Ecce Homo-triptiek(가운데 detail)
De doop van Christus in de Jordaan/
The Baptism of Christ in the Jordan
조르단에서 그리스도의 세례식
by Jan Van Scorel (반 스코렐: Schoorl 1495 - Utrecht 1562)
c. 1530, oil on panel
Christ being baptised by the 'prophet' John the Baptist in the Jordan,
revealing his 'divine nature': the Holy Ghost appears in the form of a radiant dove.
Christ is shown again to the right in the background, valling his first pupils.
For this painting Van Scorel drew on elements from works by Raphael and
other Italian Renaissance artist. He had travelled in Italy where he managed
the Vatican art treasures under the Dutch Pope Adrian VI. Van Scorel was
commissioned to paint this work by the Haarlem St. John's cloister.
그리스도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 의해서 물로 세례를 받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반 스코렐은 이탈리아를 방문해서 당시의 네덜란드 출신 아드리안 6세 교황의 허락하에
라파엘을 비롯해서 바티칸에 소장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러 작품을 접하게 된 덕분에
할렘의 성 요한 성당의 의뢰로 이 작품을 라파엘 풍으로 제작했다.
De doop van Christus in de Jordaan/조르단에서 그리스도의 세례식(detail)
De bruiloft van Peleus en Thetis/
The wedding of Peleus and Thetis/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식
by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 (코르넬리즈 반 할렘: Haarlem 1562 - Haarlem 1638)
1593, oil on canvas
A classical story of the gods; the wedding of the sea-goddess Thetis and the human Peleus.
In the foreground people are celebrating, but in the distance a battle is taking place.
All the gods were invited except Eris, the goddess of discord. In revenge she threw
a golden apple of discord 'for the most beautiful' of the goddesses present(above left).
The shepherd Paris(above right) was asked to choose between Hera, Athena, and Aprodite.
Paris' choice of Aphrodite was the indirect cause of the Trojan War.
The Painting was intended as a warning against discord.
이 작품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혼인식을 그리고 있다.
작품의 앞 부분은 그들의 결혼은 축하하는 무드로 묘사되었다.
불화의 여신을 제외하고 모든 신들을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하자,
화가 난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참석한 가운데에 불화의 금사과를 던진다.
목동인 파리스(오른편)은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여신 중에서 한명을 고르라고 하자,
아프로디테 여신을 택하게 되면서, 트로이 전쟁의 간접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불화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자 제작되었다.
De bruiloft van Peleus en Thetis/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식(detail)
De bruiloft van Peleus en Thetis/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식(detail)
아프로디테를 택한 파리스
De bruiloft van Peleus en Thetis/펠레우스와 테티스의 혼인식(뒷배경 detail)
De heilige Lucas schildert de Madonna/
St. Luke painting the Virgin and child.
성 루카가 그린 성모님과 아기 예수
by Maarten van Heemskerck (반 헴스케르크: Heemskerck 1498 - Haarlem 1574)
1532, oil on panel
According to a legend the Evangelist St. Luke painted a portrait of Mary
and the infant Jesus; for this reason St. Luke was the patron saint of artists'
professional associations, the guilds of St. Luke. Van Heeskerck painted this picture
as a gift for the Haarlem St. Luke's Guild, as appears from the note at the lower left.
The painting hung high above the guild's altar in St. Bavo's Cathedral.
The painter took this into account by painting the scene as if it were seen
from a low viewpoint. The model for St. Luke was a Haarlem baker;
the man with the laurel wreath, 'inspiration', appears to be Van Heemskerck himself.
The message of this painting seems to be that in art inspiration occupies
a higher place than manual work.
전설에 따르면, 성 루카가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성 루카는 성 루카 조합을 비롯해서 종종 미술가들의 수호성인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 작품은 성 루카 조합에게 줄 선물로 그려서,
천장이 높은 성 바보 대성당에 걸기 위해서 아래서 올려다 보는 시선을 감안해서 그렸다.
