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 박물관에서 열린 한스 홀바인 2세 특별전시회(2021년 11월 23일)
한스 홀바인 2세는 유럽에서 왕족이나 기존의 귀족 외에
르네상스 시기에 새로 등장한 부유한 상류층들 사이에
화가들에게 초상화 작품을 의뢰하거나, 후원자가 되면서
화가들 사이에서도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기 위한 경쟁이 높아지던
1515년에 화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양한 재능을 소유할 뿐 아니라
설계와 제도, 그리고 화가로도 특출 난 재능을 보인 홀바인은
의뢰받은 다양한 배경의 초상화의 주인공의 겉모습만 아니라
그들의 이념과 가치를 보여주는 구도로 묘사한 화가로 인정받았다.
이 홀바인 게티 특별전시회는 홀바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수준 높은 초상화 작품들,
그리고 초상화의 인물과 관련된 편지들, 서적들, 글귀, 보석 그리고 동물들과
함께 전시되어서 주인공들의 삶을 잘 보완해 주고 있는 점이 드러난다.
덕분에 현재도 그러하듯이 르네상스 시대에 초상화의 주인공의 신원과
개인적인 정보를 엠블럼, 장식품 그리고 목판 등 다양한 기법과 정보를
홀바인은 시각적으로나 지적으로 잘 표현했음을 알려주는 전시회다.
Erasmus of Rotterdam/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1526, engraving
Albrecht Dürer(알브레흐트 듀러/German, 1472-1528)
이 작품은 에라스무스가 유명한 독일 출신 화가이자
그의 친구인 듀러에게 의뢰해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그가 소장한 책들이 있는 그의 서재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한 손엔 잉크병을 들고, 한 손으로 편지를 쓰는 모습을 그렸다.
듀러는 수년 전에 만난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렸으며,
구도는 홀바인이 이미 제작한 에라스무스의 초상화와 비슷하다.
Erasmus of Rotterdam/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about 1532 ,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로 더 잘 알려진
데지데리우스 에라스무스(1466-1536)는
그가 쓴 많은 신학 서적과 철학 서적으로
유럽 전역에서 대학자로 널리 알려지고 존경받은 인물이다.
특히 그가 쓴 책들은 당시 막 발명된 인쇄술 덕분에
빠르게 널리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한 예로, 풍자적으로 쓰인'어리석음의 찬미'/Praise of Folly는
다양한 사회층에 걸쳐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서
책이 귀하던 당시 막 발명된 인쇄기 덕분에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글로 쓰여진 것이 훨씬 유용하고
확실하다고 믿었지만, 그는 자신의 초상화나 이미지를 적절하게 사용해서
추종자와 독자들에게 그의 영향과 존재를 널리 알렸다.
홀바인은 그래서 에라스무스 초상화에
그의 기다란 코, 움푹 파인 두 눈, 좀 튀어나온 듯하고 강한 턱 등
에라스무스의 실제 얼굴 모습과 성격을 그려서
유럽 전역에 그의 이미지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Erasmus of Rotterdam/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about 1532 ,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Portrait Medal of Erasmus(obverse)
1519, probably cast about 1524; bronze
Designer: Quentin Metsys(퀜튼 메치스: Netherlandish, 1465-66 - 1530)
이 초상화 메달은 일단 초상화가 완성되면 다수로 쉽게 주조가 가능하고
이동과 관리가 용이해서 르네상스 시대에 선물로 인기가 높았다.
에라스무스는 엔트워프 출신 화가인 퀜튼 메치스에게
제작이 불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멋진 메달 제작을 의뢰했는데,
메치스는 에라스무스의 초상화와 에라스무스의 emblem/상징인
경계와 테두리의 신인 테르미누스 신의 모습을 묘사되었다.
에라스무스는 모자를 쓰고 깃이 있는 로브/robe를 입고 옆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고대에 만들어진 동전의 주인공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
메달 주위에 새겨진 "from life" 글귀는
메달 속의 에라스무스의 모습이 실제와 아주 닮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Bonifacius Amerbach/보니파시우스 아머바흐 초상화
1519, mixed technique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597/98 - 1543)
이 초상화 작품은 주인공인 아머바흐는 스위스의 바젤 출신 변호사로,
홀바인의 화가로서 출중한 재능과
아머바흐의 풍부한 박식과 학식이 어우러진 다소 도발적인 작품이다.
