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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영국&스코틀랜드

[영국 여행17]2,000년을 버틴 하드리아누스(하드리언)방벽 2편

by Helen of Troy 2022. 8. 21.

티스토리로 이전하기 전에 그동안 올렸던 글을 수정도 하고

임시보관함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글들을 삭제도 하고

이 글은 5년만에 포스팅해 봅니다.

 

로마제국의 북방을 지켜 준 하드리언 방벽

(2017년 7월 10일)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대변해 준다.

 

 

 

중세기부터 16 세기에 이 광활하고 황폐된 지역에 이주해 온 이주민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계 사이에 자주 침입하는 도적들을 막기 위해서

오랫동안 방치된 방벽과 막사 건물을 재활용되었다.

 

 

 

 

잦은 약탈과 방화  피해를 막기 위해서 벽은 두껍게 창은 아주 작게 재건축해서

아래층은 가축들이 지내는 우리로

윗층은 거주지로 사용해서, 사다리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음침한 스코틀랜드의 하늘을 배경으로 방벽은 허물어졌지만,

야생화는 여전히 피어있다.

 

 

 

 

 

광야에 불어닥치는 강풍에 야생화들이 물결치고 있다.

 

 

 

 

 

이런 광활한 평원에서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곳이라는 것이 좀 서글프다.

 

 

 

 

 

하드리언 성의 동대문

 

 

 

 

 

이 대단한 대문(동대문)은 120년대에 처음 건축되었는데,

위험 상황에 군인들의 빠른 이동을 위해서

네 방향으로 난 대문들은 두개의 문으로 이루어졌다.

로마제국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서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의 모습과 황제를 추앙하는 글이 추가되었다.

 

 

 

 

 

동대문

 

 

 

 

 

 

 

 

 

 

 

 

 

 

오래된 성에 강풍과 빗방울이 여전히 불어댄다.

 

 

 

 

 

폭이 1미터나 넘는 성벽이 죽 이어진다.

 

 

 

 

 

3 세기 후반에 접어 들면서 하드리아누스 방벽 지역은 큰 변화가 있었다.

원래 창고로 쓰였던 건물에 목욕탕이 들어섰고,

다양한 워크숍들과 막사, 마굿간과 주민들에게 세금으로 걷어들인

곡물을 저장하는 곡식 창고 건물이 증축되었다.

 

 

 

 

 

막사의 잔재

 

 

 

 

 

 

300년경부터 이 성벽은 큰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하나의 기다란 막사 건물을 군인들이 각자 살 수 있게,

작지만 개별적인 "샬레" 스타일로 재공사가 이루어졌다.

 

 

 

 

 

Granaries(Horrea)/곡식 창고의 잔재 

 

로마시대 성곽에 주둔하는 약 800명의 군인들의 원만한 음식 조달을 위해서

곡식 창고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이 창고에 보관하는 곡식의 안전과 청결 그리고 지속적인 조달이 필요했다.

 

 

 

 

 

 

Granaries(Horrea)/곡식 창고의 잔재 

 

 

 

 

 

 

2,000년 후 창고 벽에 핀 고사리

 

 

 

 

 

초기에 지어진 성벽의 토대

 

122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거대한 로마 제국의 변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벽을 짓기로 결정함에 따라서

제일 먼저 성벽의 토대와 초소 타워부터 건설하기 시작했다.

 

 

 

 

성벽의 토대

 

 

 

 

 

2,000년이 지나서 봐도 성의 견고함이 느껴진다.

 

 

 

 

 

 

 

 

 

핑크빛의 이 야생화는 2,000년 전에도 피었을까?

 

 

 

 

 

 

 

 

 

 

빵을 굽던 오븐이 있던 자리

 

 

 

 

 

 

 

 

 

 

 

 

 

 

 

 

 

 

 

 

 

 

 

 

 

 

 

 

 

 

 

초기 성벽의 토대

 

 

 

 

그 위에서 헬렌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해 보면서..

 

 

 

 

이번 여행에 룸메이트이자 절친인 앤과 함께...

 

 

 

 

Pam과 Cheryl도 함께...

 

 

 

 

North Gate/북대문의 잔재

 

북대문/porta principalis sinistra은 4개의 대문 중

유일하게 성벽을 지나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대문이었다.

하지만 문 바로 밖의 지형은 매우 가팔라서

결국엔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세 개의 대문처럼 북대문도 2 개의 아치로 된 출입구가 있었고,

양쪽에 타워와 경비병의 초소가 있다.

처음엔 마차도 지나다니다가, 가파른 경사 때문에

2세기 말에는 오로지 보행자들만 드나드는 문이 되고,

동대문을 제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북대문 잔재

 

 

 

 

빗방울이 드세지자, 순회공연을 위해서 특별제작된 우산을 들고 환히 웃는 앤

 

 

 

 

 

나는 그 우산을 팽개치고 빗방울과 강풍 속에서 웃으면서 김치~~~~

 

 

 

 

 

Praetorium/Commander's House/사령관(장교)의 집터

 

 

 

 

 

하드리아누스 성곽에 주둔하는 군대의 사령관들은

지중해 지역의 부와 권력을 갖춘 귀족 출신의 기병들이었으며

최소 3년간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갔다.

 

 

 

 

이 사령관들의 집들은 성벽 주위의 건물들 중에서 가장 규모도 크고 화려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군인들이 사는 좁고 누추한 거처와는 큰 대조를 보여서

이런 변경에서도 지휘관들과 군인들의 지위와 힘의 차이가 존재했다.

 

 

 

 

 

마굿간 터

 

 

 

 

 

마굿간 터

 

 

 

 

South Gate/남대문

 

 

 

 

남대문

 

 

 

 

 

The Vicus:  Life outside the Fort/비쿠스: 성 밖의 삶

성벽에 주둔하는 군인들과 성 주위에 사는 주민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살았다.

비쿠스에 사는 주민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이주한 이들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해서 군인들과 거주민들의 원활한 활동이 가능했다.

아울러 군인들의 연인들도 이 비쿠스에 거주했다.

 

 

 

 

비쿠스의 잔재

 

이들은 군인들의 보호 아래서 군대에게 할애된 땅을 일구면서 살면서

군인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자치적으로 생활을 영위했다.

 

예비군들은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193-211)가 허락하기 전까지

거주민들과 혼인이 금지되어서 비쿠스에 비공식적인 가족이 살았다.

 

 

 

 

할애된 시간이 다 되어서 다시 버스가 주차된 곳으로 아쉽게 발을 옮겼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본 농촌 모습

 

 

 

 

 

 

 

 

 

 

 

 

 

 

 

 

저녁 5시 반에 다음 목적지인 New Castle on Tyne에 도착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