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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lcome to Wildrose Country
About me...Helen/헬렌의 일상에서

오늘 2년 만에 처음으로 립스틱을 바르고...

by Helen of Troy 2022. 3. 19.

 

2020년 어머니 날에 받은 립스틱 세트를 선물 받았다.

당시 6월은 코로나 판데믹 초반으로, 유럽과 북미에서 매일 사망자 수가

특히 나이가 많으신 분들과 면역에 문제들이 있는 분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백신 개발 전이라서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하던 시기였고,

외출이나 사람 만나는 일을 극도로 자제하고

부득이하게 나간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했다.

 

그래서 그동안 외출할 때면 늘 마스크를 꼭 써야 하기에

세수를 하고 로션만 바르면서 지냈고,

화장은 거의 하지 않고, 하더라도 살짝 눈 화장만 하고

파운데이션이나 립스틱을 바를 일이 없고,

전반적으로 거울 앞에 서는 일도 자주 없었다.

 

 

 

 

거실에 핀 히야신스

 

 

이런 초유의 사태가 1년이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장장 만 2년 후인 지난주에 드디어

대중교통이나 특수한 곳을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되었고,

정원 규제도 없어져서, 겉으로는 일단 일상으로 돌아온 셈이다.

 

 

 

 

피아노 위에 핀 튤립

 

이런 정부의 조치에 따라서 에드먼턴 교구에서도 성당 내에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의무화 해제 결정을 내려서

오늘 금요일 아침 미사부터 2년 만에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제대 앞에서 편하게 소리 높여 성가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옆에 수헌화도...

 

 

그러다가 2년 만에 마스크 없이

편하게 신자들 앞에서 성가를 하게 되어서

눌 맨 얼굴 상태로 지내다가, 

실로 너무도 오랜만에 살짝 파운데이션도 바르고, 

2년 전에 선물 받았다가 서랍에 처박혀있던 립스틱 세트를 꺼내서

어느 색상을 바를지 망설이다가 일단 4가지 모두를 발라 보았다.

 

결국 체리 색상으로 골라서 입술에 바르고 오랜만에 거울을 쳐다보니

거울 속의 화장을 한 내 모습이 사뭇 생경스러웠지만,

오랜만에 립스틱을 바른 붉은 입술이 잔잔한 행복감을 선사해 주는 듯했다.

 

 

 

 

 

난도 질세라 망울망울 꽃이 피었다.

 

밖은 여전히 하얀 눈으로 덮였지만

눈에 띄게 낮 길이가 길어지기도 하고,

지난 주말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되어서, 한 시간이 앞당겨져서

겨울엔 늘 컴컴할 때 일어나다가

이제는 동향에 있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눈부신 아침 햇살로 절로 눈이 뜨인다.

 

 

 

 

 

창가도 봄철을 맞이했다.

 

 

그래서 이 따스한 햇살로 환한 창가에 앉아서 간단히 먹는 아침 식사 시간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어서인지 커피 맛과 향마저 좋아서 두 잔을 마시게 된다.

 

집 바깥은 여전히 동장권의 위력에 휘둘리고 있지만,

며칠 사이에 거실에 있는 화분의 꽃들이 화사하게 펴서

미리 봄을 느껴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금요일 아침이었다.

 

 

 

 

 

 

12월 초에 피어서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고 부르는데 게절을 잊고 수십개의 꽃망울이 맺혔다.

 

성당에 도착하니, 약 1/3 정도의 신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2년 만에 처음으로 신자들의 얼굴과 

그동안 치웠던 성가 책들이 제 자리에 꼽혀 있는 모습에 울컥했다.

 

그동안 제대 앞에서 마스크를 쓴 채 혼자 솔로로 성가를 불렀지만,

오늘부터 어떤 성가를 부를지 신자들에게 알려 주고

2년 만에 함께 성가를 부르자고 발표했더니,

처음엔 정말 노래를 불러도 되는지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몇몇 사람들만 성가를 조용하게 부르더니,

2절을 부를 때부터 다들 목소리를 모아서 함께 힘차게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마스크 없이 오랜만에 제대로 본 그들의 밝은 얼굴 표정이 아주 반가웠다.

 

 

 

 

 

 

그렇게 신자들과 함께 마침 성가까지 잘 부르고 성당을 나서려고 하자

많은 신자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 손을 꼭 잡고 포옹을 하면서, 함께 성가를 부르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인 미사를 드려서

올해 사순절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한국 책

 

금요일 아침 미사가 끝난 다음

늘 베이커리에 들려서 갓 구워진 두세 가지의 빵을 사고

바로 옆에 위치한 동네 도서관에 가는 것이 나의 루틴이다.

 

 

 

 

 

 

도서관에 빌린 문학상 수상 작품집

 

 

우리 동네 도서관을 비롯해서 시내 있는 모든 도서관에는

한국 책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쓰인 책들을 구비되어 있다.

그동안 가끔 무작위로 빌려간 책들이 별로 내 취향과 맞지 않아서

한국 책에 꽂힌 곳으로 잘 가지 않다가,

오늘은 어떤 책이 있을지, 궁금해서 보았더니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도 있고,

한국 작가들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냥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집들이 몇 권 있어서 

오랜만에 한국 서적들을 빌려 보았다.

 

 

 

 

 

 

제일 먼저 황석영 작가의 '해질 무렵'을 읽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가 집에 거의 다 와서 

서서히 녹기 시작하는 집 바로 뒤의 호수에

추위를 피해서 따뜻한 곳으로 떠났던 캐나다 구스 한 마리가

드디어 울 동네에 돌아 온 것을 확인했다.

멀리 떠났던 친구가 마치 봄의 전령사처럼 나타났다.

 

 

 

겨울왕국 우리 동네도 어김없이 봄이 오긴 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