Bonifacius Amerbach/보니파시우스 아머바흐 초상화(in detail)
1519, mixed technique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597/98 - 1543)
이 작품 속의 아머바흐의 감수성 넘치는 얼굴만이 아니라
이 작품이 주인공의 실제 모습과 한 말이 사실이라고
그가 직접 쓴 에피그램/경구도 작품 속에 새겨진 점이 이채롭다.
Pages with Drafts of the Epigram for His Portrait
자신의 초상화를 위해서 쓴 에피그램 페이지
1519, pan and ink on paper
Bonifacius Amerbach(보니파시우스 아머바흐: Swiss: 1495-1562)
Terminus, the Device of Erasmus/테르미누스 신, 에라스무스의 상징
About 1532,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German, 1497/98-1543)
홀바인은 이 작품에서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그의 개인적인 엠블럼인 로마의 신 테르미누스와 조합해서 표현했다.
바위 사이를 통해서 보이는 이 초상화 작품 속의
에라스무스/테르미누스 신은 특색 없는 풍경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머리 뒤에 있는 골든 디스크는
그의 확고 부당한 크리스찬으로서의 신심을 상징하는데,
이 작품은 홀바인 자신이 에라스무스에 대한 직접적인 존경보다는
아마도 이 작품의 의뢰인이 에라스무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잘 대변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Terminus, the Device of Erasmus/테르미누스 신, 에라스무스의 상징
About 1532,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1543)
Portrait of Erasmus of Rotterdam ("im Gehäus")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집에서")
probably 1538-40; Woodcut
Blockcutter: Veit Specklin(German, active about 1525-1550)
Desinger: Hans Holbein the Younger(German: 1497/98 - 1543)
홀바인은 1536년에 에라스무스가 작고한 직후, 이 기념 초상화로 그렸다.
기다란 가운을 입은 학자 에라스무스의 전신을 보여주며
그의 손은 테르미스 흉상 위를 만지고 있다.
한편 아주 정교하게 꾸며진 영광스러운 아치는
에라스무스를 기리고자 디자인되었으며,
바스켓 모티브와 화환들은 활발하게 학자로 활동한 것을 암시하고,
작품 속의 새겨진 글귀는 작품 속의 얼굴이 실제 모습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Roundel Portrait of Johann Froben/요한 프로벤의 원형 초상화
about 1528-32; oil and tempera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German: 1497/98 - 1543)
이 소규모의 둥근 초상화의 인물은
스위스 바젤 출신 출판사 사장인 요한 프로벤이며,
그는 새로운 인쇄기법과 유통 덕분에 중요한 서적들이
전 유럽에 퍼지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홀바인에게 1516년에 그가 출판한 책의 타이틀 페이지에
들어갈 그의 초상화를 의뢰해서 제작된 작품이다.
Printer's Device of Johann Froben/요한 프로벤의 출판 엠블럼
about 1523; tempera on unprimed canvas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요한 프로벤은 홀바인에게 그의 출판사와 서점을 대표할
엠블럼을 의뢰해서 만든 이 작품은
고대 로마시대 문화의 팬인 프로벤의 취향이 엿보인다.
구름 사이에서 벌린 두 손은 비둘기가 앉아 있는 지팡이를 붙잡고 있으며,
두 마리의 뱀은 그 지팡이에 서로 엉켜 있는데
이는 마치 로마 신화에 나오는 머큐리(헤르메스)가 들고 있는 지팡이와 흡사하다.
홀바인은 명성을 상징하는 프로벤의 엠블럼을
사치스러운 아치로 가장자리를 마무리했다.
Latin Capital Letter Alphabet/라틴 알파벳 대문자
1523, woodcut
Blockcutter: Hans Lützelburger(한스 류츨버거: German: 1495-1526)
Designer: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홀바인이 스위스 바젤에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무렵에
그는 한스 류첼버거와 다른 목판 장인들과 콜라보 작업으로
책에 사용되는 장식적인 알파펫 문자 제작했다.