성 루카의 모델로 할렘의 한 베이커에서 따 왔으며, 그 뒤의 서 있는 남성은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Drieluik van het Drapeniersgilde/Triptych (former Drapeniers's Altar)
모방직 협회의 제단에 설치되었던 3부 제단 그림
by Maarten van Heemskerck (반 헴스케르크: Heemskerk 1498 - Haarlem 1574)
1546, oil on panel
In 1546, Maarten van Heemskerck was commissioned by the Drapenier's Guild
(the guild of wool tradesmen) to make two painted 'doors' for the guild's altar
in the Great of St. Bavo Church. The doors were added to an existing centrepiece.
On the exterior of the doors the annunciation to Mary was to be painted;
on the interior, 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 and of the Three Kings.
After the reformation in 1578 the side panels became the property of the
city council and were placed in the 'Prinsenhof', a guest residence used by
the stadholders. The centerpiece was lost but it is not known when exactly.
1546년에 마르텐 반 헴스케르크에게 할렘의 양모 상인들의 조합이
성 바보 대 성당내에 있는 그들의 제대의 문을 위한 작품을 의뢰해서
제작된 이 작품은 제단의 센터피스에 전시되었다.
문 바깥쪽은 마리아에 수태 고지를 하는 모습을,
문 안쪽은 동방 박사들과 목동들이 아기예수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그려졌다.
하지만 종교개혁 후 1578년에 양쪽 옆에 있는 패널은 할렘 시의회로 넘어지면서,
시의 최고 판사들이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에 걸리게 되었고,
가운데 센터피스는 종교개혁 와중에 유실되고 말았다.
In 1590 Cornelis van Haarlem was commissioned by the town council to make a new
centerpiece to go with Maarten van Heemskerck's side panels: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The gruesome subject of the centerpiece is at first sight somewhat
concealed by the bright colouring. The torsos of the figures are twisted, which is
borrowed from the Italian Renaissance. Herewith the altarpiece shows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artists working 50 years apart from one another beautifully.
1590년에 반 할렘은 할렘 시의회로부터 '어린이 대학살' 주제로 유실된 헴스케르크의 센터피스를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면서, 가운데 패널이 추가되었다.
아주 참혹한 주제를 다룬 센터피스는 밝은 색상으로 그려져서,
그 참혹하고 슬픈 모습이 감춰진 듯 하다.
Drieluik van het Drapeniersgilde(왼편 detail)
모방직 협회의 제단에 설치되었던 3부 제단 그림
목동들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예수님을 경배하고 있다.
Drieluik van het Drapeniersgilde(왼편 detail)
모방직 협회의 제단에 설치되었던 3부 제단 그림
Drieluik van het Drapeniersgilde(오른편 detail)
모방직 협회의 제단에 설치되었던 3부 제단 그림
동방에서 먼 길을 별을 보고 여행 온 세 왕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다.
Drieluik van het Drapeniersgilde(오른편 detail)
모방직 협회의 제단에 설치되었던 3부 제단 그림
Drieluik van het Drapeniersgilde(가운데 detail)
모방직 협회의 제단에 설치되었던 3부 제단 그림
Massacre of the Innocents(아기 대학살)
신약 성서의 마태오 복음에서,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유대의 헤롯 대왕은 베들레헴 주위에 태어난 두살 이하의 남자 아기들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서 아기들의 학살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캐톨릭 교회에서는 당시
죽임을 당한 아기들을 교회의 첫 순교자로 인정하고 12월 28일을 축일로 정했다.
Drieluik van het Drapeniersgilde(가운데 detail)
모방직 협회의 제단에 설치되었던 3부 제단 그림
Name/Fame The Artist as Popstar Some artists achieved heroic status in their lifetime: one of them was the migrant, Hendrick Goltzius. He travelled extensively-preferably disguised as a simple cheesemonger, so as to avoid being recognized. This underscores his fame, both in the Northern Netherlands and in Italy. His motto 'eer boven golt(zius)' (honour above gold) showed that he cared more for the glory of his artistic talent than for financial prosperity. At the same time, he had his handkerchiefs monogrammed. His aversion to flattery went hand in hand with his self-confidence. Goltzius only started painting at a later age. He already won much admiration with his engravings. These prints were easy to reproduce and sold throughout Europe. This made Goltzius an internationally celebrated 'pop star', even before he had started to produce his very popular paintings. Goltzious was celebrated and much-loved. |
'미네르바'와 '머큐리' 작품 앞에서...
