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티슬 채플 내부
성 자일스 대성당 남쪽의 스테인드 글라스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특이한 티슬 문양의 천장과 좁은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명예로운 인물들을 위해서 지어진 티슬 채플로 이어진다.
공간이 좁은데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장인들의 손에 의해서
고딕 양식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채플 내부의 모습에
절로 환성이 터져 나왔다.
The Thistle Chapel/티슬 채플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최정예 기사 16명으로 이루어진 단체인
티슬 훈위/Order of the Thistle을 위해서 지어진 채플이다.
티슬 훈위 멤버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명예로운 인물로 인정되며,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를 위해서 큰 업적을 남긴
스코틀랜드 태생이거나, 스코틀랜드인의 후손들만이 멤버가 될 자격이 있다.
멤버십은 오로지 왕/여왕의 재량으로 임명에 의해 얻을 수 있다.
고딕 양식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채플 천장
티슬 훈위는 정확하게 언제 창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만,
전설에 따르면, 809년에 샬레망 황제와 동맹을 맺은
아카이우스 왕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왕가의 식물 배지를 thilstle/티슬(엉겅퀴)로 제정한
제임스 3세 (1488-1513)에 의해서 창립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1687년에 제임스 7세는 홀리룻 수도원을
이 명예로운 기사도 훈위의 전속 채플로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이듬해에 폭도들이 기사들이 첫 모임을 가지기도 전에
채플을 파손시키는 바람에
200년 이상 동안 기사들만의 채플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1952년 2월 6일에 사망한 조지 6세의 무덤이 바닥에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티슬 훈위의 전속 채플을
파손된 홀리룻 수도원 보수공사를 해서 장만할지
성 자일스 성당 내에 새로운 채플을 지을 지에 대해서
다양한 계획들에 대한 토론이 오랫동안 오갔다.
1906년에 11대 레븐 백작/11th Earl of Leven 로날드 레슬리-멜빌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유산 2만 4천 파운드를 기부하게 되면서
당시 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가 성 자일스 대성당 남쪽에
새로운 채플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려서
성 자일스 남쪽에 새 채플을 짓게 되었다.
구석구석마다 장인의 손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채플 모습은
얼마만큼 스코틀랜드의 자긍심이 배어 있는지 쉽게 느껴진다.
채플 디자인과 건축은 Robert Lorimer/로버트 로리머가 맡았으며,
그는 각 분야에서 스코틀랜드의 최고의 장인과 예술가들로 팀을 이루어서
1909년 11월부터 채플 공사가 시작되어서,
1911년 7월에 공식 오프닝 행사가 열렸고,
조지 5세는 공사 책임자인 로리머 씨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Order of Thilstle은 Order of Garter 다음으로
두 번째 오래되고 명예로운 단체로
여왕의 권한으로 임명되는 멤버들은 영국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티슬 기사들은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씩 이 채플에서 만남을 가진다.
건축 평론가들은 제한된 면적과 공간에 고딕 양식으로 아름답고 정교한 채플을
성공적으로 지은 로리머 씨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정교하게 조각된 뾰족한 각각의 지붕 아래에
16명의 기사들의 좌석이 있다.
채플 내의 왕좌
기사들의 좌석 뒤 벽에 걸린 각 기사들과 연관된 다양한 문장들
스코틀랜드의 장인들에 의해서 정교하게 조각된 기사들의 좌석
티슬 채플 입구 위의 천장 조각을 다시 한번 보고
채플을 뒤로했다.
채플 근처 벽에는 이곳에 묻힌 스코틀랜드 출신 유명 인물들의 기념비가 걸려 있다:
1847년에 마취제 클로로폼을 개발한 제임스 영 심슨/James Young Simpson(왼편)
2대 클라이드뮤어 남작, 군인, 은행가, 스코틀랜드 교파의 우두머리를 역임한 로날드 콜빌(가운데)
의사, 수필가 그리고 작가인 존 브라운 박사(오른편)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에딘버러 대학교 그리스어 교수였던 존 스튜어트 블래키(왼편)
신학 교수이며 유명한 설교자였던 토마스 챌머(가운데)
마가렛 올리펀트/M. Oliphant(1525-1597)(왼편)
세계 1차 대전 중 1915년 4월 25일에 로얄 5대대가 갈리폴리에 성공적으로
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전사한 이들을 기리는 비(가운데)
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9대대 소속 군인들을 기리는 비(오른편)
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장교들을 기리는 비 (왼편)
성당 서쪽에 위치한 입구 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모습
성당 동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모습
에드워든 번-존스 작의 조슈아 윈도우
The Joshua window by Edward Burne-Jones (1886)
아래 윈도우는 커리힐 경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작된 작품으로
왼편부터 구약에 등장하는 제프타의 딸 마리아(혹은 미리엄), 아론의 여동생
그리고 모압 출신의 루스를 묘사한 스테인드 글라스
위쪽 부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궤를 들고
요르단 강을 건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입구 위에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인드 글라스인 '로버트 번스' 윈도우
아이슬란드 출신 글라스 아티스트인 브라이드표드/Leifur Breidfjord가
스코틀랜드 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 로버트 번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1985년에 제작한 로버트 번스 윈도우
West Window by Icelandic glass artist 1985
이 스테인드 글라스는 빅토리아 시대에 제작된 작품이
제작 시 문제(underfiring)로 글라스의 색깔을 잃게 되면서
1985년에 새로 제작해서 설치되었다.
아래 윈도우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The lower half celebrates the natural world;
"Again rejoicing Nature sees
Her role assume it's vertical lines:
Her leafy locks wave in the breeze,
All freshly steep'd in mornin dews"
윗부분은 "인간 사회와 형제관계/'human community and brotherhood of man'에 헌정되었다.
"It's comin yet for a' that.
That man to man the world o'er
Shall brither be for a' that"
위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걸맞은 철 소재로 제작된 멋진 스크린이
입구 앞에 세워져 있다.
성 자일스 대성당 앞에서...
겉에서 보면 거무튀튀한 입구 위의 윈도우의 아름다움을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