당시 흥미롭게도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뼈를 모티브로 삼은 죽음의 테마가
소규모의 목판 인쇄를 제작할 때에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위에 보이는 문자들은 "죽음의 알파벳/Death Alphabet"라고도 불렸는데,
홀바인은 죽음이 다양한 사회 계층의 남녀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Latin Capital Letter Alphabet/라틴 알파벳 대문자
1523, woodcut
Blockcutter: Hans Lützelburger(한스 류츨버거: German: 1495-1526)
Designer: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Latin Capital Letter Alphabet/라틴 알파벳 대문자
1523, woodcut
Blockcutter: Hans Lützelburger(한스 류츨버거: German: 1495-1526)
Designer: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Latin Capital Letter Alphabet/라틴 알파벳 대문자
1523, woodcut
Blockcutter: Hans Lützelburger(한스 류츨버거: German: 1495-1526)
Designer: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Printer's Mark of Johann Froben(left);요한 프로벤의 엠블럼(왼편)
Title page with Decorative Border(right)/가장자리가 꾸며진 타이틀 페이지
1518; woodcuts
Designer: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홀바인은 바젤 인쇄업자 프로벤의 책의 타이틀 페이지 가장자리에 사용될
장식성이 높은 다수의 보더/borders를 제작했다.
위의 작품 타이틀 페이지는 세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위는 어린이들이 승리의 행진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옆 부분은 아주 정교하게 나뭇잎과 피겨들이 묘사되었고,
아랫부분은 로마시대의 무치우스 스카볼라 장군의 활약이 소개되었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인물과 사건을 주제로 한 이유는
당시 만들어진 책의 주 고객들의 취향에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Title Page/타이틀 페이지
1518; woodcut
In Thomas More's Utopia/토마스 무어작의 '유토피아'
Block cutter: Hans Hierman(한스 히어만, German: active about 1516-1523)
Designer: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uo topos에서 따왔는데
'no place'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영국의 고위 관직자인 토마스 무어가
상상의 섬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정치적 관례를 풍자적으로 꼬집은 책으로
당시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홀바인이 이 책의 3판 타이틀 페이지에 삽입될 작품으로 제작했으며,
케루빔 천사들이 정교하게 꾸며진 승리의 아치 위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과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모티프가 사용되었다.
Francisco de los Cobos y Molina/프란시스코 델로스 코보스 Y 몰리나
about 1530-32; oil on panel
Jan Gossaert(얀 고새르트, Netherlandish, about 1478-1532)
고새르트는 초상화의 주인공인 델로스 코보스 y 몰리나의 가죽 장갑과
모자에 정교하게 박힌 다수의 보석을 통해서 주인공을 아주 디테일하게 그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신분도 오랫동안 잊혔다가 근대에 들어와서
그의 조개껍질 문양을 한 산티아고 기사도 회의 펜던트와 새겨진 글귀로 밝혀졌다.
Portrait of Hendrik III, Count of Massau-Breda
헨드릭 3 세왕의 초상화, 마사우-브레다 백작
about 1516-17, oil on panel
Jan Gossaert (얀 고새르트, Netherlandish: about 1478-1532)
홀바인과 당대에 네덜란드에서 활약했던 고새르트가
네덜란드의 왕인 나싸우-브레다의 헨드릭 3세의 초상화를 그렸다.
작품 속의 헨드릭 3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좋아하는 것을 암시해 주는
대리석 패널 앞에 서 있으며,
당시에 유행했던 흉상이 그의 모자 배지에 달려있다.
홀바인은 이 작품에서 묘사된 것처럼
손에 서류를 붙잡는 모습을 통치와 지배를 상징하는 모티브로 도입했다.
Portrait of a Woman/여인의 초상화
1532-34; tempera and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홀바인은 영국 왕실 재의 고위 관직자의 아내로 추정되는 초상화의 여주인공의
영국풍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녀가 입은 옷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푸른 배경은 그녀가 쓴 크림 색상의 모 소재의 보네트를 감싸주고,
그 위에 쓴 와이어로 모양을 잡은 모자,
그리고 고급스러운 하얀 숄,
모자와 보네트를 고정해 주는 진주 핀 등은
그녀의 사회적인 지위와 부를 잘 나타낸다.
Derich Born/데리흐 본
1533;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초상화 속의 데리흐 본은 콜론(쾰른) 출신의 젊고 야망찬 군사용품 딜러였다.