Minerva/미네르바
by Hendrick Goltzius(골찌우스: Mühlbrecht 1558 - Haarlem 1617)
1611, oil on canvas
on loan from Mauritshuis Museum, Den Haag
In Greek mythology Minerva is the goddess of science and patroness of the arts.
She leans against her shield, which shows the head of Medusa. At her feet lie books, a folder,
a pen and its case, a shuttle and a lute. These attributes are associated with the practice of art.
The painting shows intelligence and stupidity set against each other.
King Midas, with his huge ears, is known for his stupidity.
그리스 신화에 미네르바는 과학과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그녀는 메두사의 머리가 있는 방패에 기대 앉았으며,
그녀의 발 아래에는 책, 폴더, 펜과 펜 케이스, 셔틀, 그리고 루트악기가 있는데,
이들은 그녀가 예술의 여신이라는 것을 묘사해 준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미네르바의 지혜와 어리석음이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커다란 귀를 가진 마이다스 왕은 그의 어리석은 왕으로 알려졌다.
Mercury/머큐리
by Hendrick Goltzius(골찌우스: Mühlbrecht 1558 - Haarlem 1617)
1611, oil on canvas
on loan from Mauritshuis Museum, Den Haag
Hercules en Cacus
헤라클라스와 카쿠스
by Hendrick Goltzius(골찌우스: Mühlbrecht 1558 - Haarlem 1617)
1613, oil on canvas
on loan from Mauritshuis Museum, Den Haag
The Greek God Hercules slays the fire-spitting giant Cacus, who had stolen a herd of cattle.
Hercules, dressed in a lion's skin and wielding a club, stands by the dead Cacus,
as good overcoming evil. Goltzius was commissioned by a Haarlem lawyer named
Colterman to paint 'Hercules and Cacus'. He also purchased 'Minerva' and 'Mercury',
which Goltzius had painted two years before. His 22-year-old son was probably used
as a model for this depiction of Hercules. The three paintings represent the same
humanistic educational ideal.
헤라클레스는 소떼를 훔쳐서 달아난 불을 내뿜는 카쿠스 거인을 죽인다.
이 작품 속의 헤라클레스는 사자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치고, 몽둥이를 들고
죽은 카쿠스 앞에 서서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골찌우스는 할렘 출신 변호사 콜터만의 의뢰로 '헤라클레스와 카쿠스'를 그렸다.
콜터만은 이 작품만이 아니라 2년 전에 골찌우스가 그린
머큐리(이론)과 미네르바(실제) 작품도 같이 구입했다.
아마 콜터만의 22세된 아들을 헤라클레스의 모델로 사용했으며,
이 세 작품은 이상적인 인간 교육을 나타내 주고 있다.
Father/Son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tricks of the artist's trade were often passed on in the family.
Fathers and sons, and sometimes also daughters, worked together in the family business.
Talent was not always carried in the genes, though, and success didi not automatically
pas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n his lifetime, Salomon de Bray was a celebrated
all-rounder: a painter, poet, architect, landscape architect and designer of silverware.
He also brought up is three sons to be painters, but none of them achieved
the status of their father. In fact, his son Jan de Braij, t
he most talented of the three, went bankrupt.
Nowadays, though, this assessment has been turned on its head.
Salomon was more successful but the works of his son Jan are now considered
to have greater artistic merit. What's more, the style of the masters who taught the father,
Salomon, can be seen more in his son Jan's work than in his own.
Salomon studied under Cornelis van Haarlem and Hendrick Goltzius, and their use of
color and powerfully built nudes can be discerned in Jan de Braij's paintings.
This influence seems to have skipped a generation.
