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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캐나다

몬트리올 이야기 1 (역사)

by Helen of Troy 2010. 4. 28.


 에드몬튼에서 비행기로 4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몬트리올로 5일간의 짧은  여행을 하고 돌아 왔다.

캐나다의 동부의 역사가 그대로 반영되어서 영국과 불란서 문화가 잘 어우러진 몬트리올은

매번 올때마다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어서 기회가 있을때마다 다시 오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이다.


 

Old Montreal

 

    몬트리올은 캐나다 동부의 퀘백 주에 위치 해 있으며 현재 캐나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고 

    퀘백주에서는 제일 큰 아름다운 도시이다.

    몬트리올 시 자체 인구는 거의 200만이고 시와 주위를 포함한 Greater Montreal  에 약 380만명이 살고 있으며

    도시의 크기는 4259 평방미터에 다다른다. 1976년에 캐나다에서 제일 큰 도시 자리를 토론토에게 물려 주었지만

    여전히 상업, 문화, 항공, 제약, 기술의 중심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Old Montreal



역사:


세인트 로렌스 강의 섬에 위치한 몬트리올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이미 세인트 로렌스 이로쿼아 인디언(St. Lawrence Iroquoians) 부족들이 수천년간

호첼레가(Hochelega)라고 불리우는 이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Old Montreal 광장에 있는 기념판에서...

빌 마리 (몬트리올) 마을을 처음 시작한 Maisonneuve (매이종누브)씨가

두손으로 이로쿼아 추장을 1644년 3월에 살해했노라는 기록이 담겨있다.

 


1534년에 몬트리올에 첫 발을 디딘 유럽인은 프랑스 탐험가인 작 카티에(Jacques Cartier) 이며

그는 콜롬버스처럼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프랑스 정부의 위해서 탐험을 나섰다가

세인트 로렌스 강 상류로 올라 오면서 현재의 퀘백시와 몬트리올 섬에 도착해서 프랑스 영토로 주장했다.

70년 후인 1600년 초반부터 프랑스 탐험가인 샴플레인(Champlain) 비롯한 프랑스인들이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식민지의 땅에 유럽에서 호가로 팔리는 모피를 조달하기 위해서 fur trading post(모피 구입/교환소)를 세우면서

중요한 상업도시의 초석을 다졌고, 새롭게 발견 된 이 식민지를 New France 라고 명명을 했다.

 


 

 

Notre Dame Cathedral (노트르담 대성당)

 

한편 1641넌에 이곳에서 오래 살고 있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크리스찬으로 개종하기 위해서 모집된 50명의 프랑스인들이

프랑스를 출발해서 1642년 5월 17일에 이곳으로 도착해서 Ville-Marie (빌 마리: 성모 마리아의 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여지면서 몬트리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Ville-Marie

In 1641, some fifty French settlers, both men and women, recruited in France

 by Jérôme Le Royer de la Dauversière, of Anjou, on behalf of

the Société de Notre-Dame de Montréal, set sail for New France.

They hoped to convert the Natives and create a model Catholic community.

 

The first mass celebrated in Montréal
The first mass celebrated in Montréal, in May 1642. Bronze low relief by Louis-Philippe Hébert. Detail of the monument to Paul de Chomedey, sieur de Maisonneuve (1895), Place d'Armes.

 

After a long crossing and a number of stops, the small group,

led by Paul de Chomedey de Maisonneuve, of Champagne,

with the energetic assistance of Jeanne Mance, landed on the point of

land next to the little river on May 17, 1642, and there founded Ville-Marie.

The little colony would soon become known as Montréal.

 

이렇게 도착한 개척자들은 우선 인디언들의 잦은 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성부터 짓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모피 물물교환이 활발했지만 이로쿼아 인디언들의 잦은 습격으로 그들을 개종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은

점점 빛을 잃기 시작했다.  1685년 경에는 약 600명의 개척자들이 통나무로 만든 집에서 거주했고

그들은 선교를 위해서 온 신부님들과 수사님들과, 그리고 seigneurs라는 부유한 지주들과 농부들, 그리고

모피 상인들이로 이루어졌다.

 

The streets of Ville-Marie in 1685

The streets of Ville-Marie in 1685.

 

Ville-Marie in 1685

Ville-Marie in 1685. Artist's conception by Francis Back for the book
Pour le Christ et le Roy, la vie au temps des premiers Montréalais, 1992.

 

 

A Fortified Town

Starting in 1685, Montreal became more and more of a military stronghold.

It would be surrounded by a wooden palisade, which had to be enlarged twice.

Two events helped to ensure the colony's continued existence. In 1701,

the Great Peace Treaty of Montréal was signed with a large number of Amerindian nations, putting an end to the war with the Iroquois; and in 1713, the signing of the Treaty of Utrecht ended the war between France and England.


Reconstructed view of Montréal in 1725
Reconstructed view of Montréal in 1725.
© Canadian Centre for Architecture and Centre for Landscape Research
(University of Toronto), 1996

1685년경부터는 몬트리올은 뉴프랑스 식민지의 중요한 군사지역으로 커 나갔고,

1701년에 원주민 인디언 부족들과 맺어진 몬트리올 평화 조약에 서약함으로서

끊임없이 싸우던 이로쿼아 인디언들과의전쟁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리고 1713년 유럽에서 맺어진 유트렉트 조약에 합의함으로서 수십년간

앙숙처럼 전쟁을 이어 온던 프랑스와 영국과 잠시지만 평화가 찾아 들었다.

그 후로 몬트리올은 북미의 전 프랑스 식민지를 다스리는 중요한 도시로 발돋움 했고

활발한 모피 산업에 힘 입어서 본토에서 많은 새이주자들이 계속 몰려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프랑스 식민지의 중심도시였던 몬트리올에 큰 변화가 1760년에 찾아 들었다.

프랑스군대와 영국군대가 북미의 식민지의 이권으로 계속적으로 크고 작은 전쟁을 치루다가

1760년 퀘백에서 결정적인 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 패배해서 1763년에 맺어진 파리 조약에 의해서

뉴프란스 식민지가 British North America로 명명되면서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갔다.

 

이 조약이 체결 된 초반에는 100년 이상 프랑스 식민지 거주자들에게

영국식으로, 언어와 종교, 생활방식으로 살도록 강압적으로 강요를 받았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얼마 후에 그들의 언어, 종교와 문화를 그래도 간직하면서 살아도 좋다는 퀘백 조약을 공표해서

지금까지 다국적 문화와 공식적으로 이중언어를 잘 수용하는 모자이크 문화의 시초를 마련했다.

영국식민지 정부는 프랑스인들을 추방하지 않고 대영제국의 시민 자격으로 

그들이 살아 오던 방식대로 살게 허락했다.


영국의 식민지로 된 후에 잉글란드, 스콧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새로운 이주자가 이곳으로 많이 모여 들기 시작해서

서서히 영국의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도시로 탈바꿈을 거치기 시작했다.

 

영국정부에 항의와 잦은 반란 사건으로  1791년에 영국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

현재의 퀘백과 온타리오에 해당하는 Lower and Upper Canada로 나누었다가

1840년에 다시 하나의 캐나다로 뭉치게 되면서  1802년에 도시로 정식으로 승격이 된 몬트리올은

잠시지만 1844년부터 1849년까지 5년간 몬트리올은 연합 캐나다의 수도이기도 했다.

 

music: Parce Que

sung by  Ilona Knopfler

from helen's cd bin

계속.....