그의 직업이 이 작품 속에 묘사되지 않았지만,
대신에 그가 입은 옷의 빛나는 소매의 처리는 홀바인의 재능을 제대로 보여주며,
이 작품에서 새겨진 글귀는 주인공의 실제 모습과 아주 닮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라틴어로 그림에 새겨진 글귀:
"If you added a voice, this would be Derick his very self.
You would be in doubt whether ht epainter or his father made him.
Der Born aged 23, the year 1533."
Derick Berck of Cologne/콜론의 데릭 베르크
1536;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관객들을 똑바로 응시하는 베르크는 한자동맹의 무역인으로
그의 이름은 그가 들고 있는 종이에 적혀 있다.
종이에 적힌 편지 끄트머리에 적힌 글귀 "consider the end"/마지막을 기억하라"는
인간의 유한성을 암시하는 듯하며,
왼쪽에 보이는 종이에는 고대 로마의 시인 버질의 글에서 따온 것으로
베르크와 그의 자손들, 아마도 관객들까지 포함해서
한결같이 용기를 가지고 주어진 삶과 일/비지네스를 처신하라고 쓰여있다.
Thomas Cromwell/토마스 크롬웰
1532-33;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헨리 8세 왕이 영국을 통치하던 시기에 수상직을 맡은 크롬웰은
홀바인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크롬웰의 손에 움켜쥔 접힌 서류는 그의 막대한 권력을 시사해 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편지는 헨리 8세가 크롬웰에게 보낸 것으로
그를 보석 가문의 마스터라고 칭하였으며,
금으로 제본된 책 역시 헨리 8세가 보낸 것으로 그의 지위를 잘 대변해 준다.
Simon George of Cornwall/콘월의 사이먼 조지
about 1535-40; mixed technique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초상화의 주인공인 사이먼 조지는 당시에 유행하던 옷으로 단장했다:
정교하게 수 놓인 검은 셔트와 금과 에나멜로 처리된 비올라 꽃으로 치장한 모자를 쓰고 있다.
조지가 들고 있는 붉은 카네이션과
모자에 달린 그리스 신화에 신비스러운 연인으로 나오는 레다와 백조 배지는
사랑과 약혼은 암시해 준다.
Mary, Lady Guildford/매리, 레이디 길포드
1527;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Mary, Lady Guildford/매리, 레이디 길포드
1527; oil on panel
Hans Holbein the Younger(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98 - 1543)
초상화 속의 레이디 길포드의 본명은 매리 워튼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대리석 기둥을 배경으로
관객들을 향해 조용히 바라다보고 있다.
그녀가 입은 옷에 달린 로즈메리 가지와
손에 들고 있는 묵주와 "그리스도의 삶" 기도 책은
그녀의 독실한 신심과 덕목을 보여주고 있다.
Nicholas Bourbon (c.1503-1549/50)/니콜라스 부르봉
1535, Black and coloured chalks, and pen and ink on pale pink prepared paper
HANS HOLBEIN THE YOUNGER (한스 홀바인 2세, German: 1497/8-1543)
부르봉은 1535년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헨리 8세가 통치하던 시기에 영국에서 활동한 프랑스 출신 시인으로
홀바인은 당시 흔히 학자를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던
유행대로 부르봉을 그렸다.
부르봉은 당시 영국에서 거주하던 홀바인등 예술가와 지식인들의모임의 멤버로
화가로서의 홀바인의 재능을 극찬했다고 한다.
The Tax Collectors/세금 징수원
1525-28; oil on panel
Quentin Metsys(퀜틴 메치스: Netherlandish, 1465/66-1530)
메치스는 1520년대에 세금 징수원을 포함해서
학자나 신학자등 다양한 직업을 풍자적으로 조롱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대에 그려졌다.
작품 속의 두 주인공은 좁고 다양한 서류와 왁스 도장등으로 널린 어수선한 방에서
아주 우아하지만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동전과 보석을 세고 있다.
왼편에 보이는 남성은 장부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오른편 그의 파트너는 마치 관객들에게 지불을 강요하는 듯한 표정으로 짓고 있어서
당시 독하고 공격적인 직업으로 인식된 면을 강조하고 있다.
The Tax Collectors/세금 징수원(detail)
1525-28; oil on panel
Quentin Metsys(퀜틴 메치스: Netherlandish, 1465/66-1530)
계속해서 '게티 하이라이트'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