Venuss em Amor in de smidse van Vulcanus/
Venus and Cupid in the forge of Vulcan/
불칸의 대장간의 비너스와 큐피드
by Jan de Braij(드 브라이: Haarlem c. 1627 - Amsterdam 1697)
1683, oil on canvas
Wearing only a loincloth Vulcan stands before a glowing anvil forging a suit of armour
for Trojan hero Aeneas with the assistance of Two Cyclops. He does this at the right.
She is accompanied by Cupid, who holds a sheaf of arrows. Jan de Braij made this
mantelpiece painting for the Prinsenhof on commission from the Haarlem city council.
오른편에 허리에 두른 간단한 옷을 입은 불칸은 뜨겁게 이글거리는 모루 앞에 서서
두명의 사이클롭스의 도움을 받으며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에네아스를 위한 갑옷을 만들고 있다.
비너스는 활통을 들고 있는 큐피드와 이를 지켜 보고 있다.
이 작품은 프린스호프의 벽난로 선반 위에 걸어 두기 위해서
할렘 시의회가 드 브라이에게 의뢰해서 제작되었다.
Allegorie op Frederik Hendrik als vredestichter/
Allegory of Frederik Hendrik as the Bringer of Peace/
평화 제공자 역의 프레데릭 헨드릭 알레고리
by Jan de Braij(드 브라이: Haarlem c. 1627 - Amsterdam 1697)
1681, oil on canvas
The city authorities commissioned this allegory in honour of the House of Orange.
It was a tribute to stadtholder Frederick Henry(1584-1647). As an army commander,
he paved the way for the Peace of Münster(1648), ending the Eighty Years' War
with Spain. As trumpets sound, Frederick Henry is crowned with a laurel wreath
and welcomed by the Maid of Haarlem. The horn she holds shows the prosperity
that peace brings. St. Bavo emerges against the 'dawn of liberty' in the background.
할렘 시 당국은 오렌지 왕가를 위한 알레고리 작품을 드 브라이에게 의뢰해서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벌린 80년 전쟁을 뮨스터 평화조약을 맺어서
종전으로 이끈 시의 판사이자 장군인 프레데릭 헨리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월계관을 쓰고 할렘의 처녀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처녀의 손에는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큰 뿔이 들려 있다.
배경에는 '자유의 여명'을 시사하는 성 바보 교회가 보인다.
Pieter Braems en zijn gezin/Pieter Braems and his family
피터 브램스와 그의 가족
by Jan de Braij(드 브라이: Haarlem c. 1627 - Amsterdam 1697)
1663, oil on canvas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reads the translation of the Latin text
on the frame of this painting. This quote from the bible encouraged parents to have
their children blessed by Christ. Here we have Pieter Braems and
Emerentia van der Laen presenting their children to Christ and the Apostle Paul.
Their fourth child had not yet been born and was added to the painting later.
Much later, an unknown artist added four extra heads and painted over second apostle.
Thus, the originally harmonious composition became a cluttered entity.
그림의 프레임에 라틴어로 '슬퍼하는 어린이들은 내게 오라'라고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은 피터 브램스씨와 아내 에메렌티아가 그들의 자녀들을
예수님과 사도 바오로에게 문안을 드리게 하는 모습을 그렸다.
원래 이 작품을 그렸을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던 네번째 자녀는 후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무명의 화가가 4명의 인물을 추가해서
원래 화가의 균형된 구조가 전반적으로 깨지고 복잡해졌다.
De koningin van Sheba voor de tempel van koning Salomo in Jeruzalem/
The Queen of Sheba before the temple of king Solomon/
솔로몬 대왕의 신전에 문안드리는 쉬바의 여왕
by Salomon De Bray(살로몬 드 브라이: Amsterdam 1597 - Haarlem 1644)
1657, oil on panel
The subject is the African Queen of Sheba's visit to the wise King Solomon,
but the emphasis is on the overpowering architecture. The god-fearing De Bray
was convinced that the classical architecture he so admired, originated in
biblical times. For that reason, he painted Greek pillars in this biblical temple.
이 작품은 구약 성서에 아프리카 시바의 여왕이 지혜로운 솔로몬 왕을 알현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하지만 그 이벤트와 인물을 부각하기 보다는, 거대한 신전에 중점을 둔 것이 흥미롭다.
De koningin van Sheba voor de tempel van koning Salomo in Jeruzalem/
The Queen of Sheba before the temple of king Solomon/
솔로몬 대왕의 신전에 문안드리는 쉬바의 여왕(detail)
De koningin van Sheba voor de tempel van koning Salomo in Jeruzalem/
The Queen of Sheba before the temple of king Solomon/
솔로몬 대왕의 신전에 문안드리는 쉬바의 여왕
Jonge vrouw in fantasiekostuum, wellicht als de legendarische
Assyrische koningin Semiramis/
Young woman in an imaginary costume,
perhaps representing Semiramis/
상상의 복장을 입은 세미라미스를 묘사한 것으로 추측되는 젊은 여인상
by Salomon De Bray(살로몬 드 브라이: Amsterdam 1597 - Haarlem 1644)
1652, oil on pane
The partly clothed waman is very reminiscent of the legendary Semiramis.
She wears only a carelessly draped cloak, but has already put on her beret,
as if to depart. Semiramis was an Assyrian queen from the ninth century BC.
One morning while dressing, she was alerted that an uprising had broken out
in Babylonia. Unkempt and partly clothed, she departed for a battle
and defeated the insurgents. She was the epitome of the courage and determination.
작품 속의 제대로 옷을 갖추어 입지 않은 여인은 전설의 세미라미스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기원전 9세기의 아씨리아 제국의 여왕으로,
어느날 아침에 옷을 입다가 바빌로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은 채 부수수한 모습으로
바로 반란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가서 반란군을 진압시켰다.
그녀는 용기와 결단력의 전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Feestmaal van officieren en onderofficieren van de St. Jorisdoelen/
Banquet of the Officers and Subalterns of the St. George Civic Guard/
성 조지 민간방위대의 장교들의 만찬
by Frans Pietersz de Grebber(그래버: Haarlem c. 1573-Haarlem 1649)
1619, oil on canvas
Feestmaal van officieren en onderofficieren van de St. Jorisdoelen/
Feestmaal van officieren en onderofficieren van de St. Jorisdoelen/
Sint Pieterskert in Utrecht/St. Pieters church in Utrecht
우트렉흐트 소재의 성 베드로 교회
by Pieter Saenredam(샌레담: Assendeflt 1597 - Haarlem 1665)
1654, oil on panel
dating from the 11th century. Before starting a painting Saenredam always made
detailed sketches of the builing and he often took measurements. He used this information
to draw the building in an accurate perspective. Saenredam painted this scene
based on drawings he had made 18 years earlier.
샌레담은 11세기에 지어진 성 베드로 교회를 그리기 전에
18년 전에 이 교회를 직접 찾아가서 자로 정확한 칫수를 기록한 데이타를
사용해서 정확한 원근법을 토대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Venus en Adonis/Venus and Adonis
비너스와 아도니스
by Hendrick Goltzius(골찌우스: Mühlbrecht 1558 - Haarlem 1617)
1600, oil on panel
This small panel is probably one of the earlist paings by Golzius, if not the earliest.
Around the year 1600 he stopped making prints and concentrated on painting.
Around the same time he made several studies of trees, such s the one behind Venus
and Adonis. The four dogs served Adonis during the hunt. In the upper left
Venus' chariot can be seen.
Italianiserend landschap met herders en vee bij een doorwaadbare plaats/
Mountain Landscape with shepherds and Cattle Crossing a Ford/
목동들이 소떼를 몰고 얕은 강을 건너는 풍경화
by Nicolaes Berchem(베르헴: 할렘 1621-Amsterdam 1683)
c. 1655, oil on panel
Een lezende of zingende jongeman/Young man reading or singing
책을 읽거나(노래를 부르는) 젊은이
by Pieter de Grebber(그래버: Haarlem c. 1600-Haarlem 1652/53)
c 1628, oil on panel
Moeder en kind/Mother and Child/모자
by Pieter de Grebber(그래버: Haarlem c. 1600-Haarlem 1652/53)
1622, oil on pa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